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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의 택시일기 3: “몰려 오는 손님을 무슨 힘으로 막노?”

전직 정치인인 울산 택시기사 김창현 님은 하루하루 겪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연재합니다. 이 택시 일기를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슬로우뉴스에도 연재합니다. 택시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만난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때론 유쾌하게, 때론 담담하게, 또 때론 깊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들을 거울삼아 우리는 삶을 돌아봅니다. 그 삶의 풍경을 매주 조금씩 공들여 담아볼까 싶습니다. (편집자)

Jinho.Jung, Jinho.Jung, “택시 드라이버” (CC BY SA)

택시기사들 하는 말이 있다.

“자기 손님은 꼭 있다.”

인도 옆에 붙어 서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길에서 빈 택시가 한 대 나타나 앞에 서는 경우가 있다. 빈 택시가 줄줄이 붙어 가는 모습은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택시는 곧 저 앞에 서 있는 승객을 태운다. 때로 승객을 보고 다가가는데 건너편 택시가 유턴을 해와 채가기도 한다. 화를 낼 필요가 없다.

앞에 빈 차가 가면 얼른 옆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다. 전문용어로 ‘짼다’고 한다. 앞의 차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국 자기 손님은 꼭 있기 마련이다. 콜도 마찬가지이다.

울산대학교에 학생을 내리고 돌아서는데 무전기에서 울산대학교 타는 곳을 부른다. 얼른 키를 잡았으나 다른 택시에 빼앗겼다. 무척 아쉽다. 그러나 얼른 잊고 차를 몰고 나오면 손을 드는 승객을 만나게 된다. 이 길 저 길 다니는 것도 그때마다 다르고 만나는 승객도 다르지만, 내 차를 타는 승객은 꼭 있다. 마치 인생의 한 단면 같기도 하다.

오후 2시 30분경 류경민 위원장의 카카오스토리에 2012 생명평화대행진단이 진장동 코스트코 앞에서 집회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떴다. 마침 명촌 손님을 태우고 가던 중이라 내린 후 바로 진장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문정현 신부님과 감방 동기 박래군 친구도 보고 싶었다. 더욱이 윤종오 북구청장을 기소상황으로 몰고 간 코스트코 앞이라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코스트코 앞에서 짐을 잔뜩 든 아가씨 두 사람이 간절하게 손을 흔든다. 어찌 택시가 손님을 마다하랴. 결국 둘을 태우며 집회 참여를 포기하였다.

“코스트코에 손님 많죠?”
“아휴, 말도 마세요. 사람구경 실컷 했어요. 정말 많네요.”
“무엇이 그리 좋은가요?”
“신기한 물건이 정말 많아요. 한마디로 ‘휘둥그레’ 그 자체에요.”
“예를 든다면?”
“우린 자취를 하다 보니 주로 먹는 걸 사는데요. 냉동식품코너에 가면 얼린 볶음밥이 있어요. 온갖 종류의…”
“또?”
“다양한 생필품을 아주 싼 값으로 팔아요.”
“원래 휴지나 치약 칫솔 등의 생필품을 잔뜩 쌓아두고 쓸 필요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요. 사지 않아도 될 것을 많이 사게 되는 건 사실이에요.”
“집에 창고가 있어야 하겠네요.”

자꾸 부정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한다.

“20만 원어치나 샀어요. 그러고 보니 과용했어요.”
“과연 싸게 사는 걸까요? 안 사도 되는 것을 더 사는 것은 아닐지…”
“그러긴 해도 아무튼 편리하고 볼 것도 많고 참 좋아요.”
“무슨 집회를 하는 것 같던데…”
“모르겠어요. 관심이 없어서.”

그러나 신기한 물건이 엄청나게 쌓여 있는 이곳에 푹 빠져 있는 이 아가씨에게 설득력을 발휘하긴 애당초 틀린 것 같다. 더욱이 시대를 앞서 살아가고 있다는 자랑도 살짝 보인다. 씁쓸한 마음이다. 코스트코에 몰리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보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심정이 된다. 일요일 쉬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영업을 강행하고 그렇게 중소상인을 살리자고 외쳐도 허가를 받아내고 또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 일이다. 서울 가는 승객을 태우고 KTX 울산역에 가 2시간의 줄바리를 하였다. 오랜 시간을 서 기다리다 보니 어떤 승객을 태우게 될지 약간의 설렘이 있다. 더불어 혹시 언양 손님을 태우면 어떡하나 걱정도 한다.

순서가 되자 4명의 덩치 큰 아주머니들이 탑승하였다.

“진장동 코스트코로 가요.”

와, 신난다. 난 북구 호계콜에 가입되어 있다. 어떻게 하든지 북구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야말로 ‘아다리’가 잘 걸린 것이다. 하루가 잘 풀린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대구에서 왔어예.”

아주 구수한 대구 사투리가 막 나온다.

“대구에서 울산 코스트코는 무슨 일로 가세요?”
“지원왔다 아입니꺼?”
“지원이요?”
“우리는 대구 코스트코에서 일하거든예. 울산이 하도 손님이 들끓어서 손이 딸린다 카네예.”

약간 띵한 심정이 되어 물어보았다.

“울산이 그렇게 잘된다고 합니까?”
“대세 아인교.”

뒷자리의 한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대박!” 한다.

“울산에 돈이 흔해 그런지예, 시작하자마자 금세 자리잡았어예.”

그러자 또 한 사람의 아주머니가 말한다.

“울산사람은 대부분 한 번씩은 다 왔다 갔을 낀데예?”
“아직 저는 안 가보았는데요.”
“촌스럽게 굴지 말고 한번 오이소. 잘해드릴게.”
“일단 한번 오고 나면 그 맛을 못 잊는다 카데예. 품질 좋지예. 값 저렴하지예. 일반 시중에서 볼 수 없는 물건 많지예.”
“코스트코가 그렇게 인기가 좋습니까? 대구도 바글바글합니까?”
“그래예. 가는 곳마다 휩쓸잖아예. 대구는 이제 아주 안정이 됐어예. 울산도 막 시작하였는데 워낙 반응이 좋아서…”
“일당을 더 쳐줍니까? 이렇게 지원나오면?”
“그럼예. 안 그러면 누가 오려고 하겠어예? 얼마나 피곤한데.”
“두 배 정도?”
“두 배는 안 될거고예. 1.5배는 더 될거라예.”
“그러면 오늘 돌아갑니까?”
“그럼예. 오늘 저녁 10시 22분 기차타고 돌아가예. 많이 힘들다 안캅니꺼.”
“참. 그러고 보니 코스트코는 일요일 휴무 안 한다고 언론에 나오던데요?”
“우습잖아예? 와 쉬고 안 쉬고를 관에서 나서서 난리를 피어예. 업체가 알아서 쉬는기지.”
“그래도 아주머니들은 휴일날 쉬면 더 좋지 않나요?”
“우리는예, 알아서 돌아가면서 다 쉬어예.”

이때 뒤에 있는 덩치 큰 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이래서 되겠어예? 엉?”

대구에서 그동안 너댓번 지원하러 왔다고 한다. 코스트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렇겠지. 자신의 일자리니까. 타지사람들은 울산에 돈이 많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흔하다는 돈이 다 어디 간 겨? 자기들끼리 와글와글 수다를 떨어대 더는 끼어들지 않았다. 울산까지 와서 자연산 회 한번 못 먹고 그냥 간다고 투덜대는 그들에게 강동바닷가를 소개해 주었다. 코스트코 근처에 오자 곳곳에 플랭카드가 붙어 있다. ‘중소상인 다 죽이는 코스트코’.

이때 한 아주머니가 톡 내뱉듯 말한다.

“백날 떠들어 봐라. 눈 하나 깜짝하나. 다 좋타 카는데 와 지랄이고. 몰려오는 손님을 무슨 힘으로 막노?”

가슴이 철렁한다. 재래시장과 중소상인 보호의 소신으로 코스트코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윤종오 북구청장은 기소되어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다. 북구청장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과 중소상인들의 시위는 연일 계속되고 있는데 시민들은 발 디딜 틈 없이 코스트코 매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강제로 휴일을 지정, 작게나마 중소상인을 보호하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영업을 강행하고 있다. 그래도 시민들은 코스트코를 선호하며 몰려온다는 자신감의 발로겠지?

일을 마치며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2012 생명평화대행진단의 코스트코 앞 집회와 함께한 몇몇 사람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우리는 값싸고 좋은 물건을 사겠다고 몰려오는 시민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맑고 쾌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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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창현
초대필자, 통합진보당 울산시대표

울산에서 택시 운전하는 김창현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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