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대법원 특집 판결비평]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 주요 판결을 총 6회에 걸쳐 비평합니다. 이번 글에선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수사·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에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평합니다.
지난 9월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퇴임사를 통해 “사법부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을 다하는 길은, 사법의 본질적 가치인 국민을 위한 ‘좋은 재판’을 실현함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법과 양심에 따른 올바른 판결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 보루의 역할을 합니다. 과연 김명수 대법원장은 판결로써 그 책임을 다하였는지, ‘김명수 대법원’의 주요 판결을 통해 평가하고자 합니다.
총 6회에 걸쳐 [김명수 대법원 특집 판결비평]을 연재합니다. 사법농단, 노동, 군인권, 여성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을 비평함으로써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평가하고, 대법원장의 교체 이후 새로운 대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세 번째 판결비평에서는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수사·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평합니다. 국가책임을 부정했던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법령의 형식으로 자행되는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의 법적 책임을 물은 판결입니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 이상희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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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대법원 특집 판결비평
[3] 긴급조치의 야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다
이상희 변호사(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정당한 비판을 ‘가짜뉴스’라거나 ‘반국가적 행위’라고 엄포를 놓으며 시민들을 협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박정희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기시감이 든다. 박정희 정권도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을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국가안보를 해치는 활동’으로 보고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았는데, 그 때 동원한 것이 긴급조치이다. 긴급조치 제1호가 1974년 1월 8일에 발령됐는데, 긴급조치 발령의 배경을 알 수 있는 박정희의 담화문(1973년 12월 29일)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일부 불순분자들은 아직도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서 가지가지 교묘한 수단과 방법으로 선동과 유언비어를 유포하면서 동조세력을 규합하는 데 여념이 없는가 하면, 3~4월 위기 운운하며 민심을 불안케 하고 혼란을 더욱 조장할뿐더러 각계 인사를 찾아다니면서 소위 개헌청원서명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언필칭 민주니 자유니 하고 국민을 선동하고 다니는 그들의 저의가 과연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나는 이들의 황당무계한 행동이 자칫 국가안위에까지 누를 미칠까 염려하여 그들에게 한번 더 냉철한 반성과 자제를 촉구하는 동시에,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현 유신체제를 부정하고 뒤집어 엎으려는 일체의 불온한 언동과 소위 개헌청원서명운동을 즉각 중지할 것을 엄중히 경고해 두는 바이다.”
박정희의 담화문, 1973년 12월 29일. 중에서
긴급조치 제1호는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와 비판은 물론, 이를 개정 또는 폐지하자는 주장을 금지했고, 유언비어도 유포도 금지했다. 이를 위반하면 영장도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을 할 수 있도록 했고, 법정형도 징역 15년 이하로 규정하였다. 긴급조치 제1호의 첫 번째 희생양은 개헌청원운동을 주도한 장준하, 백기완이었다. 군사법원은 이들에게 법정형 상한선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박정희 시대의 야만, 거듭 확인된 긴급조치 불법성 위헌성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제1호를 시작으로, 1974년 4월 3일에는 민청학련 활동과 학내 학생운동을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4호를 발령했고, 1975년 4월 8일에는 고려대학교의 휴교를 명령하고 고려대 내에서의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7호를 발령했다. 그리고 1975년 5월 13일 마침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유언비어 날조 유포를 금지하고 헌법에 대한 비판을 전면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했다. 긴급조치 제9호는 박정희가 사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해제되었는데, 그전까지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집회나 시위, 유인물을 작성하거나 소지한 행위는 물론, 학교나 술자리 등 일상에서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조차도 ‘유언비어’라는 이유로 금지되고 처벌되었다.
과거사 청산에 대한 국민적 열망으로 탄생한 제1기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8월 25일 “긴급조치는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신체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 및 죄형법정주의, 영장주의, 인신구속기간의 제한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 내지 제약하고 헌법의 기본원칙을 배제하였으며, 정권안보와 권력유지를 위하여 이 조치를 비판하는 경우까지 처벌하게 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그 존립목적으로 하는 현대 입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해당된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다.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는 진실 규명, 피해자 구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진실화해위원회 설립 취지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규명된 것이다.
그 후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에 대하여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비추어 볼 때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위헌 무효를 선언함으로써 형사재심절차의 가능성을 열었다. 피해자들은 형사재심절차를 통해 무죄 선고를 받아 형사적으로 원상회복을 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더 나아가, 위법한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구하고 긴급조치 사건으로 인해 받은 피해를 배상받고자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배상청구는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피해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사후적으로 회복하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국가의 법적 책임 인정하지 않은 양승태 대법원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대법원은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 긴급조치 발령에 대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장 없이 이루어진 체포, 구속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나 법관 모두 당시 시행되었던 긴급조치를 따른 것에 불과하므로 불법행위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
긴급조치의 위법성은 수사 및 재판으로 완성되었고 수사와 재판의 위법성 역시 긴급조치의 불법성에서 초래된 것이므로, 긴급조치의 발동과 수사 및 재판의 위법성을 일체로 보고 국가책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대법원은 각 행위를 분절해서 국가책임을 부정했다. 위의 모든 대법원 판결은 긴급조치에 대해 ‘당초부터 헌법에 위배되어 효력이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명백히 위배되고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일부 판사들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위 대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도전했는데, 대법원의 사법농단 조사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사에 대해 징계를 검토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도,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사건에서 요건을 이유로 각하 결정을 했지만, 소수의견은 국가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결은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피해자들도 긴급조치 발령에 대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주장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소송 투쟁을 이어갔다.
2022년 대법원, 드디어/이제서야 국가배상책임 인정하다
2022년 마침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위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고, “긴급조치 발령과 적용·집행에 관한 국가작용 및 이에 관여한 다수 공무원들의 직무수행은 법치국가 원리에 반하여 유신헌법 제8조가 정하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정당성을 결여하였다”고 보고, “개별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어 현실화된 손해에 대하여는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판결). 즉, 이 판결에 따르면 일반적·추상적 규범의 발령과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집행하는 다수 공무원의 일련의 직무집행을 통해 기본권 침해가 이루어진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에 따라 이전의 고의, 과실 개념만으로는 국가기관에 의해 발생하는 인권침해나 불법행위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국가책임을 부정했던 이전의 대법원 판결도, ‘고의 또는 과실’을 형식논리적으로 해석하는 바람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논리로 면죄부를 주었다. 이에 국가배상책임의 성립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객관적 주의의무’를 채택하여 국가배상책임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판결문에 나온 별개의견과 보충의견을 보면, 긴급조치 발령 자체의 위법성을 인정할 것인지, 법관의 재판행위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대법관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긴급조치의 발령 과정과 헌법 및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법관의 책무를 고려할 때 다수의견이 긴급조치 발령이나 법관의 재판행위 자체에 대해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점은 상당히 유감이다.
다만,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은, 법령의 형식으로 자행되는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도 국가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판결 이후 위헌 무효인 포고령 위반으로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도 같은 논리로 구제를 받고 있다. 이제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취지를 존중하여, 그동안 법원에서 패소의 확정 판결을 받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일부 정치권에서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정당한 비판을 ‘가짜뉴스’와 ‘반국가적 행위’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긴급조치 투쟁의 역사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다.
광장에 나온 판결: 241번째 이야기
–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수사·유죄판결 받은 이들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며,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 판결
–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 주심 김재형 대법관, 2018다212610 [판결문 보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