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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CC 글로벌 써밋 2015[footnote]2년마다 개최되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글로벌 써밋(Creative Commons Global Summit)은 전 세계 CC 활동가들과 열린 문화를 지지하고 실천하는 각계각층의 전문가, 학자, 활동가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다.[/footnote]에서 행한 요하이 벤클러 교수[footnote]요하이 벤클러는 [네트워크의 부] (2006)의 저자로 네트워크된 환경에서 공동의 접근 방식에 초점을 맞춰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위키 백과 등 공유를 기반으로 한 ‘동료생산’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학자로 커뮤니케이션 이론, 사이버법 정책, 지식접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기술 혁신, 무선통신 정책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학자다.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연방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뉴욕대학교 로스쿨 교수와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수를 지냈다.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버크만센터에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에 브로드밴드 정책을 조언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가의 과도한 감시 활동이 정보의 흐름과 시민적 자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footnote]의 발제(신하영 번역)를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다시 편집해 3편으로 나눈 것이다. (편집자)

  1. 커먼즈 개념과 자본주의의 미래: ‘공유경제’와 전 지구적 불평등 
  2. 커먼즈 개념과 자본주의의 미래: ‘경제적 인간’에서 ‘협업적 인간’으로 
  3. 커먼즈 개념과 자본주의의 미래: 착취적 자본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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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이 벤클러, CC 글로벌 써밋 2015 (출처: CCKorea, CC BY) https://flic.kr/p/zw3Zw4
요하이 벤클러, CC 글로벌 써밋 2015 (출처: CCKorea, CC BY)

이 자리에 서게 되어 큰 영광이고 긴장이 좀 되네요. 윤종수 프로젝트 리드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주제를 멋지게 다루어 준 덕분에 마치 제가 예전부터 함께해 온 가족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자리에 와 준 래리(로렌스 “래리” 레식, Lawrence “Larry” Lessig; 1961년 ~ 현재, 사진)을 보니 여러분이 제 얘기보다는 그의 얘기를 더 듣고 싶어 하실 것 같습니다. 오랜 친구를 만나니 저도 정말 기쁘네요.

그동안 크리에이티브 커먼즈가 어떻게 더 깊이 있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어왔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먼저 제가 하려는 것은 그동안 여러분이 해 왔던 엄청난 일들과 우리가 자본주의의 미래 전반에 대해서 마주한 폭넓은 논의를 특히 사회적 환경, 불평등, 정치적인 행태들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래리도 평생을 바쳐 지금도 싸우고 있는 문제죠.

우리가 이 귀여운 아이 이미지를 아이 엄마의 불안 없이 어떻게 얻을 수 있고 그 엄마도 두려움 없이 아이가 춤추는 귀여운 동영상을 업로드 할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의 미래와 관련지어서 어떻게 우리가 이것들을 연결할 수 있을까요?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저와 여러분이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한국을 처음 방문한 제가, 서울의 거리를 걷고 지하철을 타고 호텔에서 여기까지 오는 모든 과정에서 엄청난 시장 가치의 성장을 깨닫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했다는 겁니다. 그걸 그냥 무시해 버린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서울 지하철

불평등 심화는 ‘자동화의 일부’ 

하지만 그게 요점은 아니고요, 공유재로 인한 우리의 결정적인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주변 환경에 일으키는 피해와 위협들을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시장과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를 이해하기 시작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지난 1980년 이후 40여 년간 사회적 환경은 형평성에서 이러한 변화를 겪어왔고 특히 여기 보이는 것처럼 명확하게, 특히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불평등으로 저 그래프가 크게 꺾이는 구간이죠. 최상위 사람들의 자본 장악이 점점 더 심화하고 있습니다.

요하이 벤클러

이러한 양상이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대륙의 경우 이런 꺾인 선 그래프가 나타나지는 않죠- 하지만 영어권에서는 많은 국가가 이런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1980년대 이후 개발도상국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요. 이들이 복지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점점 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로 굳어지고, 복지의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를 경제적 논리로 설명하는 핵심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것은 자동화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로봇화된 프로그램들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을 맞닥뜨리고 있어요. 이러한 프로그램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자동화를 가져오고 우리 중 일부에게만 인간적 기술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이죠.

API 공유경제 노동 자동화

그러나 우리는 기술의 분배에 있어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시장의 불안정화와 불평등에 대해서 지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현상은 사실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일어나는 징후일 것입니다.

만약 조기에 우리가 시장에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의 한계들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중산층의 안정도 없을 것입니다. 중산층은 곧 몰락하고 파편화될 것이고, 대부분 사람들도 역시 몰락하고 대신 나머지 소수의 사람들은 극도의 부를 축적할 것입니다. 인구의 상위 1%만이요.

근본적인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자원 분배는 경제적 부가 정치적인 힘으로 변환되는 것이고 이에 따라서 정치적인 체계가 왜곡되는 것이죠. 이게 래리(로렌스 레식)가 그의 인생을 바쳐서 변혁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의 가족에게는 쓰던 슬리퍼만을 남겨줄 정도로 헌신적으로 말이지요.

0.1%에게 집중하는 부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너무나 상반되는 두 가지 현상을 지켜봐 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의 그래프를 다시 볼까요? 이 주제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광범위한 경험적 연구자료입니다.

요하이 벤클러

제가 이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제가 미국인이라서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1980년대부터 어떻게 불평등이 확산해 왔는지 볼 수 있는 가장 명징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상위 10분위와 50분위 사이와 50분위와 90분위 사이를 보시죠. 하지만 1990년대부터는 최상위만이 고정되고 유일하게 부를 성장시키는 계층입니다. 최상위 내에서도 불평등은 심화하죠.

우리가 그 이유를 이해하려 한다면, 이런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사람이 모든 세부사항을 이해할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선 중요하지 않죠. 제가 강조하려는 것은 공유재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상위 1%, 그리고 그 절반, 그리고 0.1%로 점점 좁혀지는 최상위 계층으로 부가 집중되는 현상입니다. 높아지는 소득이 더 큰 소득을 부르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나타나지만, OECD 국가들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조건부(계약직) 일자리의 증가인데요. 이 수치의 증가가 보여주는 것은 노동 유연성(불안정성) 상승과 소득 불안정이죠.

‘공유경제’는 공유가 아닌 착취

이제 진짜 공유재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노동 불안정성(유연성)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시작됐죠. 켈리걸즈와 다른 여성 파견사원 관리소같이 여성 노동시장에서 먼저 나타났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기술의 발달로 인한 노동불안정성의 확대입니다.

이제, 이따금 ‘공유경제'(sharing economy)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공유가 아닙니다. 착취입니다. 우리가 주장해야 할 것은 공유는 공유고, 착취적 조건 아래의 불안정한 노동은, 착취적인 조건 아래 있는 불안정한 노동 그뿐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들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버 공유경제

여러분 모두 이 근본적인 핵심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만약 침체기 중 최상위와 최하위의 극심한 불평등의 결과를 이해한다면, 그리고 만약 우리가 슈퍼스타 CEO들에게 고소득을 가져다주는 주식 보유의 다양한 구조적 작동원리를 이해한다면 아셔야만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최고에 오르려고 하고 있죠. 그리고 그 결과가 비정규직의 증가입니다.

요하이 벤클러

하지만 그들이 진짜로 이루고 싶은 것 중에 여러분이 위에 있는 표를 보시다시피 이념적인 변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의미로서는 적어도 없습니다. 미국의 불평등 양상을 보시면 공화당과 민주당이 모두 집권했던 60년대에는 오히려 변동이 없죠. 50년대부터 60년대 모두 그리고 70년대 들어서 갑자기 폭증합니다. 그리고는 집권당이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상관없이 지속되고, 혹은 영국에서 일어난 노동문제에 대한 보수화에 상관없이 나타납니다.

이 현상이 심화된 진짜 이유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협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더 깊은 차원의 이데올로기죠. 바로 우리가 인간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대한 감각이고, 우리가 시장과 법의 본질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한 것 말입니다.

인간의 개념 

우리가 여기에 적용해야 할 것이 바로 인간의 개념입니다.

이제 진짜 공유재 얘기를 하겠습니다. 바로 이 발상, 이 지점에서 공유재가 대체재로서 위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합리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 소유욕을 가진다는 것, 자기방어적이고 이기적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이 정당한 보수를 받아야하고, 명확한 재산권을 가져야 하는 진짜 잘 갖춰진 사회체계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총체적으로 혁신을 만들어내고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더 많은 재산권과 TPP(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와 같은 과거의 무자비한 소유권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재산을 증가시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가장 좋은 형태의 시장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규제로부터 시장을 자유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진짜 속성에 맞추어서 체제가 작동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시장사회라고 부르는 그 체제의 속성에 맞게 말이죠. 여기까지가 우리가 얻은 결론입니다.

구글 요하이 벤클러

구글은 연구에 이상적인 도구는 아니지만, 미국식 영어로 된 모든 책을 들여다보고 작은 시사점을 얻게 해 줍니다. 화면을 보시면 1차 대전 전후로 선에 굴절이 하나 생기죠. 이 시기는 갈수록 사회적 연대가 중요해지던 시기고 공정함(fairness), 합리성(rationality)금전적 보상(incentives)보다는 연대(solidarity)라는 단어가 훨씬 보편적으로 쓰이던 시기였고 이 현상은 60년대 말까지 지속됩니다.

하지만 60년대 말이 되면서부터 선의 굴절이 심해지고 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됩니다. 70년대부터 1980년대에는 금전적 보상과 합리성이 상상력을 포획해 버렸죠. 연대를 빙자한 간섭에 대한 대가로 말이죠. 이 현상에 포함된 것이 바로 1970년대에 주요 시장 사회에 걸쳐 일어난 이 굴절이 잘 짜인 이해구조를 토대로 한 규제된 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잠식해버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어떤 것으로 나아갔고, 그 어떤 것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즉, 사람들은 이론적으로 개인 단위로 활동한다는 주장입니다.

구글 요하이 벤클러

이제 우리는 다시금 새로 부상하는 다양한 구체적인 이론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1980년대 주식 배당 가치가 갑자기 치솟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이 부상하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이것들이 신자유주의의 기본적인 개념을 나타냅니다. 그건 바로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이해하는 것이죠.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체제를 만드는 방법인데, 그건 바로 금전적 보상체계의 발상을 기반으로 낯선 사람들이 서로를 조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을 쉽게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합리성과 보상체계에 관한 드높은 추상화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이 시점의 특정한 지배논리 속에서 말이죠.

신자유주의 vs. 공유재 

재빠르게 신자유주의 이론의 핵심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후에 제가 이 기본 가정들에 대해서 얼마나 공유재가 전복적인지 보여드릴 테니까요.

  • 세계가 불확정적이고 복잡하고, 그러므로 정부에 의한 계획은 불가능하다.
  • 그러니까 우리는 시장에서 사람들의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는 명확한 보상체계가 필요하다.
  • 이것이 작동할 수 있는 유일한 원리이다.
  • 탈규제가 필요하다.
  • 금융 처리 도구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 세금을 더 낮춰야 한다.
  • 이것이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데, 왜냐하면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합리성이 이기성의 가장 좋은 모형이다.
  •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이것이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구조적인 문제들과 유착되어있고, 공동체적 행동은 실패했다.
  •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 들 뿐이다.
  • 공동체적인 행동은 사라졌다.
  •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시장과 국가와 사회적 통제와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 그리고 단순하게, 시장 속에서 본능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

자유 그 자체는 신뢰 가능성에 달려있습니다. 시장과 사유재산은 핵심 모형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부터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흐름을 발견합니다. 이들 중 전자는 전통적으로 공생관계를 안정적으로 맺고 있는 공유재의 사례를 호주의 모범사례로 보여줬고, 인디애나 대학의 이러한 정치이론 실험은 경제학 분야에서 수많은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이들이 성공한 원인은 이 연구가 사실에 기반을 뒀고, 열정적이며 개념 체계가 잘 잡혀있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주변부를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론적으로 군더더기가 없었고 오픈 소스는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위키피디아 역시 이론상으로는 이해되기 힘든 것이었죠. 파이어폭스 같은 것도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을 깨뜨린 정부 규제 기관과는 달랐죠.

요하이 벤클러

이런 서비스들은 공장에서 만들어낸 게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개별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더 강력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기존 회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1995년 당시에 그 어느 누가 한 무리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웹 서버 시장에서 저 거대한 마이크로소프트를 무너뜨릴 생각을 했을까요? 그 당시 다음 세대 응용프로그램의 핵심을 차지하던 그 회사가 무능하다고 비웃음당할 상황을 말이죠.

저는 2001년의 툴루즈(Toulouse)에서 래리(Larry)가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이것(아파치, php, 파이어폭스, 리눅스, 위키백과 등의 활동)이 타당하다고 주장한 것 때문에 래리와 저는 사회주의자로 여겨졌었죠. 하지만 이건 제대로 작동했고, 기존의 20년간의 악순환을 깨버렸습니다. 마침내 변화가 일어난 것이죠. 그리고 여러분이 걱정할 만한 스팸 정보들도 조회수가 높은 몇 개 사이트에서만 보일 뿐이죠. 이러한 현상은 검색 엔진이 프로 소프트웨어로서 등장하면서 유일하게 계속되는 현상이죠.

자, 그렇다면 사실상 세계 경제의 주변부가 아니라 혁신과 성장의 중심에서 모든 사람이 예전 모형만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믿고 있을 때 근본적으로 우리는 이제 실질적으로 현실에 입각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20세기 전체 2/3의 논의는 합리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정부 부처뿐 아니라 시장 행동, 부동산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만약 1980년대와 90년대에 모든 사람을 시장과 가격 기반 구조로 몰아넣어서, 새로운 자유주의 정치가 시행돼 대기업뿐만 아니라 비영리 단체 내에서도 그렇게 된다면 어떨까요?

요하이 벤클러

요하이 벤클러

요하이 벤클러

우리가 지금 보는 이 현상들은 근본적으로 사회 내 네트워크 정보의 재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처음으로 산업혁명 이후로 중심부 경제 행위에 중요한 경종을 울리게 됩니다. 가장 발전한 형태의 경제행위가 전체 인구에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구조에 말이죠.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현상을 목도해 왔고, 그건 진실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제가 말해왔던 건 더 강한 시장 본위 모형, 더 착취적인 모형에 대비한 새로운 시도들이 등장했다는 겁니다. 전반적인 문제의 층위와 절대적 사회적 믿음의 중심부 양쪽 모두에서 생겨난 문제 해결의 여지는 다양한 공공 영역과 사적 시장, 그리고 비영리 분야의 중심과 비중심 모형에서 사회적 생산 모형을 사회 전반에 둠으로써 가능합니다.

하나의 결과로 드러난 것은, 공유재가 다른 공적인 작동원리에 대한 대체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공유재가 1990년대부터 공동체를 조직해오면서 어떻게 부상해 왔는지 말이죠. 몇몇 핵심적인 아이디어들을 다루면서 공적 이익이 어떤 지점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 보면 공공재는 그 이유와 방법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공유재는 시장에 필수적인 요소

요하이 벤클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자체에서 산출된 결과물들에 관해 이야기해 봅시다. ‘저작자 표시’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내 것’이라는 것은 판매용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소유권이라는 것은 관계성을 느끼게 해 사람 사이를 연결해 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공동소유만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공유한다는 것이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개인성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들을 집합시키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공동소유화 시키려 할 필요 또한 없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개인성의 공동소유라는 개념으로 치환해버릴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 교환이 일어나는 활발한 시스템은 편리한 독립 시장 교환 시스템이 되기 마련이고 실제로 또 그렇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게 새롭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늘 우리가 마주하던 시장적 관계는 아닐지언정 말이죠. 이게 우리가 전문가들끼리 공유하던 사상 속에서 존재하던 그것, 그러니까 모든 분야와 일상의 모든 것들이 우리의 친구들과 이웃과 공유되고 총체적으로 공유되는 형태 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물질 세계를 조직하고, 지적 활동을 해나갈지에 대한 것들은 이차적인 것들입니다. 가장 중요한 행위는 시장입니다. 아니, 어쩌면 둘 다 서로 다른 축으로 동시에 존재한다고 해야겠지요.

공유! 공유! 공유!
Share, C!… , CC BY 2.0

호혜의 윤리에 따른 핵심적인 기여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공유는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서 하는 어떤 행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호혜는 대신 여러분 자신에 대한 사항이 아닙니다. 호혜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어떤 인간으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그 기저 속에 존재하는 논리엔 완벽한 궤적의 소유 모형이 존재하진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죠. 여러분은 여러분의 개인성을 보유하고, 개인의 총체성을 유지하고, 전체 속에 포함되면서도 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감각을 유지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개념이고 지금까지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제 작업물 속에 일관적으로 드러내 오던 것입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창작의 자유, 표현과 사고의 자유는 활발한 공공 영역(public domain)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소유권과 약간의 여지로 남겨진 공유재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공유재는 모든 시장 사회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다니는 길이 그렇고, 흐르는 물이 그렇고, 지식의 원천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잡한 사회에서 공유재 없인 존재할 수 없습니다.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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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글로벌 써밋 2015의 키노트 강연과 여러 세션의 내용을 엮은 전자문서(CC KOREA, CC BY)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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