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포트] “기후재앙론은 틀렸다”는 빌 게이츠. 기후에 관한 ‘세 가지 불편한 진실’. “백신 지원금 중단해 0.1℃라도 온도 낮추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기후 전략은 인간의 삶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게이츠는 말한다. (⌚7분)
‘수십 년 안에 재앙적 기후변화가 문명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지구 온도 상승으로 인한 폭우와 폭염만 봐도 알 수 있다. 온도 상승을 제한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기후변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현대인이면 공감할 ‘기후재앙론’이다.
기후변화 대응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온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가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를 앞둔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기후재앙론은 틀렸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의 블로그 ‘게이츠 노트’(Gates Notes)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는 가난한 나라 사람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지만
빌 게이츠
그렇다고 인류 멸망으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이게 왜 중요한가.
- 게이츠는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로 제한하자는 2015년 파리 협약을 강하게 지지해 왔다. 그의 ‘입장 선회’가 전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 기존 기후변화 대응 전략의 대전환을 주문했다. 기후재앙론에 갇힌 탓에 기후 전문가 대다수가 단기 탄소 배출 목표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작 지구 온난화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엔 자원을 제대로 투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게이츠는 “배출량이나 기온 변화보다 중요한 지표는 삶의 질 향상이다.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고통을 방지하는 것이며, 특히 세계 최빈국에서 가장 어려운 환경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게이츠는 오는 10일 브라질 벨렘에서 열리는 COP30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기후 문제에 할당된 자금이 올바른 곳에 사용되고 있을까? 난 아니라도 본다.”
- 그는 기후에 관한 ‘3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글을 요약했다.
첫째, 기후변화는 인류 멸망을 가져오지 않는다.
-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은 1850년 대비 2°C에서 3°C 사이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각국이 약속한 1.5°C 목표를 훨씬 상회한다.
- 지금부터 2040년까지 우리는 세계 기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세계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서다. 에너지 수요는 2050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 삶의 질 향상을 고려할 때 에너지 사용 증가는 긍정적 면이 있다. 에너지 사용 증가는 경제 성장 핵심 요소다. 성장은 환경에 해롭지만 적절한 투자와 정책이 뒷받침하면 향후 10년 안에 새로운 저비용 탄소 제로 기술이 등장할 것이고, 기존 기술 효과까지 감안하면 금세기 중반 안으로 탄소 배출량은 감소하고 빈·부국 간 격차도 좁혀질 것이다.
- 기술 혁신에도 누적 배출량은 지구 온난화를 부를 것이며, 사람들은 ‘기후 이주’로 대응할 것이다. 아이오와가 텍사스처럼, 텍사스가 멕시코처럼 더워지면 사람들은 보다 나은 기후를 찾아 이동한다.
- 하지만 적도 근처 국가의 대부분 주민은 이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더 많은 폭염, 더 강력한 폭풍, 더 큰 산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극심한 폭염 및 기상 현상에 대비한 더 나은 조기 경보 시스템과 냉방 센터에 투자해야 한다. 이런 투자가 부족했다.
- 기후변화 적응 능력은 고르게 분포돼 있지 않다.

둘째, 기온은 기후문제 해결의 진전을 보여주는 최선의 지표가 아니다.
- 지구 온도는 사람들의 삶의 질에 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기후 전략은 인간의 삶, 복지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삶의 질 개선은 ‘배출량 감축’에 밀려 뒷전으로 미룬 상태다.
- 불평등은 심각하다. 유엔(UN)의 인간개발지수(HDI)는 한 국가의 국민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0에서 1 사이 점수로 보여준다. 점수가 높을수록 좋다. 스위스가 0.96으로 가장 높다. 남수단이 0.33으로 가장 낮다.
- HDI 점수가 가장 낮은 30개국은 지구 인구의 8분의 1을 차지하지만 전 세계 GDP의 약 0.33%에 불과하다. HDI 점수가 밑바닥인 국가는 높은 빈곤율을 보이며 국민들은 최악의 건강 상태에 있다. 남수단에서 태어난 아이는 스웨덴에서 태어난 아이보다 5세 생일을 맞이하기 전 사망할 확률이 39배나 높다.
- ‘배출량 감축’을 우선하는 정책은 저소득 국가를 더 위태롭게 만든다. 몇 년 전 한 저소득 국가 정부는 합성 비료 사용을 금지해 배출량을 줄이려 했다. 농작물 수확량이 급감했고 식량 공급이 크게 줄었으며 가격이 급등했다. 이 나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 다자간 대출 기관들은 부유한 주주들의 압박으로 화석연료 프로젝트 자금 지원을 중단하도록 강요받았다. 석유, 가스, 석탄을 지하에 남겨 배출량을 제한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런 압박은 전 세계 배출량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부메랑은 저소득 국가에 돌아왔다. 이들 나라는 가정, 학교, 보건소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발전소가 필요했지만 저리 대출을 받기 어려웠다.
- 기후변화는 가난한 국가 사람들의 삶과 생계에 가장 큰 위협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셋째, 기후변화에 맞서는 최선책은 인류의 건강과 번영이다.
- 시카고대 기후영향연구소에 따르면, 남은 21세기 동안 저소득 국가들의 기대 성장을 고려하면 기후변화로 인한 사망자 수는 50%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더 빠르고 광범위한 성장은 사망자를 더욱 감소시킬 것이다. 경제 성장은 공중 보건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 기후 적응을 위한 가장 효과적 투자처 가운데 하나는 농업이다. 대부분 가난한 국가는 여전히 농업 중심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케냐의 경우 게이츠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기후변화 속에서도 잘 자라는 품종을 개발했다. 새로운 종자로 케냐 농가들은 옥수수 수확량을 66% 늘렸다. 6인 가족이 1년간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880달러 상당의 잉여 작물을 판매할 수 있는 양이었다. 이는 기존 농가 소득의 5개월분에 해당한다.
- 매년 폭염으로 약 50만 명이 사망한다. 이 수치는 한동안 감소했다. 더 많은 사람이 에어컨을 구입할 수 있게 돼서다. 놀랍게도 매서운 추위는 더위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매년 혹한으로 인한 사망은 열사병으로 인한 죽음보다 대략 10배 많다. 앞으로 열사병 사망자는 증가하고 한파 사망자는 감소할 것이다. 현재 가장 신뢰할 만한 추정치에 따르면, 기온 관련 사망률은 전 세계적으로 순증할 것이며, 그 증가분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 기후 관련 사망을 무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질병과 극한 기후를 고통의 정도에 비례해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더위와 추위가 발생하는 날을 줄여야 함과 동시에 극한 기후가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가난한 국가의 국민이 빈곤과 열악한 건강 상태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정된 재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 모든 훌륭한 기후변화 아이디어를 지원할 만큼 충분한 돈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우리는 데이터에 기반해 인간 복지에 가장 큰 성과를 가져올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 3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던 시절, 직원들에게 ‘모든 제품에 인터넷을 접목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중대한 전략적 전환에 관한 글을 쓴 적 있다. 그때 전략을 조정하지 않았다면 우리 성공은 위태로웠을 것이다.
- 기업의 경우 책임자가 한 명뿐이기 때문에 전략적 전환을 하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 이와 달리 세계 기후 우선순위나 전략을 결정하는 CEO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결정은 전 세계 기후 공동체가 내려야 한다.
- COP30을 포함한 향후 회의에서 공동체가 전략적 전환을 단행할 것을 촉구한다. 인간 복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태어난 장소나 기후 조건 등에 관계없이, 이는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생산적 삶을 누릴 기회를 보장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게이츠 선언이 미칠 파장은?
- 게이츠 글에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기후 과학자 마이클 만(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은 게이츠 글이 온건한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고 우려했다. 기후변화가 현실임을 인정하면서도 ‘기후 행동이 너무 비싸다’거나 ‘더 시급한 일이 있다’는 식으로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을 축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지구온난화 관련 세계적 권위자인 마이클 오펜하이머(프린스턴대 교수)도 “그의 발언은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에 의해 반드시 악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기후과학자 캐서린 헤이호(텍사스 공대 교수)는 “사람들은 가난, 질병 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기후변화를 별개의 양동이(bucket)로 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기후변화는 모든 양동이에 난 구멍과 같다”고 했다.

“나는 기후 운동가이면서 아동 인권 운동가.”
- 게이츠는 자기 주장이 미칠 파장을 예견했다. 게이츠는 발표 글에 “일부 기후 운동가들은 내 의견에 반대하거나 날 위선자라 비난하거나, 아니면 내가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할 것”이라며 “분명히 말하면 기후변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말라리아나 영양실조 같은 다른 문제들과 함께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 게이츠는 같은 날 공개된 CNBC 인터뷰에서 “가난한 국가 원조 예산이 지난 25년간 그랬던 것처럼 계속 증가했다면, 기후 행동과 아이들 생명을 구하는 것 사이의 상충 관계는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은 그 예산이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제한된 자금을 특정한 목적으로 따로 떼어내지 말고 사용하자. 모든 걸 인간 복지 관점에서 측정하자”고 밝혔다.
- “만약 우리가 모든 백신 지원금을 중단해 0.1℃라도 온도를 낮출 수 있다면, 그게 현명한 선택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기후 운동가이지만 동시에 아동 생존 운동가이기도 하다.”
- 게이츠는 ‘입장 선회가 트럼프를 달래기 위함 아니냐’는 질문에 “기후가 유일한 문제고 종말론적이라고 생각하거나, 기후가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내 메모는 당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당신은 ‘전부 기후 문제여야 해’라거나 ‘왜 아직도 기후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할 테니까”라고 말한 뒤 “‘기후변화가 매우 중요하지만 인류 전체 복지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중간 입장은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에 선택한 게 아니다. 난 이게 지적으로 올바른 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후 운동가 빌 게이츠.
- 20년 넘게 지구 온난화를 연구했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혁신 기술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 10년 전 청정 에너지 혁신과 보급을 가속화하기 위해 투자 플랫폼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Breakthrough Energy Ventures, BEV)를 설립했다.
- BEV는 150개 이상 기업을 지원했고 다수는 주요 기업으로 성장했다. 수천 명의 혁신가로 구성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