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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단일화 경선 여론조사가 한창 진행되던 3월 17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캠프 측에서 이상한 문자가 대량 발송되었다. 문제의 문자 내용은 이렇다.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 함.” 여론조사 조작을 유도한 이 문자로 인해 이정희 대표는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섰다.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함."
이정희 캠프가 보낸 문제의 문자

이에 대해 이정희 대표는 “이것이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고 여기신다면 재경선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사태가 진정될 수 없었다. “컨닝하고 걸리면 재시험 보면 되는 거냐”는 비난이 뒤따랐고, 이정희를 두둔하는 목소리는 힘을 잃어갔다.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한겨레 역시 이정희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는.

이 난국을 풀 가장 중요한 열쇠는 통합진보당의 이 대표가 쥐고 있다. 사건의 무게에 비해 너무 큰 책임을 요구받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당과 주변의 의견도 고려해야 하니 심사가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도덕성을 무기로 삼는 진보정당의 대표 주변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결자해지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겨레 사설, ‘좌초 위기 야권연대, 이정희 결단으로 풀어야‘, 2012년 3월 22일

이 사설은 결국에는 이정희의 사퇴를 촉구하고는 있지만, ‘사건의 무게가 가볍고’, ‘억울할 것’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물론 사안의 경중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있고, 이 사건이 사퇴를 요구하기에는 가혹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당대 당 경선에서의 부정 경선 의혹이 가볍다고 여긴다 한들, 어찌 한겨레에게 내 가치를 강요할 수 있으랴. 그런데 다른 문제가 더 있다. 이 사설과 동반되어 쏟아진 한겨레 기사의 편향성이다.

한겨레, ‘통합진보 일각, ‘이정희 사퇴론’ 현실화 가능성 크지 않다‘, 2012년 3월 22일

위의 기사는 이정희 측에서 보냈다는 문자와 김희철 측에서 보냈다는 문자를 나란히 배치하고, “서울 관악을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경선이 진행된 지난 17~18일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 쪽과 김희철 민주통합당 후보 쪽이 각각 지지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라는 설명을 단다.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하다.

한겨레의 문자 캡처
한겨레 기사에 인용된 양측 문자. 이정희 측과 김희철 측의 문자 내용이 거의 비슷하게 보이도록 편집되어 있다.

일단, 우측 김희철 후보 측이 보냈다는 문자부터 살펴보자. 이는 서울시 교통시의원 이행자 씨가 교회 인맥에 보낸 문자로, 문자 수신인 부분이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다. 그런데 이행자 씨는 이미 기사가 올라온 날 오후 3시 30분 경 자신이 보낸 문자의 원본을 스스로 제시하고 이 문자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은혜 마을 집사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행자 씨가 공개한 문자 원본.

모자이크 된 부분에 써 있는 문구는 “은혜 마을 집사님”. 이행자 씨의 해명에 따르면 은혜 마을이란 교회의 2~30대 젊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2~30대 성도들에게 2~30대 여론조사가 진행 중이니 참여해달라고 호소한 것이므로, 문제가 될 여지가 거의 없다. 오히려 이행자 씨는 개인정보도 아닌 부분에 굳이 모자이크를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음해와 물타기를 위해 일부러 모자이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런데 10시 40분에 올라온 기사가 그로부터 7시간 전에 이미 올라온 해명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정희 측 문자도 캡처본도 이상하다. 이정희 측의 문자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다른 나이대로 답변하라”는, 즉 여론조사 조작을 노골적으로 의뢰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사는 문제의 부분은 빼고, “전화오면 50대로…”라는, 그 의미가 불분명해 해석의 여지가 있는 부분만을 삽입하였다.

이로 인해, 한겨레 기사만 보면 이정희 측과 김희철 측, 양측의 문자 내용이 거의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어떤 특별한 조작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수 시간 전에 나온 원본 대신 가공본을 쓰고,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을 잘라내고 애매한 부분을 자료로 썼을 뿐이다.

3월 22일, 한겨레 인터넷 사이트가 메인 화면에 가장 크게 띄워놓은 기사도 도저히 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기사다. 이정희 대표의 문자 논란이 야권연대 지지자들을 뒤흔들고 있을 무렵, 한겨레는 뜬금없이 메인 기사를 통해 한명숙 때리기를 시전한다. 함박웃음을 띄운 박근혜의 사진과 곁들여진 이 기사의 제목은 “필요할 때마다 야권이 적시타… 한명숙 고마워“.

한명숙 때리기
이정희의 여론 조작 파문이 거세게 불어닥칠 때, 한겨레는 뜬금없이 메인페이지를 동원해 '한명숙 때리기'를 시작한다.

한명숙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적잖이 불었음은 사실이고, 결국 총선 결과가 야권연대의 패배로 연결되면서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 한명숙 대표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기사는 타이밍이 묘하다. 당시 야권연대는 실제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는다면 마땅히 문자 조작 스캔들을 터트린 이정희 측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대체 왜 뜬금없이 이 시점에서 한명숙이 비난받았을까.

그리고 한겨레의 일련의 보도 태도는, 23일 이정희 대표가 결국 사퇴하면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정희 대표는 결국 후보에서 사퇴하나, 같은 지역의 야권 단일후보로 같은 계파의 이상규 후보가 나선 것은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내경선이었다면 문제가 될 만한 후보를 사퇴시키고 다른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 테지만, 이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양 당간의 대결이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에서 문제를 일으킨 뒤 도로 통합진보당 후보가 나선다는 것은 “후보만 갈면 문제가 해결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한겨레 사설은 이정희를 예찬할 뿐이다.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로 인해 사퇴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정희는 현명하고 깨끗한 정치인이 되었다.

역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현명했다. 이 대표가 4·11 총선의 서울 관악을 야권 단일후보에서 사퇴했다. 이 대표를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안타까운 소식일 것이다. 참모가 저지른 여론조사 조작 시도 파문이 과연 후보직 사퇴를 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깨끗이 결단했고 머리 숙여 사과했다.

한겨레 사설, ‘이정희의 눈물이 살린 야권연대‘, 2012년 3월 23일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을 자칭하는 ‘민중의 소리’는 한 술 더 떴다. 노골적으로 이정희 후보를 띄우고 김희철 후보를 깎아내리던 ‘민중의 소리’는, 이정희 문자 논란이 터지자 입을 꼭 다문다. 그들이 내놓은 기사는 “문자메시지 논란으로 관악 을 재경선을 권고했다“는 이슈 자체와는 비껴간 내용이거나 이정희 대표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쓴 건조한 기사들뿐이다. 그러다가 이 신문은 3월 21일에 들어서야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김희철 진영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노골적인 물타기성 기사였다.

한겨레가 다른 언론들이 전해주지 않는 기사를 많이 만들어왔고, 그 누구보다 소수자의 아픔에 공감해왔음을, 그동안 보아왔고 그리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노골적인 편향성을 목도하고서도, 그 좋아 보였던 기사들이 이번에 보여준 편향성과 무관할 거라고 어찌 믿을 수 있을까.

 

* 이 글은 슬로우뉴스 2호 특집, ‘온라인, SNS 그리고 4.11 총선’ 세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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