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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 역사의 목격자들

  1. 천국 문 앞에서도 AP 기자를 만날까 봐 무섭군
  2. AP 특파원의 일곱 가지 조건
  3. AP, 미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한다
  4. AP 특파원의 ‘소름 끼치는 임무’
  5. ‘아랍의 봄’ 그 자리 남은 절망: 27살 아델 케드리가 분신한 이유
  6. 취재원의 여섯 가지 유형
  7. 언론의 권위는 현장에서 생긴다
  8. 현대전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 사라예보 포위전 (’92-’96)
  9. 멕시코 마약 전쟁: 마크 스티븐슨의 기록
  10. 팔레스타인 vs. 이스라엘 분쟁과 미디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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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는 미국 (언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한다고 평가받는다.
AP는 미국 (언론)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논조)을 결정한다고 평가받는다.

한 국가 전체를 거의 혼자 취재해야 하는 상황에서 특파원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기본적인 문제는 바로 무엇을 뉴스로 다룰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AP에서 작성한 기사가 전 세계 주요 언론사들을 통해 나가기 때문에 AP 뉴스는 곧 국제 사회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AP 뉴스는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과 이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AP는 실제로 자신들의 기사가 ‘미국 언론의 국제 뉴스에 대한 논조를 사실상 결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Hess, 1996, 93). 어떤 해외뉴스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권한은 전통적으로 데스크가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알고리즘을 반영하여 결정되기도 한다.

물론 AP기사를 받아서 게재하는 언론사들이 AP기사에 담긴 본래 뉘앙스를 변형하거나 생략하여 싣는 경우도 많다. 개별 언론사가 추구하는 이데올로기, 편집국장 개인의 방향성, 독자들의 성향 등 다양한 요인이 작동할 것이다.

국제뉴스 선별 기준

기자가 일반적으로 국제뉴스를 선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자국 중심 보도: 그 나라의 현실보다는 자국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춰 편향되게 보도한다.
  • 문화적, 경제적, 군사적 뉴스 편향: 서구권 국가와 경제력/군사력이 큰 나라의 소식을 우선하고, 후진국은 ‘쿠데타와 지진’과 같은 뉴스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한다.
  • 자극적 소재: ‘피 흘리는 기사라야 주목받는다’는 오래된 격언을 따르는 소재, 귀여운 판다, 섹시한 연예인 등 가벼운 주제에 과도하게 주목한다(for a review, see Chang et al., 2012; Westwood et al., 2013).

물론 이러한 기준은 상당한 비판 대상이 된다. 하지만 독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미디어의 특성상 이러한 기준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AP특파원들은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뉴스를 반드시 취재해야 하는 ‘뻔한 뉴스’라고 분류한다.

쿠데타란 쿠데타는 모두 취재했죠. 뉴욕과 런던에서 관심을 갖는 유일한 뉴스는 바로 쿠데타였거든요. 어디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러면 무조건 출동했죠. 뭐, 그럴만도 하죠. 그래야만 하고요. 하지만 난 뭔가 더 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취재를 마치고 나이지리아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라디오에서 갑자기 군가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쿠데타가 발발했다는 신호였죠. 거기가 다호메이였는데, 곧바로 차를 돌렸죠. 쿠데타 소식을 세계에서 가장 빨리 타전했어요… 특종이었죠. 쿠데타의 세세한 내용은 크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니까.” (아놀드 제이틀린, Anold Zeitlin)

  • 참고: 1972년 이 쿠데타로 나이지라아 서쪽에 있는 작은 나라 ‘다호메이’는 국명을 ‘베냉’으로 바꾸었다.
AP 특파원 아놀드 제이플린은 나이지리아 공군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체코산 비행기에 관한 기사)를 쓴 뒤에 직접 비행기 탑승을 요청받았다(선글라스를 쓴 사람). 아놀드는 그 비행를 마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살아남았습니다!" (출처: peacecorpsworldwide.org) https://peacecorpsworldwide.org/arnold-zeitlin-author-of-the-first-peace-corps-memoir-ghana/
AP 특파원 아놀드 제이틀린은 나이지리아 공군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체코산 비행기에 관한 기사)를 쓴 뒤에 직접 비행기 탑승을 요청받았다(선글라스를 쓴 사람). 아놀드는 그 비행를 마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살아남았습니다!” (출처: peacecorpsworldwide.org)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대부분 재난이 발생해야 그 나라 소식이 그나마 신문 1면에 실린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AP특파원들은 재난 덕분에 월급을 받는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2000년대 카르텔 전쟁으로 인해 무법지대로 변한 멕시코의 특파원은 길거리에서 “시체가 네 구 이상 발견되어도 기사를 쓰면 거의 선택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AP 특파원은 사건만 단순히 보도하기보다는 그 사건을 통해 ‘좀더 큰 흐름이나 사회적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1971년 내전은 끝났음에도 나이지리아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군인이 무기를 가지고 다녔지. 무장강도 사건이 연일 발생하자, 정부는 이러한 기세를 꺾기 위해 라고스 해안에서 무장강도 공개 처형식을 열기 시작했어. 그런데 처형식은 금세 카니발로 돌변해버렸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행상인들이 뭔가를 팔기 시작하더군. 모두들 모여서 강도들을 드럼통에 묶어놓고 총살하는 걸 구경했어. 나는 공개 처형식에 대한 기사를 쓰고 사진도 찍어서 보냈는데, 진짜 대박을 쳤지. 어느 신문에서나 내 기사가 나왔어. 물론 야만적이고 잔인한 이야기였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한 나라의 잘못된 상황을 다른 나라에게 알리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 (래리 하인즐링, Larry Heinzerling)

반대로, 뉴스가치가 없다고 해도 무조건 취재해야 하는 뉴스도 있다. 예컨대 브라질 특파원이라면 ‘삼바 카니발’ 취재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또한, 미국인들의 관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재해야 하는 뉴스도 있다.

“마크 샌포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의 내연녀가 살고 있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고급 아파트 앞에 갔더니 열 명 넘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더군. 기자들은 샌포드의 ‘마리아’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아파트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따라붙어 인터뷰했어. 이게 무슨 뉴스거리라고 이 난리를 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 그 아파트에 사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는 최소한 다섯 명이나 되었는데… 하필 또 그날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추운 날이었어… 한 여성이 걸어나오면서 “그래, 내가 마리아다!”라고 외쳤어. 기자들이 돌격모드로 전환하려는 사이에 그 여성은 재빠르게 한마디 덧붙이더군. “근데, 너희들이 찾는 그 마리아는 아니지롱.” 그녀는 낄낄거리면서 사라졌지.”(에두아르도 말라르도, Eduardo Gallardo)

미국 언론이 ‘편애’하는 나라들

AP특파원들은 AP 뉴욕데스크와 미국언론들이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케케묵은 미국인들의 친근함이나 생소함, 문화적 호감, 고정관념에 근거한다.

1. 브라질 

이러한 스펙트럼에서 늘 혜택을 입는 나라는 바로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언제든 ‘팔릴 만한 이야기’가 있는 나라다.

“펠레, 삼바… 길을 걷다가 담배꽁초 줍듯 기사가 풍부한 나라로 여겨지지.” (클로드 업슨 Claude Erb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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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담배꽁초를 줍듯 기사가 나오는 나라, 브라질

2. 프랑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패션의 1번지’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좋은 음식과 와인, 미식가들의 천국’으로 여겨집니다. 실제로 프랑스에 관한 기사에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늘 밑바닥에 깔려있습니다. 2013년에는 ‘프랑스인들조차’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로 돌려서 먹는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나갈 정도였죠.” (일레인 갠리, Elaine Ganley)

3. 이스라엘

국가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주목을 받는 나라도 있는데, 그 극단적인 예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을 다루는 기사는 요르단을 다루는 기사와 완전 딴판이에요. 미국은 이스라엘에만 관심이 있지, 요르단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존 라이스, John Rice)

4. 중동 

중동 역시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진다.

“중동은 언제나 중요한 이야기로 다뤄집니다… 중동은… 선택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에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곳이기 때문에 취재망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늘 대비를 해야 하죠.” (샐리 버즈비 Sally Buzbee)

고정관념을 넘어서 

미국 언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내용은 기사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한 AP 특파원은 남아프리카에서 ‘동물기사’를 써서 보냈다가 뉴욕의 에디터들에게 퇴짜를 맞았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그런 기사를 쓰면 안돼.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되지 않은, 그런 가벼운 기사는 아무도 받지 않는다고.” (데이빗 크래리 David Crary)

“중국처럼 오랫동안 닫혀있다가 개방을 한 나라들은 엄청난 호기심의 대상이 되죠. 그곳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도 크고요. 미국 독자든 다른 나라독자든 ‘전혀 몰랐던 이야기’ 또는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는 반응이 매우 좋아요… “중국의 마을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람들은 모두 궁금해해요. 독일의 마을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오, 중국에 관한 시시한 기사가 또 나왔네.”” (테릴 존스 Terril Jones)

하지만 AP특파원들은 이러한 미국인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그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미국인이 죽으면 거의 빠짐없이 기사를 쓰는 것과 달리 남베트남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기사는 쓰지 못했어. 그들의 죽음에 미국인들은 전혀 관심이 없거든. 나는 그걸 기사로 쓰기 위해… 셋인가 넷인가 아들을 전쟁으로 잃고, 마지막으로 남은 아들 하나마저 전쟁터로 보낸 남베트남 어머니를 찾아야만 했지… ‘마지막으로 남은 아들마저 죽으면, 이제 누가 날 돌봐주겠소?’라고 하소연하던 그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네.” (이디스 레더러, Edith Lederer)

베트남 전쟁 (1966, 남베트남)
베트남 전쟁 (1966, 남베트남)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 접경초소에 가기 위해 무릎까지 눈이 쌓여있는 산길을 헤치고 세 시간 가까이 걸어서 올라갔어요… 정말 얼어죽는 줄 알았어요. 등유램프를 방안에 켜놓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죠… 여름에는 50도까지 치솟는 곳이지만, 한겨울에는 5도까지 떨어지죠. 날씨도 추운데다 눈보라가 몰아쳐서 앞이 보이지도 않았어요. 이 불쌍한 군인들은 자신들을 이끄는 군지휘관들에 대한 좌절감, 기대했던 서방국가들에 대한 좌절감에 젖어 있었어요… 그들은 미국에게 이렇게 묻는 듯했어요.

“이미 할 만큼 했음에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니, 도대체 뭘 어떻게 더 하라는 거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에 취재를 하러가겠다는 걸 납득하는 에디터들은 별로 없어요. 딱히 미국의 언론이 전혀 관심도 갖지 않는 걸 취재하겠다고 하면 누가 허락하겠어요? 9/11 테러가 일어난 이후에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죠. 하지만 나에겐 너무나 중요한 취재였어요… 그래도 어쨌든, AP가 고마운 게… 특파원들에게 취재할 수 있는 권한을 최대한 보장해준다는 거예요. 물론 취재허락을 받기 위해서는 계속 조르고 조르고 졸라야 하죠. 어쨌든 AP는 온갖 취재 제약 조건을 걸어놓으니까요. 재정적으로나, 또다른 측면들… 안전문제 같은 것들에 대한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죠. 어쨌든 취재활동이 신변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납득시켜야만 해요. (캐시 개넌 Kathy Gannon)

국제뉴스의 가치를 평가하고 뉴스를 선별하기 위해서는 거대 담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거대 담론만 강조하다보면 세상이 돌아가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방황할 수 있다. AP에서 44년 이상 특파원으로 활동한 로버트 리드는 냉전, 세계화, 이슬람이라는 거대 담론 세 개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지고, 세계가 하나가 되었지. 새로운 시대가 오자 언론사들, 특히 해외통신사들은 시대적 흐름의 맥락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 아직도 방향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지루하고 시시하기 짝이 없는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만 계속 보도했지. 세계화가 진행되어가는 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관점도 잡지 못하고, 그저 ‘사랑으로’ 하나가 된 쿰바야월드를 노래했어. 사람들은 그런 쓰레기 같은 기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우리도 쓰고 싶지 않았지. 기자로서는 끔찍한 시간이었지. 언론사들은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온몸을 불살랐어. 바로 그때 구세주처럼 빈 라덴이 나타나서 새 생명을 불어넣어준 거야…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작스럽게 모든 것들이 잠잠해졌지. 중동도 죽어버리고.

“영겁의 세월이 지나도 변한 건 없어. 사람들은 늘 똑같은 짓을 하지… 그러면 어떻게 하지? 썩어 문드러지게 놔두는 수밖에.”

언론사들은 더 이상 그 지역에 투자하지 않았어. 중동은 한 마디로 입지가 나쁜 부동산에 불과했지. 세계는 이제 어디로 옮겨갈까? 유럽? 개발도상국? 아시아! ‘아시아로 회귀(Pivot to Asia)!’ 정말 진저리날 정도로 듣던 말인데… 다 헛소리야. 40년 전에도 들었던 이야기인데, 당시 일본이 세계를 지배할 거라고 다들 떠들어댔는데… 경제도 완전히 망가진 일본이 지금 뭘 한다고? 지금 일본어 공부하는 사람 있어? 일본이 지구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나라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하나? 그러다 갑자기 중국 가지고 떠들더군. 와, 중국이다!...” (로버트 리드 Robert R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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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수록된 AP 특파원들의 인터뷰는 2012-2014년 실시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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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P, 역사의 목격자들] (지오바니 델오토, 신우열 옮김, 크레센도, 2020)에서 발췌한 내용을 출판사가 직접 각색하고,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편집해 발행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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