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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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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동 국민은행 부탁합니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차에 오른다. 가만히 택시기사 자격증의 사진을 보다가 슬쩍 내 얼굴을 훑더니 한마디 한다.
“선생님. 택시 운전도 하십니까?”
“허허. 금세 알아보시네요. 택시 운전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 되었네요.”
“정치는 안 하세요?”
“작년 국회의원 선거 떨어지고 바로 택시 시작했으니 정치는 일단 떠난 셈이네요.”
“정치에서 택시운전사로… 험한 일을 하시네요.”
“직업에 뭐 귀천이 있나요? 이곳에서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공부도 많이 했어요.”
“맞습니다. 저도 사실 큰 변화가 있거든요.”
“무슨 사연이 있나요? 국민은행 근무하시는 것 아닌가요?”
늘 그렇듯 승객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경우, 참 진솔하다.
“저요? 성남동 용접학원 다닙니다. 제 나이 39인데 새로 용접기술을 배우고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죠.”
“그 전에 하던 일은요?”
“회사 다녔어요. 사무직인데 과장이었어요. 참 힘들었어요. 제가 오죽하면 때려치우고 나와 용접을 배우겠습니까?”
“사무직이 아무리 힘들어도 생산직으로 바꿀 때는 큰 결단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많이 힘들었나 보지요? 요즘 한참 나오는 말처럼 감정노동이 심했나요?”
“감정노동이라… 그런 측면도 있겠네요. 하루하루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웠지요.”
그는 중소기업의 과장이었다. 회사가 경영의 위기에 빠져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되었다. 집에 하루도 빠짐없이 12시에 들어갈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총무, 회계 분야를 담당했다고 하니 아주 중책이었던 것 같다. 오로지 일념은 회사를 살리자는 것.
“워크아웃 기간 몇 년을 정말 휴일 없이 죽을 둥 살 둥 일했거든요. 제 선배 과장은 과로사했어요. 정말 눈물도 나고 겁도 나더군요. 남 일 같지 않아서.”
“저런. 그래서 회사가 살아났나요?”
“워크아웃 졸업을 했어요. 그런데 기껏 살려 놓으니까 바로 M&A 들어가더라고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더군요. 결국, 점령군이 들어오데요. 와서 그렇게 열심히 회사를 살린 동료들을 쳐내고 더 열심히 일하라고 요구했어요.”
“참 딱하네요.
“저는 살아남았지요. 또 죽기 살기로 일했어요. 안 잘려나가려고요.”
“사람은 기계가 아닌데 그렇게 일해서 어떡해요? 과로사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군요.”
“그런데 조금 지나면서 적자를 해소하기 시작하니까 글쎄 또 M&A시장에 내보내더라고요. 이런 일을 두어 차례 겪고 나니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그래서 사표를 던지고 나온 거로군요.”
“예. 현대중공업 훈련원에 들어가 용접을 배우고 일을 시작했는데요. 회사 다니면서 사비를 들여 더 나은 기술을 익히려고 학원에 다니는 것이지요.”
“지금 마음은 편하겠네요?”
“그럼요. 육체적으로 고달파도 마음은 단순해지고 아주 좋아요.”
LNG선을 타면서 용접을 하고 있단다.
“탱크 안에 들어가 용접을 하면 위험하지 않나요?”
“라이터, 담배 같은 화기는 일절 못 갖고 들어가고요. 실내의 적정 온도를 늘 유지 시켜주니까 위험은 없습니다.”
“할 만합니까?”
“그럼요. 약간의 장인정신이 생긴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열을 가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적은 열을 가해도 안 되는 게 이 일이거든요. 나름 자부심이 커지더군요.”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고참들이 많을 텐데요. 특히 나이 어린 선배들도 있을 테고요. 어때요? 그런 사람들 밑에서 일하는 심정은?”
“상관없어요. 군대 시절 어디 나이보고 고참 대접했나요? 특별히 욕을 많이 하는 선배가 있는데요. 나이는 나보다 조금 어리지요. 그래도 심성은 착해요. 다만 욕이 입에 배 있어 아무 감정 없이 툭툭 던지는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를 느끼며 일할 때보다 훨씬 신이 난단다. 사람은 정말 마음이 편해야 산다. 이 친구는 어떤 욕을 먹어도 전혀 힘들지 않다고 활짝 웃는다.
“한번은요. 제 부서 반장 연말정산을 도와주었거든요. 다른 동료들이 없는 재주가 전 있잖아요? 너무 놀라워하더라고요. ‘이렇게 세금을 아끼는 법이 있구나.’ 하면서 말이지요. 그 이후 생활이 아주 풀렸지요. 고참들이 소문 듣고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 상담을 해주니 이제 일이 조금 서툴러도 아무도 야단치는 사람이 없어졌어요.”
“하하. 그야말로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한 장면 같군요. 은행장출신 재소자가 교도관들 은행업무 상담하면서 생활이 편해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측면이 있지요. 힘들게 지내긴 했지만, 사무직 과장을 지내면서 제가 갖게 된 능력이 있잖아요.”
“맞네요. 그것도 생존능력 중 하나겠군요.”
“생존이요? 좋은 말씀입니다. 저 정말 살려고 열심히 합니다. 8시까지 출근인데요. 저는 7시면 벌써 현장에 도착해서 기다려요. 배 탱크에 들어가려면 열쇠가 있어야 하는데 저는 아직 없거든요. 문 앞에서 누구든 올 때까지 거의 부동자세로 보초를 서요. 일단 들어가면 우선 청소를 하고 이후 도면에 맞게 작업공구를 배치해 둡니다. 다들 출근하고 오전에 서서히 해야 할 일을 미리 앞당겨 다 해버리는 것이지요. 뒤에 온 선배들이 모두 좋아합니다.”
“대단하네요.”
“사실 젊은 신참들은 틈만 나면 스마트 폰 하거든요. 아침에 와도 제일 먼저 스마트 폰 확인부터 해요. 저는 틈만 나면 스마트 폰으로 공구 사진을 찍고 그 밑에 명칭을 달아요. 그렇게 해서 고참들이 공구를 찾을 때 정확하게 가져다주었어요.”
“와.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다 살자고 하는 일이지요. 솔직히 제 나이 마흔에 이제 더 다른 길이 없잖아요? 또 바꿀 순 없으니 여기서 제 남은 삶을 위해 전력투구해야지요.”
“정규직이 될 길은 없나요?”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지금은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기술이 늘고 성실하면 정규직으로 뽑는 기회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저같이 나이 먹고 훈련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만해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해야지요.”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이잖아요. 지금처럼 성실하게 살면 복도 받고 좋은 일 많이 생길 겁니다. 부처님도 왕자의 자리를 다 내려두고 어렵고 힘든 고행의 길을 기쁘게 가셨잖아요? 자기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 길을 가는 건 두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클 겁니다. 힘내세요. 잘 될 겁니다. 육체노동만큼 숭고한 건 없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제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시고 이렇게 좋은 말씀으로 격려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터닝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끊임없이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던 과장이 과감히 육체노동을 시작하였다. 더 잘하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기술을 부지런히 익히고 선배들 모시며 열심히 살고 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충분히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일이다. 흐뭇하고 보기 좋았다. 땀의 의미도 알고 또 보람도 남다르다. 자기를 감싸고 있던 자존심 혹은 체면의식을 훌훌 벗어던지고 새로운 길을 간다.
살아오면서 생긴 기술, 혹은 인간관계, 일정 연봉은 모두 자기의 기득권이다. 어떤 결단을 내리려 할 때 가장 방해요소가 바로 그 기득권이다. 그 알량한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보수성이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을 가로막기 마련이다. 또 있다. 두려움이다. 누구나 익숙한 자기 일을 버리는데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되고 맴돌다가 결국 주저앉게 된다.
이 기득권과 두려움을 내려놓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삶에 대한 가치는 스스로 부여해야 하겠지. 그리고 변화에는 반드시 이에 따르는 소득이 있음을 깨닫는 것도 자기 몫이다.
요즘 자주 나를 돌아본다.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아프다고 찾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흘려듣고 도리어 자기주장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 그럴까? 짧은 기간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이다. 서두르게 되고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하게 된다. 여기에 무슨 소통과 공감이 있겠는가?
택시노동자 일 년 동안 가장 큰 변화는 차분히 듣고 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동참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땀 흘리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애환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 ‘내려놓는 것’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2013년 5월 17일 금요일 맑음.
기술>사무
대기업>중소기업
대기업 기술>>>중소기업 사무
주제와 무관하게 농담삼아 도식화 시켜버렸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