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1일, 국회에서는 게임을 술, 도박, 마약과 함께 관리 대상으로 선정한 ‘4대 중독 예방법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한 정신과 의사의 ‘게임 중독’ 단정 발언
관련 기사를 통해 접한 공청회는 전체 패널 선정이나 진행에서 아쉬운 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특히 당황스러웠던 것은 인천 성모병원 정신과 기선완 교수의 발언이었습니다. 기 교수는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의 자료가 뒤섞여 있다’는 게임개발자연대의 김종득 대표의 지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합니다.
“보건의료 전문가와 정신과 의사가 게임을 중독이라고 하는데, 게임업계가 이를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 (기선완 교수)
그래도 몇 년 동안 게임을 만들면서 게임에 대해서 고민해왔던 저는, 게임의 중독성에 관한 학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도전받지 않는 ‘전문가’ 집단의 위험…’동료평가’ 중요한 이유
물론 전문가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몇십 년 동안 해당 분야에서 힘써온 전문가 영역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전문가가 소수이고, 대중이 다수라고 해서 전문가가 아닌 대중의 주장이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대중에게 대중의 언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전문가의 역할이기도 하겠지만, 분명 쉽지만은 않습니다.
저만 해도 학부에서 지질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고생물학을 전공했는데, 누군가 제게 지구는 ‘수천 년 전에 생성됐다’, ‘진화는 거짓말이다’ 같은 말을 들고 와 따지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다만, 이것이 지나쳐 전문가의 권위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것 역시 문제 될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현재 가장 합리적이고, 옳다고 여겨지는 이론도 반론이나 해당 가설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쌓이고, 해당 문제를 좀 더 잘 설명하는 가설이 등장하면 폐기될 수도 있으니까요. 특정 주장이 불가침의 ‘도그마’로 받아들여질 때 생기는 위험까지는 얘기할 생각이 없지만, 도전받지 않는 전문가 집단의 위험성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죠.
이 때문에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동료 평가'(peer review)입니다. 특정 의견에 관해 그 의견이 지닌 합리성 이상의 힘을 갖는 걸 막고, 학문을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선 동료 평가가 필요합니다. 이런 동료 평가를 통해 검증된 것이라면 해당 전문가 집단 밖에서도 안심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학회 ‘정신 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게임 중독에 대해 의학계의 동료 평가를 찾아봤습니다. 일반 생물학을 공부한 게 전부인 저는 사실 의학계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고, 그래서 우선 위키피디아(영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위키피디아의 ‘비디오 게임 중독’(video game addiction) 항목에는 이런 저런 얘기들과 함께 인터넷 게임이 2013년 5월 질병에 추가됐다는 구절이 눈에 띕니다. 그래서 이동한 페이지가 ‘정신 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이하 ‘DSM’) 항목입니다.
DSM은 미국정신의학학회(APA)에서 펴내는 책입니다. 여러 정신 장애를 분류하고, 그 표준 기준을 일상 언어로 기술합니다. 즉, 환자의 증상을 보면서 이 증상들이 해당 장애에 해당하는지 진단할 수 있는 편람입니다. 임상의나 연구자, 정신의학 약물 규제국, 건강 보험 회사, 제약 회사, 법조계, 정책 입안자 등이 사용한다고 하니 현재 미국의 정신 장애 기준서로 보면 될 테고, 의학계의 동료 평가로서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이 편람은 비정기적으로 출판되는데, 1952년 1판(DSM-1)에 이어 몇 차례 개정판이 나왔고, 가장 최신판은 올해 2013년 출간된 ‘DSM-5’입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 여기에 추가됐다는 얘기가 위키피디아에 있으니 미국 정신의학학회 홈페이지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목차를 통해 살펴보면요.
편람은 크게 다음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섹션 I: 서론과 편람 사용법, 주의 사항 등
- 섹션 II: 진단 기준과 (질병) 코드
- 섹션 III: 최근 대두하는 진단 척도와 모델
섹션 II: ‘인터넷 게임 중독’ 공식 장애 아니다
목차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편람의 핵심은 섹션 II입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정신 장애로 인정된 모든 장애의 대분류, 소분류가 적혀있습니다. 내용은 각 장애의 증상과 진단인데, 중독에 관해서는 ‘물질 관련 중독 장애'(Substance-related and addictive disorders)라는 대분류 안에 ‘물질 관련 장애'(알콜, 카페인, 대마초 등등등)과 ‘비물질 관련 장애’라는 소분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비물질 관련 장애에는 ‘도박 장애’가 있습니다.
게임 중독은 비물질 관련 장애일 텐데, 이쪽에는 아직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질병 코드가 없고, 미국정신의학학회에서 아직 공식 장애로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게임 중독이 실려 있는 부분은 섹션 III입니다. 섹션 III는 새로운 진단법이나 공식 장애는 아니지만, 장애로 주장하는 경우가 있어서 고려 대상인 주제들을 싣고 있습니다. 아래 목차를 보시면요.
섹션 III: ‘인터넷 게임 장애’ 문건 검토
섹션 III의 ‘추가 연구 필요 상태'(Conditions for Further Study)에 ‘인터넷 게임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 항목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람은 없는 상태라서 어떤 얘기가 실려있는지 알 수 없지만, 다행히도 미국정신의학학회에서 해당 부분을 ‘인터넷 게임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라는 PDF로 내놨더라고요.
한 장짜리라 간단하게 전문을 번역해봤습니다. (제가 의학 지식이 부족해서 잘못 옮긴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역 지적해주시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정신 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 (DSM-5)에서 인터넷 게임 장애는 섹션 III에 ‘공식 장애로 주 편람에 포함 여부를 고려하기 전에 좀 더 임상 연구과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상태’로 동정/기술했다.
새로운 현상
인터넷은 현재 많은 사람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이며, 심지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뉴스를 읽고 업무를 수행하고, 그 외 많은 일을 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 보고서들은 일부 사람들이 인터넷, 특히 온라인 게임의 특정한 면에 집착하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게이머”는 강박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해서 다른 곳에는 흥미를 주지 않는다. 이들은 쉬지 않고 반복적으로 온라인 활동을 하고, 이에 따라 임상적으로 중요한 손상이나 고통에 이른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은 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아서 학업이나 직무 수행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들은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할 경우 금단 증상을 겪는다.
이러한 서술의 상당 부분은 아시아 국가 증례들에 기원하며 주로 젊은 남성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관련 연구들은 이런 개인들이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면, 이들의 뇌의 특정 경로가, 특정 물질에 영향을 받은 약물 중독자의 뇌가 그런 것과 같이, 직접적이고 강렬한 방식으로 촉발된다고 말한다. 게임은 기쁨과 보상에 대한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신경학적 반응을 촉발하며, 그 결과 극단적인 경우 중독 행동으로 발현된다.
추후 연구는 앞서 제안된 기준을 사용해 온라인 게임을 과도하게 했을 때 같은 패턴이 발견되는지를 밝힐 것이다. 현재, 이 상태를 위한 기준은 인터넷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에만 한정하고, 일반적인 인터넷 사용이나, 온라인 도박, 또는 소셜 미디어는 포함하지 않는다.
인터넷 게임 장애를 DSM 5의 섹션III에 등재함으로써, 미국정신의학학회(APA)는 해당 상태가 편람에 장애로 추가되어야 하는지 가릴 수 있는 연구들을 권장하는 바이다. (번역문)
In the fifth edition of 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 Internet Gam- ing Disorder is identified in Section III as a condition warranting more clinical research and experience before it might be considered for inclusion in the main book as a formal disorder.
A New Phenomenon
The Internet is now an integral, even inescapable part of many people’s daily lives; they turn to it to send messages, read news, conduct business and much more. But recent scientific reports have begun to focus on the preoccupation some people develop with certain aspects of the Internet, particularly online games. The “gamers” play compulsively, to the exclusion of other interests, and their persistent and recurrent online activity results in clinically significant impairment or distress. People with this con- dition endanger their academic or job functioning because of the amount of time they spend playing. They experience symptoms of withdrawal when kept from gaming.
Much of this literature stems from evidence from Asian countries and centers on young males. The studies suggest that when these individuals are engrossed in Internet games, certain pathways in their brains are triggered in the same direct and intense way that a drug addict’s brain is affected by a par- ticular substance. The gaming prompts a neurological response that influences feelings of pleasure and reward, and the result, in the extreme, is manifested as addictive behavior.
Further research will determine if the same patterns of excessive online gaming are detected using the proposed criteria. At this time, the criteria for this condition are limited to Internet gaming and do not include general use of the Internet, online gambling or social media.
By listing Internet Gaming Disorder in DSM’5 Section III, APA hopes to encourage research to determine whether the condition should be added to the manual as a disorder. (원문)
요약 평가
네. 여기까지가 일단 제가 살펴본 상황입니다. 이 자료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 입장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바라보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터넷 게임 중독에 관해선 주로 아시아,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많다. 이들은 게임 시간이 많고 강박적인 모습, 금단 현상, 약물 중독의 뇌 작용과 동일함 등의 증상이 있다고 보고한다.
- 이에 따라 미국정신의학학회는 현재 인터넷 게임 중독을 ‘공식 정신 장애의 전(前) 단계’, 즉, 정신 장애로 보고하는 연구들이 있으나 이를 공식 장애로 넣으려면 같은 기준과 결과를 보이는 추가 연구들로 검증할 필요가 있는 상태로 보는 입장이다.
- 이 추가 연구들은 같은 기준, 즉, 온라인 게임에 한정해서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인터넷 사용, 또는 인터넷 도박, 소셜 미디어 사용은 같은 기준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1번은 아무래도 중국과 우리나라의 논문들인 것 같고요. 이런 연구 결과들이 많다 보니 이번에 섹션 III에 올려 좀 더 연구해서 추가 검증해보자는 게 미국정신의학학회의 현재 입장으로 보입니다.
결론: 의학계에서 논란 중!
한참을 돌아왔는데요. 이제 결론을 내려보죠.
“보건의료전문가와 정신과 의사가 게임을 중독이라고 하는데 게임업계가 이를 아니라고 하면 어불성설”이라는 말에 관해 학계의 동료 평가를 찾아봤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정신의학학회의 ‘정신 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을 검토해보니 공식 장애의 중독 분류에서는 빠져 있었습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 들어있는 부분은 섹션 III, 추가 연구를 통해 다음 편람을 편찬할 때 공식으로 넣을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고요.
이 정도면 인터넷 게임 중독 문제는 ‘의학계에서도 논란 중이다’라고 말해도 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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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00 디자인 공부합니다]에도 실렸습니다.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따라 표제와 본문 및 삽화는 일부 수정, 보충하였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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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의 ‘게임중독법’ 논란 짚어보기
쥐 공원 실험과 게임 중독의 문제 (이병찬)
게임이 문제라고요? 그 게임 제목이 뭔가요? (이병찬)
그들이 게임업계에 원하는 것 (rainygirl)
프레임을 바꿔라: 게임규제 반대론의 함정 (이병찬)
게임중독법과 소통 (필로스)
인터넷 게임 중독 문제는 의학계에서 ‘논란 중’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강임성)
’10% 넘는다’는 청소년 인터넷 중독률의 실체 (aichupanda)
게임 개발자여, 독일로 가자! (강정수)
신의진 의원님, 게임중독법이 규제 법안이 아니라고요? (써머즈)
“알아서 쓰세요”라는 신의진 의원실 (민노씨)
인천성모병원 정신과 기선완 교수의 진짜 직책은 인천성모병원 기선완 기획실장입니다.
건양대인가에서 정신과 교수였지만 인천성모병원 정신과 홈페이지에는 등록도 안돼있고 단지 기획실장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뷰 하더군요.
정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게임 개발을 하고 싶네요.
기선완 씨의 주장 내용, 논리 구조, 토론 방식, 기본 예의 등에 모두 고개를 흔드는 바이지만, 제기하신 해당 의문에 대해서는
지금 직책이 기획실장임과 상관없이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서 인천 성모병원 이전에 건양대병원에서부터 많은 일을 해오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분 역시 좋은 의도로, 정말 인터넷 게임에 과몰입 현상을 빚는 아이들에 대해 속수무책인 교육계와 보건복지부등의 무책임한 태도에 불만이 많으셨을 거고, 나름대로 의도의 정당성은 있다고 생각듭니다.
단지, 방법과 과정의 문제죠.
공청회부터 프레시안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들고 나오는 자료가 실제 게임 중독현상 을 논지대로 입증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제대로 답할 수 가 없는 상태로 확인됩니다만
더우기 그것을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는 해법에서 많은 소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게임 업계에서도 계속 ‘엉뚱한 소리에 다른 엉뚱한 목소리’로 감성적인 대결구도를 세울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도를 인정해주면서 잘못된 방법에 대해 논리적으로 타결을 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전문가라면서 믿음을 강요하는 모든 사이비들에게..
“과학이란, 전문가 의견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체계적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 리차드 파인만.
기선완 구글 스콜라에서 암만 검색해도 나오지도 않네. 어짜피 외국인이랑 논문베틀붙으면 말도못할새끼가, 아무말이나 막하네.
우선 논문으로 학계부터 평정하고 와라 정치인새끼야
탄수화물중독법도 만드시지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