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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대법원 특집 판결비평]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 주요 판결을 총 6회에 걸쳐 비평합니다.


지난 9월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퇴임사를 통해 “사법부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는 길은, 사법의 본질적 가치인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함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 보루의 역할을 합니다. 과연 김명수 대법원장은 판결로써 그 책임을 다하였는지, ‘김명수 대법원’의 주요 판결을 통해 평가하고자 합니다.

총 6회에 걸쳐 [김명수 대법원 특집 판결비평]을 연재합니다. 사법농단, 노동, 군인권, 여성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을 비평함으로써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대법원장의 교체 이후 새로운 대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마지막 회에서는 강제추행죄의 ‘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협박’ 법리를 폐기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평합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폭행죄나 협박죄로 처벌될 만한 폭행이나 협박을 사용한 강제적 성적 행동에도 강제추행죄는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 ‘처벌의 사각지대’가 공식적으로 폐기됐는데요, 차혜령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1. 재판 개입은 인정! 하지만 무죄? 사법농단 임성근 대법원 판결의 ‘트릭’(유승익)
  2. 일 때문에 아프면 스스로 증명하라? 불가능 요구하는 대법원 (손익찬)
  3. 긴급조치의 야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다 (이상희)
  4. 원세훈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유죄! 특별사면은 유감 (조지훈)
  5.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을 지켜주는 방법 (오동석)
  6. 40여 년의 기다림: 강제추행죄 ‘최협의 폭행·협박’ 법리 폐기 (차혜령)

김명수대법원 특집 판결비평

[6] 40여 년의 기다림: 강제추행죄 ‘최협의 폭행·협박’ 법리 폐기

차혜령 변호사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성립에 ‘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협박’을 요구했던 판례 법리가 2023년 9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강제추행죄에 국한하여’ 폐기되었다.

법원, 가장 좁은 의미 폭행·협박 요구… 강제추행죄 성립 제한


‘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협박(최협의 폭행·협박)’이란 상대방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 행사(폭행),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해악 고지(협박)을 뜻한다. 폭행죄의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하면 되고, 협박죄의 협박은 ‘상대방에게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해악을 이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1983년경부터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에 관하여 폭행죄나 협박죄를 성립시킬 수 있는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로는 부족하고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는 법리를(83도399 판결) 적용함으로써 강제추행죄의 성립을 제한해 왔다(강간죄에는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까지 요구하였다).

폭행죄나 협박죄로 처벌될 만한 폭행이나 협박을 사용하여 강제로 성적 행동을 하더라도 대법원이 해석상 요구하는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는 강간죄나 강제추행죄가 성립하지 않는 ‘처벌의 사각지대’가 40여 년간 이어져 왔던 것이다.

미투운동 이후 ‘해석’ 통해 사실상 ‘최협의 폭행·협박’ 법리 폐기했지만…


대법원의 2023년 9월 21일 전원합의체 판결은 ‘강제추행죄에 국한하여’ 이 법리를 ‘공식적으로’ 폐기하는 선언이라는 의미가 있다.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2010년대 후반, 특히 2018년 미투운동의 국면을 지나면서 우리 법원은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폭행과 협박의 정도를 상당히 유연하게 적용해 왔다.

‘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협박’ 법리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행위가 폭행죄에서 정한 폭행이나 협박죄에서 정한 협박의 정도에 이르렀다면 사실상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라고 해석하는 방향으로 변화”(전원합의체 판결 6쪽)하여 온 것이다.

실무에서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없지만 1983년 판례 법리는 이미 변경되었다는 시각과 그래도 명시적인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공존하였다. 그래서 이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로 법원의 강제추행죄 해석과 재판실무가 실질적으로 변화한다기보다는, 1983년 이래의 판례 법리가 현재 재판실무와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해소하고 전국 법원이 보다 명확하게 통일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게 된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총 43쪽의 판결문을 보면, 판결이유 초반부에 다음과 같이 사건 법리의 쟁점으로 바로 직진한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에 관하여 이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폭행행위 자체가 곧바로 추행에 해당하는 경우(이른바 기습추행형)에는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고 판시하는 한편, 폭행 또는 협박이 추행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그 수단으로 행해진 경우(이른바 폭행․협박 선행형)에는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요구된다고 판시하여 왔다(폭행․협박 선행형 관련 판례 법리를 ‘종래의 판례 법리’라 한다).

이 사건의 쟁점은 폭행․협박 선행형의 강제추행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위와 같이 제한 해석한 종래의 판례 법리를 유지할 것인지 여부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 주심 노정 대법관 2023.09.21. 선고 2018도13877.  

40여 년의 기다림…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한 일보전진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낸다.

“강제추행죄의 범죄구성요건과 보호법익, 종래의 판례 법리의 문제점, 성폭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 판례 법리와 재판 실무의 변화에 따라 해석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성 등에 비추어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는 다시 정의될 필요가 있다.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 요구되지 아니하고,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와 같음.

대법원의 그 후 설명에는 종래의 판례 법리가 강제추행죄의 범죄구성요건이나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보호법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이 형법상 폭행죄 또는 협박죄에서 정한 ‘폭행 또는 협박’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명히 정의되어야 법적 안정성과 판결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 ‘위력에 위한 추행죄’에서 ‘위력’은 ‘폭행’ 또는 ‘협박’과 개념상 구별되므로 위력에 의한 추행죄와 구별이 불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판결문 5쪽 분량에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다.

판결문의 이 부분을 읽으면 학계와 시민사회가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협박’ 법리 비판을 위해 쏟은 40여 년의 긴 세월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40여 년의 판례 비판이 단 5쪽의 판결이유로 압축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은 너무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선고되어서 다행이다. 한편, 대법원이 설명한 이유는 강간죄의 ‘폭행 또는 협박’ 해석에 관한 법리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으므로, 조만간 강간죄의 ‘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협박’ 법리도 폐기되기를 기대한다.

게티이미지.

광장에 나온 판결: 244번째 이야기

– 강제추행죄의 ‘가장 좁은 의미의 폭행·협박’ 법리를 폐기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 주심 노정 대법관 2023.09.21. 선고 2018도13877 [판결문 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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