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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2026 한국 사회의 준거점(들)

2026년에도 화두는 쿠팡이다.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은, 마치 오랫동안 삼성이 한국 사회에 그랬던 것처럼, 쿠팡이 2020년대 한국 사회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하나의 준거점이 될 거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예언처럼 그 말은 점점 더 현실이 되고 있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예견하지 않았던 ‘변수’가 사태를 위험하지만 흥미로운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 같은 ‘미국 기업’ 쿠팡은 오만하고 비정했다. 하지만 그 냉혹함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검은 머리 외국인 ‘오너’ 김범석은 마치 영혼을 담보로 내주고 사업하는 것 같았다. “그(시간제 노동자)가 왜 열심히 하겠어?” 쿠팡 택배노동자(故 정슬기)가 쓰러진 그 다음 날, 김범석(쿠팡Inc 의장)이 한 말이다.

김범석은 “그(故 정슬기)가 열심히 일한다는 메모가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해. 물 마시기, 잡담, 서성거림, 짐 없이 이동하기, 화장실…”라고 꼼꼼하게 대책을 지시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사람들은 잘 몰랐다. 김병기 보좌관이 재취업했던 쿠팡은 국회뿐만 아니라 법조계와 언론계 출신을 점점 더 공격적으로 ‘대관팀’에 영입했고, 그들은 ‘오너’의 지시에 충실했다.

“그(고 정슬기)가 왜 열심히 일 하겠어? 말이 안 되지!!! 그들은 시간제 근로자들이야! 성과급이 아니라 시간당 급여라고!”(김범석 쿠팡 의장)

하지만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있자 쿠팡의 방어막이 엉성하게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김병기와 점심 먹고 쿠팡에 취업한 보좌관들을 쫓아낸 박태준을 대신해 해럴드 로저스를 쿠팡 한국법인 대표로 교체한 건 상징적이라고 이상헌은 지적했다. 로저스 씨는 국회에 불려와서도 책상을 두드리며 “이제 그만하자”고 한국 국민의 대표들을 무시했다.

쿠팡이 주는 편익에 중독됐던 사람들은 그 달콤함에서 아주 ‘불쾌하게’ 깨어나고 있다. 그 불쾌함은 미국의 정치인들이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마라”고 한국 정부를 향해 훈계할 때 더 깊어진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건 다윗의 작은 돌멩이였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우리가 미국 기업 쿠팡에서 느끼는 그 불쾌함, 그 어떤 복잡한 감정이 쿠팡이라는 거대한 골리앗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는 돌멩이일 수도 있다.

쿠팡은 확실히 2026년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준거점’ 가운데 하나다. 그밖에 2026년, 한국을 통과하고 살아내야 할 우리가 가끔 떠올리면 좋을 만한 ‘또 다른 준거점(들)’에 관해 이상헌에게 물었다.

💡 차기 연준 의장 케빈 워시와 ‘쿠팡’과의 만남

그리고 인터뷰 정리가 늦어지면서, 트럼프가 지명한 차기 연준 의장이 ‘쿠팡 사외이사’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야말로 연준 이사가 왜 쿠팡에서 나와! 라고 놀랄 만한 소식이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가 쿠팡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케빈 워시를 신임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에 지명했다. 모건스탠리 출신의 케빈 워시는 2006~2011년 연준 이사를 지낸 적 있다. 트럼프 1기 때 재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트럼프가 “위대한 연준 의장이 될 것”이라고 치켜세운 건 자신의 지시에 따라 금리를 인하할 거로 기대한다는 의미다. 상원 인준을 받아야 한다. 쿠팡 주식을 130억 원어치 보유하고 있는데 임명 전에 처분해야 한다. (🔖 슬로우레터 2026년 2월2일 자, ‘쿠팡 이사가 연준 이사로’에서 참조)

쿠팡 사외이사 케빈 워시를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트럼프. 백악관 인스타그램 갈무리. 케빈 워시 후보자의 아내 제인 로더(53)의 재산은 27억 달러(약 3조9천억 원)에 달한다.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54]

질문 정리: 민노
답변: 이상헌

1. 쿠팡,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을 건드리다

나는 그동안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서 규제가 힘들다는 측면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오히려 현재 상황에서는 소비자(한국 국민)에게는 그 점이 오히려 약점으로(소비자의 저항, 비판적 관점) 작동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마불사’라는 이상한 논리(?)

어떤 문제가 터지면,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그 시간은 그 사람이 선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가령 삼성 문제가 터졌다고 치자.

  1. 기업
  2. 노동자
  3. 일반 소비자
  4. 주주
  5. 언론
  6. 정부
  7. 시민단체
  8. 기타 등등

이렇게 하나의 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개별 당사자(1~8)는 어떤 문제를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바라보기 어렵다. 언론도 어떤 언론사는 기업 편을 들고, 어떤 언론사는 노조 입장을 살핀다. 그런데 그런 개별적인 당사자들의 입장을 압도하는 논리는 ‘대마불사’와 같은 논리다. 앞서 가정한 ‘삼성’ 문제라면, ‘삼성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와 같은 논리다. 그 논리(?) 아닌 논리 아래 노사 분쟁에서는 이미 노조는 삼성이라는 좋은 직장에서 돈도 많이 벌면서 왜 그렇게 욕심이 많은가와 같은 하위의 세부 논리(?)가 파생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그 기준점은 삼성이었다. 이제 한국 사회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그 기준으로 세워야 할 기업은 쿠팡일지도 모른다고 이상헌은 말한다.

쿠팡이라는 ‘새로운 차원’

그런데 쿠팡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다.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운영에 관한 문제다. 이전에는 한국 사회가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문제다. 카카오 문제도 이런 차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새로운 현상이라서 모두들 ‘자기’를 중심으로 문제를 좀 협소하게 바라볼 여지가 크다. 새로운 현상이고, 낯선 현상이라서 기업도 정부도 소비자도 그 모든 당사자가 서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우왕좌왕하기 쉽다.

한편으로는 쿠팡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그래서 3천만 명이 넘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촉발된 ‘쿠팡 사태’는 그런 플랫폼 기업의 독점적 운영을 한국 사회가 어떻게 제어하고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는 과도기적 현상일 수 있다. ‘디지털 졸부’ 쿠팡은 지금까지 자신의 주변 세력을 규합해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정치∙경제 안전망(‘대관팀’)을 구축했다. 이는 특히 미국 ‘로비스트’에서 배운 것으로 보인다.

‘국가를 포획(캡처)한다’는 말이 있는데, 김범석의 오만한 태도와 그가 내세운 미국인 대표가 국회에서 보여준 태도(“이제 그만합시다”)로 드러나는 쿠팡의 ‘자신감’도 그런 준비의 비대칭성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즉, 쿠팡은 미리 준비했고, 오히려 쿠팡 외부 세계가 제대로 쿠팡 방식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던 측면이 있다.

물론 채널A와 같은 친기업 언론이 ‘김범석은 누구인가’와 같은 시청자(일반 시민, 소비자, 국민)의 감정에 부합하는 보도를 하기도 한다. 언론도 장사를 해야 하니까 때려야 할 때가 되면 열심히 때리지만, 그 안에서 ‘탈출구’를 마련한다. 가령 김범석 개인을 때리면서 쿠팡 전체의 ‘출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 그래서 보수 언론의 그런 단편적 보도는 놀랍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다른 측면에서 쿠팡은 큰 위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 쿠팡의 어설픈 자기 노출

쿠팡의 판단 착오로 보이는 건 자신의 독점력에 관한 자만이다. 역사를 통해 보면, 독점 기업이 이런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포드나 GM 같은 거대 기업은 독점기업으로서의 자만과 판단 착오에서 다른 경쟁자들에게 주도권을 잃었다. 그러니까 어떤 독점(적) 기업이 순수하게 제품과 서비스 문제로 독점력을 상실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쿠팡 청문회를 봤는데, 예상했던 것도 있고, 놀랐던 점도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시장, 경쟁, 혁신의 ‘허구성’이다. 그 ‘구호’가 얼마나 쉽게 사람들을 오도할 수 있는지 느꼈다. 쿠팡은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고, 반경쟁적인 행태를 보여줬다(물론 경쟁사인 네이버쇼핑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판례 비평 참고. 편집자). 하지만 ‘이렇게까지 될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미 쿠팡은 여러 가지 규제와 관련된 ‘우회로’를 미리 마련했다.

가령 미국에서 상장해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방식이 그 대표적이다. 이렇게 국민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큰 문제’가 생기면 삼성과 비교하게 되는데, 어떤 문제가 생기든 삼성은 ‘국내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쿠팡은 ‘국외’로 본체를 우회해서 상당한 문제를 회피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게 자신의 본체는 미국이라는 외국에 숨기고, 한국에서는 ‘대리전’을 하는 기업을 우리는 처음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예상하지 못한 게 있다. 쿠팡은 자신의 본체를 드러내지 않고 배후에서 해결하려는, 가령 ‘대관팀’을 통한 로비 행태를 보여줬다. 하지만 ‘국회 청문회’로까지 확산한 이런 큰 사태에서는 자신의 ‘본색’을 ‘처음’ 드러낼 수밖에 없었고, ‘대한민국’을 상대로 너무 어설프게 자신을 드러냈다.

그동안 쿠팡은 항상 문제를 ‘배후’와 ‘대관’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난 쿠팡이 아주 세련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가정했다. 그런데 쿠팡이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드러낸 방식은 반사회적이고, 반대중적인 방식이다. 쿠팡 오너인 ‘검은 머리 외국인’ 김범석과 쿠팡 한국 법인 대표인 미국인 해럴드 로저스 모두 한국민의 정서적 반감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한국인의 민족 정서, 거대한 ‘돌출 변수’

두 번째로 큰 변수는 대한민국의 ‘민족 정서’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나는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서 대외적으로 정부의 규제를 상대하는 데 오히려 장점이 있다고 이야기해 왔다. 그런데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쿠팡이 스스로 자신이 미국 기업이라는 점을 명확히 드러내면서 사람들은 정말 ‘쿠팡은 미국 기업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시장)은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인 경향을 가진다. 글로벌 대기업이 한국을 장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국인들은 뭔가 로컬한 기업을 지키려는 정서를 강하게 품는다. 이번 사태가 그런 외국 기업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잠재적인 거부감이랄까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한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 기업’ 쿠팡의 오만한 행태는 장기적으로 아주 큰 패착이다.

쿠팡을 둘러싼 다양한 당사자 문제에 민족주의적 정서라는 ‘변수’까지 깔려서, 쿠팡에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온 정부가 총동원한다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소비자 정서에 더해 국민 정서까지 건드린 걸 수도 있다. 현재 쿠팡에 대한 소비자 운동은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이나 경제적 유익의 문제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윤리적 소비라는 사회적 움직임에 ‘국민 정서’까지 깔린 상황이다. 그러면 경제적 합리성과 윤리적 소비의 문제를 능가하는 ‘국민 정서’가 생길 수도 있다. 가령 민노씨가 ‘맨유’ 사례를 언급한 것처럼, 그와는 반대로, 반(反)쿠팡 정서가 광범위한 동의를 얻을 수도 있다.

‘제한맨’ 전설의 시작. “‘제발 한국이라면 맨유좀응원합시다..”

‘제발 한국인이라면 쿠팡 쓰지 맙시다’

독점의 구심력 vs. 국민 정서라는 원심력

독점이 무서운 게 순간적인 원심력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구심력을 작동시키는 점이다. 국민 정서라는 원심력이라는 건 아주 큰 원심력이다. 가령 앞서 있었던 노동 문제가 쿠팡에서 또 발생한다면, 앞서 해왔던 ‘로비’와 ‘대관’ 방식으로 기존의 문제를 무마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어렵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

청문회를 보면서 아쉬운 것은 소비자라는 당사자, 노동자라는 당사자 문제는 잘 드러났는데, 부분적으로 ‘쿠팡 납품업체’라는 당사자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 문제를 열심히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납품업체가 좀 더 드러나야 문제 해결의 방식을 좀 더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소비자, 납품업체, 노동자 등의 다양한 당사자성을 한방에 묶어 낼 수 있는 게 ‘민족 정서’ 혹은 ‘국민 정서’다. 기존에는 소비자, 납품업체, 노동자가 서로 갈등적 이해관계를 가지는데, ‘오만한 미국 기업’ 쿠팡에 대한 ‘민족 정서’가 오히려 이번 사태의 해법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이들 삼자의 ‘죄수의 딜레마’의 단점을 민족 정서가 오히려 묶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예전에 걱정했던 ‘조율’의 문제는, 물론 쉽지는 않지만, 청문회를 보면서 쿠팡을 둘러싼 당사자 문제를 쿠팡이라는 ‘미국 기업’에 대한 반대 정서, 즉 민족 정서가 묶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 정서는 구체성을 띠거나 체계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쿠팡을 ‘(적대적) 상대방’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정서적인 연결 고리, 연대감이 생겼달까. 쿠팡이 국가를 포획(캡처)하는 방식의 경제정치적 진화를 민족 정서가 막고 있지 않나 생각도 든다. 쿠팡은 미국 주가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터프’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쿠팡의 합리적 반응(= ‘터프한 행동’)이라는 게 한국에 와서는 그런 미국식 자본주의적 행태에 대한 정서적 반대 연대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기는 하다.

‘해럴드 로저스’ 미국적 해결 방식…어쩌면 최악의 악수

그런 면에서는 미국과 한국을 모두 만족시키는 방식은 아주 어려워졌다. 이런 모순이 극대화한 상징적 이벤트가 김범석이 한국 대표를 해임하고, 미국인(해럴드 로저스)을 쿠팡 한국법인 대표로 대신한 것에서 드러난다. 미국 주식을 보호하려는 책무에 100% 집중할 수 있는 미국인을 임명한 것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귀결이다.

한국적 정서와 한국적 방식에 흔들리지 않는 미국적 방식을 관철하려고 한 것이 로저스 미국인 대표를 통해 표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미국식 자본주의의 합리성이 오히려 한국의 민족적 정서를 건드렸다. 그 점이 이 쿠팡 사태의 아이러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가장 합리적인 방식, 아주 좋은 전략이 오히려 한국에서는 가장 큰 악수가 되었을 수도 있는 거다.

쿠팡 청문회에서 해럴드 로저스(쿠팡 한국법인 대표)에게 질의하는 이용우(민주당 의원).

경향신문이 발표한 ‘58% 쿠팡 영업정지 찬성’에 관해 말하면 이 수치는 아주 높은 수치다. 쿠팡 없이도 살 수 있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소비자 당사자로서의 경제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다고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 사회적인 정의 관념도 있지만, 민족주의적 정서(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를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쿠팡이라는 오만한 미국 기업에 대한 반감. 그런 부정적 정서가 ‘영업정지 58% 찬성’이라는 여론조사의 이면에 깔려 있다. 한마디로 미국 기업 쿠팡이 건드리면 안 되는 한국인의 감정적인 선을 건드린 측면이 있다.

앞으로 쿠팡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건, 야간 노동의 문제나 독점의 문제를 다른 오프라인 대형 유통업체에’도’ 새백배송이나 일요일 휴무 규제를 풀자는 목소리로 표출되는 거다. 즉, 쿠팡 사태의 또 다른 당사자 ‘경쟁 업체’의 문제인데, 민노씨가 말한 한국 유통업체의 역차별에 관한 경제 기사가 이미 나오고 있다면(가령, ‘이마트 규제해서 쿠팡을 키웠다’) 그런 프레이밍은 가장 우려되는 목소리다. 그런 논의는 야간 노동 규제나 독점 기업의 규제를 시대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시계를 되돌리자는 것에 불과하다. 사회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시대에 역행한다.

2. 일자리

취업으로 미래 설계? 주류가 아니라고 본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이런 말할 때가 있었지만 미래 사회는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을 수 있다. 기자들도 인공지능으로 많이 쓰나? 외과 수술도 로봇이 할 거라고 한다. 교사도 상당 부분 대체될 수 있다. (중략) 취업 중심 사회보다 창업 중심 사회로 가야 한다. (후략)

이재명(대통령), 2026 신년 기자회견 중에서(이정환 갈무리)

쿠팡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일자리를 이야기할 차례다. 그만큼 중요하다. 일자리는 만들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늘 역사는 새롭게 일자리를 만들어왔다. 일자리 숙명론을 극복하면 좋겠다. AI 기술 숙명론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지 더 연구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민간 부분은 투자 관점에서 어떻게 고용 친화적으로 투자할 것인지, 공공 분야에서는 ‘질 좋은 일자리’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도 국가 단위에서 반도체에 투자하고 AI에 투자할 때 ‘좋은 일자리’라는 조건을 걸고 투자해야 한다. 공공 분야 일자리를 만들 때도 노인이나 청년에 대한 시혜적 일자리가 아니라 일자리 영역에서 그 분야를 세분화하고, 양과 질 모두를 고민하면서 접근해야 한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공공 분야에서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지와 가능성이 크다. 양도 중요하지만, 질도 중요하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건 청년 일자리다. 좋은 일자리를 한두 개라고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적 숙명론을 경계해야 한다. 강조하고 싶은 건, 역사적으로도 그런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는 기술적 숙명론은 계속 틀렸다는 거다. 특히 환경 분야 인프라 투자에 가능성이 큰데, 거기 청년 일자리를 중심 문제로 삼아 조율하면 좋겠다.

다시 정리하면, 민간 분야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민간 분야에도 정부가 세금으로 투자하곤 한다. 그럴 때는 민간 지원 조건으로 ‘일자리’를 공격적인 조건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청년 일자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는데, 하나는 인프라 투자에 좋은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두 번째는 지역적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 지역에 머물면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하고, 특히 환경 분야에서 그런 일자리를 마련할 여지가 클 것으로 본다.

공공사업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일자리를 단기 프로젝트로만 하기보다는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좀 더 좋은 세분화한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교사가 줄어들 수 있고, 교사의 업무를 AI가 대체할 수 있다고 말씀했는데, 학생이 물리적으로 학교에 머무르는 동안에 얼마나 활동적이고 창의적으로 교육할 수 있을까 새로운 질문, 새로운 교사의 역할, 기능을 고려하면 교사 일자리는 오히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칠판에 정보를 적고 그걸 학생에게 주입하는 기존 교사 역할은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AI에 의해 대체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에게 창조적인 경험, 인간적인 경험, 사회적인 경험을 다양하게 전해주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의 본질적인 역할을 AI가 대체하는 것은 현재로도 미래에도 불가능하다.

좋은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주지 않으면, 노동 시장의 질은 하향평준화하고, 그 경향성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법으로 지킬 수 없는 ‘불안정 일자리’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면, 노동법을 아무리 개정해도 그런 ‘불안정 일자리’의 폐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정책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노동 시장의 질이 상향평준화하고, 그런 긍정적인 경향성이 강화한다. 그런 점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가 특히 더 중요하다.

3. 산업재해

현장 목소리가 전달돼 정책적인 구체성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노동감독관이 늘고, 제도적인 정비는 잘 마련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여전히 현장 목소리, 특히 5인 이하, 이주노동자가 많은 현장에서는 여전히 취약점이 있다. 기업 단위나 크러스트 단위로 이런 소외된 현장 노동자를 도울 수 있는 구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결국 관건은 현장의 힘이다. 현장에서 액션과 조짐이 보여야 한다. 동력이 필요하다. 사전적인 예방으로 나아가려면 현장의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가 직접 스스로 위험을 감지하고 일을 그만할 수 있는 능력, 권한이 필요하다. 일이 생기고, 사고가 생기고 나서 사후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는 현재의 모순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4. 카톡금지법, 실효 거두기 어려울 수도 있는 이유

카톡 방지법, 하면 좋겠지(웃음). 그런데 한국에서 카톡을 쓴다는 말은 ‘전화한다’, ‘연락한다’, 이런 말과 같다. 카톡은 숨 쉬는 모든 일상적인 활동에서 쓰인다. 그러니까 ‘업무에 한정’해서 카톡을 쓰는 게 아니다. 그러니 카톡을 ‘업무’라는 관점에서 금지한다고 할 때, 그 업무를 사적인 영역과 엄밀하게 구별하기 쉽지 않다.

스위스에서는 그 구별이 아주 쉽다. 사적으로 카톡 같은 메신저로 연락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한국은 모든 사람이 카톡을 쓰고 있어서 그 구별이 어렵다. 외국에서는 메신저 서비스를 다양하게 쓰는데, 일과 관련해서 쓰는 일은 드물다. 일과 관련해서는 의식적으로 덜 쓰는 편이다. 그래서 좀 구별이 된다. 이런 사적 영역과 업무 영역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지가 선결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5. 일하는 사람법

근로기준법은 하나의 틀이라서 그 틀에 들어가면 보호를 받는 구조인데, 일하는 사람법(‘일법’)은 분쟁이 생기고, 재판에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실효성이 있다. 근로기준법처럼 왜 나를 보호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데, 일법은 어떤 분쟁이 구체화횄을 때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구체적인 입장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취지는 좋은데, 아직은 판단하기 쉽지 않다.

프리랜서, 개인사업자로 파편화된 플랫폼 노동을 제도 안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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