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

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box]

김창현의 택시일기

새벽 5시 40분. 날이 길어져 환하다. 낮에는 더워도 이 시간대에는 시원하다. 약간 춥게 느껴지기도 한다.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차에 오른다.

“우정동으로 가요.”
“예.”

출발하면서 다시 묻는다.

“우정동 어디에 세워 드릴까요?”
“언양 가는 버스 서는 곳에 아무 데나 세워 주세요.”

가끔 이런 손님을 만나는데 대략 난감한 경우가 많다. 버스 정류장은 곳곳에 많기 마련이고 노선 잡기가 대단히 어렵다. 서로 적당히 대화를 나눠 동강병원 못 미쳐 버스 정류장에 가기로 하였다.

아들 뒷바라지 위해 요양보호사 시작해

“둘째 아들이 서울에서 축구를 하는데요. 월 100만 원 가까이 돈이 들어가요. 도저히 우리 집 형편으로 아들을 밀어줄 수 없어 할 수 없이 제가 일을 나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학원에 다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거든요. 얼마 전까지 요양원에 있었는데 오늘부터 언양 00 병원에 출근하게 되었어요. 간병인이 되었거든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시작한 요양보호사. 그 힘들고 어려운 요양보호사 생활을 나누다 보니 고민이 아주 깊어졌다.

“요양보호사. 참 힘들지요? 치매 노인들 간병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 텐데요?”
“다른 기술 없고 일자리 구하기 힘든데 이 정도는 견뎌야지요. 노인네들 똥오줌 치우고 식사 도와주고 목욕시키고 잠시 쉴 틈 없이 바쁘지만 일은 할 만해요.”
“치매노인들이 자꾸 집에 가려고 하지 않나요?”
“왜 안 그러겠어요? 틈만 나면 보내달라고 칭얼거려요. 아무래도 싫겠지요. 제가 볼 땐 가족들이 노인네를 내다 버리는 것 같아요. 처음 몇 번 들여다보고 나면 아무도 안 와요. 옛날에 있던 고려장 같아요.”

고려장. 실제 우리나라에 그런 이상한 악습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역사기록에 남아 있지 않고 구전되어 내려올 뿐이다. 임금이나 귀족이 죽으면 종살이하던 사람을 함께 무덤에 넣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부모를 내다 버리는 일은 사실 상상하기 어렵다.

얼마 전 장인어른이 치매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치매 판정을 받고도 수년을 장모님과 함께 생활하시면서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셨다. 결국, 돌아가시기 얼마 전, 그러니까 마지막 몇 개월 남겨두고 요양병원에 가셨다. 두어 곳을 옮겼는데 갈 때마다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너무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노인들이 따닥따닥 붙어 침대에 죽 누워 계신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별다른 치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온종일 누워계시면서 정말 죽을 날만 기다리시는 것 같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집사람도 병원만 가면 참 우울해 하였다. 그렇다고 집에 모셔 올 수도 없었다. 자꾸 집을 나가 길을 잃어버려 찾으러 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걸핏하면 폭력적으로 돌변하여 장모님께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Old Person's Home, Saatchi Gallery, London. (CC BY 2.0)
Old Person’s Home, Saatchi Gallery, London. (CC BY 2.0)

장기요양 보험 제도의 어두운 그림자

“요양보호사와 간호사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더군요. 땀 흘리며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더군요.”
“사실 그래요. 제가 있던 요양원만 해도 요양보호사들에게 맡겨진 노인들이 너무 많아요. 너무 힘들어 이번에 요양병원의 간병인으로 간답니다.”
“요양원하고 요양병원하고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저도 무심코 그냥 지나쳤네요.”

“그 말 그대로 병원은 의사가 있고 요양원은 의사가 없는 차이지요. 또 요양보호사들이 요양원에는 많고 병원에는 간병인이 있는데 환자 가족이 돈을 내서 채용하는 것이지요. 요양보호사들은 건강보험에서 처리하고요.”
“최근에 요양원들이 정말 많이 생겼어요.”
“노인 한 사람당 200만 원 가까이 나오는데 얼마나 경쟁이 심하겠어요? 20% 정도, 그러니까 4~5십만 원 정도만 개인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가 부담이거든요. 노인유치경쟁이 장난 아니에요.”

가슴이 또 답답해 온다. 치매 노인 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거액의 지원금이 수많은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짓게 하였다. 멀쩡하던 병원도 요양병원으로 고치는 계기도 되었다. 2008년 처음 장기요양 보험 도입이 후 시설이 1,700개에서 4,326개(2012년 기준)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중 절반 이상인 2500여 개를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데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부실 운영 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설 운영자들도 과당 경쟁이 붙어 노인유치 작전이 치열하다.

“손을 묶어두던데 달리 방법이 없나요? 너무 섬뜩하던데…”
“이해하셔야 해요. 얼마 전 저도 기저귀 갈다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할머니 한 분이 침대에서 떨어졌어요. 워낙 몸이 약하시니 머리부터 떨어졌거든요. 얼른 다시 눕혔는데 금세 머리가 부풀어 오르면서 야구공만 한 혹이 생기더라고요. 어찌나 놀랐던지. 다행히 별 이상 없이 넘어갔지만, 그 이후 저도 다른 일을 할 땐 그 할머니 손목을 묶어 놓는답니다.”
“무척 싫어하시지요?”
“어떻게 해요? 안 그러면 다치는데. 크게 다치는 것보단 묶여 계신 게 낫지 않겠어요?”

그런가? 아무리 치매 노인일지라도 온종일 손목을 침대 모서리에 묶어 두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치매노인은 인권이 없을까? 목욕 날 완전히 벗고 줄을 지어 가는 모습도 보았다. 할머니 방과 할아버지 방은 문도 없이 복도를 마주 보고 붙어 있었다.

“워낙 인력이 없어 벌어지는 일이에요. 제가 알기로 요양원의 원 규정상 노인 2.5명당 한 명의 요양보호사를 채용하게 되어 있는데 그걸 지키는 요양원은 전국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여러 환자를 돌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극진히 모실 수 없잖아요?”
“요양보호사들이 극심한 중노동에 시달린다는 말인데…”

“요양보호사 대우 문제가 심각해요. 사실. 시설에서 이익을 남기기 위해 무리하게 근무시간을 편성하거든요. 보호사 한 명이 20명 이상의 어르신을 돌봐야 하는 예도 있어요. 너무 피곤하지요. 월급도 아주 적어요.”
“어느 정도 받아요?”
“100만 원 남짓? 사실 말이 보호사지요. 가정부에 가깝다고 보면 돼요. 잘 못 움직이시잖아요? 노인들이. 그분들 손과 발이 되어야 하고요. 또 보고서도 써야 하고 온갖 잡무가 많아요. 정말 힘들어요.”

이런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좋은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겠는가?

“하루 3교대도 잘 안 되고 20명 이상 노인을 돌보다 보면요, 밤에는 노인들이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돌봐 드리기 어렵거든요. 그냥 기저귀에 대변을 보는 게 더 편해요. 욕창이 생기는 원인이 되지요.”

old hand (CC BY-NC-ND 2.0)
old hand (CC BY-NC-ND 2.0)

치매 아내 돌보던 80대, 아내와 동반자살

얼마 전 읽은 기사가 문득 떠오른다. 경북 북부지역 어느 저수지에서 수면에 승용차 한 대가 지붕만 드러낸 채 잠겨 있었고 승용차보다 수십 미터 더 저수지 안쪽 물 위에 사람이 떠 있었다고 한다. 승용차 운전석에는 할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되었고 물 위에 숨진 채 떠 있던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아버지는 저수지 근처에 살고 계셨는데 89세였다. 할머니는 84세로 두 분은 부부였다. 안방에서 할아버지의 자필유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이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하였다.

“미안하다. 이제 다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하다. 너무나 힘들다. 내가 죽고 나면 아내는 요양원에 가야 하니까. 내가 운전할 수 있을 때 함께 가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이 길이 아버지, 어머니가 가야 할 가장 행복한 길이다.”

요양원을 가기보다 목숨을 끊어 버리는 것이 나은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노인들의 요양원 문제. 근본대책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노령화 시대라고 한다. 정말 빠르게 우리나라는 늙어 가고 있다. 총인구에 65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100세 시대를 운운하는 실정이다. 당연히 노인복지 문제는 이제 먼 훗날의 과제가 아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식이 지극한 정성으로 모시는 곳이 요양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노인들이 죽기보다 가기 싫은 곳이 되고 자식들은 왠지 무서운 수용시설에 보낸 것 같이 죄스러워한다면 이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현실이다.

나는 무엇보다 우선 요양보호사들의 고용률을 대폭 높이고 이들에게 높은 임금을 주며 근로환경을 개선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야말로 치매노인과 직접 맞부닥치는 현장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웃어야 노인들도 좋은 서비스를 받기 마련이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남는 과제이다.

새벽,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고생하는 요양보호사를 만나 우리나라 노인 장기요양 실태를 접하며 나는 그만 깊은 시름에 빠져 버렸다.

2013년 5월 23일 목요일 많이 더웠다.

관련 글

첫 댓글

  1. 안녕하세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겠어요
    근래에 요양원 화재사건이 벌어져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늦었지만 댓글 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감당하지 못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슬픕니다
    얼마전 대가족으로 살았을때 분명 그냥 모시고 살았지요… 마지막 그 날까지
    아마 다른 외국도 어떻게 이겨내는 지 모르겠지만 결국 가족구성이나 마을 구성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게 사람사는 세상이 될꺼 같아요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