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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9일 경남도지사 홍준표는 지사직을 사퇴했다. 도정을 쥐락펴락한 자리, 떠나고 싶어서 떠난 건 아니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 위해서는 공직을 사퇴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냈다.

선거에 출마하려는 공직자의 사퇴 규정

공직선거법 제53조는 특정한 종류의 공무원이 선거에 출마하려면 미리 그 직을 떠나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는 ‘주민 선거로 취임하는 정무직 공무원’이 포함되며, 도지사도 그중 하나다. 보통의 선거라면 선거일 90일 전까지 사퇴해야 하지만, 이번처럼 보궐선거 형태로 치르는 경우에는 30일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

법은 왜 공직자가 선거에 나설 때 일찌감치 그 직을 떠나도록 강제하는 것일까?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고 치르기 위해서다. 자신이 후보로 나서면서 여전히 공직에 머물러 있다면, 그러한 지위를 악용하여 선거운동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전개할 여지가 생긴다. 모 아니면 도, 건곤일척의 태도로 달려드는 게 선거다. 이런 싸움에서 한 당사자가 공직을 틀어쥐고 있다면 공정한 경쟁이 전개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직자 사퇴 규정은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한 기초적인 조건이라고 하겠다.

공직자 사퇴 규정은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공직자 사퇴 규정은 공정한 선거 관리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3분 꼼수’ 

이러한 규정에 따라, 5월 9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로부터 거꾸로 세면 홍준표는 4월 9일까지는 도지사를 떠나야 대선 후보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홍준표가 선거에 이겨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결국, 선거에 나서긴 하지만,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어렵고 도지사직도 내다 버려 빈털털이가 될 상황에 몰린 것이다. 게다가 경남도지사 보궐선거가 치러지고 새 도지사가 등장하면 자신이 일궈왔던 텃밭을 남에게 내주는 꼴이 된다.

그래서 홍준표가 쓴 꼼수가 ‘마감 3분 전 사퇴서 제출’이다.

사퇴 마감 시한을 3분 앞두고 사퇴서를 제출한 홍준표 후보. (출처: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진짜뉴스' 이미지, 시계 이미지와 합성)
마감 시한을 3분 앞두고 사퇴서를 제출한 홍준표. (출처: 자유한국당 ‘진짜뉴스’, 시계 이미지와 합성)

꼼수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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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준표는 대선 후보가 되려면 법에 따라 4월 9일 안으로 경남도지사에서 물러나야 한다.

2. 도지사에서 사퇴하면 공석이 되므로 경남도지사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3. 보궐선거는 그 선거를 치를 날이 법에 규정되어 있다. (공직선거법 제35조 제2항)

4. 그러나 대선이 있는 해에는 지자체장 보궐선거는 대선과 동시에 치르게 되어 있다. (이른바 동시 선거, 제203조 제4항)

5. 이렇게 동시 선거를 하기 위해서는 선거일(5월 9일) 전 30일까지, 즉 4월 9일까지 도지사 보궐선거를 할 사유가 발생해야 한다. (이 30일은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공직을 떠나야 하는 30일과는 무관한 별개 사항이다.)

6. 말하자면 4월 9일은 1)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도지사를 사퇴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며 2) 보궐선거가 실시되기 위한 사유를 발생시킬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7. 홍준표가 예컨대 4월 9일 낮에 도지사를 사퇴하면, 그 사실은 4월 9일 중에 경남선거관리위원회에 통보되고 따라서 보궐선거가 실시된다. (보궐선거 실시 요건의 기준 시간은 통보된 시간이다.)

8. 하지만 홍준표가 4월 9일 밤 날짜가 바뀌기 전 마지막 순간에 도지사를 사퇴하면 1) 사퇴는 성립하고 2) 그런 사실을 선관위에 통보할 시간은 없이 4월 10일이 되므로 30일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보궐선거는 성립되지 않는다.

9.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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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지사 퇴임식 때 모습 (출처: 자유한국당, '꿈꾸는 홍준표') http://www.libertykoreaparty.kr/web/onlyyou/pick/editorsPickMain.do#gnb_btn1
경남도지사 퇴임식 때 모습 (출처: 자유한국당, ‘꿈꾸는 홍준표’)

실제로 홍준표는 9일 심야, 30일 시한을 3분 앞둔 11시 57분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경남도의회는 다음날인 10일에 선관위에 도지사가 사퇴한 사실을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꼼수를 쓴 결과, 홍준표는 제 뜻대로 대선 후보가 되었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이 보궐선거로 경남도지사 자리를 차지하는 일도 막았다.

법전의 구석에서 틈을 찾아내어 얼굴에 철판 깔고 밀어붙이는 양상이, 대원군과 수미쌍관으로 대표되는 ‘법꾸라지’의 유구한 전통을 건실히 계승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이러한 꼼수가 가능해진 것은 선거일과 관련한 선거법 규정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한 공직 사퇴 시한과 (동시 선거의 경우) 보궐선거 성립을 위한 사유 발생 시한이 똑같이 30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다. 보궐선거 사유 시한을 30일보다 적게 하여 하루 이틀의 시차만 두더라도 이런 문제는 없어진다.

혹은 날짜를 그대로 두더라도 대선 출마자가 사퇴 의사를 밝히는 것을 보궐선거 실시 요건으로 규정해도 된다. 현재는 사퇴 의사는 의회(경남도의회 의장)에게 밝히고 보궐선거는 선관위에 통보되어야 발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그사이에 시간이 걸린다.

홍준표 같은 인간들이 또 있을 수 있으므로 법을 손봐야 할 일이다.

1년 넘는 도지사 공백 상태에 빠진 경남도 

앞서 보았듯, 공직선거 출마자가 현직을 물러나게 한 것은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서다. 홍준표의 경남도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가?

도지사가 사퇴했으니 경남도지사 자리는 공석이 된다. 다음 지방선거는 내년(2018년) 6월에 치러진다. 1년 넘는 기간 동안 도지사 자리가 공석이 된다. 그동안 도지사 역할은 부지사가 대행하게 된다. 류순현 행정부지사가 그 역할을 한다.

류순현은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이다. 그가 홍준표에게 특히 유리하게 도정을 운영하리라고 의심할 근거는 없다. (참고로 류순현은 홍준표의 꼼수를 현실화는 과정에서 한 역할 때문에 현재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상태고, 홍준표의 사퇴서를 떳떳이 공개하지 않는 부가적 꼼수를 시전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류순현이 무해하다하더라도 선출직이 아닌 공무원이고 대행자의 자격으로서, 선출직 도지사가 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도민 정책을 세우고 추진하지는 못할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황교안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유권자 동의를 거치지 않고 직을 맡은 대행자가 의욕이 앞서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말하자면 경남도 도정은 최선으로 전개된다 해도 1년 넘게 공백 상태에 빠지게 되며, 경남도민들은 자신의 뜻을 대변할 행정 책임자를 갖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빚어내는 것이 민주 국가의 정치인이 할 일인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긴 국정을 4~5개월 공백에 빠뜨려 비정상국가를 만들고 무주공산에 외국 세력만 마음껏 활개를 치게 한 대통령도 있으니 초록은 동색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도 어쨌든 좋다는 사람은 밥이 되든 죽이 되든 여전히 좋단다.

홍준표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경남여성단체협의회 (출처: 경남일보)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5360
(출처: 경남일보)

1년 이상 도정이 공백 상태에 빠지리라는 비판에 대해 홍준표 자신은 ‘도지사 없어도 행정부지사만 있으면 도정이 운영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자신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무위도식하며 살아왔음을 만천하에 고백하는 용기를 높이 찬양할 만하다.

‘스트롱맨’ 홍준표  

가끔 사석에서 (그것도 아주 조야한 성격의 사석에서) “한국놈들은 안 돼. 그저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나와야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속으론 ‘그래, 댁도 물고문 당해서 한번 죽어보든가 아님 공수부대 대검에 한번 푹푹 찔려보든가’ 하지만, 겉으로는 그냥 웃는다.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겠고, 한 사인(私人)이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공동체가 위태롭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정치인이, 그것도 민주 국가에서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인간이 하고 다니는 데에는 경악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홍준표는 4월 1일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되어 출사표를 던지면서 ‘스트롱맨’이 되겠다고 했다. 자기 입으로 독재자가 되겠다는 정치인, 그리고 그런 그를 환호하는 지지자… 이것은 아주 코믹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5월 9일 대선에서 유약한 좌파 정부가 탄생하면 대한민국의 살아날 길이 막막하다. 이제는 강단과 결기를 가진 ‘스트롱맨’이 필요한 시대” (홍준표, 대선 후보 수락연설 중에서)

출처: 자유한국당 '진짜뉴스' http://www.libertykoreaparty.kr/web/onlyyou/issu/truenews/trueNewsRead.do?bbsId=ETN_000000001150452
자신을 스스로 “스트롱맨(독재자)”이라고 말하는 홍준표 후보. (출처: 자유한국당 ‘진짜뉴스’)

아래는 네이버 영영사전의 풀이를 번역한 것이다.

만일 어떤 남성 정치인을 스트롱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자기 나라를 강력한 권력과 통제로 통치하고 있다는 말이며, 종종 폭력적이고 도덕적으로 잘못된 방식이 동원되기도 한다.

[NOUN] If you refer to a male political leader as a strongman, you mean that he has great power and control over his country, although his methods may sometimes be violent or morally wrong.

딕셔너리닷컴(dictionary.com)이 알려주는 스트롱맨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
  • 무아마르 알 카다피(리비아)
  • 로버트 무가베(짐바브웨)
딕셔너리닷컴이 '스트롱맨'의 사례로 든, 짐바브웨를 30년 넘게 철권 통치 중인 로버트 무가베(2008년 모습)
딕셔너리닷컴이 ‘스트롱맨’에 해당하는 예시로 든, 짐바브웨를 30년 넘게 철권 통치 중인 로버트 무가베(2008년 모습)

모두 총칼로 집권하거나 오랫동안 철권을 휘둘렀던 정치인들이다. 후보자가 이런 사람이 되겠다고 공언하고, 유권자가 그런 사람을 민주 지도자라고 지지하는 장면을 SNL가 아니라 현실에서 본다는 것은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선언을 했으면 책임이라도 지든지, 명색 스트롱맨이 되겠다면서 저따위 분치기, 초치기 꼼수나 쓰며 좀스러운 일을 벌인다는 것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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