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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을 소유한 한진그룹, 기억하시죠? 이른바 땅콩항공 논란을 일으켰던 한진그룹 고(故) 조양호 회장의 가족들(총수일가 또는 특수관계인)이 지분의 100%를 소유한 별도의 회사가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조건(사익편취)으로 대한항공과 거래를 했습니다.

조현아, 조현태, 조 에밀리 리(조현민)가 지분을 소유한 회사가 아니었다면, 과연 대한항공에 불리하고 상대에 유리한 거래가 성사되었을까요? 이와 같은 거래를 우리는 ‘일감 몰아주기’라고 부르기로 했죠. 그런데 대법원은 일감 몰아주기라 하더라도 그것이 ‘부당한지’ 여부에 대해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 노종화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 2017두63993 과징금부과처분 등 취소 청구의 소
  • 대법원 2022. 5. 12. 선고.
  • 민유숙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조재연 대법관(주심), 천대엽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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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는 대기업집단의 총수일가가 계열사 내부거래를 활용해,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손쉽게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일컫는다.

일감 몰아주기(‘터널링’) 

총수일가는 일반적으로 핵심 계열사에 대해서만 지배주주 지위를 갖고, 계열사간 지분 소유를 통해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이러한 소유지배구조에서 총수일가가 ‘더 많은’ 이익을 얻는 손쉬운 방법은 상대적으로 많은 지분을 보유한 회사가 다른 계열사로부터 ‘일감 몰아주기’를 받아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총수일가가 직접 100% 소유한 회사(A)와 직·간접적으로 10% 소유한 회사(B)가 거래할 때, 의도적으로 A에게 유리한 거래를 함으로써 정상 거래에 비해 총수일가는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실질적으로 B와 B의 주주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이전받는 것이다.

B가 회사의 최대 이익을 위해 독립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면, 이러한 거래는 일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총수일가는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거래가 가능하다. 영어로는 ‘터널링’ (Tunneling)이라고 하는데, 터널을 뚫어서 지배주주에게 편법적으로 부를 이전한다는 뜻이다.

‘일감 몰아주기'(터널링)는 ‘부의 (불공정한) 터널’을 뚫어 정당한 이익을 받아야 할 B의 이익을 빼앗아 특수이해관계자인 A에게 몰아준다.

공정거래법의 ‘일감 몰아주기’ 첫 번째 규제  

공정거래법은 예전부터 계열회사 등에 대한 부당지원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은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경쟁과 공정한 거래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므로, 총수일가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려는 거래라고 해서 무조건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법률적으로 표현하자면, ‘부당성’이 별도로 입증돼야 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정은 이러한 한계를 입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신설됐다. 즉, 시장에서 경쟁 제한이나 경제력 집중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터널링 자체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진 사건은 법 개정 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처음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시도한 사례다. 조현아, 조원태, 조 에밀리 리(조현민)가 33.3%씩 소유하고 있던 ‘싸이버스카이’는 대한항공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통신판매 사업, 대한항공에 게재되는 광고의 판매 업무 대행 사업을 영위했다. ‘유니컨버스’도 고(故) 조양호와 세 자녀가 100% 소유하던 회사로, 대한항공 콜센터를 비롯해 한진그룹의 여객·여행 관련 회사의 콜센터를 운영했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와의 각종 거래를 통해 터널링을 시도했다고 보고, 시정조치 및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3사에 과징금 총 14억 3천만 원 부과). 공정위가 문제 삼은 행위는 구체적으로 다음 네 가지였다.

  1. 대한항공이 광고수입 중 일부를 포기하고 싸이버스카이에 귀속시킨 행위
  2. 싸이버스카이의 통신판매 수수료 일부를 면제해준 행위
  3. 싸이버스카이의 판촉물 가격을 지나치게 크게 인상해 준 행위
  4. 유니컨버스에게 불필요한 콜센터 사용료 및 유지보수료를 지급한 행위

‘부당성’ 별도 입증이 필요하다는 대법원 

첫 사건이었던 만큼 사실관계 판단 못지않게 법리적 해석도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에서도 ‘부당성’이 별도의 요건으로 입증돼야 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문제의 발단은 법조문이 “부당한 이익”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문에 ‘부당한’ 이 명시돼 있으므로, ‘부당성’이 공정위가 입증해야 할 별도의 요건이라는 주장이었다. 대법원도 이 같은 주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의 부당성은 불공정거래와 달리, “변칙적인 부의 이전 등을 통하여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될 우려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했다.

대법원은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판단과 별개로 ‘부당성’을 별도로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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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2017. 4. 18. 법률 제14813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공정거래법’이라 한다) 제23조의2의 규정 내용, 입법 경위 및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면, 구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제1호에서 금지하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해당하려면, 제1호의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는 별도로 그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 이익이 ‘부당’한지에 대한 규범적 평가가 아울러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당성’이란, 이익제공행위를 통하여 그 행위객체가 속한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되거나 경제력이 집중되는 등으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을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행위주체와 행위객체 및 특수관계인의 관계,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의 경위와 그 당시 행위객체가 처한 경제적 상황, 거래의 규모,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되는 이익의 규모, 이익제공행위의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변칙적인 부의 이전 등을 통하여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될 우려가 있는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 이익이 ‘부당’하다는 점은 시정명령 등 처분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증명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17두63993 판결 [과징금부과처분 등 취소 청구의 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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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이 타당하다고 보는 입장은 한진 사건은 일감 몰아주기 규모가 작은 편이어서 총수일가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런 경우까지 공정거래법이 규제하기엔 과도하므로, ‘부당성’ 요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 법 규정 외에 ‘별도 요건’ 필요한가 

그러나 공정거래법은 다음과 같은 경우를 일감 몰아주기(터널링)으로 규정한다.

  •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되거나 적용될 것으로 판단되는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
  •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하여 수행할 경우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
  • 특수관계인과 현금, 그 밖의 금융상품을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
  • “사업능력, 재무상태, 신용도, 기술력, 품질, 가격 또는 거래조건 등에 대한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

이러한 행위는 규모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총수일가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유지·심화시킬 우려가 존재하는 부당한 행위이다. 따라서 일감 몰아주기 규정에서 ‘부당한 이익’이라는 표현은 동어반복이나 강조의 의미일 뿐, 별도의 요건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 유형을 예시하고 있으므로 이에 해당하면 일감 몰아주기로 규율하면 된다. ‘부당한 이익’이라는 문구에만 너무 집착해 ‘부당성’을 별도 요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은 최근 하이트진로 사건에서 공정위 손을 들어주긴 했으나, 역시 ‘부당성’을 별도 요건으로 보았다. 다만, 거래방식(인건비 지원)이나 규모 측면에서, 부당성이 입증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2022년 5월 26일 하이트진로와 서영이앤티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취소소송 상고심 기각). 판결 자체가 적은 만큼, 어느 정도의 일감 몰아주기가 부당성이 있는 것인지 예상하기는 어렵고, 앞으로 공정위가 구체적인 지침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을 상당히 떨어뜨린 법원의 판단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행정소송은 국가가 권한을 남용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견제한다. 행정소송이 활성화되고 법리가 발전할수록 삼권분립은 완성되고, 국민의 권리는 보호되며, 국가권력은 실효성 있는 법률의 통제를 받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법적 구제를 누구보다 잘 활용해 보호 받는 것은 대기업집단과 소수의 지배주주인 듯하다. 이들은 막대한 쟁송비용을 쓰면서, 공정거래법 등 규제법령의 법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행정부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행정소송이 갖는 본연의 기능인 만큼, 법리가 정교해질수록 규제영역은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받는 것은 대기업집단과 그 총수일가 뿐이고, 이들은 경제력 집중으로 날이 갈수록 국가 권력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처럼 일반 국민의 권리와 거리가 먼 규제 법령에 대해서는 법원이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 규제 실효성에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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