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주주자본주의는 악,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선’이라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며, 현실은 이 두 가지가 혼재한다. 한국은 ‘총수 자본주의’일 뿐이다. (이창민/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 상법 개정안 특집
📜 소셜코리아 ‘상법 개정안’ 특집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서,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평가 속에 종합주가지수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소액 주주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반면, 기업 쪽에서는 부정적인 기류도 적지 않습니다. 주주의 이익을 앞세우다 보면 기업의 혁신 의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열린 공론장을 지향하는 ‘소셜코리아’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주주 권리 강화가 자칫 ‘책임 없는 권리’의 덫이 될 수 있다며, 주주 자본주의를 넘어 이해관계자 중심의 책임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의 기고문을 실었습니다.
두 번째로 ‘주주자본주의는 악,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선’이라는 것은 기실 신화에 불과하며, 현실은 이 두 가지가 혼재해 있다는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의 반론을 게재합니다. 이 교수는 상법 개정은 총수 자본주의를 바꿔야 한다는 1,400만 개미 투자자의 목소리가 성과로 이어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상법 개정에 대한 다른 의견도 적극 환영합니다. (소셜코리아)
2025년 7월 통과된 상법개정안에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주주권리 보호 강화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이사의 충실의무를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명확히 했다.
- 둘째, 상장회사가 감사위원을 이사회와 분리 선출 시,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모두 합쳐 3%로 제한했다.
- 셋째, 자산 2조 원 이상 기업은 하이브리드 주주총회를 의무화해 주주들이 온라인으로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 넷째, ‘사외이사’라는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최소 비율을 33%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전체적으로 주주 친화적 제도 개선으로 평가되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재계는 물론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주주 자본주의냐,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냐’라는 오랜 논쟁도 재현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지금은 관념적인 대립을 넘어,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둘러싼 비판 중에서도 의미 있는 몇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혼재한다
쟁점을 따지기에 앞서 기업지배구조의 현실에 대해 잘못 알려진 오해부터 정리해보자. 최근의 기업지배구조 원칙들을 보면, 주주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OECD의 ‘기업지배구조 원칙(OECD Principles of Corporate Governance, 2023)’은 기업지배구조의 목적을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조성, 그리고 효율적인 자원 배분의 촉진으로 제시한다.
이 원칙은 주주권, 특히 소수주주에 대한 공정한 대우를 강조한다. 하지만 주주의 이해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기업과 이해관계자 간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부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확대하며, 재정적으로 건전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각국의 실제 기업지배구조는 어떨까? OECD의 ‘기업지배구조 현황보고서(Corporate Governance Factbook, 2023)’에 따르면, 소수주주 보호 강화, 이사회 독립성 제고, ESG 정보 공시 확대와 지속가능경영 요구 증가는 지역을 불문하고 공통으로 나타난다. 이 중 소수주주 보호가 주주자본주의의 핵심 요소인 반면, ESG 공시와 지속가능경영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적 요소에 해당한다. 현실적으로는 한 국가 내에서도 두 모델이 혼재된 형태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가깝다고 알려진 유럽의 기업들도 최근 들어 자사주 매입 확대,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주가 중심의 경영성과 평가, 경영진 인센티브 강화 등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요소들을 상당히 수용하고 있다. 오히려 제도를 상세하게 들여다보면 주주 중심제도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그냥 ‘총수자본주의’일 뿐이다
일각에서는 상법 개정 등 최근 일련의 흐름을 ‘주주권 강화의 일방통행’으로 우려하지만, 이는 현실을 외면한 기우에 가깝다. 한국은 총수일가의 전횡으로 인해 ‘오너 리스크’라는 말이 일상화된 나라다. 기업지배구조 지표는 아시아에서도 최하위권이며, 주주환원율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볼 때 선진시장에 견줘 최소 20년 이상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번 상법 개정만으로 한국이 ‘주주환원률이 90%가 넘는 미국처럼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과도한 비약에 가깝다.
이재명정부는 주주권 강화 일변도의 정책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주주권 강화는 IMF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조금씩 진전되어왔다. 이번 상법 개정은 1,400만 개미 투자자의 자본시장에 대한 요구와 압박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진 것으로 봐야한다.

이재명 정부의 기업 정책 공약을 보면 ESG 경영 강화가 명확히 담겨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진전을 보지 못했던 ESG 기업 경영 지원, 국민펀드를 통한 탄소 감축·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공적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내실화, ESG 공시·측정·평가 인프라 구축,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공시, 그리고 ‘Say on Climate’(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관련해 주주에게 발언권 및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의 단계적 도입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ESG 관련 정책들이 재계의 저항을 넘을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를 강화하는 길이다.
참고로, 미국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간주되어온 엘리자베스 워런의 ‘책임 자본주의 법안(Accountable Capitalism Act)’은 2018년 발의 이후 민주당이 집권한 시기에도 단 한 발짝의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트럼프 집권 2기에는 ESG 투자 자체를 둘러싸고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재계는 주주자본주의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든 모두 반기지 않고 있는 셈이다.
투자 감소, 정말 주주자본주의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과도한 주주권 강화가 기업의 장기 성장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미국 기업들이 이윤의 90%를 주주에게 환원해 장기 투자가 위축되고, 단기 수익을 중시하는 주주의 압박으로 인해, 신사업 진출 등 미래 지향적인 결정이 좌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대기업들이 수익 대비 설비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실증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그 원인을 두고 견해가 엇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야를 미국에 국한하지 않고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선 21세기 들어 생산성과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것은 선진국 전반의 공통된 현상이며 유형·무형 자산에 대한 기업의 투자 감소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즉, 기업 투자 축소는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이를 주주자본주의의 결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대기업들도 같은 시기 수익 대비 설비투자가 감소했다. 한국은 미국처럼 주주환원률이 높지도 않다. 이처럼 OECD 국가 중 주주환원율이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하는 한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투자 위축의 원인을 단순히 주주 중심 경영으로 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의 일부 기업들이 주주환원에 집중하다 투자 소홀로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주주자본주의의 구조적 결함이라는 식의 일반화도 위험하다. 이것이 설득력을 지니려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유럽 기업이 일군 성과와 비교 분석이 전제되어야 한다.
시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구글, 애플, 엔비디아 같은 미국의 첨단 빅테크 기업들을 안다. 하지만 유럽의 10대 기업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첨단 산업에서 유럽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투자, 혁신과 장기 성장에 유리한 ‘책임 있는 자본주의’라는 주장은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본격적인 주주자본주의가 미국에 자리 잡은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수많은 혁신 기업을 키워냈다. 미국 기업도 여러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 기업이 잘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 또한 직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점은, 이번 상법 개정이 단지 배당 확대만을 위한 제도라는 오해다.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회와 주주총회의 개혁을 통해 기업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정당성, 그리고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왜 한국 재벌들은 배당도 하지 않고, 설비투자도 꺼리면서 계열사를 쪼개고 합치는 ‘레고 놀이’에만 집착하는가? 그 이면에는 총수 일가의 전횡이 있으며, 이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 없이는 기업의 미래지향적 의사결정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적 대타협? 재벌은 받기만 했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논의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주장이 있다. 바로 ‘사회적 대타협론’이다. 재벌의 경영권을 완전히 해체하거나, 주주의 권한을 과도하게 확대하기보다는 양자 간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발로다. 주주권 보호를 주장하는 누구도 ‘균형’을 반대하지 않는다. 개혁은 총수와 일반 주주 간의 절충 속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은 재벌 해체가 아니라,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며 제도를 고쳐보자는 실용적인 접근에 가깝다. 예컨대 이번 상법 개정안의 핵심 중 하나인 ‘3% 의결권 제한’은 감사위원 선임 시 최소한 한 명이라도 독립적인 인물이 이사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조처다. 모든 이사가 총수와 가깝다면, 그러한 기업일수록 배당도 인색하고, 투자에도 소극적이거나 아예 문어발투자로 기업을 위기로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또 다른 대타협론은 이렇게 요약된다. 재벌이 고용과 투자를 책임지고, 그 대가로 총수 일가에 일정한 편의를 제공하자는 이른바 ‘주고받기론’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무력함을 드러내 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삼성과 현대차를 비롯해 주요 대기업이 약 1,10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단 한 걸음도 진전되지 않았고, 총수의 사익추구는 계속됐다. 약속했던 1,100조 원의 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기업들은 기존 인수·합병 계획 등을 끌어 모아 숫자를 맞추거나, 경기 악화를 이유로 투자를 연기했다고 변명할 것이다. 결국 총수는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받기만 한’ 셈이다.

물론 정부와 재계는 국가 경제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정책 또한 절실하다. 정부는 기업에 필요한 것을 지원하고, 재계는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상호 협력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필요한 것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총수’가 원하는 것을 정부가 챙겨주는 방식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실효성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