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인터뷰 27.] 이상헌(ILO 고용정책국장)이 말하는 노동과 인간. ‘최저임금 1만 원 시대’에도 빈사에 빠진 최저임금을 말하는 이유.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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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27]
빈사에 빠진 최저임금:
세 가지 징후
질문, 정리: 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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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스위스 시각 기준 2024년 7월 26일 오전에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맥락화하거나 소제목으로 표시하고, 이상헌 박사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편집자).
세 가지 징후
- 최저임금 받는 쪽에서는 최저임금이 실질 물가상승률이나 임금상승률보다도 낮다면서 불평이고, 주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고용시간을 줄인다고 하소연한다. (최저임금 받는 알바생 저임금 노동자)
- 최저임금 주는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안 논의가 적용되지 못하고 무산된 걸 아쉬워하면서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그걸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바로바로 반영할 수 없어서 힘들어한다. (최저임금 주는 영세 자영업자, 주로 편의점 음식점 사장)
두 을의 서로 다른 입장은 ‘최저임금 1만 원 시대’의 의미를 돌아보는 첫 질문으로 적당한 것 같다. 2025 최저임금은 징후적이다. 세 가지 징후가 있다. 그리고 그 징후가 가리키는 ‘질병’은 현 최저임금 시스템의 종말이다.
1.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상승률
첫 번째, 2025년 적용 최저임금을 놓고 보면, 결정액과 인상률(1만30원, 1.7%)이 물가상승률(2.6% 전망치)보다 낮다. 물가상승률뿐만 아니라 평균 임금인상률(평균 5.7%, 2024년 잡코리아 조사)보다 낮다.
최저임금 목적은 구매력을 확보해 주자는 거다. 너무 바닥이 낮아지면 안 되니까 그 바닥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거다. 그렇게 최소한 먹고는 살게 해주자는 게 최저임금 제도다. 그런데 물가상승률보다 낮다? 임금인상률보다 낮다? 그런데 올해만 그런 게 아니다. 작년에도 마찬가지(2024 최저임금 인상률은 2.5%, 2023 물가상승률은 3.5%)였다. 이런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최저임금은 위험한 단계다.
중위소득(1인 가구)을 다시 밑도는 최저임금
다들 잘 기억할 거다. 최저임금이 2018년에 한 번 ‘점프’한 적 있다. 그때 꽤 화제가 됐다. 하지만 지금 실제로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대다수 사람은 별 관심이 없다.
2~3년 전부터 중위소득으로 접근해 가다가 다시 밑돈다. 아래 그래프가 그걸 잘 보여준다. 2018~2021년에는 일시적으로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을 최저임금이 넘어선 적도 있다(월급 환산 비교). 하지만 다시 간극이 벌어졌다. 이 경향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201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중위소득과의 간극이 너무 커서 그걸 줄여야 한다고 했던 2010년대 초반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것 역시 상징적인 징후다.
2. 제도적 위기: 공익위원의 당사자화
두 번째, 제도적 위기다. 노-사가 합의를 못하는 것은 별론으로, 공익위원 역할이 너무 커졌다. 노사 이야기를 듣고,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노사 갈등을 제어하고 노사의 시너지를 높이는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점점 스스로 협상당사자가 되어 간다.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점점 더 공익위원의 당사자성이 강해지고 있다.
가령, 공익위원들이 사용한 ‘계산식’이 있다. 이 산식을 기준으로 삼는데, 이게 이제는 공정한 산식이라기보다는 ‘최저임금 최저치’의 근거가 됐고, 또 산식 자체도 일관성이 없다. 그렇게 일관성 없는 산식을 이용해서 언론까지 이용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산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익위원이 협상과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주체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 이유로 최저임금 논의가 더 힘들어진다. 즉,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 수준을 어느 특정 수준으로 컨트롤하기 위해서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해야 한다든지 하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전반적으로 최저임금 제도상으로는 “하방 압박”(임금의 하방 경직성: 명목 임금 하락을 완강히 거부하는 경향)이 제도 운용상에 굳어진 경향이다.
기본적으로 공익위원은 정부에 의해 임명이 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구성 자체가 정부 쪽 생각으로 조정된 측면이 있다. 구성상 그럴 수밖에 없다. 정부 관심사와 공감대가 있는 분들을 임명한다. 공익위원 임명 과정 자체에 좀 문제가 있다 본다. 현행 방식은 그렇게 좋은 방식 같지 않다. 좀 더 진보적인 정부가 들어오면 노동계에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부 부침에 따라 변한다는 것도 노동자에게는 좋은 방식은 아니다.
‘공익’ 위원이라는 말에 실마리가 있다. 그 공익성을 확보하려면, 현 방식은 좋지 않다.
3. 프레임은 다시 을의 갈등, 나머진 소비자화 구경꾼화
세 번째. 앞선 두 가지 영향으로 최저임금 논의를 바라보는 방식도 문제다. 최저임금은 노동시장 바닥에 있는 사람이 먹고 살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저소득층 노동자의 삶을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최저임금 수준만 논의해서는 답이 없다. 물가상승률 같은 다른 영역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하는 소상공인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소상공인도 함께 보호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관련 경제 영역을 두루두루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최저임금은 그런 다양한 환경과 ‘함께 세트’로 정책적 접근과 보완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논의하나. 자영업자와 알바를 서로 대립하는 틀 속에 가둬버렸다. 자영업자가 어려운 건 다 안다. 그런데 자영업자가 어려운 게 최저임금 때문인 것으로 다시 또 프레이밍한다. 자영업자 문제는 다른 경제적 환경 요인, 경제 정책적 원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건 너무 상식적이지 않나.
그런데 스스로 책임의 일부인 정책 입안자들, 정부가 그걸 모른 척한다. 아니 모른척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저임금을 범인으로 내세운다. 그러면서 정작 책임자인 자신은 쏙 빠진다. 그러면 자기는 얼마나 편한가? 정부와의 관계, 대기업과의 관계, 소비자와의 관계… 최저임금을 둘러싼 이 모든 관계망은 다 중요한 데 정부와 대기업 등은 이 관계망에서 빠진다.
결국 최저임금은 자영업자와 직원들 간의 문제, 자영업자와 소비자와의 문제, 결국 ‘을들의 문제’로 환원해 버린다. 그런 징후가 확실하게 드러난 게 올해 2025년 최저임금 논의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최저임금이 실질적으로 별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운영한다면, 최저임금 자체를 빈사 상태로 빠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최저임금은 ‘플로어’다
세 가지 차원에서 징후적 위기다. 그렇다면 그 위기를 해결할 사회적 동력이 있는가?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제가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 그 대상에서 빠진 경우가 많다. 지금 최저임금 논의의 과제는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화한다는 그런 게 아니라 최저임금의 보호 대상에서마저 ‘탈락’한 사람들을 최저임금의 보호망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거다.
최저임금을 ‘플로어'(floor; 바닥, 마루)라고 한다. 말 그대로 바닥(하한선)이라는 거다. 최저임금은 그 하한선을 마련하는 거다. 거기에 구멍이 나면? 그건 이미 ‘바닥(밑바탕)’이 아니다.
1) 누군가의 지렛대
대기업은 최저임금을 지렛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이런 식이다. ‘최저임금도 저렇게 적게 올랐는데 월급을 이렇게 올리겠다고?’ 한국 사회에서 갑이라는 사람들은 최저임금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걸 싫어하지는 않을 거다.
2) 노동 상층부는 소비자화한다
그리고 노동시장 상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최저임금은 별로 진지한 관심 대상이 아닐 거다. 그러니까 노동시장 상층부 대다수는 최저임금 논의를 그저 음식값 걱정, 커피값 걱정하는 정도의 소비자 관점에서 볼 가능성이 아주 크다.
3) 정책 책임자의 푸닥거리
정책 입안하고 만드는 쪽에선 어떨까. 자신들의 온갖 어려움을 최저임금으로 털어 넣는 손쉬운 방식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논의가 아주 어렵다고 말하지만, 그런 모든 현상 자체가 의례적으로 현상적으로 비추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징후적이라고 말하는 거다. 일종의 푸닥거리 같은 모양새랄까.
4) 무력한 노동계
노동계도 무력해 보인다. 뭔가 이런 변화 과정에서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은 인상을 받았다. 한편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너무 짧은 기간에 너무 올렸다는 지적은 너무 오래전 이야기로, 현재 진행 중인 최저임금 논의와는 아예 접점이 없다.
쪼개기 알바와 주휴수당의 문제
주휴수당은 좀 이야기해 볼 여지가 있는데, 주의해야 할 전제가 있다. 실질 임금을 줄이면서 노동정책이 바뀌는 경우는 역사상 ‘거의’ 없다. 즉 실질 임금을 줄이는 방식이 되어선 안 된다. 이게 핵심 전제다.
그러니까 주휴수당을 없애면서 현재 실질적인 임금을 유지하는 방식을 논의해야 할 필요는 있을 수 있다. 즉 주휴수당에 따른 임금 손실분을 어떻게 보전할지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 전제는 앞서도 강조했지만, 현재의 실질 임금을 줄여선 안 된다는 거다. 알바생들이 현재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주휴수당을 없앨 수 있을까. 그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쪼개기 알바도 한국의 논의 프레임이 문제다. 이상한 논법인데, 이런 식이다.
- 자영업자가 몹시 힘들고 어렵다.
- 그 해법은 주휴수당 주지 않는 쪼개기 알바다!
이런 식 해법이 더 큰 문제인 건 이 해법이 현실에서도 실천 가능하고, 또 일정한 해결책처럼 보이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 해법은 현실에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해법이다. 여기에서 인식의 혼동이 생긴다.
- 아, 주휴수당 때문에 자영업자가 어렵구나!
-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가 어렵구나!
결국 이런 식으로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주휴수당의 문제로, 최저임금의 문제로 왜곡하고 전가한다. 논리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것인데 결국 언론이나 정책 책임자도 ‘쪼개기 알바 못 해서 자영업자가 어렵구나!’ 이렇게 몰고 간다. 자영업 자체의 문제, 자영업자가 어려운 근본적 원인과 구조적 환경은 도외시하고 현상을 본질인 것처럼 호도한다. 영세 자영업자 개인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자기 상황이 어려우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언론이 정책 책임자가 그런 프레임을 악용하는 거다. 무책임의 극단이다.
자영업자? 정책 패키지와 업그레이드 필요하다!
우선 정책적 해법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그래서 준비해야 한다. 우선 최저임금 수준에 따라서 자영업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시뮬레이션하고, 다각도에서 지원책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저임금만 가지고는 해결이 어렵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여러 영역을 다각도에서 살펴야 한다. 기재부든 어디든 함께 ‘패키지’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걸 정말 안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영업자는 최저임금만 가지고 원흉으로 삼는다.
대통령의 자영업자 지원 발언을 예로 삼아서 설명해 보자. 그냥 단순히 자영업자만 지원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 자영업자 지원을 최저임금과 관계 속에서 포괄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준수하면서 다른 지원책을 함께 패키지로 다뤄야 한다. 자영업자의 수익성,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논의를 좀 더 ‘업그레이드’해서 진행해야 한다. 참고로 자영업자의 비중은 IMF 이후 22년 연속으로 줄고 있긴 하다. 그런데도 20%가 넘는다(2022년 기준 23.5%, OECD 7위).
콜롬비아 53.1 (2021)
멕시코 31.8
그리스 30.3
튀르키예 30.2 (2020)
코스타리카 26.5
칠레 24.8 2021
한국 23.5
이탈리아 21.5
폴란드 19.9
뉴질랜드 19.4
스위스 16.1
체코 16.0
네덜란드 15.8 (2021)
스페인 15.3
포르투갈 15.2
벨기에 15.1
아일랜드 14.0
슬로베니아 14.0
핀란드 13.9
라트비아 13.4
프랑스 13.1
이스라엘 12.8
헝가리 12.7
오스트리아 12.2
리투아니아 12.2
룩셈부르크 10.6
스웨덴 10.5
일본 9.6
호주 9.0
독일 8.7
덴마크 8.6
캐나다 7.2
미국 6.6 (2021)
노르웨이 4.7 (2021)
그런데 지금도 높다. 한계적인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 그런데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자영업자를 하는 거다. 계속 서로 관련성이 있다. 자영업자가 망하면 최저임금 노동을 한다. 결국 이 둘을 서로 대립시키는 논의야말로 가장 악질적이고 비극적이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수많은 개인을 결합해서 어떤 정책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저임금제, 그 본질은 ‘사회적 책임’
최저임금을 제대로 바꿔야 한다. 최저임금이라는 건 그 자체로 협상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하층부 노동자를 돕기 위한 비시장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개입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 제도 자체는 최저임금 당사자의 협상력을 기초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장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그 낮은 하층 노동자의 협상력을 보완하는 제도다. 그래서 그 제도적 기초를 제대로 쌓아 놓는 게 중요하다. 다른 논의는 모르겠지만, 법적∙제도적∙정책적 기초를 제대로 쌓아야 한다. 그건 ‘사회적인 책임’이다.
기본적으로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사회적 이해관계가 복잡한 시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책임 있는 정부와 국회가 쏙 빠져 있는 모양새다. 경총은 최대 협상 무기로 ‘자영업자’를 활용하고, 노조가 들어와 서로 싸우게 만들어 놨다. 정부는 공익위원 뒤에 숨어 있다. 보수든 진보든 최근 몇 년 사이에 진행된 방식은 제도 자체의 결함과 구조적 위기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실마리는 국회에 있다
정부가 저 모양 저 꼴이라 그러면 민주당에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에 보니 민주당에도 최저임금이 그렇게 주요 관심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말도 많이 하고 정치화하기도 했지만 그걸 제도화하는 데에는 좀 소홀했다고 하면, 지금은 아예 언급도 않는 것 같다. 물론 그러는 건 이해가 된다. 을의 갈등 구조에서 표 떨어지기 딱 좋은 게 최저임금 논의일 수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제도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좀 더 공익적인 전문가 그룹을 기본 설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노사정 논의 방식도 새롭게 세팅해야 한다. 지금은 징후적 위기가 가시화한 상태다. 그래도 해법, 그 실마리는 국회에 있다. 어떤 정부가 오든 최저임금을 체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최저임금의 비정치화가 필요하다
온전하게 최저임금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를 논의해야 한다. 필요한 조치는 자영업자든 누구든 함께 끌어올 수 있는 논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걸 할 수 있는 건 현재로선 국회뿐이다. 그걸 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