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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읽기: 죽을 만큼 웃긴가? – 웃찾사 ‘누명의 추억’ 이동엽

학교를 떠난 뒤에는 선생님도 교과서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성공 스토리와 자기계발서가 쏟아지지만 어쩐지 다른 세상 이야기 같습니다. ‘생각 읽기’, 우리 주변 사람의 생각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편집자)

문을 열고 이상한 공간에 들어섰다. 평범한 차림의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았다. 흔히 연예인들은 광채가 난다고 하지만,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오가는 사람들은 ‘광채’라는 미끈한 단어로는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다. 스치고 지나면서도 씩씩하게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는 그 눈빛에서, 그 웃음에서, 그 표정에서 활기찬 에너지가 전해졌다.

벽에 걸린 현수막에는 ‘죽을 만큼 웃긴가?’ 라고 적혀 있다. 죽을 만큼 웃기기 위해 모두가 땀을 흘리는 공간, 바로 SBS 개그 프로그램 ‘웃찾사 (웃음을 찾는 사람들)’ 대본 연습실이었다.

웃찾사 죽을만큼 웃긴가

웃찾사의 대표 코너라 할 수 있는 ‘누명의 추억’을 이끌고 있는 이동엽 씨(35)를 만났다. 동그란 안경의 주인공은 상당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개그맨으로 데뷔한 지 십 년 가까이 되는 웃찾사의 터줏대감 가운데 한 명이다.

“요즘은 동네 꼬마들이 저를 보면 ‘출렁~ 출렁!’, ‘넘실~ 넘실!’ 하고 ‘누명의 추억’에 나오는 대사로 반겨 줍니다. 웃찾사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죠.”

그는 개그 프로그램은 초등학생이 기억하느냐로 인기 여부가 판가름난다며 웃찾사의 상승세를 자랑했다.

웃찾사, 고난의 추억

웃찾사는 한때(2003, 2004년) 시청률 30%에 육박할 만큼 인기를 끌었던 SBS의 간판급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가 여러 악재들이 겹쳐 ‘대박 코너’ 없이 몇 년이 지났고, 시청률은 계속 떨어졌다. 시청률이 떨어지니 방송 시간대를 바꾸기 시작하고, 방송시간이 오락가락 하니 사람들이 더 보지 않는 악순환이 겹쳤다. 급기야 2010년부터 2년간은 방송이 폐지되는 고난의 시간도 겪었다.

2012년 다시 부활해서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 번 죽었던 프로그램, 금요일 밤 11시대의 편성, ‘개그 콘서트 (개콘)’ 라는 막강한 경쟁 상대 와 난제들이 쌓인 가운데 힘겹게 재출발한 웃찾사는 최근 들어 조금씩 시청률을 높이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요즘 들어 주변에서 웃찾사 방청권을 달라는 지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웃찾사가 언제 하는지도 몰랐고, 심지어 다시 부활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조금씩 변화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 번 추락한 경험이 있어서 인기 상승세를 맞는 웃찾사 팀의 활기 속에는 사뭇 비장함도 섞여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청자들의 ‘웃음’을 얻어내는 일. 어떻게 웃음거리를 찾는지 물었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지만, 사실상 일상이 모두 소재가 될 수가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개그의 촉각을 세워 두어야 합니다.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순간에 소재를 찾아 성공한 사례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죠.”

웃찾사 '누명의 추억'에서 활약하는 개그맨 이동엽 씨

웃찾사의 대표 꼭지라고 할 수 있는 ‘누명의 추억’에서 활약하는 개그맨 이동엽 씨

‘누명의 추억’과 후배의 지각: 일상에서 태어나는 아이디어

누명을 쓰고 무인도나 산속에 숨어 사는 남자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누명의 추억’ 코너의 탄생도 사실 첫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아이디어 회의를 하려고 모였는데 막내 후배가 한 시간 정도 늦게 나타났다. 그 후배는 너무나 민망했는지 90도로 고개를 숙이고는 여러 번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이동엽 씨는 늦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야단도 치지 않고 넘어갔는데, 주변에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던졌다고 했다. “동엽이가 후배를 잡는군!”, “너무 그렇게 애들 기합주지 말아라..”

사소한 에피소드였지만 자신이 누명을 쓰고 변명을 하는 과정에서 ‘누명의 추억’ 코너의 기본 얼개가 아이디어로 나왔다. 누명 쓴 얘기를 말로만 풀어내다 보니 너무 단조로워 ‘출렁출렁’, ‘넘실넘실’ 등의 의태어를 넣어 귀에 쏙 박히는 효과를 만들어 냈다. 그가 일상의 순간순간도 놓치지 않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것은 지금 하는 일이 어렵게 찾은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원래 이과생이었습니다. 기계공학과를 나왔죠. 취직하기 쉬운 과를 택하라는 부모님의 바램대로 대학진학을 했지만, 결국 무대를 버릴 수는 없었어요.”

평생소원,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는 것”

학교 다닐 때부터 그는 장기자랑의 스타였다. 대학 때도 전공과는 상관없는 연극 동아리 활동에 열중했다. 하지만 틈틈이 무대에 섰던 이십 대 후반까지도 그는 늘 진로를 고민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큰돈을 벌지 못해도 평생 이 일을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어요. 스물 아홉 살까지 한 달에 백만 원만 벌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이었습니다.”

그런 간절함을 놓지 않으니 절로 길은 찾아 졌다. 이제 남은 숙제는 장수하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다.

“갈수록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사람들의 웃음을 끄집어내는 게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한 코너가 인기를 끌면 1, 2년은 무난하게 유지됐는데, 요즘은 1년 채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유행어 하나에 마음껏 웃어주거나 넘어지는 장면 하나로 쉽게 웃어주는 시청자들은 이제 없다는 그의 설명이다. 익숙함 속에서도 뭔가 색다른 것을 전달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서 매일 매일을 공부하고 고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제 소원은 평생,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는 겁니다. 한 십년 후에도 이렇게 제 프로그램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십 년쯤이면 하고 있는 일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서 시들해지기도 하건만, 자신이 하는 일에 지치지 않는 애정을 갖는 그가 멋져 보였다.

이동엽

평생소원이 “지금 이 일을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코미디언 이동엽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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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초대필자, 미디어유 대표

‘멋지고 당당하게’를 인생 모토로 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땐 죽으라 공부하고, 젊었을 땐 죽으라 일해서 성공하는 게 ‘멋진’ 일이라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행복하게 사는 게 '젤루' 멋진 거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5분 거리도 걷기를 싫어하던 사람이 뒤늦게 아웃도어에 빠져 매주 산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www.sunblogge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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