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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2015년 1월 17일, 예술 분야 창작자의 ‘작업과 밥벌이’를 주제로 열린 ‘접속유지’ 좌담회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1. 신호들의 교차점에 멈춰 서서
2. 문학 창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3. 미술 창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4. 무용 음악 영상 여성학 창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5. 창작자 파란만장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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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분야 좌담회 패널

정도경: 러시아나 폴란드 문학 번역, 러시아어 강의로 생계를 유지하며 환상문학/SF 소설을 집필하여 웹진 [거울]에 다수 게재하였다. 글 쓰고 글 옮기고 글 가르쳐서 근근이 먹고 사는 것이 목표.

조우리: 문예창작과 국어국문을 전공하였고, 2011년 등단 이후 창작을 병행하며 신문사와 잡지사의 교정 교열, 보습학원 강사, 자기소개서 대필, 영화배급사 홍보마케팅 일을 하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영화 홍보 업무와 각종 행사 마케팅을 하고 있다. 등단작 이후 5편의 단편 소설과 몇 편의 에세이를 발표하였으며 신인 작가를 위한 국가 지원 프로그램에서 지원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단어와 문장이 아니라 돈과 시간 사이에서 고민하는 날이 많다는 것이 슬프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김미루: 대학에 갔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감당할 그릇이 못되고 누적된 학사경고에 학자금대출도 안 돼서 투덜대며 학교를 그만뒀다. 학교를 그만두자마자 입영영장이 날아와 병무청에 입영 거부 통보를 하고 교도소에 갔다. 출소 후 대안공간과 이런저런 작업의 변두리에서 서성이다 서울로 올라와 직장인이 되었다. 퇴근 후 책을 읽고 전시를 보고 영화를 보고 홀아비처럼 구시렁거리며 글을 쓰고, 독립출판으로 책을 낸다.

서혜진: 본래는 소설 쓰는 사람이었다가 소설로는 당장(은 물론이고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를 세월 동안)의 생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생계를 담당할 ‘기술직’을 찾았다. 그리고 이발사나 제빵사, 목수와 같은 기술직으로서 ‘디자이너’를 선택했다. 이후 디자이너로서의 삶과 소설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가랑이가 찢어지는 고통을 맛보고 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예술가인가? 혹은, 디자이너로서의 소설가는 가능한가?’하는 물음표를 가지고 산다.

주영준: 사회학자 혹은 작가가 되고 싶어 사회학을 전공했다. 연구실 장학금과 논술 강사와 번역일로 생활비를 벌고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메꿨다. 석사를 마치고 돈이 될 일을 찾아보다 빚을 내서 술장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났고 학자금 대출과 가게 대출이 아직도 좀 남아있으나 가게는 망하지 않았다. 가게 운영을 통한 수입이 생활비의 주요 원천이며, 이곳저곳에 글을 쓰고 번역을 하는 것으로 약간의 돈을 번다. 스무 살 무렵에는 전업 작가 비슷한 것을 꿈꾸기도 했으나, 지금은 지금의 삶에 그럭저럭 만족한다.

창작자의 작업과 밥벌이를 위한 좌담회 '접속유지' (사진 제공: 정언)
창작자의 작업과 밥벌이를 위한 좌담회 ‘접속유지’ (사진 제공: 정언)

1. 작업과 밥벌이, 병행할 수 있을까? 

김미루: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다. 자동차용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나는 대학을 3학기밖에 안 다녔다. 그중 두 학기는 학사경고. 그래서 학위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내 회사에서의 직급은 ‘포토샵’이다. 대리, 과장 이런 게 있을 만한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물건 생산도 하고, 상세한 정보를 데이트베이스화하기도 하고.

월급은 150에서 4대 보험 어쩌고 빼고 나면 132만 얼마가 된다. 통장에 100만 원 이상 왔다 갔다 한 게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굉장히 감명 깊고 행복했다. 보니까 정말로 자아가 완전 충만해지고.

건축현장 노가다로 한 달에 300씩 벌기도 했었는데, 그거는 하면 안 된다. 사람 죽어 나간다. 아무튼, 퇴근하면 악착같이 집에 와서 글을 쓴다.

julio.garciah, CC BY https://flic.kr/p/7cZgfG
julio.garciah, CC BY

조우리: 나는 2011년에 등단한 작가다. 고등학교 때부터 집안 형편 때문에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왔다. 그래서 어떤 관성이 있는 편이다. 돈을 떼먹지 않을 것 같은 알바는 가리지 않고 한다.

1) 잡지사 교정 교열은 신문사에서 기자들이 촌각을 다투면서 기사를 쓰기 때문에 최종 맞춤법을 데스크와 상의 후 정교하게 할 시간이 없다. 나는 그걸 보충하는 작업을 했다. 이 직무는 사실 교정기자라는 정규직인데, 국어 문법을 잘 알고 있는 전공자를 고용해서 월 300은 주어야 하는 일이다.

교정기자의 근무시간은 하루 두 시간. 일간지는 월-금, 주간지는 마감하는 3일, 월간지는 일주일만 일하는 시스템. 그런데 한 달에 삼백은 주어야 하는데 회사 측에서는 아까운 거다. 그래서 국어국문과 학사 학위가 있는 알바생을 월 60만 원 정도에 쓴다.

2) 보습학원에서 국어 강사로도 일해봤다. 중학교 국어는 서울에서 사 년제 대학 인문계열을 나오면 대부분 가르칠 수 있다. 참고서가 따로 있으니까. 그래서 그 시장에서 경쟁률이 세다. 선생님들 풀이 너무 넓다 보니 임금이 싸진다. 일주일에 세 번, 하루 6시간씩 수업하고, 한 달에 80만 원씩 받았다.

시험 기간에는 주말에도 나가서 문제풀이를 하거나, 밤에 학생들의 카톡에도 응답해줘야 하고.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고교 논술을 가르칠 때는 일주일에 두 번 나가서 4시간씩 하고 월 110만 원 정도 받았다.

3) 자기소개서 대필도 꾸준히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의 입시용 자기소개서(자소서)를 대필해줬다. 내 자소서를 쓰는 건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인데, 남의 자소서를 쓰는 건 재미있다. 자기가 쓰면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자괴감이 들지만, 남의 자소서는 소설을 쓰듯 신명나게, 위인전 집필하듯 쓸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나보다 좋은 대학에 친구들을 합격시켰다.

친구가 돈을 줄 경우에는 원고지 장당 5천 원, 어머니가 줄 경우는 장당 2만 원을 받았다. 무조건 현금으로. 그렇게 대학에 간 친구들이 입사할 때가 되면 나를 다시 찾아온다. 삼성 엘지 현대 기타 등등 대기업에 보내주었다. 그들의 스펙과 재료로 요리해서 멋진 소설을 써줄 수 있는 나는 정작 대기업에 못 가는 현실. 입사 자기소개서는 장당 5만 원을 받았다.

4) 독립영화배급사 홍보마케팅팀에서도 일했다. 대학 때 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알게 된 분이 소개해 준 일이다. 생각보다 일이 너무 힘들었다. 독립영화 쪽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을 갈아 넣는다. 한 달에 46시간의 야근, 정규 근무 시간은 10시부터 7시까지, 거기에 체크되지 않은 각종 집에서의 잔업 등.

알바는 닥치는대로 했다. (출처: Erich Stüssi, BY SA)  https://flic.kr/p/Cvsam
“알바는 가리지 않고 한다.” (출처: Erich Stüssi, BY SA)

주영준: 이야기를 듣다 약간 슬픈 생각이 들었다. 예술적인 직능을 배워서 제대로 몸값을 받고, 적절한 시간 동안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사교육밖에 없나 싶다. 나는 논술강사도 오래 했고, 자소서 대필도 되게 많이 해봤다.

그런 걸 계속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은 돈 안 되는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이거나 작가지망생, 영화감독 지망생이다. 창작자들에겐 시간을 유동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 대비 소득이 높다는 점에서 사교육 시장이 메리트가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2. 밥벌이 vs. 작업: 그 갈등 조정할 수 있나?

조우리: 학원 강사로 일하다 내 작업으로 전환할 때 스위치가 바뀌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어느 순간 내가 소설을 쓸 때 논술체로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신적 고통도 좀 컸다.

작업을 일과 병행하면서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회사 다니며 깨달은 게 있다. 내가 글을 쓰는 노트북이라면, 나는 부팅 시간이 오래 걸리고, 배터리가 너무 약한 노트북인 거다. 글 쓰는 데까지 준비하는 기간이 오래 걸리고, 준비해서 자 이제 쓸 수 있어, 그렇게 세팅된 시간이 너무 짧은 거다.

회사에서는, 지금 딱 써야 되는데, 지금 막 문장이 나올 것 같은데, 나는 극장에서 표를 나눠주고 있고, 배우들을 따라다니고 있는 거다.

그때 자신을 되살리기 위해서 한 게, 신인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위원회 공모전에서 지원을 받은 거였다. 지원금 받은 건 12월이었고 (입사 전에 썼던) 작품을 보낸 건 이듬해 4월이었는데, 그 사이에 회사 다니느라 신작을 하나도 못 썼다. 그걸 깨닫고 퇴사했다.

JD, CC BY  https://flic.kr/p/bXANVG
JD, CC BY

주영준: 논술 학원은 보통 금요일 밤부터 준비해서 주말에 수업을 한다. 일요일 10시까지 수업하고, 아 이제 우리의 주말이 시작됐다, 하고 술을 마신다. 사회인 친구들은 출근해야 되니까 못 만나고.

남은 애들은 자기 인생이 꼬인 철학 박사과정 애들이라든가, 분명히 필모그라피가 다섯 개밖에 안 되는데 그 모든 영화를 본 사람이 오십 명을 넘지 않을 것 같은 영화감독이라든가, 뭔가 글을 쓰긴 하는데 지나치게 전위적이라 나조차도 읽고 싶지 않은 글을 쓰는 작가라든가.

그런 친구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그리고 얘길 한다. 나 이렇게 살다가 작업도 안 될 거고, 지속할 수도 없을 터인데… 차라리 지금 당장 돈은 부족하고 작업 시간은 뺏길지라도 여기서 썩으면 죽겠다는 위기감이 들어서, 박봉일지언정 영화사 스텝으로 들어가거나, 일단 내년엔 글만 쓸 거다, 애들 절대 안 가르칠 거다, 이러고 나가는 애들이 있다.

잘 되는 애들은 잘되지만, 안 되는 애들은 결국 다음 해에 사교육 시장에서 또 보게 된다. 나는 그 시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것에 더 큰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근데 주변에 나보다 작업에 더 진지했던 친구들은 이 일이 맞냐,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김미루: 글을 쓰려면 딱 부러지게 맞춰야 한다. 일도 글 쓰는 것처럼 한다. 그래야 퇴근 후 연락을 안 받을 수 있다. 모든 게 다음 시나리오까지 완벽하게 진행돼서 사장한테 넘어가야, 나한테 뭐라고 얘기가 안 온다.

집에 오면 늦은 시간이지만, 내가 쓰고 싶었던 걸 쓴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를 만들었다. 글쓰기는 일처럼 단계를 나누어서 한다. 그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돼서 쓰이는 글만 쓴다. 한 번에 몰아서 써본 적이 없다.

정도경: 미루 씨는 단계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런 방식은 포기했다. 수업 준비하고 있으면 교정지가 오고, 교정지를 보다 보면 채점해야 하고, 소설을 쓰고 싶으면 교정지와 채점 사이의 짧은 시간에 써야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300페이지짜리 교정지가 거의 끝나간다 싶을 때 600페이지짜리가 오고, 그사이에 세 시간 정도 시간이 난다고 하면 그 안에 단편 하나를 써야 하는 식이다. 안 그러면 작업을 못 한다.

그러니 먹고살아야 하는 나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모두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어 섬 하나씩 사면서 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을 그냥 받아들이고, 훈련을 잘 시켜서 나를 굴러가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3· 고립과 비관주의를 넘어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서혜진: 나는 적어도 하루에 세 시간은 글 쓰는 데 투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게 지켜졌을 때 비로소 작업자로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을 위해서는 발버둥 쳐야 그나마 몇십만 원이든 받는데, 작업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 치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작업하다 앞이 안 보일 때일수록 주변을 많이 돌아봐야 하는 것 같다. 돌아다녀 볼 수 있을 만큼 다녀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정보를 수집하고, 그렇게 가능성들을 계속 모으고, 이미 죽은 예술가들을 포함해 내 동료 같은 사람을 계속 축적한다면, 계속 그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며 내 작업을 토닥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영준: 원래 어릴 때 쓰고 싶었던 것은 소설이었는데 내가 지금 소설을 쓸 깜냥이 되는가, 쓴다면 얼마나 비전문적이겠는가, 그런 고민이 든다. 매일 하는 일이 바 운영이다 보니 내 세계가 줄어든다는 느낌도 있고, 내가 쓰는 글들이 어느 순간 인간관계와 술로 수렴되기도 한다. 이러다 결국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나는 그냥 술집 사장에 술에 대한 책 몇 권을 쓴 사람이 되어버리겠구나, 나쁜 삶은 절대 아닌데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삶도 아닐 것 같은데, 라는 생각도 든다.

길
Moyan Brenn, CC BY

정도경: 나는 미술 분야의 이세준 씨처럼 차 두 대에 꽉 찰 만큼 작품을 가진 분은 이미 작가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팔리건 안 팔리건, 그걸 만들고 있고, 거기서 만족감을 얻고 있다면. 작품이라고 세상에 내놓을 만한 것을 내가 만들었다면 나는 작가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어야 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이런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다.

내 경우, 원고를 마쳤을 때, 내가 생각한 이야기가 나를 만족시키는 문장으로 완전하게 표현돼서 기승전결이 완료되었을 때, 그 머릿속에서 나오는 마약을 대체할만한 기쁨이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 그렇게 좋은 게 없기 때문에, 계속하고 있는 거다. 그런 식으로 창작에 발을 들였고, 작가라는 정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4. 작업과 밥벌이, 공유와 연대를 위해 

주영준: 사실 좌담회를 앞두고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작업과 삶을 병치시키는지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이 모임의 가능성을 보는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 참석한 패널뿐 아니라 청중들도 각자의 상황이 다르고 작업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연대를 한다는 게 비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비관에 관해서는 아이디어가 엄청 많이 떠오른다. 왜 우리가 지금 힘든지에 대해서는. 나부터 당장 내가 여기서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해왔는지를 생각하면 힘이 든다.

이를테면 음악의 경우에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이 생기면서 공동의 유통이나 작업에 대한 얘기가 오가고 있고, 미술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 청년관을 위한 공동의 행동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의제로 끌고 가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우린 각자 처한 상황이 다 다르지 않은가. 또 예술인들만 힘들면 차라리 그런가 보다 할 텐데, 담뱃값도 오르고 경제는 이 모양이고, 명문대 나온 내 친구는 취직도 안 되고. 그러니까 분명히 연대해야 하긴 하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끝은 되게 단순하다. 우리가 연대해서 세상을 바꾸면 된다고. 개인적으로도 되게 단순하다. 열심히 작업해서 많이 팔면 되잖아. 근데 진짜 필요한 건 지금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느냐. 지금 내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가 아니라, 지금 우리.

Gabriel Cabral, CC BY https://flic.kr/p/ngUMv3
Gabriel Cabral, CC BY

정도경: 연대와 관련해서 내게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 환상문학 웹진 [거울]이라는 매체가 있다. [거울]에 속한 작가들은 다 프로다. 컨텐츠가 있으니까 이걸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내보내겠다는 것에 대해 한 점 의심이 없고, 어떤 출판사에서 어떤 글을 원하고 있으며, 내용과 분량과 원고료는 어떤지에 대해 굉장히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하는 것과 현실적인 출판 경로를 분리해서 사고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저작권 문제나 계약서 보는 법, 출판사에서 돈을 안 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문제도 공유하고. 악질적인 출판사들이 정말 많은데 그런 경우 연대가 도움이 많이 된다. 또 오랫동안 이 일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출판사에 기획을 제시하면 개인이 두드리는 것보다 책이 나올 확률도 훨씬 높아진다.

조우리: 나는 우리가 서로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나누는 정도의 기본적인 연대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 주변에 글 쓰는 친구들에게 정보를 잘 주는 편이다. 어디서 지원금을 준다는 공고가 뜨면 같은 분야의 친구들에게 알리고, 내게 필요한 공고를 찾다 타 분야에 관련된 지원 사업을 찾았다, 그러면 그 분야의 친구에게 알려주는 식으로.

나를 위한 정보도 공유한다. 예를 들어 신인 작가를 위한 공모가 있다고 치면, 이 조건에 해당되는 친구들에게는 다 연락한다. 그 친구들도 언젠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Robbert van der Steeg, CC BY SA https://flic.kr/p/7x3dXV
Robbert van der Steeg, CC BY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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