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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2005년 10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의 포장에는 반드시 “18”이라고 표시하도록 강제하는 법률을 제정합니다.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의 판매와 대여를 금지한 캘리포니아 의회

캘리포니아 의회는 법을 제정하면서 폭력적인 비디오게임들은 미성년자가 반사회적이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을 높이며,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미성년자들도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심리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이에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등은 위 법률이 위헌이라며 소를 제기하였고, 대한민국 국회가 강제적 셧다운제를 통과시킨 2011년 4월로부터 약 2달 뒤인 2011년 6월 27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위 법률에 대해 위헌 결정 (Brown v. EMA/ESA, No. 08-1448)을 내립니다.

비록, 위 법률은 청소년보호법상의 강제적 셧다운제와 전혀 다른 내용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본 판결을 통해 비디오 게임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 연방대법원, 쟁점1: 게임은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된다

우선 판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비디오 게임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된다는 연방대법원의 판단입니다. 만약, 게임이 애당초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다면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는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임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서 보호되는지 논란이 되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대체로 정치적 표현의 영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미네르바, PD수첩, 쥐 그림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은 원래 오락적 성격이 강한 매체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지 문제가 된 것인데, 연방대법원은 게임도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면서, 오락과 정치를 구별하기 어렵고, 그러한 시도 자체도 위험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쟁점2: 게임의 상호작용은 모든 매체의 특성으로 새로울 게 없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다른 매체와는 달리 폭력적인 게임만을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단입니다. 게임은 다른 매체와 달리 상호작용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비디오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화면을 통해 폭력적인 행동에 대한 참여를 결정하는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호작용이 다른 매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임만의 특성이라면, 폭력적인 게임에 대한 차별은 정당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게임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판시하면서, 특히 1969년에 출간된 [당신의 모험: 사탕수수섬(The Adventure of You: Sugar cane Island)]을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소설들은 이후 게임북(gamebook)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게임북에서는 독자들의 결정에 따라 소설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보기에 모든 매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호작용적이고, 모든 매체가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하여 게임만을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쟁점 3: 게임의 폭력성과 현실세계의 폭력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연방대법원이 폭력적인 게임과 현실세계에서의 폭력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캘리포니아주가 제시한 앤더슨 박사(Dr. Craig Anderson)의 연구 결과 및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에 대한 노출이 아이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몇몇 심리학자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된 거의 모든 연구는 인과관계(causation)의 증거가 아닌 상관관계(correlation)에 기초하고 있으며, 방법론에 중대하고, 인정된(admitted) 흠결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추가로, 연방대법원은 설사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 아이들을 공격적으로 만든다는 앤더슨 박사의 연구결과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영향들은 매우 미미하며, 다른 미디어로부터 받는 영향들과 구별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모든 사회는 서로 다른 법적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국가의 법제도가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하고 있고, 합리적 의사결정에 따라 정립된 것이라면, 다른 나라의 제도와 상이하다고 하여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수한 규제가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면, 과연 그러한 규제가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것인지,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기초한 것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으며,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 판결은 이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입니다. (*참고: 쥐 공원 실험과 게임중독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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