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변호사로 가끔 다른 변호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검토하거나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부탁을 받으면 당혹스러워요. 가까운 분 부탁이라 무작정 거절할 수도 없어 지금은 일단 자료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이런 종류의 부탁이 부담스러운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 부탁을 하면서 ‘담당 변호사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연락도 안 되고, 지금껏 얼굴도 못 봤습니다’, ‘진행 상황에 관한 설명도 듣지 못했어요’라는 말을 보탭니다. 설마 요즘에도 그런 변호사가 있나 이런 마음이 한편으로 들면서도 대부분 그런 요청은 정중하게 거절하게 됩니다.

진행 중인 사건 수임이 어려운 이유 

왜 다른 변호사가 했던 사건을 중간에 이어 맡는 게 힘들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대다수 변호사들도 그럴 텐데요. 아예 처음 사건이 시작될 때 맡아 처리하는 것보다 그 일이 곱절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법률 사무의 특수성을 모르시는 분들은 ‘변호사 님, 다른 변호사가 다 해놨으니까 조금만 보시거나 도와주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죠. 그러나 이런 말씀은 분쟁이나 소송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에서는 나오기 힘듭니다.

일단 분쟁 자체를 당사자로부터 진솔하게 듣고 그에 관해 기본 틀을 짜고 쟁점을 정리하는 것자체도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변호사가 이미 그걸 어떤 형태로든 진행해 놨으면, 그 변호사가 해 놓은 일, 즉 경과와 전략을 이해하는 일이 더해집니다. 그러니까 할 일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겁니다.

남이 쓴 글 읽는 것, 쉽지가 않습니다. 그 문서가 법률 문서라면 더욱 그렇죠. 법률 문장은 일상의 문장과 달리 좀 독특합니다. 법조인들이 쓴 문장이라는게 잘 읽어내기 힘든 특유의 만연체 법률 문장입니다. 그러면서 각자 독특한 문체가 있기 때문에 남이 쓴 글을 읽어내는 게 변호사도 쉽지 않습니다. 1심을 맡지 않고, 항소심(2심)만 맡는 경우에도 수임료가 내려가지 않거나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수임료가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소송 대리를 맡는다는 건 그저 당사자 주장을 종이 위에 옮겨서 적어 내는 게 결코 아니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런 요청 대부분은 당사자 불만이 쌓여 온 사건입니다. 그래서 기록을 자세히 검토하고 왜 그 변호사가 그렇게 썼는지 일일이 설명해주며 오해를 풀어주거나 때로는 해당 변호사의 전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하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당사자와의 상담에 감정 노동이 추가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소송의 결과가 뒤집힐 수 있는지, 변호사를 바꿨더니 훨씬 좋아질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소송 구조가 영미식이 아니라서 실정법을 충실히 해석하고 판례를 잘 살펴서 판사에게 설득력있게 주장하면, 그러니까 변호사가 어느 정도 성실하게만 진행하면, 그 판결 결과가 변호사에 따라 미국 법정드라마처럼 극적으로 뒤집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물론 그 전제는 변호사가 ‘성실하게’ 기본적인 검토를 하고 전략을 세웠다는 평가라는 것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이지만요.

그런데 말이 그렇지요, 저에게 사건을 다시 검토해달라고 하시는 분들 말씀처럼 세상에는 내 마음이나 기대에 못미치는 변호사들이 있겠지요. 처음에는 잘 해줄 것 같아 적지 않은 돈을 내고 그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말이죠. ‘나는 어떤 생각으로 그 변호사에게 일을 맡겼지?’라고 되물어 보면 그냥 주위에서 추천해서라든가 뭔가 전직 판검사 출신라고 해서 힘을 좀 쓸 것 같아서라든가, 인터넷이나 방송을 보고서라든가 이런 정도의 이유였던 분들이 꽤 많습니다.

변호사 선임 체크 포인트

사건과 변호사에 대한 나의 기대와 변호사의 생각이 달라서 불통 속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서로 불만만 쌓이기도 하구요. 일이 생기고 후회하지 말고 미리 나쁜 일을 막으려면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여야겠지요. 나 또한 그 변호사에게 좋은 의뢰인이 돼줘야 하고요. 만일 내가 분쟁이 생겨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면 어떤 변호사를 어떻게 골라야 하고, 나는 의뢰인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궁금하실 것 같아,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할 때의 체크 포인트를 나름대로 적어 봤습니다.

1. 적어도 3인 이상의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아 보세요. 당연히 상담료를 내셔야 책임감 있는 자문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상담은 시간당 일정 액수를 지급하기 때문에 변호사 앞에서 구구절절 말을 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변호사도 바로바로 정확한 자문을 해주기 어렵습니다. 상담료를 절약하기 위해서라도 그간 일어났던 사건 진행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하고, 관련 자료들과 질문 내용을 미리 건네주거나 정리해 가지고 가는 게 좋습니다.

2. 변호사가 이야기를 잘 듣는지, 무엇이 핵심 문제인지를 잘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세요. 꼭 법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내가 답답해 하는 게 있는데 그 부분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변호사의 판단이 맞았던 것일지라도 섭섭함이 쌓여서 나중에 서로 못 믿게 됩니다. 상담을 통해 변호사를 평가해 보고 변호사에 대한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3. 변호사가 그런 비슷한 분쟁을 해결해 본 적이 있는지, 직접 처리해 보지는 않았어도 판례와 법률 지식이 충분해서 나에게 잘 설명하는지, 해당 사건이 얼만큼 어려운 사건인지를 잘 설명해 주는지 체크하세요.

자신의 경력과 능력에 관해서도 솔직하게 말해주는 변호사가 좋습니다. 요즘 젊은 변호사들 중에는 비록 사건을 처리해 본 경험은 적지만, 그 대신 열정과 지식, 성실성으로 무장한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나이들거나 경력 많은 변호사들보다 도전의식을 가지고 사건을 더 잘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이긴다거나 무조건 진다거나 하는 변호사는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흘러 갈지 장담할 수 없고, 소송 절차는 그 해결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변호사에게 의뢰한 후에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처음 예측한 것과 달리 끝나기도 합니다. 그런 여러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여야만, 변화하는 상황에 잘 대처해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 스스로 어떤 변호사를 원하는가, 당신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4. 변호사와 계약하고 나면 그 뒤부터 당신과 변호사는 그 일에 관해서는 ‘동지’입니다. 서로 긴밀하게 의논해서 변호사가 세운 전략과 이후의 일정을 믿어줘야 합니다. 변호사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줘야 합니다. 나 말고도 그 변호사에게는 때로는 더 높은 수임료로 사건을 맡기는 다른 의뢰인들이 있거든요. 잘 해결해달라고, 자꾸 불안해 하면서 한 말 또 하고, 또 확인하는 식으로 변호사를 괴롭히면 일하기 힘듭니다. 요즘은 핸드폰 번호를 확인해서 주말에도 연락하는 분들이 있다는데요. 변호사도 주말에는 쉬어야지요.

5. 아무리 바쁜 변호사라 할 지라도 그들이 바쁜 이유는 의뢰인을 위해 시간을 쓰기 때문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주지 않는 변호사는 이미 당신의 변호사가 아닙니다. 변호사와 계약할 때 변호사가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정확하게 요구하고 확인하세요.

6. 패소 가능성에 대해서, 소송이 잘못될 가능성에 대해서 염두에 두고 그로 인해 초래될 결과와 해결 방식에 관해서도 변호사와 미리 상담해 두세요. 때론 조정으로 서로 양보하는 해결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쓰디 쓴 말이겠지만, 그런 말도 나에게 해주는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변호사에게 맡겼으니 무조건 이길 것이다라는 식의 자기 기만은 본인에게나 변호사에게나 좋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좋은 변호사를 만나는 법이기도 하고, 제 후배들에게는 좋은 변호사가 되는 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일전에 후배가 개업 변호사로서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사업(?)의 저변을 늘일 것인가를 물은 적이 있어서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사건의 의뢰인들에게 충실한 게 가장 좋은 비법이라고 답한 적 있습니다. 변호사는, 천하의 어떤 명분과 대의를 솜씨 있게 갖다 붙여 외친다 할 지라도 나에게 사건을 맡긴 의뢰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직업이 그 기본입니다.

그나저나 왜 자료는 안 오는 건지… 오늘은 그냥 퇴근각이네요.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