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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기획한 ‘광장에 나온 판결’ 연재의 일환입니다. 오늘은 반올림과 삼성전자의 작업환경측정평가보고서 정보공개소송과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의 문제점을 살펴봤습니다. 필자는 한창현 노무사입니다. (편집자)[/box]

2018년 2월, 삼성전자 아산캠퍼스 디스플레이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법원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footnote]2017누10874(대전고등법원 제1행정부 허용석 부장판사)[/footnote]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사업 활동에 의하여 발생하는 위해로부터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해당한다.”

판결

삼성+산자부+통합당, ‘정보 공개’ 판결 무력화한 개정법 

그러자 삼성 측은 2018년 3월 26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삼성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대해 국가핵심기술 사전 판정을 신청하였고, 산자부장관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제9조 6항에 따라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중 측정 위치도, 부서·공정명, 단위 작업 장소, 화학물질명(상품명), 월 취급량이 반도체 분야의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한다고 판정하였다.

이어서 2019년 8월 20일에는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 주도로 작업환경측정보고서상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모든 정보를 비공개하도록 산업기술보호법이 개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20년 2월 19일, 반올림 등이 삼성전자 화성공장과 기흥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대해 제기한 정보공개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이미 고법이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의 필요성을 인정한 기존 판례를 뒤집고, 국회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취지에 따라 삼성 측의 손을 들어 비공개하는 퇴행적 판결을 내렸다.

한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다. 마치 고법 판례를 뒤엎기 위해 삼성과 산업자원부, 자유한국당이 손발을 맞춰온 듯한 기습작전의 합작품처럼 느껴진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작업환경측정에 대해 공개의 원칙을 정하고 있음에도, 측정결과에 대한 정보가 누구보다 절실한 산재신청 노동자 및 그 유가족에게 “기업의 영업상의 비밀”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로써 수많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 당사자와 반올림 등이 거대자본을 앞세운 삼성과 수년간 싸워 쟁취한 직업성 질병에 대한 노동자의 최소한의 자기방어권 및 알권리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듯하다.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 그러면 아예 법을 바꿔버리지 뭐! (삼성, 산자부, 통합당 합체 모드)
정보를 공개하라는 판결? 그러면 아예 법을 바꿔버리지 뭐! 삼성, 산자부, 통합당(구 자한당) 합체 모드의 위엄!!

기업 위해 국민의 생명 건강을 팽개치자고? 

기업이 노동자의 건강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안전한 물질을 사용해 제품을 생산한다면, 작업환경측정제도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25조(작업환경측정)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는 발암물질 및 각종 유해한 화학물질 등을 사용하는 사업주는 그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측정결과(작업환경측정결과)를 노동자에게 반드시 알리도록 하고 있고, 노동부에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근로자대표가 요구하면 작업환경측정 결과에 대한 설명회 등을 개최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법으로 정해놓은 이유는 사업주의 의지와 무관하게 언제든 유해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권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방어권을 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사업주의 유해물질 사용내역 (유해물질명, 사용장소, 사용량, 사용시기, 노출기준 초과 여부 등)에 대해 노동자가 당연히 알 수 있도록 노동자의 알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개악된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 중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 되는 노출 측정 위치도, 노출부서/공정명, 단위작업장소, 화학물질명(상품명), 월 취급량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여 비공개한다고 하면, 결국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산재신청을 준비하는 피해당사자는 본인이 어디서, 어떤 작업 중, 어떤 물질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산재 신청을 준비해야 한다.

2020년 3월 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있었던 산업기술보호법이 위헌임을 구하는 헌법소원청구 기자회견 모습 (반올림) http://cafe.daum.net/samsunglabor/MHzN/564
2020년 3월 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있었던 산업기술보호법이 위헌임을 구하는 헌법소원청구 기자회견 모습 (반올림)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기업을 상대해 산재신청을 준비하는 것도 고단한 일이다. 그런데 재해 피해자임에도 질병 발병의 가장 기본적 원인인 작업환경에 대한 측정결과마저도 알 수 없다고 하면, 향후 직업성 암이나 백혈병과 같은 질병에 대한 산재신청은 일방적으로 기업측에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 뻔하다.

반면 사업주는 산업자원부로부터 국가핵심기술이라는 판단만 받으면, 작업환경측정결과에 대해 더는 노동자 및 근로자대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등에 대해 그 측정 결과의 중요 사항을 누락하거나 임의적으로 생략한 체 형식적인 고지만 할 가능성이 높다. 직업성 질병의 사전예방과 노동자의 건강권 및 알권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측정제도는 이제 그 존재 이유를 잃게 된 것이다.

어떠한 국가 핵심기술이라도 국민의 신체·생명·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기술이라면 그 기술은 국민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하루빨리 폐기 처분하거나, 국민의 건강에 지장이 없는 안전한 기술로 대체되어야 한다. 국가까지 나서 보호할 가치 있는 기술로 대접 받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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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산업기술보호법의 문제가 뒤늦게 알려진 이후, 민주당은 국민 건강에 위해를 미치는 정보는 공개할 수 있도록 단서 조항을 추가한 산업기술보호법 재개정안을 2019년 12월 신창현 의원 대표로 발의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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