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다큐 인사이트 [별점인생](2020. 4. 30)은 플랫폼 노동의 몇 가지 실례를 보여준다. 가장 주목할 만한 지점은 ‘별점’이란 소비자 후생 증대 시스템이 플랫폼 노동자에게 출구 없는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인간성 상실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별점 노예’ 양산하는 ‘플랫폼 경제’
흔한 예로 플랫폼 하에서 대리 운전기사는 별점의 노예다. 고객이 내리는 평가가 나빠지면 당장 불이익이 닥치기에 상시 노심초사한다. 다큐에는 미국 우버 노동자의 생생한 사례도 나오는데, 별점이 조금 낮아지자 그렇잖아도 경쟁이 심한 ‘배차 받기’에서 우선순위가 내려가며 안 그래도 추락한 수입이 더욱 처참해진다.
파출부 등으로 불렸던 한국의 가사도우미는 이제 플랫폼 노동자다. 플랫폼 앱에서 의뢰를 받아 집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청소나 설거지 등을 해주고 별점을 통해 평가받는다. 이런 시스템에서 굉장한 스트레스가 불거진다. 다큐에 나온 가사노동자 이동희 씨는 구석진 곳의 묵은 먼지를 제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진이 찍혀 고객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다음날 다시 무급으로 그 일을 해줘야 했다. 별점이 깎인 것은 덤이다.
화장 팁을 전수하는 것도 플랫폼 노동이다. 고객은 플랫폼에서 평판 좋은 메이크업 프리랜서를 선택하고 이 노동자는 고객이 원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일을 마치면 별점과 고객평이 주어지고, 이것이 플랫폼과 그 노동자를 존재하게 하는 사실상 유일한 근거다. 화장 디자이너는 가격을 낮춰주겠다고 흥정을 하기도 한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고객을 유치하고 높은 별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일 생글거렸던 이 노동자는 밤에 어머니를 만났을 때야 울음을 터뜨렸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화장을 남에게 알려주고 돈까지 벌 수 있는데, 왜 눈물을 흘리는지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전해졌다.
배송기사는 다들 알다시피 플랫폼 노동의 꽃(?)이다. 이들이 있기에 한국의 ‘얼마 전’ 코로나 방역이 성공적이었다고 극찬한 신문도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배송노동자도 별점의 노예다. 새벽이든 언제든, 비가 오든 어찌하든 시간 맞추기야 기본이고 주소를 허술하게 적은 고객의 실수까지 처리해 줘야 한다. 낮이면 몰라도 새벽엔 고객에게 연락하기도 어려워 열불이 나지만 ‘실직’을 면하려면 다 참고 넘어가야 한다.
잠깐, ‘실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자는 실직도, 고용도, 취업도 아닌 상태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다큐에 나온 배송기사의 일감 따기 시스템은 이런 식이다. 어느 온라인 마켓에서 12시에 대박할인 이벤트가 있다고 하자. 뭇 사람들이 그 시간에 클릭 응모를 하려 몰리게 된다. 플랫폼 배송기사도 마찬가지다. 배송 입찰에 참여할 것인지 정해진 시간에 클릭을 해야 하고, 플랫폼 회사의 알고리즘에 따라 그날의 실직자와 취업자가 가려진다. 플랫폼 노동이란 그 전체가 이와 유사하게 돌아가는 체계이고, 이는 속칭 노가다 일용직이 새벽 시간에 일을 구하던 형태가 스마트폰으로 옮겨진 것과 흡사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의 맹점
이쯤에서 의문이 생겨난다. 집권여당 측에서는 플랫폼 노동자에게 ‘전 국민’ 고용보험의 혜택을 주겠다고 선전하는 중이다. 그런데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 및 소득 안정은 폭풍우 앞의 등불과 같다. 이것은 기존의 고용보험 체계가 새롭게 불어난 플랫폼 노동자와 부조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미 일용직에게도 고용보험 가입의 길이 열려있다고?’
‘고용보험에는 저임금자에게 후한 소득재분배 원리가 있기에 보험료를 조금만 내도 상당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김부겸, 박원순 등 전 국민 고용보험을 밀고 있는 민주당 인사들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허나 바로 이런 요소들 때문에 ‘전 국민’ 고용보험의 맹점이 나타나게 된다. 벌이가 낮은 플랫폼노동자로서는 저소득 구간에서 수입에 비해 후한 현행의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실직을 택하는 게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발적 실직 규제가 폐지됐다는 전제하에, 18개월간 180일을 일하고, 실업급여 신청 이전 1개월 동안에는 10일을 일한 뒤 실업급여를 신청하면 플랫폼 노동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면 180일간, 다 합해서 7만 원도 안 되는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월 180만 원의 실업급여를 넉 달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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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자는 근무시간을 산정하기 어렵기에 하루 근무시간이 8시간에 미달할 때 감액하지 않고 실업급여 하한액을 그대로 받는다고 가정했다. 또 고용보험료도 반반이 아니라 본인이 전액 낸다고 가정했다. 이렇게 되면 18개월 동안 180일을 일한 노동 수입 360만 원에 4개월의 실업급여 720만 원을 더하여 22개월간 총수입이 1,080만원이 된다. 가구의 보조수입원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가성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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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1인 가구라면, 이 역시 플랫폼 노동의 일 근무시간을 산정하기는 어려우므로 월 181만 원의 실업급여 하한액을 그대로 받는다고 가정한다. 월 평균 100만 원을 벌면서 고용보험료 1만8천 원을 본인이 다 낸 노동자가 12개월 일하고 6개월은 쉬면서 실업급여를 신청할 경우, 노동소득 1,200만 원에 넉 달의 실업급여 720만 원을 더해 22개월의 총수입이 1,900만원에 이른다. 근로장려금까지 고려하면 2천만 원을 상회하는 수입이다. 적은 돈이지만, 22개월간 거의 10개월을 재충전(?) 할 수 있으므로 자포자기식 안주를 유도하기에 딱 좋은 여건이다.
실업급여만 바라보는 ‘기이한 노동자’ 양산?
누군가는 이 얼마나 좋은 실업급여 체계냐며 호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상이 아니다. 한국의 실업급여 체계는 열악한 노동시장 여건에다 수급 요건의 까다로움이 결부되며 기형적으로 변천해왔다. 상한액은 너무 박하고 하한액은 너무 관대하다.
이런 고용보험 급여 체계를 그대로 둔 채, 수급 요건만 완화해서 플랫폼 노동자를 끌어들이면 1년 반 동안 실업급여 신청일만 기다리는 기이한 노동자를 대량으로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일시적이고 최소한의 안전망이 돼야 할 실업급여가 평생에 걸쳐 주 수입원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 유인을 높이기 위해 하한액을 낮추면 최소한의 안전망으로서 그 기능이 상실된다.
또한 관대한 하한액을 그대로 둔 채 자발적 실직에 따른 수급 박탈 요건을 유지하면, 플랫폼 등 자발적 실직의 규명 자체가 불가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배제되어 고용보험 확대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들은 보험료를 내면서도 혜택은 받지 못하는 들러리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저수입에 허덕이면서 말이다. 이럴 바엔 그렇잖아도 어폐가 있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정책 용어를 당장 폐기해야 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증가한 플랫폼 ‘별점’ 노동자는 소비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분이 확실하기에 규제로 없앨 수 있는 일자리가 아니다. 과거의 입소문을 사업화한 플랫폼 시스템은 그 장점으로 인해 앞으로 더 늘어날 영역이다. 특히나 한국은 사람 값이 싸기에 이런 일자리가 더욱 늘어날 여지가 크고 이들 대부분은 고용과 수입 모두에서 극심한 불안정에 시달리게 된다.
기본소득보다 낫다며 포장에 급급
이들에게 ‘전 국민’ 고용보험의 혜택을 주겠다는 집권 여당의 인사들은 기본소득과 억지 비교를 하며 그 당위성을 포장할 게 아니라, 실제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고 그에 맞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고용보험의 확대는 응당 추진할 일이지만, 과대 포장은 자제하고 맹점을 보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지연 박사는 현재 고용보험 피보험자 가운데 실업발생률인 0.9%를 자영자와 특고 종사자에게도 적용하여 전 국민고용보험 시의 실업급여 수급자 수를 예상한다. 그러면서 추가로 필요한 재원이 2조 8천억 원가량으로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장 박사는 훌륭한 연구자이지만, 과도하게 낙관적인 정보를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주고 있다.
자영업자, 특고,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은 기존 고용보험 가입자보다 고용 안정에 취약하다. 고용보험을 확대했을 때, 이전의 실업발생률보다 한결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특히나 플랫폼 사업체 하의 특수고용 종사자들은 고용도, 취업도, 실직도 아닌 상태에 놓여 있다. 기성 체제의 실업발생률로 접근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더욱이, 현행 실업급여 체계가 저임금자의 수입에 비해 지나치게 관대하므로 (실질적인 전 취업자 고용보험을 시행한다면) 실업발생률이나 소요 예산이 얼마나 오를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고용보험료를 높게 책정하지 않는다면 감당키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용보험료를 낮게 가져간다면, 세금 투입을 큰 폭으로 늘려야 한다. 절대 못할 일은 아니지만, 세금을 투입하여 실업급여 지출액 규모가 커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집권여당은 대통령의 기조에 따라 증세도 회피하는 이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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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증세는 없다’ ‘5년 내내 기조다’ 발언 (2017. 7.)
“증세를 하더라도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 증세는 없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다. 일반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 달라.” (문재인 대통령, 2017년 7월 21일 청와대 국가재정전략회의 중에서, 다수 언론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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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직도 그렇지만 자영업자를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끌어들이는 일도 난제이다. 우석진 교수는 58%의 사업자가 1천만 원 이하의 소득을 올리며 1천만 원~2천만 원 이하는 16%라고 지적한다. 아예 적자인 사업자는 7.2%다. 전 국민 고용보험의 명분으로 자영업자에게 고용보험료를 걷는 일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자영업자는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해 단기 알바와 같은 피고용인들의 고용보험료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전 국민’ 고용보험에서 누락이 발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장밋빛으로 선전하는 이들은 이런 대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어찌된 게 자신들 정책의 내실을 다지고 알리는 게 아니라 언제 실현될지도 모를 기본소득보다 낫다며 전 국민 고용보험을 겉핥기로 포장하는 데 급급하다. 나중에는 들통이 날, 눈 가리고 아웅에 다름 아니다.
‘증세 없는 복지’보다 한심한 이야기
지난 5일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1년 미만 근속자에 대한 퇴직금 의무 지급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의 총선 공약을 발빠르게 이행한 것이다. 민생(?) 공약을 실천하는 것은 좋지만, 민주당에 정책 정합성이란 게 있는지 통 알 수가 없다. 자영업자의 고용보험료 부담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거기에 급여의 약 8%에 달하는 퇴직금 지급 부담까지 지우겠다니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모르겠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가가 오르면 된다. 나는 기본적으로 서비스 물가가 오르고, 사람 값이 비싸지며 이를 모든 소비자가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집권여당은 지난 최저임금 인상 때 물가가 오르면 안 된다며 기겁을 했던 전력이 있다. 그런 그들이 영세업체의 고용보험료에 퇴직금 부담까지 높이려 하고 있으니 ‘전 국민’이 행복해질 것만 같다.
지난 6월 9일에는 흥미로운 보도가 하나 있었다. 신동근 민주당 의원이 민주당 의원 176명 전원이 속한 텔레그램 방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신 의원은 단체 채팅방에서 “이재명의 기본소득은 실현가능성은 차치하고 불평등을 강화할 것이며 대안은 전 국민 고용보험제”라고 주장했다. 하위계층에게 공적 이전소득(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기초연금, 아동수당, 장애수당 등 각종 사회보험금 및 정부보조금)을 더 높게 차등 지급하거나 집중 지급해야 불평등을 줄일 수 있으며 선별복지와 사회투자가 답이라고 강조했다.
큰 틀에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말장난에 불과한 세력 다툼이기도 하다. 신 의원이 말하는 저 복지들이 효과를 내려면 “초고소득자, 초대기업에 대한 핀셋 증세만 시행하고 여타 소득계층의 보편적 증세는 절대 불가”라고 천명한 청와대에 반기부터 들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증세 불가’ 기조를 받들면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 같은 복지 정책들을 실현하겠다? 박근혜의 ‘증세 없는 복지’보다 한심한 이야기다.
결국, 하지도 않을 복지정책들을 열거하며 기본소득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거나, 전 국민고용보험의 허점을 어떻게 보완할지는 함구하면서 기본소득보다 낫다며 무작정 해야 한다는 정치인들은 허경영의 반대 버전 ‘사짜’들이다. 허경영이 기본소득 비스무리한 이야기로 신자들을 현혹한다면, 신동근 의원 같은 이들은 기본소득 비판을 미끼로 대중의 눈을 가리는 기본소득 공론장의 ‘사짜’인 셈이다.
굳이 부연하면, 나는 기본소득 옹호자가 아니다. 조세 및 복지, 격차나 주거 부문의 국제비교를 공부한 이로서 기존 조세-복지 체계의 장점을 수용하는 기본소득론을 아직 보지 못했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동시에 기본소득을 깎아내리며 이런저런 복지들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재원 대책엔 모르쇠인 이들에게도 같은 이유로 비판적이다. 기본소득의 약점을 비판한다고 그 정치인의 정책 대안이 저절로 타당성을 확보하는 게 아니다. 한데 이렇게 연목구어(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함; 불가능한 일을 무리해서 추진함) 식으로 정책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이들이 판치고 있으니, 가히 ‘맥거핀’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만하다.[footnote]맥거핀(MagGuffin) 혹은 맥거핀 효과(MagGuffin effect)는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고안한 연출 기법으로 소설이나 영화에서 어떤 사실이나 사건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꾸며 독자나 관객의 주의를 전혀 엉뚱한 곳으로 돌리게 하는 속임수를 의미한다. 유명한 사례로 [사이코] (1962, 히치콕)에서 여주인공 마리온이 훔친 가방, [바톤 핑크] (1991, 코엔 형제)에서 연쇄살인마 찰리의 상자, [미션 임파서블 3] (2006, J.J. 에이브람스)의 ‘토끼발'(Rabbit’s Foot) 등이 있다.(편집자)[/foot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