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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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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의 택시일기

“날이 이렇게 좋은데 우야든 둥 건강해야 혀.”

칠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할머니. 차창을 한참 보시다가 갑자기 말문을 여신다. 눈부시게 밝은 날. 신록이 푸르고 곳곳에 활짝 꽃들이 피었다. 참 좋은 봄날이다.

“왜요? 할머니. 어디 건강이 안 좋으세요?”
“아니 내가 아니라 우리 며느리 말이야. 얼마 전 유방암 판정을 받았어.”
“저런. 그 전에 전혀 몰랐나요?”
“그게 참 희한하데. 매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늘 괜찮았거든. 그런데 이번에 딱 발견이 된 거야. 그래서 삼성의료원에 수술 일자 잡아 두었어.”

“유방암은 그래도 잘 낫는 병이니까 너무 심려 마세요.”
“그렇다고 하지. 그래도 며느리는 아주 침통해. 목숨이야 살릴지 몰라도 여자의 가슴을 들어낸다는 게 보통 일이냐고. 그 상실감이 크거든. 더욱이 며느리는 평소 가슴에 대한 자부심이 컸어. 나이가 마흔 중반에 접어드는데도 가슴이 탱탱해. 아주 크고 이쁘거든.”

“수술하면서 모양은 다시 살려줄 거예요.”
“그런가 봐. 시절이 좋아. 돈이 들어 그렇지. 요즘엔 암 수술과 한꺼번에 가슴 성형까지 하나 보더라고.”
“상실감이 있어도 목숨과 바꿀 수는 없잖아요? 우선 살아야지요.”
“그렇지. 그런데 당사자는 영 안 그런가 봐. 말도 안 하고 밥도 안 먹고. 그래. 뭘 물어도 대답도 잘 안 하고. 좀 그래.”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할머니는 며느리가 지나치게 걱정한다고 약간 불만이셨다.

“왜 진작 몰랐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자주 만져보고 했을 건데. 통증이 없으니까 이건 순 운 같아.”
“수술 후에는 항암 치료받아야 하고 고통이 많을 거예요. 잘해주세요.”

“우리 아들이 걱정이지. 직장 다니면서 며느리 뒷바라지해야지. 돈 대줘야지. 애들 돌봐야지. 불쌍한 녀석.”

순간 나는 헉 말문이 막혔다. 며느리도 걱정되지만 결국 아들 걱정이다. 시어머니들의 마음 한편을 슬쩍 보이고 말았다. 아무래도 아들이 더 신경 쓰인다.

“내가 다니는 절에 한 보살이 작년에 유방암 수술하고 가슴을 들어냈거든. 다른 한쪽으로 옮겨갈지 모른다고 해서 양쪽 다 들어냈어. 보형물을 넣으면 안 좋다는 말을 들었나 봐. 민 가슴에 왜 있잖아? 뽕브라. 그걸 크게 해서 다녀. 며느리도 그러면 되는데 굳이 돈 들여 가슴 만드는 수술을 하려고 하데?”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지금은 위로가 필요할 때인 것 같은데요. 힘을 많이 북돋아 주세요.”
“그래야지. 아무튼, 걱정이여. 우리 아들이 그 가슴을 그렇게 좋아 했는디…”

참 너무 하시네. 아들 걱정을 일단 끄집어내고 나니 며느리는 간데없고 아들 걱정만 하시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수술을 앞둔 며느리를 두고 할 말인가? 마음이 상해 입을 다물었다.

“참 유방암이 전염성은 없지?”
“그럼요. 왜 주위에 또 있어요?”
“아니. 내가 요즘 이상하게 가슴이 자꾸 땡겨. 기분 탓인가?”

여성의 상징. 유방을 들어낸다는 건 심각한 일이 분명하다. 이때 여성이 겪는 정신적 충격과 그 상실감을 잘 위로해줄 수 있어야 한다.
남자가 전립선암으로 발기불능에 빠지거나 사고로 성기를 잃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그 며느리를 걱정하며 차를 몰았다. 내리는 할머니에게 결국 난 한마디 하였다.

“이제 아들한테 자식 돌보고 밥하는 일은 직접 나서 하라고 하세요. 아들 역할이 제일 중요할 것 같네요. 늘 자랑스러웠던 아름다운 가슴을 잃는 사람은 아들이 아니고 며느리니까요.”

내가 약간 화가 났음을 아셨을까? 두말하지 않고 가신다.

2013년 4월 30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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