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2015년 1월 17일, 예술 분야 창작자의 ‘작업과 밥벌이’를 주제로 열린 ‘접속유지’ 좌담회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1. 신호들의 교차점에 멈춰 서서
2. 문학 창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3. 미술 창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4. 무용 음악 영상 여성학 창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5. 창작자 파란만장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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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분야 좌담회 패널
윤지쏭: 학부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후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였고, 졸업 후 전업 작가의 어시스턴트, 논문교정 알바로 생계를 꾸리며 ‘지금의 미술을 과거의 미술사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어떻게 관객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종적/횡적 고민을 통해 비평적 미술사를 써보려는 중이다.
이세준: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독학으로 미대에 입학했고, 이후 십여 년간 서른 개의 알바를 전전했다.
입시미술 강사, 벽화나 영화 소품 제작, 영화 스토리보드 작업, 뮤지컬 무대 제작, 편의점 아르바이트, 호프집 서빙, 핸드폰 판매 등을 했고, 제대 후에는 주류 홍보 요원, 입시미술 연구소 연구원, 에버랜드 조형물 제작, 방과 후 교사 등을 거쳤다.
현재도 미술과외와 아동 미술, 대학 강의, 유학원 강의 등 잡히는 대로 일하는 가운데, 회화를 주된 매체로 삼아 ‘세계란 무엇인가?’의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시각화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리밍: 대학에서 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졸업 후 ‘모임모임’이라는 창작 소모임을 하고 있으며, 서울 ‘문화의 밤’ 행사, ‘소소시장’ 등 플리마켓에 참가하거나 독립출판서점 ‘가가린’, ‘워크스’에 입점한 바 있다.
소모임에서는 주로 출력물에 대해 함께 연구하거나 그림책을 스터디하며,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 소품 제작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1. 작업과 밥벌이, 병행할 수 있을까?
이세준: 일주일에 18시간은 생계를 위해 투자하고, 나머지 시간은 작업에 쏟아 붓는다. 대학 때부터 수많은 알바를 뛰었는데, 알바를 구할 때 세 가지 원칙을 적용한다.
1) 일 순위는 무조건 높은 시급. 단지 생계만 유지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작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을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나머지 시간에 작업할 수 있다.
2) 두 번째 원칙은 유동적인 시간. 전시 기간에는 설치도 해야 하고, 작가와의 대화 등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 경우가 잦다.
3) 마지막으로 개인 시간을 따로 할애해야 하는지를 본다. 예를 들어 세 시간짜리 알바를 위해 디자인을 따로 해야 한다든지, 수업계획서를 써야 한다든지 같은. 또 이동시간까지 포함해서 노동 시간을 계산한다.
현재는 주당 16시간씩 일을 하고, 한 달에 2백만 원 정도 벌고 있다. 아동 미술을 가르치는데, 일주일에 12시간씩, 시급 2만5천 원을 받고 있다. 그다음은 과외. 두 개가 고정으로 하는 일이다. 중간 중간에 벽화 일이 들어오거나, 짧게 특강을 나갈 때도 있다. 얼마 전엔 해부학 특강도 나갔었다. 유학원에서 미술사 강의도 하고.
들어온 일들은 나중의 보릿고개에 대비해서 거의 다 한다.
보통 일은 인맥보다 인터넷을 활용해서 구했다. 입시 미술은 입시 미술카페, 벽화는 네오룩 같은 전시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벽화는 1m × 1m를 기준으로 잡는데, 더 복잡해질수록 금액은 더 올라간다.
일당은 경력이 없으면 7만 원, 몇 번 합을 맞춰봐서 ‘스케치를 딸 수 있고, 색을 칠할 수 있다’ 이러면 9만 원. ‘없어선 안 될 애다’ 그러면 14만 원 선이다.
윤지쏭: 나는 작가 어시스턴트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일하고 월급으로 백만 원쯤 받는다. 하루에 8~9시간 일하는 것치곤 고수익 알바다. 내가 일하는 곳은 어시스턴트가 두 명인데, 두 명이 열 명 몫을 하고 있다. 이 일을 주 수입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건, 투자 시간 대비 고수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은 미술전공자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입시 미술을 가르치면 입시 미술 스타일로 손을 적응시켜야 하는 것처럼, 작가 어시스턴트도 작가가 나를 도구로 쓰게끔 해야 되는 것이라 그 작가의 스타일이 내 작업에 들어와 버릴 수 있다.
작가가 어시스턴트를 쓰는 걸 세간에서는 안 좋게 볼 수도 있지만, 요즘 굉장히 많은 작가들이 어시스턴트를 쓰고 있다. 특히 대형작가들은 어시스턴트 수만 중소기업 수준이다. 웬만한 유명 작가들은 네댓 명의 어시스턴트를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네오룩 이런 데 구인 공고도 많이 올라오고. 대형작가, 매우 시장성이 높은 작가여야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게 가능하고, 구해서 오래 쓴다.
나는 8년째 한 작가와 일하고 있는데, 시장성이 매우 높은 작가다. 컬렉터들이 많이 선호하는 작가인 거다. 그래서 배울 점도 있다. 시장 돌아가는 행태라든가 작가와 화랑의 관계라든지, 컬렉터와의 관계라든지, 작가들끼리의 알력,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라든지. 내 분야인 미술사에는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런 걸 배우고 싶어서 어시스턴트를 하는 전업 작가 지망생에게는, 적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만 추천하고 싶다. 그 이상 하게 되면 작가에게 ‘기’를 많이 뺏긴다.
2. 밥벌이 vs. 작업: 그 갈등 조정할 수 있나?
이세준: 나는 입시 미술만 10년 정도 가르쳤다. 학원 일이 양날의 칼인 게, 돈을 빨리 만질 수 있고, 어린 나이에도 많이 벌 수 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대학 등록금을 전부 벌어서 다녔다. 지방출장까지 가는 등, 학원을 세 개씩 뛰었다.
같이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인 친구들은 대부분 지금도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 물론 돈도 많이 번다. 한 달에 400만 원씩도 벌고. 근데 그렇게 되면 작업은 못 하게 되는 거다. 그 선택이 틀렸다는 건 아니고,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작업을 해야겠다 싶으면 일은 줄여야 맞는 거고. 상한선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 상한선을 월 200만 원으로 잡았다. 그 이하로 떨어지면 자괴감이 많이 든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 그게 작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200까지 벌면, 그 이상은 일이 들어와도 작업을 위해서 쳐내려고 한다.
학원에선 되게 열심인 것처럼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그 이외의 시간에는 아예 내 작업만 신경을 쓰고, 거리 두기가 아주 확실한 편이다. 아동 미술도 예술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아예 이건 일이고, 이건 미술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거리 두기를 심하게 해놓고, 그냥 하는 거다. 그런 방식이 어느 정도 주효했다.
윤지쏭: 나는 논문교정 일도 따로 하고 있다. 청탁한 사람과 나는 심사 기간에 맞춰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야 한다. 내가 졸업시킨 사람들만 세 명이 넘는다. 이렇게 되면 그 논문들을 완전히 숙지하는 지경에 이른다.
거기서 오는 연구자로서의 양심의 가책이 컸다. 이렇게까지 손을 대주면 이걸 저 사람의 논문이라 할 수 있나, 이런 의문. 또 그 사람들 논문 봐주다 내 논문은 진전을 못 시켰다.
작가 어시스턴트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 거리 두기가 가능하지만, 글 쓰는 일은 어떻게 생각해도 내 작업과 연결이 안 될 수가 없다. 그것은 앞으로 내 글을 써나가기 위한 훈련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3· 고립과 비관주의를 넘어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리밍: 나는 힘들 때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계속 작업하면서 내린 결론으로는 그랬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면 이 좌담회에서라도 한 분씩 붙잡고 같이 작업을 이어나가는 게 어떨까, 어쨌든 접속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모인 것이니까.
이세준: 내가 왜 계속 작업을 해야 되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 시간을 늘리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왜 그걸 택하지 않고 작업하는가에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으면 작업을 그만두게 된다.
내 작업의 가치를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나는 작업실을 이사할 때면 커다란 탑차 두 개 가득 안 팔린 그림이 쌓인다. 옮길 때 정말 자괴감이 든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그런. 그게 내게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포기하면 되게 쉽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