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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법원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인격을 형성하고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요소에는 성기 등 생물학적 요소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인 요소들도 포함된다고 명시했죠. 여러 법원에서 성확정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허가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2024년, 성별 정정을 위해 수술을 강제하는 것은 ‘위헌’임을 구체적으로 밝힌 결정이 나왔습니다. 법과 제도의 부재 속에서, ‘성확정(성전환)수술’ 여부가 성별 정정의 절대적 요건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일 뿐임을 재확인한 결정입니다. 박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신청인 겸 사건본인의 가족관계등록부 중 성별란을 ‘남’에서 ‘여’로 바꾸는 것을 허가한다”

2024년 4월 3일,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에서 몇 건의 성별 정정 결정이 있었다. 이 결정의 결과 신청인들은 당연하지만 중요한 권리를 보장받았다. 바로 스스로 인식하고 결정한 자신답게 살아갈 권리이다. 당연한 권리를 법원을 거쳐서까지 보장받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신청인들이 생식능력 및 외부성기수술(이하 ‘성확정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였다는 것이다.

  • 결정문에서는 ‘성전환수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수술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진정한 성별을 확인하는 과정이지 성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곤 한다. 이에 이글에서는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에서 보다 널리 쓰이는 ‘성확정수술’을 사용한다.

성별 정정이라는 험난한 과정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법적으로 구분된 두 가지 세계 중 하나에서 살아간다. 바로 남성과 여성, 법적 성별이다. 그런 법적 성별은 무엇으로 정해지는가? 한국에서 사람이 태어나면 출생증명과 출생신고를 거쳐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이 되고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된다. 이 과정에서 성별은 주로 외부성기의 형태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문제는 성장하면서 이렇게 지정된 법적 성별과 다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법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불일치하는 트랜스젠더다.

과거에는 이들이 아무리 이러한 불일치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어도 법적 성별을 바꿀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부터 일부 법원에서 트랜스젠더의 성별을 변경하는 결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22일 대법원은 최초로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해 호적법(현재는 가족관계등록법)을 근거로 법적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같은 해 대법원 예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을 만들어 성별 정정에 대한 요건과 절차를 규정했다. 문제는 이 예규에서 성별 정정을 위해 두 가지를 요구했다는 거다.

  1. ‘생식능력이 없을 것’
  2.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

결국 ‘성확정수술’을 받은 사람만이 성별 정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당시 대법원의 결정이었다. 이후 두 건의 대법원 성별 정정 결정이 나오고 예규의 허가요건이 조사사항으로, 다시 참고사항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대로 살기 위해서는 성확정수술을 요구받고 있다. 이 사건의 신청인들이 도전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수술의 요구였다.

    성확정수술 요구는 위헌이다


    이 사건 결정 이전에도 성확정수술 없이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허가한 결정들이 있었다. 2021년에는 수원가정법원에서, 2023년에는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각각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별 정정 허가 결정이 있었다. 다만 이 두 사건이 1심에서 기각이 된 후 이루어진 2심 결정인 데 비해, 이 사건 결정은 1심에서부터 성확정수술 요구의 위헌성을 구체적으로 설시했다는 것에 또 다른 의의가 있다.

    결정문에서 법원은 2022년 대법원 결정에서 설시한 법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성정체성(gender identity)에 따른 인격을 형성하고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기 위해서 성전환자(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성을 진정한 법적으로 확인받을 권리를 가진다.”

    그 전제하에 “트랜스젠더가 전환된 성으로 평가받기 위한 모든 요건을 갖추었음에도 성확정수술까지 강제하는 것은 신체의 온전성을 스스로 침해할 것을 부당히 강요하는 것이다”고 판시하였다.

    이어서 법원은 결정문에서 성별 정정 허가의 구체적인 요건을 제시하였다. 즉,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별 정정을 구하는 신청인이 스스로 느끼는 개인적이고 내적인 성별에 깊은 귀속감을 갖고 있으며, 이렇게 귀속감을 느끼는 성별로 살아가며 사회적으로 이에 따른 성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건들이 충족되었을 때 ‘성확정수술’ 여부는 성별 정정의 절대적 요건이 아닌 트랜스젠더의 전환된 성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일 뿐임을 분명히 하였다. 즉, 성확정수술을 받지 않아도 주관적 인식과 정신적·사회적 적응이 이루어졌다면 성별을 정정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스스로 인식하고 결정한 자신으로 살 권리


    이렇게 여러 법원에서 성확정수술의 위헌성에 대한 결정이 나왔지만 아직까지 모든 트랜스젠더가 자신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지는 못하고 있다. 아직 대법원이 공식적으로 예규를 개정하거나 전원합의체 결정을 통해 성확정수술의 위헌성을 확인하지 않았기에, 다른 많은 지방법원에서는 여전히 수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개인의 기본적 권리에 관한 사항은 원칙적으로 국회가 담당해야 함에도 정치의 외면 속에 성별 정정에 관한 법률은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 막바지에 수술 없이 성별 변경을 가능케 하는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이 발의되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이렇게 한국 사회가 천천히 나아가는 동안 세계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이 사건 결정문에서도 국제인권규범과 다른 국가에서의 변화가 자세히 다루어졌다. 예를 들어 2023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만장일치로 성별변경에서의 생식능력 제거 요구는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최근 체코 헌법재판소도 유사한 결정을 내림에 따라 현재는 모든 EU 국가에서 수술 없이 성별변경이 가능하다. 나아가 지난 4월 독일은 어떠한 요건도 없이 본인의 선택만으로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 ‘성별등록 자기결정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모든 변화들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사실 국내외 모든 결정들이 관통하는 원칙은 간단하다. 바로 누구나 스스로 인식하고 결정한 자신으로서 살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당연한 원칙이 한국 사회에서도 온전히 실현되기를 바란다. 대법원은 이미 예규상 수술 기준에 대한 개정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하여 대법원이 조속히 예규를 개정하고, 나아가 국회가 다시 한번 성별의 법적 인정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고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

    광장에 나온 판결: 258번째 이야기

    – 성확정(성전환)수술 등 여부를 성별 정정 허가 요건으로 삼는 것은 법리에 반한다고 판시한 결정
    –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 신윤주 판사 2024. 4. 3. 자 2023호기1034, 2023호기1037 결정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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