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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주주 권리 강화하는 상법개정안, 책임 없는 권리의 덫에 갇힐 수 있다.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 이해관계자 중심의 ‘책임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정승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7분)

📜 소셜코리아 ‘상법 개정안’ 특집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서,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평가 속에 종합주가지수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소액 주주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반면, 기업 쪽에서는 부정적인 기류도 적지 않습니다. 주주의 이익을 앞세우다 보면 기업의 혁신 의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열린 공론장을 지향하는 ‘소셜코리아’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몇 차례 게재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로, 주주 권리 강화가 자칫 ‘책임 없는 권리’의 덫이 될 수 있다며,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 이해관계자 중심의 책임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의 기고문을 소개합니다.

이에 대한 반론도 곧 이어질 예정입니다. (소셜코리아)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코스피 등 주가가 상승세를 나타나고 있다.

최근 논의 중인 상법개정과 자본시장법 개정은 재벌 총수 등 지배 주주의 횡포와 사리사욕 추구를 막으려는 ‘선한 의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은 소수 주주의 권리를 높이는 주주 자본주의다. 모든 주주는 동등한 주권을 가진 동등한 주인이라는 주주 민주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상법개정안의 전제, 주주 자본주의

먼저 법률적으로는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이며 주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주주는 주식 일부를 소유했을 뿐이다. 회사 자산에 대한 통제권과 처분권은 그에게 없으며 그 권한은 이사회와 경영진이 행사한다. 모든 회사 자산 소유의 주체는 회사 즉 법인격 그 자체이며 주주는 배당권과 잔여재산 청구권, 그리고 주총 의결권을 가질 뿐이다. 유한책임 주주의 한계이다.

주식회사와 주식시장 제도가 성장한 결정적 전환점은 19세기 중반 주주 유한책임(limited liability) 원칙이 정착하면서다. 주주가 회사의 채무에 대해 자기 지분만큼만 책임지기 때문에 회사가 파산할 경우에도 주주의 개인 재산은 보호받도록 하는 제도다. 이전에는 주주 무한책임 원칙이 일반적이어서 기업 파산 시 주주·투자자들도 큰 손해를 입었다. 유한책임 원칙은 주주·투자자의 투자 리스크를 제한해, 주식 매입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었다. 유상증자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주식회사와 주식시장 제도가 성장한 결정적 계기다.

그런데 지배 주주 역시 소수 주주와 마찬가지로 유한책임의 주주일까? 이 경우 은행이 지배 주주가 이사회를 장악한 회사에 기꺼이 돈을 꿔주려 할까? 거래업체가 그 회사와 기꺼이 외상·어음 거래에 나서려 할까? 은행은 단순히 법적 책임 여부보다 거래 회사 지배 주주의 신용과 평판(개인의 재산 담보력도 포함된다)도 고려해 대출 여부를 판단한다. 기업 간 어음 거래 역시 거래 상대 회사 지배 주주의 신뢰성(재산과 실력 등)에 기반 한 공식·비공식 신용 시스템에서 작동한다. 한마디로 ‘신용 기반’ 자본주의인 셈이다.

현실 경제와 현실 법 적용에서는 소수 주주에 견줘 지배 주주에게 훨씬 높은 윤리적·사법적 책임이 부과된다. 회사의 지배 주주는 잘못된 이사회 결정에 대해 훨씬 높은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일종의 무한 책임이다. 반면에 회사의 의사결정 및 경영과 무관한 주주·투자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유한책임 원리가 작동한다. ‘권한에 비례하는 책임’의 원리다. 지배 주주와 소수 주주의 책임을 이렇게 차등화하는 것은 사회 정의와 경제 정의에 부합한다.

주주 자본주의 ‘무책임’을 비판하는 이유

그렇다면 주주 자본주의의 전제인 ‘모든 주주는 평등한 주인’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소수 주주들도 지배 주주처럼 자기 지분보다 더 많은 윤리적, 사법적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것인가? 소수 주주들의 권한을 지배 주주에 대항할 만큼 만큼 강화하되 책임은 유한책임 원칙을 내세워 회피하겠다는 것인가? 이 경우 ‘책임 없는 권리’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주주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미국에서는 주주·투자자들의 무책임한 권리 요구와 권리 행사가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수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에 떠넘기는’ 주주·투자자들이 온갖 논란을 야기한다. 스티글리츠(노벨경제학 수상자)와 로버트 라이히(전 미국 노동부 장관) 등 세계적 경제학자들이 미국 자본주의를 유한책임 주주·투자자들이 상장사와 은행 등의 이사회와 경영을 사실상 좌우하며 지배하는 ‘무책임 자본주의’라고 비판한 이유다. 2008년 월스트리트 발 세계 금융위기도 그로 인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2019년 엘리자베스 워런은 미국 경제가 ‘무책임 자본주의에서 책임 자본주의(accountable capitalism)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무책임 주주·투자자들을 억제·규제해야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사회적 파괴와 생태파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9월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 세계 금융 위기의 상징이 됐다.
‘무책임 자본주의에서 책임 자본주의(accountable capitalism)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9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한 엘리자베스 앤 워런 (Elizabeth Ann Warren, 1949년 생)

주주 자본주의의 기저에는 회사는 오직 주주들의 결사체 즉 ‘자본의 결사체’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우리나라 상법·회사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자본과 함께 노동과 토지(자연)의 세 가지 생산 요소를 반드시 포함해 작동한다. 생산의 주체인 회사는 자본만 아니라 노동(사회)과 토지(생태)가 반드시 함께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결사체’다.

스티글리츠와 엘리자베스 워런에 따르면, 회사란 주주(지배 주주와 소수 주주)만 아니라 직원·노동자와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공동체이다. 게다가 언제든 주식을 팔고 떠나면 되는 충성심 없는 유한책임 주주·투자자와 달리, 직원·노동자들과 가족(지역사회를 포함해)은 때로 평생을 회사를 위해 일한다. 심지어 회사가 많은 빚을 지거나 손실을 입어 위기에 처할 경우, 임금삭감과 추가 근무까지 감수하는 ‘책임질 줄 아는 이해관계자’다.

그래서 워런은 “대기업은 단지 주주·투자자만 아니라 노동자, 지역사회, 국가로부터 법인격과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이며 따라서 이들 모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 대기업은 상장·비상장 불문하고 이사회 구성원의 40% 이상을 독일식 노동이사로 선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Accountable Capitalism Act). 이 법을 둘러싼 논란은 2019년 미국의 주요 대기업 CEO 연합체(Business Round Table)가 ‘기업 경영의 목적은 주주·투자자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이해관계자의 이익 도모다’라고 선언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고, ESG 논의로도 이어졌다.

즉, 재벌 총수 등 지배 주주의 무능과 사리사욕, 순환출자 등의 문제는 주주·투자자 모델만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델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볼 때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논의들이 제시되어왔다.

주주 권한 강화하면 경제가 성장할까?

주주·투자자 권리 강화는 주주·투자자 수익성 강화로 이어진다. 주주권 강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낮은 주주환원율(29~32%)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며, 그것을 미국(약 92%) 수준은 아니라도 적어도 OECD 선진국 평균(68%) 이상으로 높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권사와 투자자단체들은 76%까지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주환원액은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을 합친 액수를 뜻한다. 요즘은 주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ROE(자기자본이이익률)와 PBR(주가순자산비율)을 높이는 방식을 요구한다.

법인세 납부 후 순이익은 주주환원과 이익잉여금(사내유보금)으로 배분된다. 주주환원이 많아질수록 사내유보금이 감소한다. 회사의 실물투자 재원에는 내부자금(사내유보금)과 외부자금(대출금과 회사채·주식 발행)이 있다. 사내유보금은 무이자·무배당이므로 회사 경영진이 가장 선호하는 재원이다. 따라서 사내유보금이 감소하면 실물투자가 줄어들 위험이 있다. 주주환원율을 32%에서 76%로 2배 이상 높이면 우리나라 상장사들의 실물 투자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정부의 ‘성장 우선’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지점이다.

고투자·고성장을 보여온 중국의 주주환원율(31%)과 비슷한 수준의 낮은 주주환원율 덕분에 한국 경제는 1인당 평균 소득 3만6천 달러를 달성하며 겨우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 앞으로 OECD 평균 수준의 높은 주주환원율로 저투자·저성장 모델이 고착될 경우,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서 멈춘 채 정체될 위험성도 적잖다.

‘보잉’ 사례를 보라

더욱이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ROE(자기자본이이익률)를 높이면 자기자본(E)이 줄어들어 회사가 파산할 위험성도 커진다. 미국 상장사들은 92%의 높은 주주환원율의 약 절반을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달성하는데,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수익이 감소해 현금흐름이 약해질 경우 즉각 파산 위협에 직면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잉이다.

보잉은 2014~2018년 기간에 누적 순이익보다 더 많은 액수를 주주·투자자에게 환원했고 그 절반 가량을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는 데 사용했다. 그 결과 회계상 자기자본이 2014년 150억 달러에서 2018년 4억 달러로 급감했다. 자기자본(E)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순수익(R)은 차이가 없었지만 ROE(자기자본이이익률)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급증해 주가가 급등했다. 그로인해 주주·투자자들과 경영진(스톡옵션 부여)은 큰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2019년부터 보잉 737 Max 기종에서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보잉 경영진이 품질·기술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20~22년에는 코로나 셧다운으로 세계 항공기 수요가 급감했다. 2019년부터 누적 적자가 3백억 달러가 넘었다. 겨우 4억 달러의 자기자본은 순식간에 잠식되었고, 회사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 이르렀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지원(회사채 보증)과 연방정부, 즉 국방부와 NASA 차원의 보조금(조달계약)이 없었다면 보잉은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 국민의 혈세로 회생한 셈이다. 대동소이한 일이 반도체 기업인 인텔에서도 지난 15년간 벌어졌다. 주주·투자자들은 수익만 빼먹고 손실은 사회와 국가에 떠넘겼다.

과도한 주주환원율로 위기에 처했던 보잉. 결국 ‘단물’은 주주∙투자자가 모두 빼먹고, 파산 위기의 손실은 국가와 사회가 떠안았다.

높은 주주환원율과 기술 투자, 공존 어렵다

혹자는 미국의 화이자(제약), 엔비디아(반도체), 구글(IT) 등의 사례를 들어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높은 주주환원율과 높은 기술투자(R&D)가 동시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화이자와 엔비디아, 구글은 영업마진율(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30~5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순이익이 영업이익의 절반 수준에 이를 정도로 높기 때문에, 순이익의 대부분을 주주·투자자들에 환원해도 나머지 절반으로 세계 최고 R&D 집중도(매출액의 15~25%)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가 지난 80년간 ‘기업가형 국가’(미국 경제학자 마추카토의 저서로,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내는 주체로서의 국가’를 강조) 정책을 펼친 결과, 미국 회사들이 인공지능(소프트웨어)과 반도체, 바이오·제약, 항공·우주 등 과학·지식 기반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사실상 독과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 정부와 대기업들이 앞으로 수십 년간 노력해도 모방·추격이 쉽지 않은 모델이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저서 [기업가형 국가] (2013)에서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내는 주체로서의 국가’를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가 국가전략 산업으로 지정한 인공지능(네이버 등)과 반도체(삼성전자 등), 전기차(현대기아차 등), 이차전지(LG엔솔 등), 바이오·제약(셀트리온 등), 방산(현대로템 등) 산업의 영업마진율은 5~15% 수준이다. 한국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의 대기업 역시 대동소이하다.

미국의 과학·지식 기반 회사들은 제조·공정(공장)을 아웃소싱한다. 그에 반해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제적 비교우위를 제조·공정 관련 품질관리와 기술력에서 확보해 수익을 내고 있다. 설비와 공장에 많은 자본과 자산이 투하되는 만큼 ROE(자기자본이익률)와 ROA(총자산이익률)를 손쉽게 높일 수 없다. 그런데도 ROE를 높이고 그 순이익의 70% 이상을 주주·투자자들에 분배하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경우, 한국의 상장 대기업들은 쇠퇴의 길로, 재무적 부실화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적잖다. ‘기술 주도 성장’에 부응하고 싶어도 투자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진다. 정부가 국민 혈세를 퍼부어 보조금을 늘려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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