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주총 1주일 전 사업보고서 공개, 여전히 강력한 총수 거버넌스… 사전적 견제 장치도 사후적 책임 추궁도 부족.
“우리 기업은 총수·경영자의 사적 이익과 회사·주주 이익이 상충하지 않을 때는 회사·주주 이익에 잘 복무한다. 하지만 상충관계가 생기면 여지없이 총수·경영자 이익에 충성하는 선택을 한다.”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김우찬(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의 평가다. 김우찬은 4일 열린 ‘2026 한겨레 기업지배구조 국제포럼’에서 총수·경영자 중심의 한국 기업 거버넌스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제를 정리했다.
이 행사는 한겨레가 주최했다. 민주당 K-자본시장 특별위원장 오기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 주관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과 한국캐피털이 후원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와 글로벌 투자분석회사 CLSA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순위가 2023년 아시아 12개국 중 8위다. 일본은 2위, 대만은 4위다. 2007년에는 대만 4위, 일본 5위, 한국 6위였다.
- 주주권 보호, 이사회 독립성, 공시·투명성, 회계·감사 수준, 규제·집행력 등이 아시아 평균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 김우찬은 한국과 두 나라 차이에 관해 “한국의 경우 강력한 재벌과 총수가 있다”며 “총수 중심 거버넌스에서는 주주가 활동할 공간이 없다. 주주가 활동할 공간을 총수·경영자가 차지해 자기 이익을 좇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총수 거버넌스엔 세 가지가 없다.
- 첫째, 사전적 견제 장치가 없다.
- 둘째, 사후적 책임 추궁도 없다.
- 셋째, 주주권을 행사할 주주가 없다. 삼무(三無)다.
- 경영자와 총수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 있다면 혼자 결정해선 안 된다. ‘주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주주가 사전적 견제 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국의 경우 사전적 경제 장치가 대부분 없고, 있어도 힘이 약하다.
- 사후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땐 회사와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이사에게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제한적이다.
- 민주당이 1·2차 상법 개정안 통과를 주도하며 주주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지만, 정작 이 권한을 행사할 주주가 많지 않다. 주주 행동주의를 제약하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전 견제 권한 강화.
- 감사위원 전원을 분리 선임해야 한다. 2차 상법 개정으로 분리 선출 대상 감사위원을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했지만, 올 3월 주주총회 때 많은 기업이 감사위원회 구성을 3명에서 5명으로 늘릴 전망이다. 2명을 분리 선출해도 그렇지 않은 나머지 3명이 우위인, 총수·경영자 영향력 아래에 놓인 구조다. 감사위원 전원을 분리 선출하지 않으면, 총수가 자기 자신을 감독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 임원 보수에 관한 주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대다수 나라는 주총에서 임원 보수(연봉) 정책을 표결에 붙인다. 부결되면 기존 정책에 따라 임원 연봉이 결정된다. 한국은 이사 보수 한도 승인 건만 주총에서 다루는데, 사실상 총수가 자기 월급과 보너스를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다. 전형적 자기 거래다.
- 소수주주 과반결의제도(MoM·Majority of Minority)가 필요하다. 계열사 간 거래 시 총수·경영자가 실질적 거래 조건을 결정하고 있다. 자기 거래에 주주 동의를 받아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이때 결의는 특별 결의로도 부족하다.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고 주총에서 결의해야 한다.
- 의무 공개 매수 제도가 필요하다. 지배주주가 변경돼도 일반 주주는 반대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 일반 주주가 반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새로운 지배 주주가 마음에 안 들면 일반 주주가 자기 주식을 팔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대주주와 마찬가지로 같은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후 책임 추궁 강화.
- 1차 상법 개정으로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했지만 주주에 대한 책임 조문은 미비하다. 실무적으로 변호사들은 어떤 조문에 근거해 주주 대표 소송을 할지 혼란스럽다.
- 주주 대표 소송 제기 요건을 낮춰야 한다. 주주 대표 소송은 0.01% 이상 지분을, 다중 대표 소송은 0.5% 이상 지분을 가져야 소 제기가 가능하다.
- 기관 투자자는 소 제기가 가능하지만 국내 기관 투자자가 주주 대표 소송을 제기한 적은 없다. 결국 개인이 제기해야 하는데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현재 1100조 원이다. 1100억 원(0.01%)을 갖고 있는 개인 주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 상장 법인의 임원들은 주주 대표 소송으로부터 면제돼 있는 셈이다.
- 소송에서도 입증 책임이 원고인 주주에게 있다 보니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이사의 부당성을 입증한 사건에서만 소송이 가능하다. 이사가 충실 의무를 위반했으면 미국과 마찬가지로 입증 책임이 전환이 되어 피고인 경영자가 공정함을 입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 증권관련집단소송은 ‘허가 재판 3심+본안 3심’으로 사실상 6심제로 운영되고 있다. 원고나 소송 대리인이 3년에 3건만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남소 방치 장치가 과도하다.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 한국의 사내이사는 특정 범죄를 저질렀을 땐 임원 자격을 제한받지만, 대부분 형사 처벌에도 자격이 유지된다. 상근 감사에 적용되는 자격 요건과 동일하게,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2년 동안은 사내이사를 할 수 없게 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적극적 주주권 행사 유도.
- 여러 기술적 걸림돌이 주주 행동주의를 어렵게 한다.
- 지금은 감사 보고서와 사업 보고서를 주총 1주 전에만 공개하면 된다. 미국은 한두 달 전에 공개토록 하고 있다. 주총 ‘1주 전 공개’를 ‘4주 전 공개’로 강화해야 한다. 이 경우 큰 회사는 그래도 3월 말 주총을 할 수 있지만 작은 회사들은 주총을 4월에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집중되어 있는 주총 개최일을 분산할 수 있다.
- 주총 소집 공고 기간이 너무 짧다. 이사 후보를 추천하려면 6주 전 서면으로 해야 하는데, 임시 주총을 공고하면서 임시 주총 개최를 6주 이내로 하게 되면 외부 주주는 주주 제안권을 행사할 수 없다. 임시 주총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주총 개최일 8주 전에 소집 공고를 해야 한다.
-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에 자금을 위탁 운용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책임투자형 위탁펀드는 주식 명의자인 국민연금 허락 없이 주주권 행사가 불가하다.
- 행동주의 펀드를 대체투자 자산군 유형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 경우 행동주의 펀드는 투자 대상 회사 주식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돼 독자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행동주의 펀드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다.
- 스튜어드십 코드의 경우 지금은 서면과 이행 모두 자율이다. 서명은 자율로 하되, 서명하면 이행토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행 보고서 공시한 뒤 평가하고, 이행을 제대로 못하면 퇴출시키는 구조가 필요하다.
핵심: ‘주주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 법은 개정됐지만 변한 것은 없다. 1·2차 상법 개정을 주도한 오기형(민주당 의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많이 해소됐다곤 하지만 다 해소된 건 아니다”라며 “1·2차 상법 개정을 했지만 주요 내용이 올해 주총과 경영진-주주 소통 과정에 반영돼야 하는데 제대로 반영된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 기업 거버넌스 개혁에 관한 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 김우찬은 정권이 달라져도 큰 틀은 바뀌지 않는 개혁 로드맵을 주문했다. 개혁 과제들이 상충돼서도 안 된다. 김우찬은 “‘재벌 개혁’하겠다면서 대통령이 재벌을 사면하면 개혁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오기형은 “이제는 우리 사회에 변화한 답변이 나와야 한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침해했다면 그 결정에 참여한 이사는 본인의 전 재산으로 책임져야 한다”며 “거수기 이사회를 책임지는 이사회로 바꿔야 한다.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추가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김우찬 발제문 마지막 글귀는 ‘Empower the Shareholders’였다. “주주에게 권한을 부여하라”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