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폴리시] 30년 역사 수도권 매립지 올해 말 종료… 직매립 유예? 민간 위탁 소각? 시멘트 원료? 업자들만 신났다. (⌚7분)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를 둘러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폭탄 돌리기’가 이번에는 끝을 볼 수 있을까.
수도권 매립지 정책 4자 협의체(환경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는 기초 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수도권 생활폐기물 대체 매립지 후보지 4차 공모’에 나섰다. 지난 5월 13일 시작한 공모는 10월 10일까지 150일 동안 진행한다.
4자 협의체는 2021년 두 차례, 2024년 한 차례 등 모두 세 차례 대체 매립지 후보지 공모를 진행했지만, 손들고 나선 지자체는 없다. 이번 공모는 매립지 최소 면적 기준을 90만m²에서 50만m²로 대폭 축소하거나 민간도 공모에 참여토록 하는 등 기존 문턱을 크게 낮췄다. 그런데도 전망은 썩 밝지 않다. ‘기피·혐오 시설’로 인식되는 쓰레기 매립지를 반길 주민은 드물다.
🗑️생활폐기물
폐기물관리법상 사업장폐기물 외의 폐기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가정이나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지칭한다.
이게 왜 중요한가: 갖다 묻을 데가 없다.
- 수도권 3개 시도는 2026년부터 쓰레기 직매립을 금지한다. 수도권 이외 지역은 2030년부터다. 환경부는 2021년 7월 종량제 봉투에 담긴 생활폐기물을 선별하거나 소각 없이 매립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을 공포했다.
- 지금까지는 소각 없이 종량제 봉투 그대로 땅에 파묻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하루 평균 3200여 톤인데 서울시 소각장 4곳에서 처리 가능한 양은 2200여 톤밖에 안 된다. 나머지 1000여 톤은 민간 소각장으로 가거나 인천 서구의 수도권 매립지에 봉투채로 묻었다.
- 직매립 금지 시기는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대체 매립지 확보는 요원하다. 서울과 마포구 갈등에서 알 수 있듯, 지자체의 공공 소각시설 신설이나 증설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 이대로면 ‘쓰레기 대란’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지자체·주민·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해법 마련이 무척 어렵다.

서울·경기 쓰레기, 30년 동안 인천에 갖다 묻었다.
- 서울과 경기도에서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는 인천 서구로 향했다. 30년이 넘는 역사다. 1989년 정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는 수도권 매립지 건설·운영 협정을 체결한 뒤 1992년 2월부터 수도권 매립지에 폐기물을 반입하기 시작했다. 매립지 운영 주도권을 놓고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자 2000년 7월 특별법 제정으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인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SL공사)를 설립했다.
- 수도권 매립지는 인천시와 경기도 김포시 일부 지역을 포함해 전체 1∼4공구로 나뉜다. 크기는 여의도 면적(8.4km²) 두 배인 16.18k㎡로 세계 최대 규모다.
- 1일 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매립지 반입 폐기물 총량은 107만 2000톤으로 전년(129만 3000톤) 대비 약 17% 감소했다. 2020년 도입된 생활폐기물 반입 총량제(수도권 매립지에 반입할 수 있는 생활폐기물의 연간 총량을 미리 정해 제한하는 제도)로 인해 폐기물 규모는 감소 추세다.
- 올해 1~5월 서울에서 반입한 생활폐기물은 7만 9433톤(서울시 할당량 22만 2000톤 대비 35.8%), 경기에서 반입한 생활폐기물은 9만 5661톤(경기도 할당량 21만 2336톤 대비 45.1%), 인천에서 반입한 생활폐기물은 3만 5519톤(인천시 할당량 7만 7493톤 대비 45.8%)이다.

인천 “2025년 수도권 매립지 종료” 정부·서울시 “매립지 용량 여유 있어”
- 당초 수도권 매립지 사용 기간은 2016년 말까지였다. 4자 협의체는 사용 종료 1년여를 앞둔 2015년 6월 ‘쓰레기 대란 위기’를 이유로 잔여 부지였던 제3-1공구(103만㎡)를 사용키로 하는 등 운영 기한을 연장했다. 3-1 공구가 2025년에는 포화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에 사용 종료 시점을 4자 합의서에 못 박지 않았어도 수도권 매립지 운영은 2025년 말 종료될 것으로 인식됐다.
- 인천시의 경우 2020년 지면 광고를 통해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버린 쓰레기를 감당해온 인천, 3-1매립지를 마지막으로 2025년 수도권 매립지 운영을 종료한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인천 역시도 내년 직매립 금지 조치에 앞서 소각장 확충 사업이 전혀 진척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역 언론은 인천시의 수도권 매립지 운영 종료 의지마저 의심하고 있다. [관련기사 : 수도권매립지 2025년 종료 물거품… 인천시 “종료 약속한 바 없어”]
- 수도권 매립지가 위치한 인천 서구 검단 주민들은 2025년을 끝으로 수도권 매립지는 종료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도권매립종료 주민대책위원회장 백진기는 “정부부터 공식적으로 현 수도권 매립지 종료를 공식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입장이 확고해야 각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쓰레기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라 방침을 세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 반면, 서울시는 2025년 이후에도 수도권 매립지 사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종료 시한이 2025년으로 예정돼 있으나 다행히도 용량 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에는 환경부 장관이 “대체 매립지 공모에 응하는 지자체가 없을 경우 수도권 매립지 3-1 공구를 계속 활용하겠다”고 밝혀 지자체 사이에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 vs. 마포구, 소각장 갈등에 드러누운 주민들.
- 서울시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023년 8월 새 쓰레기 소각장 부지로 마포구 상암동을 최종 선정했는데, 주민들은 소송으로 서울시 행정에 맞섰고, 최근에는 실력 행사까지 불사하고 있다.
-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월 마포구 주민 1850명이 서울시를 상대로 낸 취소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소각장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등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판단, 서울시 패소를 선고했다. 서울시가 1심에 항소해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이다.
- 현재 서울시는 마포(750톤), 강남(900톤), 노원(800톤), 양천구(400톤) 등 4곳에서 소각장을 운영하고 있다. 모두 20년 이상 된 노후 시설로 시설 용량 대비 약 77%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 주민들은 강경하다. 서울시가 마포 소각장 공동 사용 기한을 연장하자 이에 반발한 마포 주민들이 지난달부터 매일 밤 반입 차량을 가로막고 시위 중이다. 마포 소각장은 마포구를 포함해 종로·용산·서대문·중구 등 5개 자치구가 공동 사용하고 있다.
-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평상시 소각장 측은 반입 쓰레기의 약 10%를 무작위로 열어 음식물, 의료폐기물 등 불법 혼입 여부를 점검했다. 최근 주민들은 “그 정도로는 불법 쓰레기 반입을 막을 수 없다”며 전체의 30∼40%까지 개봉을 요구하며 쓰레기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다.
- 마포소각장 백지화 투쟁본부 위원장 성은경은 “마포에는 이미 기존 750톤의 소각장이 설치돼 있어 매일 서울시 5개구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며 “그런데 바로 옆에 또다시 1000톤의 소각장을 설치·운영한다면 서울시 쓰레기의 55%인, 1750톤의 쓰레기가 매일 한 지역에서 태워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5년 동안 뭐하다 이제 와서 ‘직매립 금지 유예’라고?
- 수도권 매립지 확보는 기약 없고 지자체 소각장 신·증설은 주민 반발에 발도 제대로 못 뗀 가운데, 환경부는 내년 시행할 ‘직매립 금지’를 2년 유예하는 것으로 가닥 잡았다. 지난 4월 국회에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 환경부는 수도권 매립지 반입 총량제와 부담금 강화(종량제 봉투를 수도권 매립지에 매립할 때 톤당 1만 5000원의 부담금을 낸다.) 등 패널티를 부과해 지자체의 소각장 증설을 독촉한다는 계획이지만 실효성에 의문 부호가 뒤따른다.
- 인천환경운동연합은 “지자체와 환경부 모두에 5년이라는 충분한 준비 시간이 있었는데도 또다시 유예를 꺼낸 환경부의 판단은 명백한 정책 후퇴이며 직무유기”라고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폐기물 쟁탈전’ 시멘트업계 vs. 민간 소각업계.
- 한시가 급한 지자체들은 공공 소각장 신·증설 대신 민간 소각업계나 시멘트업계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 시멘트업계는 생활폐기물을 수거해 시멘트 제조 과정에 필요한 연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유연탄 대신 폐플라스틱 등 순환 자원을 활용하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고, 폐기물 매립으로 인한 환경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시멘트업계의 가연성 폐기물 사용량은 2018년 123만 톤에서 2024년 236만 톤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여기에 불연성폐기물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860만 톤에 달한다. 시멘트업계가 폐기물을 싹 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시멘트 소성로(시멘트 원료를 고온에서 가열해 화학적으로 변화시키는 회전식 대형 원통형 가마)에서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은 사실상 소각인데, 이 과정에 인체 유해 물질이 유출된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문제의식이다.
- 강원도 강릉, 동해, 제천, 영월 등 ‘시멘트 벨트’가 수도권 폐기물 처리장으로 전락하면서 지역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멘트 벨트 주민인 임창순(시멘트환경문제해결 범국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원인 유발자 책임 원칙을 지켜야 한다. 쓰레기를 발생시킨 주체가 그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책임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는 것은 상식”이라며 “수도권 주민들이 발생시킨 쓰레기 처리에 드는 비용을 원인 제공 지역에서 일정 부분 부담하도록 하는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 시멘트업계의 폐기물 처리가 급격하게 늘면서 민간 소각업계는 “물량을 뺏겼다”고 반발하고 있다. “쓰레기 시멘트”라며 네거티브 선전도 펼치고 있다. 한국자원순환에너지공제조합(공제조합) 전무 장기석은 “폐기물 사용 시멘트의 경우 아토피 및 각종 암을 유발하는 6가 크롬(국제암연구소가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한 중금속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다”면서 “폐기물 사용 시멘트로 건축한 구조물의 파손·노후화로 말미암아 대기 중에 흩날리는 시멘트 가루를 흡입하면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고 했다. “시멘트 생산 시 폐기물 사용 여부에 따라 시멘트 제품 내 중금속 함량은 최대 10배 이상 차이가 발생한다”고도 덧붙였다.

전망: 민간에 소각 위탁? 쓰레기 줄이는 게 근본 해법.
- 민간 소각 시설을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환경부 비영리민간단체 글로벌 에코넷 회장 김선홍은 국회 토론회에서 “직매립이 금지되기 때문에 소각은 필수적 처리 방식일 수밖에 없다”며 “소각 시설 확충에 어려움이 있다면 기존 시설 현대화를 통해 가동률을 높이거나 민간 소각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그러나 민간 소각장 위탁에는 작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수도권 매립지의 매립 단가는 톤당 9만 8000원인데 민간 소각장의 평균 소각 단가는 톤당 26만 6000원으로 수도권 매립지 매립 단가보다 약 2.7배 비싸다.
- 반면 공제조합 자료를 보면, 하루 1000톤의 생활폐기물 처리를 위해 신규 마포소각장 설치·운영에 들어가는 고정 비용은 20년 동안 최소 2조3900억 원인데 반해 기존 민간 소각장 위탁 비용은 1조200억 원에 불과해 1조37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 다만 공제조합이 국내 산업폐기물 소각업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걸 감안할 필요가 있다. 공제조합 전무 장기석은 “서울, 경기, 인천의 가연성 생활폐기물의 직매립량은 연간 약 63만3000톤”이라며 “민간 소각장 여유 용량은 98만 3000톤으로 충분한 처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 “폐기물을 태워 에너지를 얻는 자원회수시설을 통해 폐기물을 효과적으로 줄이고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김선홍)는 제언도 경청할 만하다.
- 정부와 지자체는 쓰레기 자체를 줄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친환경 포장재 사용, 일회용품 줄이기, 올바른 분리 배출 교육 등 기존 정책 및 시스템 강화도 뒷받침해야 한다. 소각 시설을 지역 랜드마크, 관광·교육 현장으로 발전시킨 일본, 덴마크 등 선진국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