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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 역사의 목격자들

  1. 천국 문 앞에서도 AP 기자를 만날까 봐 무섭군
  2. AP 특파원의 일곱 가지 조건
  3. AP, 미국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한다
  4. AP 특파원의 ‘소름 끼치는 임무’
  5. ‘아랍의 봄’ 그 자리 남은 절망: 27살 아델 케드리가 분신한 이유
  6. 취재원의 여섯 가지 유형
  7. 언론의 권위는 현장에서 생긴다
  8. 현대전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 사라예보 포위전 (’92-’96)
  9. 멕시코 마약 전쟁: 마크 스티븐슨의 기록
  10. 팔레스타인 vs. 이스라엘 분쟁과 미디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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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능력을 좌우하는 건 '취재원'이라고 많은 기자들은 말한다.
취재 능력을 좌우하는 건 ‘취재원’이라고 많은 기자들은 말한다.

많은 기자들이 취재 능력은 ‘취재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좋은 취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근성’이라고 AP 특파원 캐시 개넌(Cathy Ganon)은 말한다. 정부의 최고지도자에서 부족 마을에 사는 아이들까지, 로마 교황청에서, 탈레반까지, 세계 곳곳에 개넌의 취재원이 있다.

“나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요. 늘 현장에 있죠. 사람들을 만나 상황이 어떤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죠. 별다른 취재거리가 없을 때도 그래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파키스탄 기독교인 거주지에서 맨바닥에 앉아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가장 믿을 만한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언제나 현장에 있기 때문이예요.” (캐시 개넌, Cathy Ganon)

AP 특파원들은 세계 곳곳에서 가장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취재원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접근하여 관계를 유지한다. AP 특파원들은 기사를 쓰기 위해 확보해야 하는 취재원을 다음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 현지에 주재하는 미국 외교관과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 (전시에는 군 관계자들)
  2. 현지 정부의 관료
  3. 반체제 인사, 활동가
  4. 현지 언론과 현지 기자들
  5. NGO
  6. 일반 시민 (거리의 사람들)

물론 최근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쏟아져나오는 메시지도 주목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 과도하게 비중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인터넷으로만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돼. 남이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걸 그대로 받아먹거나, 미디어의 전반적인 흐름을 쫓는 애매한 해석만 되풀이하고 말 거야. 당장 밖으로 나가야 해.” (로버트 리드, Robert Reid)

현실 속 실제 취재원의 모습

1. 현지 주재 외교관들

미국 대사관은 20세기 후반까지 AP 특파원들이 반드시 처음으로 거쳐야 하는 정거장 역할을 했다. 외교관은 해외 특파원들과 미국 정부를 이어줄 뿐만 아니라, 새로 파견된 특파원들이 현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하지만 기자는 취재원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취재원의 증언이 맞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카운터 취재원(counter-source)을 마련해놓아야 한다. 미국 대사관에서 주는 정보를 검증하기 위한 카운터 취재원은 다른 나라 대사관이 될 것이다. 1979년 미국과 중국이 다시 수교했을 때 베이징에 파견된 AP 특파원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국 대사관은 미국 기자들에게 상당히 많은 도움을 주지. 기자들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어있는지 잘 아니까. 하지만 현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다른 나라 대사관에게 물어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돼. 특히 동유럽쪽 사람들이 상당히 도움을 주었지. 공산주의국가의 대사관에는 중국 당직자들이 훨씬 자주 드나들었거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어.” (비키 그레엄, Vicky Graham)

2. 현지 정부의 관료와 유력인사들

공식적인 채널로 그 나라의 정부 최고지도자, 장관, 관료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과 관계 맺으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1970년대 파키스탄에 처음 파견되었던 AP 특파원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했다.

파키스탄에 들어가자마자 유력정치인들을 찾아다녔지. 몇 달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파키스탄 정계의 핵심 인물이 줄피카르 알리 부토라고 결론 내렸어. 당연히 그때는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지. 그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그가 참석하는 회의에는 무조건 찾아갔어. 그가 하는 일에 상당히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아첨’을 동원하기로 했지. 어쨌든 상당히 탁월한 선택이었어. 진짜 가까워지는 데 성공했거든.” (아놀드 제이틀린, Arnold Zeitlin)

줄피카르 알리 부토(Zulfikar Ali Bhutto, 1928-1979, 왼쪽 ). 1971년부터 73년까지 파키스탄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이후 1977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했다. 1979년 쿠데타 세력에 의해 사형당했다. 그의 딸이 두 차례 수상을 역임했지만, 2007년 폭탄 테러로 숨진 베나자르 부토(Benazir Bhutto, 1953-2007, 오른쪽 위키미디어 공용)다.
줄피카르 알리 부토(Zulfikar Ali Bhutto, 1928-1979, 왼쪽 사진, 퍼블릭 도메인). 1971년부터 73년까지 파키스탄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이후 1977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했다. 1979년 쿠데타 세력에 의해 사형당했다. 그의 딸이 두 차례 수상을 역임했지만, 2007년 자살 폭탄 테러로 숨진 베나자르 부토(Benazir Bhutto, 1953-2007, 오른쪽 사진, 위키미디어 공용)다.

3. 반란군, 반체제 인사, 활동가들

공동체가 붕괴되어 몇몇 집단으로 쪼개져 대립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나라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인물이나 활동가에게 접근해야 한다.

“반군 핵심부에 침투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주차장에서 기다려라. 누군가 당신을 지켜볼 것이다. 당신이 혼자 왔다는 것이 확인되면 말을 걸 것이고, 전화를 연결해 줄 것이다.”

옛날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그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우리는 멕시코 반군들과 연락했죠. 사파티스타 반군이나 악테알 학살을 취재할 때에는 당시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던 예수회 사제를 통해 연결했죠. 물론 사제들이 우리에게 제보하는 이유는 정부군 악행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기사를 통해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분명히 말해주길 바랐어요. 그렇다고 우리에게 기사를 어떻게 써달라고 직접 요구한 적은 없어요. 우리가 영리하다는 것을 알 만큼 그들도 영리했거든요.” (마크 스티븐슨, Mark Stevenson)

악테알 학살(Acteal massacre): 1997년 12월 쪼칠(Tzotzil)족 45명을 악테알 한 교회에서 멕시코 정권(제도혁명당)의 준군사조직이 무차별 학살한 사건.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 확대를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하는 사파티스타와는 달리 쪼칠족은 평화적으로 원주민 인권 운동을 해왔다. 사진은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형물. (MattSoerens, Acteal Statue, CC BY)
악테알 학살(Acteal massacre): 1997년 12월 쪼칠(Tzotzil)족 45명을 악테알 한 교회에서 멕시코 정권(제도혁명당)의 준군사조직이 무차별 학살한 사건.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 확대를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하는 사파티스타와는 달리 쪼칠족은 평화적으로 원주민 인권 운동을 해왔다. 사진은 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형물. (MattSoerens, Acteal Statue, CC BY)

4. 현지인 기자들과 현지 언론

국영 언론이나 대형 미디어가 발간하는 신문과 방송 보도는 물론 지하 단체에서 발간한 팸플릿도 AP 특파원에게는 중요한 정보원이다. 물론 중국 같은 곳에서는 공식적인 보도 기사 속에서 ‘보도할 만한 주제’를 골라내는 일만 해도 엄청난 고역이다.

지국으로 매일 배달되는 신문이 50종에 가까웠어요. 중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하려면 모두 봐야 하죠. 주요 행정 구역, 성이나 자치구마다 신문이 나오니까. 신장이나 티벳 같은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신장데일리》나 《티벳데일리》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더욱이 사람들의 관심사나 사회적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기사를 글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죠.” (찰스 허츨러, Chales Hutzler)

더욱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현지 기자들을 취재원으로 포섭해야 한다. 이러한 특파원들의 어려움을 반영하여, 언론의 자유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미국은 외국의 언론도 우리 언론이라고 간주해야 하며, 언론 검열을 미국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해야 한다.” (Bollinger, 2010, 112)

언론의 자정 능력을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언론사와 기자 스스로 언론자유의 위험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를 위축하는 법안의 도입은 신중하고 또 거듭 신중해야 한다.

5.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

‘사람들의 목소리’를 의미하는 라틴어 ‘박스팝’(vox pop; 시민의 소리, 여론)은 미국 저널리즘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뉴스를 다루든 미국 언론은 전통적으로 정치적인 관점에서 구조화된 접근보다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진술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2004년 리비아 특파원은 과거에 정치범으로 고초를 겪은 인물의 이야기를 기사로 내보냈다. 그는 카다피 경찰에게 잡혀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인터뷰로 인해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지만,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기사에 밝혀달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의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름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나에게 애원했죠.” (니코 프라이스, Niko Price)

결국, 프라이스는 그의 이름을 기사에 넣지 않기로 결정한다. 대신 반체제 인사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기사 속에 매우 상세하게 서술했다.

“기자들이 호텔을 나서자마자, 정부 감시원들이 따라붙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기자들이 누군가를 인터뷰하거나 사진 찍는 행동을 하면 곧바로 경찰이 다가와 뭘 하느냐고 캐묻는다. 반체제인사들은 대부분 트리폴리 길가에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어깨너머로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말을 주고 받아야만 했다. 감시원이 다가온다 싶으면 카다피를 칭찬하는 말을 떠들어대며 딴짓을 했다. 푸아드와 또 다른 반체제인사는 도심 광장에서 감시자들이 없는 틈을 타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해왔다.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길을 걸으면서 곁을 스치듯 다가와 기자에게 차례로 말을 건넸다.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미로 같은 골목으로 기자를 인도하기도 했다.” (니코 프라이스, Niko Price, “AP Exclusive: Dissidents tell of torture, secret prisons, executions under Libyan regime,” The Associated Press, February 26, 2004.)

거리 사람

취재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쓰지 말라

AP 특파원들은 ‘AP는 사람을 마구 죽이지 않는다’(AP doesn’t kill people off)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공식 발표든 긴급한 속보든 죽음에 관한 뉴스에 대해서는 반드시 ‘더블 체크’ 과정을 거친다는 뜻이다.

1970년대 후반 군사정권이 지배하던 서울에서 테리 앤더슨(Terry Anderson)은 야간통행금지령도 무시한 채 한밤중에 AP 서울지국으로 달려갔다. 대통령 박정희가 ‘총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한시바삐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야만 했다.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 문제는 ‘어느 시점에 공식 속보를 타전할 것인가’였어. 취재원들로부터 이러저러한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군대가 거리를 점령했고, 광화문에는 탱크까지 진입한 상태였지. 그가 죽은 것은 분명했는데…

현지 기자 황(K. C. Hwang)도 죽은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어. 하지만 죽었다는 사실을 뒤집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오기 전에는 속보를 타전하고 싶지 않았지. 근거가 있는가? 확신할 수 있는가? 누가 그렇게 말했는가?결국 나는 황기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어. 그는 어쨌든 한국인이었고, 한국어를 할 줄 알고, 정부 인사들은 물론 반체제인사들까지 폭넓게 취재원을 확보하고 있었거든. 망설임 끝에 우리는 결국 박정희 사망 속보를 타전했지.”

 

박정희(1917-1979년, 퍼블릭 도메인)
박정희(1917-1979년, 퍼블릭 도메인)

오늘날 세계에서 북한보다 비밀스럽고 고립되어있으며 엄격하게 통제되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서울과 평양에서 AP 특파원으로 활동한 진 리(Jean Lee)는 북한에 관한 ‘진실’에 다가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한다.

“지금도 북한을 둘러싼 수많은 이해 관계와 정략이 작동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트리는 정보도 실제로 많아요. 그래서 어떤 정보를 입수하든 그것이 사실인지 파악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쉴 새없이 판단을 해야 합니다.

2년 전부터 북한에서 한 달 정도씩 머물며 취재를 해왔는데 이제 연출된 이벤트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하는 듯해요.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북한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북한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우리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요. 북한 사람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밖에 있는 사람들, 전문가들, 북한에 있는 NGO 활동가들. 그들은 제각각 특정한 시각을 가지고 있죠.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종합하여 한 편의 기사 속에 넣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 리)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기자들에게 새로운 윤리적, 직업적 딜레마를 만들어냈다. AP 특파원들의 기본적인 태도는 소셜미디어를 ‘참고하는’ 정도로만 활용한다는 것이지만, 시간이 가면서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졌다.

” 이라크에서 몇몇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이러저러한 공표를 하기 시작했지.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을 했어. 거짓 계정일 수도 있고, 해킹되었을 가능성도 있잖아. 그런 글이 나올 때마다 계속 전화를 해서 직접 확인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답변을 들었지. “아뇨. 진짜 우리가 쓴 거 맞아요.”

결국,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40년 전 처음 등장한 팩스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어. 팩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똑같은 혼란이 있었거든.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글뿐만 아니라 사진과 비디오도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어쨌든 그런 자료를 부분적으로 활용하여 기사를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세심하게 검증을 해야 돼. 의심스러운 내용은 없는지, 사진 속에 왜곡된 곳은 없는지, 동영상 속에 나오는 건물이 진짜 그곳에 존재하는지, 뭔가 조작되었거나 포토샵 처리한 것처럼 보이는 곳은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돼. (로버트 리드, Robert Reid)

북한은 가장 취재하기 어려운 나라일 것이다. 사진은 북한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군이 최초 공개한 5연장 초대형 방사포(구경 600mm, 세계 최대). 최대 사거리는 약 400km로 남한 전역이 타격 범위 안에 있다. (출처: 조선중앙TV 캡쳐)
북한은 가장 취재하기 어려운 나라일 것이다. 사진은 북한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군이 최초 공개한 5연장 초대형 방사포(구경 600mm, 세계 최대). 최대 사거리는 약 400km로 남한 전역이 타격 범위 안에 있다. (출처: 조선중앙TV 캡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변했어도 ‘검증의 책임은 기자에게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고 AP 특파원들은 말한다.

“‘취재원에 따르면’이라는 말을 붙여서 보도를 한다고 해서 검증의 책임을 취재원에게 돌릴 수 있을까요? 취재원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취재원이 거짓말한 것이지, 내가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고 핑계를 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진실이 아닌 것을 보도한 책임은 무조건 기자가 져야 합니다.

어쨌든 기자는 취재원의 말을 인용해서 보도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해서는 안 됩니다.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할 뿐이죠. 그럼에도 기자는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판단은 오로지 기자의 몫입니다. 이 책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없습니다. (댄 페리, Dan Perry)

검증 책임은 기자에게 있습니다.
진실이 아닌 것을 보도한 책임은 무조건 기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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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P, 역사의 목격자들] (지오바니 델오토, 신우열 옮김, 크레센도, 2020)에서 발췌한 내용을 출판사가 직접 각색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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