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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 역사의 목격자들
- 천국 문 앞에서도 AP 기자를 만날까 봐 무섭군
- AP 특파원의 일곱 가지 조건
- AP, 미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한다
- AP 특파원의 ‘소름 끼치는 임무’
- ‘아랍의 봄’ 그 자리 남은 절망: 27살 아델 케드리가 분신한 이유
- 취재원의 여섯 가지 유형
- 언론의 권위는 현장에서 생긴다
- 현대전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 사라예보 포위전 (’92-’96)
- 멕시코 마약 전쟁: 마크 스티븐슨의 기록
- 팔레스타인 vs. 이스라엘 분쟁과 미디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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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쉠은 북아프리카 특파원으로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근무했다. ‘아랍의 봄’(2010년 12월 튀니지 혁명로 촉발된 아랍권의 민주화 시위. 튀니지, 이집트, 예멘의 정권이 교체되었고, 2011년에 절정, 그 후 소강 상태다.)이 터지기 직전 그의 사무실 벽에는 카다피 포스터가 걸려있었고, 거리는 시위로 늘 시끄러웠다.
‘낙타’ 이야기보다 독자의 관심받지 못한 ‘아랍의 봄’
그는 매일 기사를 써서 보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아랍의 봄이 터지고 나서도 이런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당시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는 시위로 온통 시끄러웠어요. 특히 알제리에선 테러까지 발생했는데, 보도하기가 어려웠죠. 튀니지? ‘아무 일도 없는’ 조용한 나라 취급받았죠. 모로코는, 아시겠지만, 왕이 있잖아요. 정치적인 이슈가 있었지만, 매우 사소한 것으로 비춰졌고, 옆 나라 리비아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이들 나라 뉴스는 순식간에 덮혀버렸죠. 뉴스 소비자들에게 이들 나라는 정말 ‘아무 일도 없는 조용한’ 곳이었어요.
2010년 튀니지 혁명이 발발했을 때 반짝 주목을 받으나, 2011년 시위가 잦아들고 모로코의 정세가 느릿느릿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그다지 극적이지 않았어요. 페인트를 칠해놓고 마르기만 기다리는 것과 같았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야깃거리였어요. 솔직히 말해서, 험프리 보가트 영화와 카사블랑카를 이야기하면 좀 더 기사화되기 쉬웠을 거예요. 사람들은 이국적인 걸 원하잖아요. 사막 여행, 낙타, 그런 이야기 말이죠.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런게 아니라, 전제적인 정부, 과도한 공권력을 가진 경찰, 그런 것들인데, 문제는 튀니지가 이집트만큼 가혹하지 않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사화하기가 더 어려웠죠… 좀 더 부드러운 헤게모니, 좀더 부드러운 독재… 이런 걸 기사로 다룰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요. (폴 쉠, Paul Schemm)
모로코의 민주주의 시위가 약화되고 있다는 소식은 ‘낙타’ 이야기보다도 독자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물론 접근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사회·정치적 운동을 깊이있게 파고들어 기사에 담는 일은 쉽지 않다. 쉠은 기사를 쓰기 위해 상당히 많은 준비를 하고 공을 들였으나, 주의가 산만한 대중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다.
미국 언론의 선입견이 초래한 엉터리 보도들
경험이 많은 특파원이라고 해도 속보 뉴스를 취재하다보면 중대한 사회·정치적 변화의 징후를 놓칠 때가 많다. 나무를 보다가 숲을 놓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안타까운 상황은,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이미 설정해 놓은 이야기틀에 맞춰 구체적인 상황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는 1982년부터 들었는데,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지. 사람들은 들끓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이유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어. 2011년 친구들과 함께 추수감사절 저녁식사를 했는데, 얼마 전부터 있었던 시위가 크게 확산될 거라고 친구의 가족이었던 한 청년이 말하더군. 사람들이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나 있고, 어쩌고 저쩌고, 확신을 하더라고.
그 친구는 정치적으로 다소 과격한 듯 보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어린 친구였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말을 흘려듣기만 했어. 미국인의 관점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이 땅에서 5,000년 동안 적응하며 살아온 이집트인들이 느끼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친구의 말이 옳았어.
역시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 그런 시위는 그 전에도 계속 있었는데, 자고 나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라져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 왜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을까? 물론 신만이 알고 있겠지.” (로버트 리드, Robert Reid)
역사적으로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라고 해도, 그것이 터지는 순간까지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갑작스럽게 타오른 ‘아랍의 봄’을 미국의 특파원들은 한결같이 ‘민주주의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하지만 아랍의 봄은 갑작스럽게 이슬람 근본주의로 탈바꿈하더니, 또 갑작스럽게 이라크 내 종파 갈등을 촉발한다. 미국 언론들은 이 과정이 한참 전개될 때까지 ‘중동에 민주주의가 드디어 찾아왔다’라는 장미빛 전망에만 매달려 이야기틀을 짜다가 엉뚱한 보도만 쏟아냈다.
임팩트 저널리즘: 27살 청년이 ‘아랍의 봄’ 그 거리에서 분신한 이유
이러한 취재의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AP는 2010년대 초 뉴스를 선별하는 기준으로 ‘임팩트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도입한다. 경계 확장, 거대 담론, 단독, 독창성, 관습 파괴 등 사회적으로 ‘임팩트’를 미칠 수 있는 보도를 추구한다는 것인데, 이는 취재 자원의 축소, 높아지는 독자의 수준, 언론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AP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차별화 전략이었다. 중동의 AP 특파원들은 아랍의 봄을 좀 더 다각도에서 접근하기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나는 실업 문제에 대해서 취재해보자고 했어요. 요르단강 서안에 살면서 이곳 실업 문제가 얼마나 절망적인지 알게되었거든요. 낮에 일하지 않고 노는 젊은이들, 특히 남자들이 길거리에 넘쳐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지요. 고등학교 졸업자들 뿐만 아니라 대학교 졸업자도 일자리가 없어서 놀아요. 직업이 없으니 결혼도 할 수 없죠. 결혼을 허락받으려고 해도 신부의 아버지가 묻겠죠.
“그래, 집은 있는가? 금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지참금은? 뭘 가지고 있나?”
그래서 젊은이들의 삶은 멈춰있었죠. ‘아랍의 봄’ 이후 중동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랍은 여전히 청년 실업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입니다. 그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튀니지에서는 178명이 분신 자살을 기도했어요. 그중 143명이 죽었고… 정말 믿기지 않는 숫자죠.
그래서 우리는 국제적인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 중동 지역 지국장들과 에디터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구체적인 사건 취재를 위해 5일 일정으로 튀니지에 갔어요. 거시적인 맥락을 조망할 수 있는 정보는 세계은행 등 다양한 소스를 통해 미리 취재해놓은 상태였고요.
그렇게 완성된 기사는 상당한 주목을 받았어요. AP의 평판 때문만이 아니라, 통찰력 있고 무게감 있는 기사였기 때문이죠. 이 사람 저 사람 쏟아 내는 온갖 의견의 바다, 제대로 입증도 되지 않은 유사저널리즘의 바다에서—물론 다른 기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만 가지고 인터넷에 지껄이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예요—이런 수준 높은 기사를 생산해내야 그나마 돋보일 수 있거든요. (캐린 라웁, Karin Laub)
라웁의 기사는 2013년 어느 날 아침, “아랍의 봄, 그 봉기가 시작된 첫 무대였던 하비브 부르기바 거리”에서 분신한 27살 아델 케드리(Adel Khedri)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길에서 담배를 팔아 용돈을 벌던 그는 우유를 넣은 에스프레소를 들고 길을 걷다가 “아르데코 양식의 시립 극장 앞에 멈춰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다음은 기사의 일부다:
“‘아랍의 봄’에 불을 붙인 고등학교 중퇴자 출신 거리 행상과 그는 다르지 않았다. 아랍의 봄은 네 명의 아랍 독재자들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위치한 20여 개 국가의 심각한 실업률과 절망은 해결하지 못했다. 장기적인 실업난은 사회 전체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캐린 라웁, ‘중동 젊은이의 절망을 투영하는 행상인의 자살’; Karin Laub, “Vendor’s suicide reflects despair of Mideast youth,” The Associated Press, May 11, 2013.)
라웁은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아델 케드리의 가족, 화상센터 의사, 분신 목격자 등 24명을 쫓아다니며 인터뷰를 하였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세부적인 사실들을 보여주기 위해, 경제 지표와 사회적 통계자료를 곁들여 풍부한 분석과 해설을 곁들였다.
서구화된 관점과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서
이러한 취재 과정을 통해 라웁은 중동, 아프가니스탄, 멕시코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민주주의’나 ‘민심 얻기’와 같은 서방의 관점과 내러티브에 맞춰 단순화하고, 왜곡해서 해석하고 보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던진다. 실제로 많은 AP 특파원들은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설명하고자 한다면 현지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일 벌어지는 사건들을 우리는 너무 단순화하고 요약해서 보도했던 것 같아요. 물론 사건의 전개과정을 상세히 밝히는 것 자체가 힘든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서양의 관점에서 볼 때 아랍의 봄은 독재에 항거해 민중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탐사하고 있는 주제인데, 무언가 이곳 청년들과 연관성이 있는 사건으로 보여요.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과 관련된 그 어떤 폭발. 어쨌든 아랍의 봄을 독재에 맞서는 시위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관점입니다.
그래서 현장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나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건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건이 어떻게 촉발되었는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동기가 무엇인지, 사람들의 진짜 관심사는 무엇이고 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볼 수 있는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리비아 혁명처럼 거대한 사건이 터졌을 때 ‘오, 이것도 써야 하고, 저것도 써야 하는데’ 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해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돌아보면 그때 무엇을 어떻게 취재했어야 하는데 하면서 뒤늦은 후회를 하는 거죠.” (캐린 라웁, Karin Laub)
어떤 이야기를 접하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좋은 놈 vs 나쁜 놈’ 구도로 가르는 편향에 빠진다. 엘살바도르, 시리아 등 극심한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는 AP 특파원들은, 어떤 집단이나 입장에 대해서 독자가 이러한 편향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실제로 잔혹한 시리아내전 현장에서 특파원들이 발굴해낸 사실은, 아랍의 봄을 향한 대중의 일반적인 감정—‘독재정권에 맞서 항거하는 민중’이라는 긍정적인 인식—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중동에서 10년 이상 생활하며 이곳을 취재한 AP특 파원 폴 쉠은 우연히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이 지역의 정부들이 ‘형편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그러한 판단은 정부보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것이 합당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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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P, 역사의 목격자들] (지오바니 델오토, 신우열 옮김, 크레센도, 2020)에서 발췌한 내용을 출판사가 직접 각색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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