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틀린 질문…맞는 답이 나올 리 없잖아!’
영화 [올드보이](2003, 박찬욱)에서 주인공 오대수의 경솔함 때문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이우진은 오대수를 15년 동안 사설 감옥에 감금한다. 영문도 모른 채 15년 동안 감금당한 오대수가 복수를 위해 찾아오자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말한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냐.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맞는 질문은)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오대수를 풀어줬을까란 말이야”
‘강제적 셧다운제’, ‘선택적 셧다운제’, ‘쿨링오프제’에 이어 얼마 전 발의된 ‘인터넷게임중독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간 줄기차게 이어져 온 게임 규제 시도들을 바라볼 때마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던진 대사가 떠오르곤 했다. 한국사회는 청소년 게임 중독 문제에 대해서 계속 틀린 질문만을 던지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맞는 질문은 ‘어떻게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청소년들을 게임 중독에 빠트리는가’이다. 만약, 청소년 게임 중독의 원인이 게임 내부에 있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어떻게 청소년들의 게임접근을 효과적으로 통제할지 뿐이다. 하지만 게임 중독의 원인이 게임 외부에 있다면, 게임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게임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쥐 공원(rat park) 실험: 중독 원인은 내부요인인가, 외부환경인가?
캐나다의 심리학자 브루스 K. 알렉산더 박사는 밴쿠버 마약 진료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당시 쇼핑몰에서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일을 하는 헤로인 중독자를 치료하면서 사람들이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약리적으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고서는 힘든 상황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알렉산더 박사는 이러한 가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쥐 공원(rat park)’ 실험을 진행한다. 이 실험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실험용 쥐를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의 쥐들은 호화로운 쥐 공원에 집어넣고, 다른 그룹의 쥐들은 비좁고 격리된 일반 실험실 우리 안에 가둔다. 그리고 두 집단의 쥐에게 모르핀을 탄 물과 일반 물을 제공한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좁고 격리된 우리 안의 쥐들은 처음부터 모르핀이 든 물에 달려들었지만, 쥐 공원의 쥐들은 대체로 일반 물을 더 좋아했고, 우리 안의 쥐는 쥐 공원의 쥐보다 모르핀이 든 물을 최대 16배나 더 마셨다.
위와 같은 실험 결과에 대해서는 일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좋은 환경이 약물에 대한 접근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일단 중독에 빠진 경우에는 금단 증상 때문에 환경과 무관하게 약물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박사는 이와 같은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 쥐 공원의 쥐들과 일반 실험실에 있는 쥐들에게 57일 동안 모르핀이 들어간 물만 먹여서 두 그룹의 쥐들을 모두 중독상태로 만든 다음 다시 일반 물과 모르핀이 든 물을 같이 두었다. 이 실험에서 쥐 공원의 쥐들은 이미 모르핀에 중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실에 있는 쥐들에 비해 모르핀이 든 물을 적게 마셨다.
알렉산더 박사의 실험은 중독에 대한 종래의 연구결과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종래에는 ‘접근가능성은 노출을 증가시키고, 노출은 중독을 증가시킨다’는 주장이 팽배했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물질이 아니라 환경이 중독의 문제를 만든다고 주장했고, 이를 쥐 공원 실험을 통해서 뒷받침했다. 현재까지도 물질과 환경 중 어떤 것이 중독의 원인인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게임 중독을 잘 모른다는 자명한 사실
물론, 청소년들이 게임 중독에 빠지는 원인은 게임에 내재한 중독요소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쥐 공원같은 안락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게임 중독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는 너무 요원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아직 게임 중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며, 이를 알기 위한 노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 문제는 게임의 중독적 요소에 기인하는 것인가, 아니면 과도한 입시 스트레스와 가정불화, 대인관계의 갈등 등에 기인하는 것인가. 만약, 게임에 중독적 요소가 존재한다면, 이는 모든 게임에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종류의 게임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는 게임 중독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강제적 셧다운제가 국회를 통과한 때로부터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만약, 2년 전부터라도 게임 중독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면 지금쯤 훨씬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게임 중독에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문해본다.
[box type=”info”]참고자료
1. 로렌 슬레이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원제: Opening Skinner’s Box: Great Psychological Experiments of the Twentieth Century. 2004), ‘7장 약물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조증열 옮김, 서울:에코의 서재, 2005.
2. 영문 위키백과, “Rat Park” [/box]
[divide style=”2″]
슬로우뉴스의 ‘게임중독법’ 논란 짚어보기
쥐 공원 실험과 게임 중독의 문제 (이병찬)
게임이 문제라고요? 그 게임 제목이 뭔가요? (이병찬)
그들이 게임업계에 원하는 것 (rainygirl)
프레임을 바꿔라: 게임규제 반대론의 함정 (이병찬)
게임중독법과 소통 (필로스)
인터넷 게임 중독 문제는 의학계에서 ‘논란 중’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강임성)
’10% 넘는다’는 청소년 인터넷 중독률의 실체 (aichupanda)
게임 개발자여, 독일로 가자! (강정수)
신의진 의원님, 게임중독법이 규제 법안이 아니라고요? (써머즈)
“알아서 쓰세요”라는 신의진 의원실 (민노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