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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 역사의 목격자들
- 천국 문 앞에서도 AP 기자를 만날까 봐 무섭군
- AP 특파원의 일곱 가지 조건
- AP, 미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한다
- AP 특파원의 ‘소름 끼치는 임무’
- ‘아랍의 봄’ 그 자리 남은 절망: 27살 아델 케드리가 분신한 이유
- 취재원의 여섯 가지 유형
- 언론의 권위는 현장에서 생긴다
- 현대전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 사라예보 포위전 (’92-’96)
- 멕시코 마약 전쟁: 마크 스티븐슨의 기록
- 팔레스타인 vs. 이스라엘 분쟁과 미디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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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특파원 4명 중 3명은 미국 내에 있는 1) AP 지국에서 기자로서 경력을 시작한다. 지역에서는 고등학교 운동 경기나 주의회 등을 취재하러 다니고, 방송이나 야간 근무도 하며 온갖 잡일을 한다. 그런 생활을 하다가 2) ‘AP 테스트’라고 불리는 글쓰기 시험을 보고, 이 시험에 합격한 이들은 3) 뉴욕으로 와서 포린데스크나 월드데스크에서 국제뉴스 편집자로 일한다. 그렇게 편집자로 활동하다가 자리가 나면 4) 특파원으로 전 세계에 파견된다.
포린데스크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뉴스를 편집하여 미국 내 AP 회원사들에 전송하는 곳이고, 월드데스크는 해외 AP회원사들에게 전송할 뉴스를 편집하는 곳이다. 2000년대 이후 뉴욕 본부는 지역데스크 네 곳으로 분할되었다.
1980년대 뉴욕데스크의 풍경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인덱스 프린터 앞에 앉아 있으면 해외 지국에서 들어오는 기사들을 볼 수 있는데, 기사 맨 앞 세 줄씩만 보여주지. 그것만 보고 수많은 기사 중에서 더 자세하게 볼 만한 기사가 무엇인지 빠르게 결정해야 돼. 여기서 뽑히지 못한 기사는 시스템에서 삭제되고 결국엔 그냥 묻히는 거지. 바쁠 때는 기사가 끝없이 밀려들어오는데, 지직, 지직, 지직, 계속 들어와. 기사를 하나 열어서 컴퓨터에서 편집을 하고 있으면 또 다른 기사들이 지직, 지직, 지직 소리를 내며 들어오고. 이렇게 일이 밀리기 시작하면… 기사들 중에 우선순위를 매겨야 하지… ” (테리 앤더슨, Terry Anderson)
특파원이 되어 파견되는 곳은 한 마디로 복불복이다. 또 얼마나 그곳에서 근무할지도 모른다. 필요에 따라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취재한다. AP 역사상 최초의 여성 특파원이었던 태드 바티무스(Tad Bartimus)는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파견되었다. 5년 동안 전장을 누빈 뒤 바티무스는 게릴라전이 한창 벌어지던 라틴아메리카로 발령났다. 결혼한 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은 그녀에게 AP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혼자 알아서 다 해내야 돼. 물론 네가 죽으면 우리가 시체를 찾으러는 가겠지만.”
물론 이는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지만, AP 특파원들은 한결같이 ‘대단한 이야기’들을 직접 취재한다는 사명감에 모험을 불사하는 이들이다. AP 특파원이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
1. 두둑한 배짱
[국제특파원을 위한 AP 핸드북; AP’s Handbook for International Correspondents] (1998)을 출간한 오토 도엘링은(Otto Doelling) 한마디로 ‘배짱, 두둑한 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배짱은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목표의식이 뚜렷할 때 나오는 것이다.
“특파원이 되고자 한다면, 한눈 팔지 말고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가야 하지.”
오스트레일리아 특파원으로 활동하던 폴 알렉산더(Paul Alexander)는 1993년 소말리아전쟁이 발발하자 곧바로 전장으로 날아갔다.
“소말리아에 102일 정도 머물렀는데, 그 동안 바이라인에 내 이름이 99번 올라갔죠. 절반 정도 지났을 때, ‘빨리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3분의 2 정도 지났을 때,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했어요. 그런데 세 달을 넘어설 때쯤 이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하고 있더군요. ‘이곳에 좀더 머무르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던가?‘”
2. 생존 능력
위험한 지역에 언제든 파견될 수 있는 특파원에거 생존력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실제로 AP특파원들 중에는 ROTC 출신 또는 실제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이 많다. 이러한 군사 훈련 경험은 자신 앞에 놓인 위험의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물론, 전장에서 미군의 대응방식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레바논에서 7년 가까이 인질로 잡혀있다 풀려난 AP특파원 테리 앤더슨은 이렇게 말한다:
“해병대로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보스니아 전쟁을 취재한 BBC의 특파원 마틴 벨(Martin Bell) 역시 그러한 증언을 한다:
“야생 환경에서 살아남는 기술은 해외특파원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이죠.”
3. 열린 마음과 호기심
특파원들이 갖춰야 할 또다른 중요한 자질로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배우고자 하는 ‘열린 마음’과 진실되고 겸손한 ‘호기심’과 굽히지 않는 ‘의지’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자질이 있어야 단순히 속보를 취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밑에 깔린 의미를 밝혀낼 수 있다.
“단순히 사건 그 자체뿐만 아니라 현재 취재하고 있는 이야기와 맞닿은 당대의 경제 상황, 거시적인 지리정치적 상황, 정치적 현안 등 큰 그림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지… 자유자재로 줌인-줌아웃을 하면서 초점을 달리 하여 여러모로 사건을 검토할 줄 알아야 해. 그런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특파원이 될 수 있지.” (존 다니스제프스키, John Daniszewski)
“이미 일어난 일, 뚜렷하게 드러난 일에 대해서만 쓰면 안 돼요.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밝히려고 노력해야 하죠. 진짜 의미가 뭔지… 분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이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글쓰기 능력보다 훨씬, 훨씬 중요해요…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고, 수면 아래를 보려 하고, 바둑처럼 몇 수 앞서서 생각하고, 성급하게 결론내리지 말고, 이렇게 되면 다음엔 어떻게 되고, 그 다음엔 어떻게 되고, 그래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하죠… 이런 자질이야말로 차별화된 취재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진정한 무기라 할 수 있죠. (댄 페리, Dan Perry)
또한, 특파원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이 많을수록 감각이 뛰어날수록’ 기사를 더 매끄럽게 써낼 수 있다. 한국전쟁을 취재하여 퓰리쳐상을 받은 AP특파원 맥스 데스포(Max Desfor)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걸 다 알기 위해 노력하지. 뭐 준비 없이 날림으로 취재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자기가 하는 것에 관해 잘 아는 게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4.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
아무리 호기심이 많다고 해도 발로 뛰지 않으면 소용 없다. ‘현장에 있는 것’은 기자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 직접 눈으로 봐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고 독자를 설득할 수 있다. 실제로 필리핀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벌어졌을 때 AP 특파원이 송고한 다음과 같은 기사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이곳을 걷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매번 진흙 속에서 무릎을 손으로 들어올려야 한다. 여기저기 시신들이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코로 느낄 수 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축축하다. 구조 인력들은 생존자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또 다시 위협적인 태풍이 다가온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폴 알렉산더, Paul Alexander)
하지만 현장에 익숙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중앙 아메리카에서 게릴라 전투를 취재한 베테랑 특파원 조셉 프레이저(Joseph Frazier)는 아이티공화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상황을 익숙하게 느끼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
“어디든 익숙해지기 마련이잖아. 하루하루 지나면서 처음 받았던 인상은 서서히 흩어졌고… 하지만 그곳 삶을 체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는 사람도 필요한 법이야.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에 익숙해지면 안 돼. 그런 것들을 일상이라고 받아들여서도 안 되고… 맞아. 매일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총에 맞는데… 한 명? 어, 또 한 명? 그렇구나, 그래, 그렇지 뭐. 이런 식으로 비인간화되는거야. 인간성이 점차 사라지는 거지.” (조 프레이저)
지역에 대한 지식의 깊이, 새로운 시선,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 균형을 이룰 때 ‘기삿거리를 인지하는 능력’이 나온다. 뉴스의 가치를 즉각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다.
“글솜씨는 형편없다고 해도 소문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이야깃거리를 발굴해내는 촉만 좋다면, 충분히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글을 아무리 잘 쓴다 해도 뭐가 이야깃거리가 될지 모르겠다면 그만두는 게 좋습니다. ” (마크 스티븐슨, Mark Stevenson)
5. 적절한 취재원 발굴과 관계 유지
마지막으로 모든 취재의 시작과 끝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더 많은 걸 알 수 있고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죠.” (데보라 스워드, Deborah Seward)
취재원과 관계를 맺을 때는 다소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첫째는 취재원을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의 말을 끝없이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AP 특파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엄마가 날 사랑한다고 하는 말도 검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6. 언어
AP는 벌리츠(Berlitz) 프로그램을 활용해 특파원들에게 외국어 학습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특파원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을 가나 영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어만 사용해서는 좋은 취재원을 발굴해내기 어렵다.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사회정치적으로 특별한 배경을 가진 도시거주자일 확률이 높으며, 따라서 그들의 관점은 특정한 편향성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언어는 AP 특파원들에게 가장 큰 골치거리라 할 수 있다. 도나 브라이슨(Donna Bryson)은 이렇게 말한다.
“엿들을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죠. 사람들이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기자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7. 역사의 최초 목격자라는 자부심
AP에는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특파원들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가지 자부심을 공유한다. ‘역사의 맨 앞 자리에 서있다’는 자부심이다. 이러한 자부심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훌륭한 기사를 써내 진실을 보도하겠다는 강박에 가까운 헌신의 원천이 된다.
“본국에 들어오면 나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나가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죠.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만큼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주는 게 어디 있겠어요?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때 가장 신이 납니다. 더욱이 역사가 만들어지는 현장 한 가운데 있다는 건 엄청난 자부심을 주죠.” (폴 알렉산더, Paul Alexander)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특파원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돈을 주지 않아도 이 일을 계속할 걸.” (모트 로젠블럼, Mort Rosenblum)
“특파원의 임무는… 멋지고, 고귀하고, 충만해요… 그건 선물과도 같죠. 그것만으로도 대가는 충분해요.” (니코 프라이스, Niko Price)
“이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오히려 돈을 내고 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지.” (모린 존슨, Maureen Johnson)
물론 세계를 무대로 취재하는 특파원과 국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 사이에는 여러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다보면, 오늘날 한국 기자들이 왜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오늘날 대중은 기자들이 자신의 직업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 또는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있지 않는가 의심하고 있다. 그런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 기자와 언론의 권위는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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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P, 역사의 목격자들] (지오바니 델오토, 신우열 옮김, 크레센도, 2020)에서 발췌한 내용을 출판사가 직접 각색하고,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편집해 발행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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