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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온 편지: 최저임금과 스웨터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보통 스웨터(sweater)라 하면, 추위를 막기 위해 입는 두꺼운 옷을 말한다.

스웨터 ‘몸에서 땀을 짜내는 옷’ 

하지만 영어로 엄밀히 직역하자면, 몸에서 땀을 짜내는 옷이다. 말을 훈련할 땀을 빼기 위해서 담요를 덮은 데서 유래했다 한다.

이후 육상 선수들이 체중 조절을 위해 땀을 뺄 때 이 원리를 이용하여 두터운 재킷을 입기 시작하면서 스웨터가 더러 알려지게 되었는데, 대중적인 명성을 누리지는 못했다.

스웨터의 대중화는 양털 스웨터 디자인이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섬유산업의 성장 덕분이었다.

인간 스웨터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는 사람’ 

이런 스웨터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스웨터가 있었다. 옷이 아니라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땀을 짜내기는 매한가지였다. 인간 스웨터는 소매상이나 도매상으로부터 옷 주문을 받아서, 이를 노동자들에게 다시 하청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한 공장에 노동자들을 모아두고 생산하는 것보다, 노동자 각각의 집에서 일하게 하는 것을 선호했다 한다. 노동자들이 모여 일하다 보면 집단적인 힘을 키울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분산되어서 생산하면 통제하기가 용이하다고 믿었다. 은근히 경쟁을 부추기면서 단가를 낮추기도 좋았다.

그 결과, 이런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을 받았다. 짜낼 수 있는 만큼 짜내는 것이, 인간 스웨터의 역할이었다. 인간 스웨터가 짜낸 노동자의 땀이 스웨터 옷을 대중화한데 큰 몫을 한 셈이다.

최저임금 효시: 19세기 말 호주 중산층 시민운동 

인간 스웨터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참담한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었다. 19세기 말부터 대중적 운동이 시작되었다.

흥미롭게도 그 일을 시작한 이들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중산층이었다. 그것도 산업혁명의 원조인 영국이 아니라 호주 멜버른에서다. 대중적 단체(National Anti-Sweating League)가 만들어졌고 오랜 정치적 캠페인을 벌였다.

그들이 대안으로 내세워 결국 얻어낸 것이 최저임금 법안이다.

1906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발간된 법정최저임금에 관한 보고서

1906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발간된 법정최저임금에 관한 보고서

이들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생존할 수 있는 임금을 보장하도록 한 법안이었다. 노동시간 규제 법안도 뒤따랐다. 최저임금법은 곧이어 뉴질랜드와 미국, 영국 등으로 ‘역수출’되었고, 1928년에는 드디어 최저임금에 관한 국제협약이 채택되었다.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이 감소한다?

최소한 노동착취는 없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요구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최저임금은 자본주의의 도덕적 안전장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제도의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순탄치는 않았다. 오히려 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논쟁의 핵심에는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이 감소한다는 경제학적 주장이 자리하고 있다. 최저임금 도입으로 임금을 올려야 하는 고용주 입장에서는 생산비 유지를 위해 고용을 줄이려 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 논리적 단순성 때문에 이런 주장이 쉽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대학 시절 경제학개론 강좌를 들은 적 있는 이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주장이기도 하다. 저임금 노동자를 돕겠다는 최저임금이 그들에게 실업이라는 칼날로 돌아간다는 것. 그래서 최저임금의 도덕적 근거는 숭고하지만, 결국은 자충수라는 얘기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경제학자들의 치열한 논쟁
논쟁은 감정적인 공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미국에서 논란이 많았다

 

과연 최저임금 때문에 고용이 감소한다는 이론적 주장에는 근거가 있는가?

내가 지난 수십 년간의 실증연구를 검토해 본 결과, 최저임금이 고용을 줄인다는 주장의 실증적 근거는 약했다 (ILO, Global Wage Report,  2010). 이와 같은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어디서 왔을까? 다양한 이유가 제시되었다.

최저임금 제도는 생산성과 고용을 높인다! 

우선, 최저임금을 통한 임금 인상은 노동자에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어 노동생산성을 향상하게 할 수 있다. 임금이 오른 만큼 생산성이 증가하니, 기업 입장에서는 그리 손해 볼 것도 없고, 따라서 일자리를 줄일 이유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에 만족하게 되면 이들의 직장 이동 빈도가 줄어들 수 있다. 보통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저임금 업체들은 노동자들의 작은 일자리 이동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기업은 노동자들의 기술이나 숙련을 높이는 훈련투자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낮은 임금과 낮은 노동생산성 간의 악순환의 고리가 정착되곤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 덕분에 노동자 이동 빈도가 줄어들면, 기업 입장에서는 훈련투자를 더 할 유인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훈련투자를 통한 숙련 및 기술 향상, 그리고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기업이 최저임금 도입에 대응해 고용을 줄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효과가 커지면서 일자리를 늘릴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일부 실증연구들은 최저임금의 고용 증대 효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알란 매닝, ‘최저임금은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효과’ 

하지만 최저임금이 오히려 생산성과 고용을 높인다는 주장도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사용자와 견줄만한 협상력이 있고, 임금도 노동생산성에 맞추어 결정되고 있다는 가정에서 입각하고 있다. 경제학 용어로 말하자면, 노동시장이 완전(perfect)하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호주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한 역사적 연원에서 알 수 있듯이, 최저임금 제도는 사용주가 자신의 우월한 시장적 지위를 이용하여 생산성에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는 상황을 방지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경우 최저임금은 사용자가 부당하게 누리는 초과이윤을 줄이는 분배 효과가 있을 뿐이고, 일자리가 줄어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런던정경대학의 알란 매닝(Alan Manning) 교수는 이런 상황을 수요 독점(Monopsony)라는, 다소 난해한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사용주가 노동자에 대해 우월한 협상 지위에 있을 때,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은 효율적이지 않게 된다. 즉, 시장 실패가 생긴다.

이럴 때 최저임금은 이런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효과를 낼 수 있으며, 그 결과 임금도 고용도 모두 증가할 수 있다고 알란 매닝은 주장했다. (Monopsony in Moti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5) 

알란 매닝과 그의 책

알란 매닝과 그의 책 [Monopsony in Motion](2005)

미국 우파 경제학자, 최저임금 옹호 ‘창녀’ ‘마법사’ 비난 

최저임금이 시장을 교란 하다는 믿는 진영은 최저임금 옹호자를 마치 경제학자 자격 미달자라는 식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우파 경제학자인 제임스 뷰캐넌(James M. Buchanan)은 최저임금 옹호자를 심지어 ‘창녀 무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Gary S. Becker)는 정치인이 마법사가 아닌 다음에야 최저임금 같은 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야유했다.

제임스 뷰캐넌과 (출처: 위키백과 공용)

최저임금 제도를 반대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게리 베커 (출처: 위키백과 공용)

최저임금 반대는 ‘이데올로기적 신념의 소산’ 

최저임금 옹호자들은 그간의 실증연구 결과에 비추어 이런 식의 비판을 ‘이데올로기적 신념의 소산’이라고 평가절하해 왔다. 실제로 미국 경제학 교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 본 결과, 의견이 대체로 반반으로 나뉘었다.

이 또한 노동시장에 관한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를 보여주는 것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거부감은 실제로 훨씬 적은 편이다.

 

경제학자들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제도에 관한 인기는 높다 
노동시장 정책으로 보면 ‘아이돌 스타’ 수준 

 

90% 이상 국가들에서 최저임금 제도 도입 

국제노동기구 (ILO) 가 조사해 본 바로는, 현재 90% 이상의 국가들이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 운영 중이다.

가장 유연한 노동시장을 가진 곳으로 알려진 홍콩도 2011년 5월부터 법정 최저임금을 도입했고, 오랫동안 최저임금에 대해 적대감마저 보였던 말레이시아도 2013년 1월부터 최저임금을 도입했다. 싱가포르에서도 최저임금 도입에 관한 논쟁이 2010년 이후 시작되었다.

2010년에 영국 정책전문가를 상대한 조사에서는 최저임금 제도가 지난 30년 동안의 정부 정책 중 가장 성공적인 정책으로 꼽혔다.

최저임금

최저임금은 노동시장 우울한 현실 반영하기도 

최저임금에 대해 인기가 높은 것은 백번 환영할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늘날 노동시장의 우울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만 불짜리 월급쟁이들의 화려한 삶 저편에는 저임금의 그늘이 있다.

여차하면, 삶이 아슬아슬해지는 경계에 서 있는 노동자들이 늘어났다. 흔히 말하는 취약그룹(vulnerable group)에 속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저임금 노동자는 여성일 확률이 높고, 청년이거나 노년층일 가능성이 높다. 교육 정도가 낮고, 숙련도도 낮은 데다가 비정규직이 태반이다.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데다가, 벌이도 시원찮다.

노동법이 그들의 보호막이 될 법도 한데, 비정규직이다 보니 적용상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어차피 비정규직이라는 게 노동법 적용을 제한적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라고 본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노조 조직률과 최저임금 도입의 상관관계: 북유럽 vs. 독일 

이론적으로 본다면, 이런 노동자들은 누구보다도 노동조합이 필요할 사람들인데,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노조조직률은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아예 노조 가입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이러다 보니, 노동법과 노동조합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나니,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 그래서 부랴부랴 최저임금제도를 통해 방법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물론 법정 최저임금제도가 없고 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라들도 있다. 덴마크를 비롯한 일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노조조직률이 70% 이상을 넘어서서 사실상 모든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에서는 노조조직률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노조가 저임금 노동자를 포괄해지기 힘들어지자, 법정 최저임금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졌고, 2014년 7월 3일 최저임금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최저임금액은 시간당 약 1만 1,700원. 이로써 독일은 2015년부터 최초로 최저임금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와 같은 노조 가입율이 높은 국가는 최저임금 제도에 오히려 소극적/적대적이다. 반면 노조가입율이 크게 떨어진 독일에선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덴마크와 같은 노조 가입율이 높은 국가는 최저임금 제도에 오히려 소극적/적대적이다. 반면 노조가입율이 떨어진 독일에선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

최저임금, 마녀 vs. 메시아 이분법 지양해야 

최저임금 제도를 노동시장을 교란하는 마녀처럼 보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메시아로 보는 것도 문제다. 최저임금은 일반적으로 하위 10~15% 저소득 임금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그래서 그 효과도 그만큼 제한적이다.

하지만 일부 국가들이 최저임금을 노동자 일반을 위한 임금 결정수단으로 사용한다.

사업장에서 임금 협상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법정 최저임금 제도를 돌파구로 삼게 된 저간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이러다 보니 최저임금이 거의 평균임금에 육박하는 일들이 생긴다. 필리핀이 그렇다. 이렇게 되면, 정작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그림의 떡’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 생긴다.

마녀와 메시아의 이분법에서 탈피해야 (출처: 좌, Beth Punches, CC BY ND / 우, David Blackwell, CC BY ND)   https://flic.kr/p/24HTC https://flic.kr/p/7AQE5m

마녀와 메시아의 이분법에서 탈피해야 (출처: 좌, Beth Punches, CC BY ND / 우, David Blackwell, CC BY ND)

종이호랑이 되지 않게 잘 집행해야 

최저임금을 종이호랑이로 만들지 않도록 잘 집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연구원의 황덕순 박사와 이병희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0여 년간 한국에서 최저임금이 평균 임금과 비교할 때 지속해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난 이유는 최저임금 지급 위반이 증가한 데 있었다.

관념적 논의 넘어 ‘실사구시 태도’ 필요 

이제는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실사구시의 태도가 필요하다.

적합한 통계와 분석을 기초로 최저임금을 협상해서 결정하고, 그 적용 여부를 체계적으로 감시 감독하면, 노동시장에 그리 걱정할 만한 쇼크는 일반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최저임금이라는 말에 언성부터 높일 일은 아니다.

DonkeyHotey, CC BY https://flic.kr/p/9qnVmV

최저임금에 성급하게 반대하거나 찬성하기 보다는 합리적으로 그 액수를 결정하고, 제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감시 감독 체계를 구성하는 ‘실사구시’ 태도가 필요하다. (출처: DonkeyHotey, CC BY)

노동조합도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효과적일수록 애써야 한다. 노사정 최저임금 위원회가 구성된 나라에서 최저임금은 노조가 비노조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다. 남의 일처럼 보아서도, 노조의 임금 협상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멜버른서 최저임금이 처음 만들어질 때 당시 노조는 딴청을 피웠다.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시민운동 세력이 그래서 손을 걷고 나섰다.

인간 스웨터 vs. 최저임금이라는 스웨터 

스웨터 옷을 값싸게 대량생산하려는 인간 스웨터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최저임금 제도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그늘지고 추운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인 것이다.

그들에게 제대로 만들어진 최저임금이라는 스웨터를 만들어 입혀주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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