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극우 자유연정의 출범,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은? ‘평화의 안전핀’ 제거한 일본 정치, 중층적 외교대응이 필요하다 (김영근/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 (⌚8분)

지난 21일, 26년간 이어져온 자민당, 공명당의 연립정권의 붕괴된 이후,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연정이 출범했다. 김영근 교수는 이번 연정은 일본 정치의 균형추가 붕괴되면서, 강경 보수 세력이 주도하는 불안정한 ‘가설정치’ 실험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소셜코리아)
지난 21일, 일본 사상 첫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가 탄생했다. 이 표면적인 역사적 사건 뒤에는 26년간 이어진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의 붕괴라는 정치적 재난이 자리하고 있다. 중도 보수 성향의 공명당은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 개혁 실패와 다카이치의 강경 보수 노선에 반발해 지난 10일 연정 탈퇴를 선언했다. 결국 자민당(196석)은 일본유신회(35석)와 손을 잡으며 총 231석 규모의 새로운 ‘자유(自維) 연립정권’을 꾸렸다. 그러나 이번 연정은 단순한 의석 수 계산을 넘어, 일본 정치의 균형추가 붕괴되면서, 강경 보수 세력이 주도하는 불안정한 ‘가설정치’ 실험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자공(自公)’ 연립의 종언, ‘자유(自維)’ 시대의 개막
지난 20일, 자민당은 제2야당 일본유신회와 연립정권 출범을 공식 합의했다. 이는 단순한 파트너 교체가 아닌 일본 정치의 DNA 자체가 바뀌는 지각변동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아베의 재림’으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와 자민당보다 더 우측에 있는 유신회의 결합은 일본 국내 정책은 물론, 한일관계 전반에도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극적인 연정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총리직 확보를 위해 자민당이 유신회와의 합의 과정에서 대폭 양보했기 때문이다. 요시무라 히로후미 유신회 대표가 “100점 만점에 120점짜리 답변”이라고 극찬할 만큼, 자민당은 유신회의 숙원 사업들을 대거 수용했다. ▲오사카를 부수도(副首都)로 지정하는 방안 ▲중의원 의원 정수 10% 삭감 ▲사회보장제도 개혁 등 유신회의 정체성과 직결된 정책들이 합의문에 반영되었다.
이는 단순한 정책 거래가 아니다. 과거 26년간 자민당의 ‘안보 폭주’에 제동을 걸어온 ‘평화의 당’ 공명당이라는 ‘안전핀’이 제거되고, 오히려 개헌과 안보 강화를 추동할 ‘가속 페달’이 장착되었음을 의미한다. 중도~중도보수 포지션의 공명당은 평화헌법 유지 등 평화주의, 복지, 인권옹호, 공존을 내세워 자민당과 오랜 기간 연립정권을 유지하면서 일본 정치에서 완급조절자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사히 신문은 “공명당의 이탈은 자민당 우경화의 마지막 족쇄가 풀렸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 역시 “정책적 지향점이 유사한 두 보수 정당의 결합으로 일본 정치의 우측 쏠림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우경화의 질주를 시작할 채비를 마쳤다.

위협받는 한일관계: 평화헌법 9조 개정과 역사 수정주의 시도
자유 연립 출범이 한일관계에 미치는 가장 직접적인 위협은 단연 평화헌법 9조 개정 문제다. 다카이치 총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처하며 “내각의 최우선 과제는 헌법 개정”이라고 공언해왔다. 여기에 헌법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자위대의 국방군화를 주장해 온 일본유신회가 가세하면서, 개헌 논의는 전례 없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물론 당장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중·참의원 각 3분의 2)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개헌을 국정의 최상위 목표로 설정하고 다른 보수 세력과의 연대를 꾀하며 여론전을 펼칠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명시한 헌법 9조(평화헌법으로 일본이 영구적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와 교전권을 가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시)를 무력화하고, 일본을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되돌리려는 시도다. 이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 위에 성립된 전후 동아시아 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한국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다카이치 내각의 역사 수정주의(일본의 근현대사, 특히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위안부 및 강제동원 문제 등에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미화하며, 정부나 우익 세력이 과거를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움직임)다. 다카이치 총재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고, ‘다카이치 담화’를 통해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대체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온 인물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에 대한 당연한 예우”라며 정당화하는 그의 역사 인식은, 향후 한일관계의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총리 취임 후 그의 첫 야스쿠니 참배는 그 자체로 한일관계 파탄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다카이치의 등장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동맹 관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며 “그의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근본적으로 방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정당 정치’에서 ‘수상의 정치’로
이제 일본 정치의 축은 ‘당’이 아닌 ‘총리 개인’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파벌의 ‘표 계산’만으로는 부족하다. 총리는 연정파트너를 설득해야 하고, 정책연합을 구축해야 하며,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지금 ‘수상의 정치’ 시대의 문 앞에 서 있다. 일본에서 정치 권력은 파벌이나 정당조직의 굴레에서 벗어나, 총리 개인의 협상력과 연정 관리 능력이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의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불안정한 팔로우십의 시대’를 예고한다. 수상 개인의 역량에 국정의 성패가 좌우되는 구조는 정치적 리스크가 크며 연이은 정국 변동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과연 일본은 무엇을 생각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잃어버린 자민당 정치’ 및 ‘일본의 미래 리스크’와 연계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중의원 해산’ 이후의 정치역학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한일관계, ‘원칙 있는 실용주의’를 넘어서
다카이치 내각의 등장은 한일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북한의 핵 위협 고도화, 미·중 전략 경쟁 심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과 경제 안보 파트너십은 양국 모두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견지해온 ‘원칙 있는 실용주의’ 또는 ‘투트랙’ 접근은 여전히 유효한 기본 전략이다. 즉, 헌법 개정과 역사 문제 등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의 영역에서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경제 안보·첨단 기술·기후 변화 등 협력이 필요한 실용의 영역에서는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한다는 기조다.
하지만 자유 연립이라는 새로운 변수 앞에서, 기존의 대응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는 상황 발생 후 대응하는 사후약방문식 접근에 머무를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가올 위기를 ‘예측 가능한 리스크’로 규정하고 사전에 대비하는 ‘미래 리스크 매니지먼트’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예측 가능한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얼마 전, 대한민국은 국가의 신경망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행정안전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이는 IT 강국이라는 허울 뒤에 감춰졌던, 단일 시스템 의존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이 한순간에 국가 전체를 멈춰 세울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측 가능했던 인재였다. 이 뼈아픈 경험을 통해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위기는 반복되며, 하나의 시스템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시스템적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다층적·다각적 안전장치, 즉 ‘지속가능한 중층적 리질리언스(복원력)’를 구축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예측 가능한 재난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다카이치 내각의 출범이라는 ‘외교적 재난’이다. 이 명백한 위협 앞에서 단 하나의 외교적 경로, 즉 정부 간 공식 대화 채널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는 언제 불이 날지 모르는 단일 데이터센터에 우리의 모든 정보를 맡기는 것과 같다. 이제는 국가 안보의 또 다른 축인 외교에도 ‘리질리언스’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
‘중층적 외교 대응 체계’ 구축 시급해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의 수출 규제는 우리 외교의 취약성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당시 한국은 일본이 정경분리 원칙을 깰 가능성을 낮게 보고, 과거사라는 단일 쟁점이 경제·안보까지 마비시키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지 못했다. 그 결과 정부 간 공식 채널이 막히자 한일관계 전체가 경색되는 시스템적 실패를 경험했다. 이는 공식 채널 외에 경제계, 시민사회 등 다층적 소통 채널이라는 ‘외교적 백업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뼈아픈 교훈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외교 시나리오의 다중화(리던던시)다. 정부는 최상-보통-최악의 시나리오별 대응 계획을 미리 수립해야 한다. 예컨대, 최악의 시나리오(다카이치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및 역사수정주의 발언 강행)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는 어떤 외교적 카드를 어떤 순서로 사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짜놓아야 한다. 이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대응을 막고, 국익에 기반한 냉철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외교적 백업 시스템이다.
둘째, 외교 채널의 다층화 네트워크다. 공식적인 정부 간 대화 채널이 경색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시민사회, 경제계, 그리고 유신회의 부상에 비판적인 지방 정치세력 등과 비공식적인 트랙 2 채널을 활성화하고 다각화해야 한다. 이는 공식 외교가 막혔을 때 우회로를 제공하고, 일본 사회 내부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다. 산·관·학이 협력하여 국가전산망의 리질리언스를 구축해야 하듯, 외교 안보 분야에서도 민관이 협력하는 총력 체제가 필요하다.
셋째, 예방외교 등 대응 원칙의 내재화다. 무엇이 우리의 ‘레드 라인’(넘어서는 안 되는 마지막 한계선)인지, 어떤 경우에 어떤 수준의 대응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내부 원칙과 매뉴얼을 확립하고 외교 라인 전체가 공유해야 한다. 이는 일본의 도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일관되고 예측가능한 외교를 펼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또한 한일관계의 부침이 국내 정치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국가적 대응 원칙을 수립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국제협력을 통한 ‘역주행 예방외교’로 대응해야
일본유신회와 함께하는 연정이 성사된 현재, 일본은 한반도와 역사 문제에서 더욱 강경한 태도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 흐름은 더 이상 일본 내부 문제로 그칠 수 없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와 독도(영토), 위안부, 강제징용 문제 등을 다시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바로 한일관계를 충돌 국면으로 몰아넣는다.
동시에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중국과의 대립을 격화시켜, 한반도는 미·중·일 대립의 최전선으로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원칙과 유연성을 겸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하며, 특히 ‘역주행 예방외교’를 통해 이미 쌓아올린 신뢰의 토대를 지켜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명예교수의 분석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그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 국면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경쟁했던 다카이치 총재의 정치 스타일을 두고, “‘국내용 내셔널리즘’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고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다. 이는 다카이치 정권의 대외 정책이 국제적 협력보다는 국내 정치적 지지층을 의식한 강경 노선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후지와라 교수는 최근의 한일관계 개선 흐름 역시 “양국 지도자의 신뢰 보다는 미국 정부의 강한 요청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고 분석하며, 그 기반이 생각보다 취약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이 두 가지 분석을 종합하면, 다카이치 정권의 등장은 한일관계에 예측 불가능한 돌발 변수가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선제적인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결론적으로, 다카이치 내각과 자유 연립의 출범은 한일관계에 거대한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이는 우리에게 과거의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외교 관행에서 벗어나, 미래를 예측하고 위험을 관리하는 성숙하고 전략적인 외교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 감염병 재해를 슬기롭게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K-방역의 교훈을 ‘외교 재난’ 예방에 적용해야 할 때다. 지금 우리가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