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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망령처럼 바다를 떠도는 배가 등장한다. 이름은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 꼭 유령선이 아니더라도, 17세기 네덜란드 선박은 당시 유럽인들의 눈에 실제로 귀신처럼 보였을 수 있다. 빠르고, 많이 싣고, 멀리 나갔으니까. 영화 제작진은 이 배의 외형을 플라위트(fluyt)라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실제 화물선에서 영감받아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네덜란드 조선업의 경쟁력은 세계 최강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플라위트선. CC0.

풍차마을은 관광지가 아니었다

오늘날 네덜란드의 풍차는 튤립밭과 함께 엽서에 등장하는 낭만적인 풍경을 이룬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서 풍차로 물을 퍼올린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실용적인 네덜란드인은 그 밖에도 풍차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궁리해냈다. 물감 재료를 빻으면 어떻게 될까 – 당시 미술의 발전에도 풍차는 엄청난 공을 세웠다. 바람의 힘으로 기름을 짜면 어떨까 – 풍차는 당대의 첨단을 개척하는 산업 아이템이었다.

1594년, 암스테르담 북쪽 작은 마을의 풍차 주인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존(Cornelis Corneliszoon)이 특허를 하나 출원한다. 풍차의 회전 운동을 톱의 왕복 운동으로 바꾸는 장치였다. 이로써 풍력 제재소(sawmill)가 등장하게 된다. 원리는 단순했지만, 효과는 폭발적이었다. 사람이 할 때보다 약 30배는 빠르게 목재를 가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출처: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존 판 아위트헤이스트 재단 안내 책자, 2026. 4.6 추출).

첫 그림은 1592년 멀리 동쪽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때 홀란트주에 접수된 풍력제재 장치의 특허 출원 신청서 도면의 일부. 두번째는 당시 인력으로 나무를 썰던 장면 스케치. 출처: 위 안내 책자.

풍력제재소의 등장에 대해 많은 손톱장이 노동자(Hand sawyers)들의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네덜란드는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불과 한 세대 만인 1630년에는 잔담(Zaandam) 지역에만 53개, 인근의 암스테르담 북쪽 주변까지는 83개의 제재소가 돌아가고 있었다. 1731년의 피크에는 풍력제재소가 256개에 달했다. 훗날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조선 기술을 배우러 이 동네에 직접 찾아올 만큼, 유럽 최고의 기술 허브가 된 셈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실리콘밸리였고, 한국으로 치면 (성공한) ‘첨단산업단지’가 된 것이다. 오늘 날에는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관광지로 유명한 풍차마을  ‘잔서 스한스(Zaanse Schans)’가 이 지역에 있다.

잔서 스한스 풍차마을 전경. 물감 만드는 풍차, 기름 짜는 풍차, 나무 써는 풍차 등등이 지금은 ‘시연’ 중이다. 위키미디어 공용.

첨단 산업 클러스터에서 만드는 더 좋은 배가 더 좋은 나무를 불러왔다

풍차로 나무를 썰게 되면서 일국의 산업을 넘어 국제 정치의 지형이 바뀐다. 고품질의 신속한 목재 가공이 가능해지자 더 튼튼한 배를 더 많이,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됐다. 플라위트라는 압도적인 성능의 배와 함께 선순환의 고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본토는 나무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발트해 연안의 폴란드, 노르웨이, 북독일에서 최상급 원목을 들여왔다. 좋은 배가 있었기에 멀리서 좋은 나무를 가져올 수 있었고, 좋은 나무로 다시 더 좋은 배를 더 빨리 만들었다. 17세기 중반, 네덜란드는 발트해 목재 무역을 사실상 독점했다. 그 바탕으로 세계의 바다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첨단 기술을 통한 비약적인 생산성의 향상,  다양한 분야에의 쓰임, 선순환, 다른 한편으로는 격차의 심화, 그리고 기존 산업의 종사자들에게 미치는 피해라는 명암의 교차.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인터넷이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으며, 지금은 AI가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배를 만들어도, 바다에 내보낸 배가 돌아오지 않을 확률은 있었다. 또 하나의 발명이 필요했다. 이번엔 기술이 아니라 제도였다.

주식회사, 리스크를 나누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

17세기의 바다는 폭풍, 좌초, 전염병, 그리고 해적의 바다였다. 투자금의 몇십, 몇백 배를 회수할 무역로가 열렸지만 배는 수개월에서 1년 넘게 바다 위에 있어야 했고, 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랐다. 성공하면 투자금의 수십, 수백 배를 벌 수 있었지만, 실패하면 배 한 척이 통째로 사라졌다.

이때 생각해 보자. 각각 한 척씩 소유할 게 아니라, 100명의 투자자가 100척의 배에 각각 100분의 1씩 지분을 나눠 갖는다면 어떨까. 100척의 수익은 100명이 나눠 가지는데, 100척 중 한 척이 침몰해도 각자의 손실은 1%에 그친다. 리스크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아무도 치명타를 입지 않을 만큼 분산된 것이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를 만들 때의 핵심 원리였다. 오늘날의 주식과 보험의 원조를 네덜란드에서 찾는 이유다. 

동인도회사 주식은 증권거래소에서 자유롭게 사고팔렸다. 귀족과 대상인뿐 아니라 나막신 제작공이나 메이드들도 주주가 되었다. 일반 서민들이 월급을 쪼개 주식을 샀고, ‘이번 배가 돌아오면!’ 하면서 자산 축적의 꿈을 꾸었으며, 이들의 지원을 받은 모험가들이 대양으로 나갔다. 무역은 당대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벤처산업이었고, 동인도회사는 역사상 최초의 국민 참여형 투자였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위험도 함께 지고 이익도 함께 나누는 구조. 오늘날 국민연금이나 국부펀드의 원형도 여기 있다. 주식회사는 신분제에 구애받지 않고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눴다. 주식회사로 모인 자본은 다시 더 많은 배를, 더 먼 항로를, 더 큰 교역을 가능하게 했다. 

주식회사의 성공과 함께 네덜란드 전역에 투자 열풍이 일어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투자에는 양면성이 있고, 과열되면 투기와 구별이 무의미해지다가 탈이 나기 마련이다.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구근 하나의 가격이 숙련된 장인의 연봉 열 배까지 치솟았다. 단지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가격이 오르다가, 1637년 어느 날, 그 믿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며 역사상 최초의 ‘거품 붕괴’ 사고가 터졌다. 이른바 ‘튤립 파동’이다.  

튤립 한 송이, “부자 왕”이란 별명으로 알려짐, 1637년 네덜란드 도록에 실린 것이다. 튤립의 구근은 그 가격이 크기에 따라 3000에서 4200 플로린에 달했다. 당시 능숙한 장인이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하면 300 플로린을 벌 수 있었다. CC0.

연기금의 부동산 투입, 특히 고령사회 대비 차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튤립 파동과 같은 각자도생의 투기가 아니라, 사회 공동의 건전한 투자로 구성원들의 노후를 돕자는 것이 연기금의 취지다. 이런 연기금이 자리 잡기 전에는, 아니, 자리 잡은 후에도(-_-)  은퇴자들이 각자 집을 한 채씩 더 사서 임대를 놓는 것이 노후 대비의 정석처럼 여겨진다. 이런 ‘생계형 임대’는 은퇴자 비중이 충분히 작을 때는 가능한 방식일 수있다. 그러나 은퇴자가 경제활동인구와 맞먹을 만큼 늘어난 사회에서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다. 

가령 100명이 사는 사회에 은퇴자가 20명일 때 각각 한 채씩 더 소유하려 하면, 경제활동 인구 80명 중에 최소한 20명이 세입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은퇴자들이 40명으로 늘어나면? (2050년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 예측치가 40%다) 이들이 각각 1채씩 더 사면, 경제활동인구 60명 중에 최소한 40명은 세입자가 되어야 한다. 이 경우 자가소유율은 지금과 비슷한 60%지만, 경제활동 인구 중에서는 1/3만 내 집 마련이 가능해진다.

경제활동 인구는 가만히 있을까? 그중에서도 상속이든 보너스든 대출을 통해서든 집을 살 테니, 은퇴자 쪽에서 집을 한 채 더 사기도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회 구조상 생계형 임대가 은퇴 전략이 되기는 어려운 구조가 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얼른 집을 한 채 더 사두는 게 합리적인 전략이 되겠지만, 공공정책이 고령사회의 노후대책이랍시고 ‘국민 여러분 집 한 채씩 더 사세요’를 권할 수는 없다. 비도덕적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퇴자 40명이 각자 추가 1채씩 더 가지려 할 게 아니라, 공동으로 추가 20채를 소유하고 각자 평균 0.5채 분량의 지분을 나눠 수익을 얻는 구조는 어떨까. 소수만 안전해지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노후를 도모할 수 있고, 집 한 채가 불이 나거나 싱크홀로 부서져도 타격이 1/20로 분산된다. 

이런 구조가 별다른 게 아니다. 연기금을 공공주택에 투입하면 이렇게 된다. 은퇴자가 공동으로 투자하되 그 주택을 공공주택으로 하고, 연기금이 가운데에서 공적인 투자와 회수를 매개하는 것이다. VOC의 성공 배경인 주식회사의 원리와도 상통한다. 우리는 리츠(REITs)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은퇴한 40명이 ‘20채에 대해 공동으로 생계형 임대’를 하면,  60명의 경제활동인구 중에선 20채의 임대와 40채의 자가 사이에서 선택할 여유가 생긴다. 아까는 경제활동 인구 중에서 1/3만 내 집 마련이 가능했지만 이젠 2/3의 자가마련이 가능해진 것이다. 내가 누누이 이야기하는, ‘공공임대의 경쟁상대는 자가가 아니라 민간임대다, 공공임대는 내 집 마련을 돕는 주택이다’라는 주장의 배경이다. 

연기금 투입의 유의점과 의의

다만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한다. 연기금이 수익 내겠다고 집값을 올려버려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셈이지만, 손해를 봐서도 안 된다. 싱가포르는 자가소유율이 90%에 달하지만, 정작 노년층은 높은 주택 가격에 노후를 의존하고 후속 세대에겐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역설에 빠져 있다. 주거 문제만 해결하고 노후자금을 소진하면 우리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내 집 마련도 돕고, 사회주택이나 공공주택도 늘리면서 적정 수익률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선 우선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재정이나 주택도시기금 등에서 연기금의 요구수익률과 공공주택이나 사회주택의 적정 수익률 차이를 보전하는 방법이다. 만약 수익률 차이 2%를 보전한다면, 50배의 자금 동원이 가능하다. 

가령 매년 약 80조 원 이상 운용하며, 그중 7~30조 원가량은 여유자금으로 두고 있고, 또 7조 원 이상을 (집값을 떠받치는) 전세자금 대출에 쓰고 있는 주택도시기금에서 2조만 쓰면 어떨까? 그러면 연기금에서 100조를 가져와서 공공주택을 지을 수 있다. 호당 공급비용 평균 3억원이라면 크고 작은 공공주택 33만호를 지을 수 있는 돈이다. 

연기금 쪽 사정은 어떨까. 2026년 1월말까지 누적 929조 원을 걷고 투자로 1천조 원 이상을 벌어, 439조 원을 지급하고도 1,540조 원을 적립해두고 있는 것이 우리 국민연금이다. 2025년 수익률 18.8%는 세계 최고 수준인 국민연금에서, 100조 원만 좀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을 짓는데 빌려주는 것에 우리 사회가 합의하면 안될까? 

두 번째는 조금 더 긴 시야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이 늘어나서 주거 문제가 해결되면 출생률이 오르고, 연금 가입자가 늘어난다. 연기금 입장에서 전체의 1/15인 100조 원 정도를 조금 수익률이 덜 나는 곳에 투입해서라도, 연금 납부자가 늘어나는 쪽이 장기적으로 더 이득 아닌가.

‘둘째 가질 의향 최고’를 자랑하는 아파트형 사회주택 ‘위스테이’ 사진.

마지막으로, 앞서 30명이 15채의 지분을 공유하자는 이야기의 연장에서, 고령 사회에서 리스크와 이익을 함께 나누는 구조 자체가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후에 대한 불안함은 부동산 투기 열풍의 핵심 동력 중 하나다. 결국 사회적인 궁극에는 ‘함께 노후를 보장하는 구조’가 자리잡아야 주택시장도 비로소 안정된다. 그리고 주택시장이 안정되면 연기금이 책임져야할 노후 생활비 부담도 줄어든다. 공간적인 궁극에는 국토 균형 발전의 과제가 있을 것이다.

다시, 풍차와 주식회사와 튤립을 생각하며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선순환의 출발점은 풍차라는 당대의 첨단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을 통한 성장의 열매가, 물론 주식회사의 주주들의 경우로 한정되었지만, 신분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에게 흘러들어갔다. 기술과 제도,혁신과 사회통합이 함께 작동한 것이다. 

지금은 AI가 그 풍차 자리에 있다. 생산성을 수백 배 끌어올리고,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한편에서는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면서,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AI와 반도체 초호황의 과실도 해당 산업 종사자들이나 주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성인 절반 이상이 주식 계좌조차 없다. 이 와중에 어쩌면 ‘그들만의 잔치’에서 넘쳐나는 유동성일지언정, 곧 부동산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올 태세다. 그렇게 되면 모두의 집값이 오를 것이다.  

그리하여 튤립 파동과 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당장은 ‘토지거래허가제’로 간신히 투기나 거품을 막고는 있지만, 거품이라는 것은 원래 꺼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터지면 가장 취약한 곳에서 가장 아픈 대가를 치른다. 보유세를 올리면 매매 부문은 안정될지 몰라도, 임대차 부문에서 팔리지 않는 주택의 전세가 깡통전세가 되면, 해당 세입자는 발만 묶이는 게 아니라 전 재산을 잃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이미 겪은 대규모 전세 사태가 또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성장의 열매가 국민연금으로도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규모로는 세계 4위, 2025년 수익만 232조 원을 기록한 것이 우리 국민연금이다. 이 자금을 잘 선순환시키면, 저출생·수도권 집중·주거 불안이라는 서로 엮인 문제들을 풀 수 있지 않을까. 

사회주택 사업자와 지역의 사회복지법인이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며 LH가 소유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소셜믹스 사회주택 ‘다다름하우스’.

지방선거에서 많은 후보들이 공공주도 리츠를 활용하는 다양한 주택 공급방안을 내놓고 있다. 발전소나 다른 인프라도 마찬가지인데, 주택금융이라는 것은 생리상 초반에 목돈이 필요하지만 수요자는 장기간에 걸쳐 돈을 내게 되는 구조다. 연기금은 당장 목돈이 있고, 장기간에 걸쳐 배당을 받아도 되는 자금이다. 우리의 국민연금이 17세기 네덜란드의 훌륭한 발명품인 주식회사를 넘어서는, 재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류사에 남길 새로운 사회통합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 내는 상상을 해본다. 

풍력제재소르 발명한 코르넬리스 코르넬리스존을 기념하는 18세기 인쇄물.

나무를 톱질해서 풍차를 만든 최초의 발명가.

어떤 마법사도, 심지어 오이디푸스조차도 거의 알아낼 뻔했지만,
톱, 기어, 드릴을 처음 만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탐구하고 발견하여 혁신을 세상에 알립니다.
이 모든 성과는 풍차의 위력 덕분입니다.
인구 밀도가 낮거나 미개발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는 능숙한 솜씨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식을 끌어냈습니다.
농기구와 대담한 기술을 사용하여,
아위트헤스트가 발견한 것을 그는 확실히 완성시켰습니다.
날카로운 도구를 정확하고 우아하게 사용하여,
그의 풍차 혁신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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