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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리포트] 월드컵을 두 번 망친 감독. ‘사과? 그까이꺼 그냥 뭐 대충 해줄게!’ 통보식 사과의 창시자. 2002년 영웅은 어떻게 한국 축구의 원흉이 되었나. 홍명보, 그의 독특한 ‘소통법’. (⏳5분)

홍명보가 축구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역대급 선수진을 갖고도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 예선을 뚫지 못하자 29일 자진 사퇴했다.

홍명보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1분 40초짜리 입장문을 읽은 뒤 별도 질의응답 없이 자리를 떴다. 퇴장할 때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가는 모습이 공분을 사는 등 마지막까지 ‘소통’에 실패했다. 홍명보는 취임 전부터 축구 팬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과 ‘통보’ 뒤에 바지 주머니에 손 꽂고 ‘쿨하게'(?) 퇴장하는 홍명보(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KBS 뉴스 갈무리.

이게 왜 중요한가.

  • 홍명보가 대표팀 감독으로 언론 앞에서 설 때마다 여론은 악화했다. 그의 눌변이 비호감으로 낙인찍힌 탓이기도 하다.
  • 취임 때는 ‘자의식 과잉’이 비판 도마 위에 올랐고, 월드컵 경기 패배 후에는 무책임한 ‘유체 이탈’ 화법이 질타받았다. 마지막에는 질의응답 없는 기자회견으로 ‘불통’의 끝을 보였다.
  •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화법이 어떻게 대중 신뢰를 잃게 하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교본이다.

“나를 버렸다. 나는 없다. 대한민국 축구뿐.”

  • 대한축구협회는 2024년 7월 8일 홍명보를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표팀 감독 자리를 거듭 고사해 온 울산HD FC 감독 홍명보가 돌연 마음을 바꾼 것이다.
  • 시즌 도중 국대 감독행은 K리그 팬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이틀 뒤 광주FC와 경기에서 울산HD FC 팬들은 경기장에 ‘축협의 개 MB’, ‘피노키홍’, ‘거짓말쟁이 런명보’, ‘명청한 행보’, ‘우리가 본 감독 중 최악’, ‘축협 위한 MB의 통 큰 수락’, ‘Where is 의리?’ 등 비난 걸개가 걸렸을 정도다.
  • 홍명보는 광주FC와 경기가 끝난 후 번복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실패 이후) 10년 만에 간신히 재밌는 축구도 하고 선수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지만 여기서 나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긴 시간 잠을 못 자면서 생각했다. 나는 나를 버렸다. 이제 나는 없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 우리 팬들한테 (국대 감독직에)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게 마음을 바꾼 이유다.”
연봉 20억 원짜리 “축구 인생의 마지막 봉사”(홍명보). 2024년 7월 29일 축구 대표팀 감독 취임 기자회견 장면. 사진=유튜브 채널 KFA TV.

“내 안에 무언가 나오기 시작했다.”

  • 홍명보는 대표팀 감독 수락에 “나는 밤새 고민했다. 솔직히 두려웠다. 불확실성을 갖고 도전하는 것이 굉장히 두려웠다”면서 “결과적으로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나한테 질문했다. 두려움이 가장 컸지만 내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 이날 기자회견은 ‘자의식 과잉’이라 비판받았다. 축구 해설위원 박문성은 “조금 더 담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명보 본인의 선택을 지나치게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하는 화법은 이후 두고두고 비판받았다.
  • 사과에도 인색했다. 기자회견 말미 “울산 팬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냐”고 질문받고서야 “내 실수로 인해서 이렇게 떠나게 됐는데 우리 울산 팬들한테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선수단 장악 실패.

  • 지난 24일(현지 시각) 멕시코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남아공 전(3차전)은 한국의 월드컵 경기 역사상 최악의 경기로 손꼽히는 졸전이었다.
  •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선수단 내부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거듭 던졌다. “앞선 두 경기와 달리 경기력이 너무 뚝 떨어졌다”는 의문이었다.
  • 모두가 궁금해했던 내용이었는데, 홍명보는 “선수단 내부적으로는 멕시코 전(2차전) 경기 때 조금 어수선한 게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고) 선수단 내 문제가 있다거나 했던 건 전혀 없다”면서 “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편이고, 아주 철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라고 부인했다.

선수단 갈등 감지한 기자들, 질문 이어지자.

  • 진종오(국민의힘 의원)는 1일 대표팀 사정을 잘 아는 복수의 핵심 관계자 제보를 인용해 “남아공 전을 앞두고 대표팀 내 불협화음이 있었다”면서 ‘인터뷰 보이콧’ 문제를 두고 손흥민·이재성을 중심으로 한 고참 선수들과 나머지 선수들 사이 갈등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관련 기사: “인터뷰 보이콧 안 풀자, 손흥민 선발서 뺐다”] 남아공 전에서 손흥민·이재성 선수가 선발에서 빠진 배경에 선수단 갈등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 홍명보는 선수단 내부 상황을 묻는 말에 거듭 “내가 월드컵이 나온 이래 안팎으로 이렇게 뒤숭숭하지 않은 대회는 처음”이라며 “멕시코 전에 잠깐 그런 분위기는 조금 있었지만, 이렇게 뒤숭숭하지 않았던 대회는 없었다”고 했다. “과거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는 이것보다 한 50배 정도는 어려웠다”고 했다.
  • 그러면서도 “나는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재는) 특별히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기에 그런 모습이 보인다고 하면, 한번 알아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졸전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니.

  • 너무 솔직한 것도 문제였다. 홍명보는 패배 원인에 “데이터를 봤을 땐 전체적으로 선수들 체력 등에는 (지난 경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들 그렇게 보셨겠지만 아 느려 보이는 면이 있었는데,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며 “답이 이거라고 명확하게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도 솔직히 갑자기 왜 이런지 당황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 그러면서 외부에서 요인을 찾다 보니, 당연히 ‘남 탓’만 한다는 비난이 나왔다. “환경적인 면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는 생각한다”, “상대의 의도대로 중앙에서 볼을 뺏기고 역습 맞고 그러다 보니 당황스러움도 있었을 것이다.” “선수들의 심리 상태가 너무 잘하려는 마음, 꼭 이겨서 (32강 토너먼트 진출을) 오늘 결정하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다. 그런 심리 상태에 날씨가 확 덥다 보니 (환경적 측면에서) 선수들에게 잘 맞지 않았던 거 같다.”
  • JTBC 해설위원 김환은 축구 전문 유튜브 ‘이스타TV’에 출연해 “홍명보 감독을 보통 매니저 형 감독이라고 칭하는데,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매니징을 가장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훨씬 더 신중하고 섬세하게 인터뷰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보이콧’으로 인한 선수단 내 불협화음에 관해서도 “(감독이) 빨리 정리해서 월드컵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했는데, 감독이 언론과 선수 사이의 갈등을 빠르게 조정해야 했다”고 꼬집었다.
오죽하면 이강인이 이렇게까지 했을까…지면 탈락할 수도 있는 남아공과의 3차전. 0-1로 지고 있는 후반전 갈증 해소 시간. (홍명보 대신) 김진규 코치에게 “재성이 형 들어와야 해요”라고 이강인 선수가 호소(절규?)하는 모습. JTBC 유튜브 갈무리.

마치 32강 끝나지 않은 것처럼….

  • A조 3위에 그친 한국의 축구 팬들은 패배 후 사흘간 비참한 희망 고문 상태였다. 조 1·2위는 32강에 자동 진출하지만, 3위를 기록한 12개국의 경우 상위 8개국만 생존한다. 내 운명이 남의 손에 결정되는 굴욕적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 32강 진출을 바라는 축구 팬들은 스페인과 우루과이 경기에서는 스페인 국민인 양, 가나와 크로아티아 경기에서는 가나 국민인 양, 이집트와 이란의 대결에선 이집트 국민인 양 응원했다. 조별 경기 마지막 날 K조 콩고민주공화국이 우즈베키스탄을 3대 1로 꺾으며 일말의 희망도 물거품이 됐다.
  • 홍명보는 “일단 우리가 어느 그룹에 갈지는 모르겠지만 다방면으로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앞으로 3~4일 정도 기간 어떻게든 잘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잘되면 우리 선수들이 잘하는 거고 잘되지 않으면 그건 감독의 책임”이라고 했다. 자신과 대표팀에 놓인 백척간두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통과만 하면 32강 16강 대진도 아주 좋다는 그야말로 역대급 ‘꿀조’. 하지만 홍명보를 만난 순간 한국팀이 ‘꿀’이 되어버리는 마법.

‘소통 참사’에 이르기까지.

  • 홍명보는 ‘소통’에 철저히 실패했다. 1분 40초짜리 자진 사퇴 입장문 낭독 뒤 퇴장이 이를 상징한다.
  • 팬들이 원했던 것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이해할 만한 해명이었다. 홍명보에게 확인한 것은 △“나를 버렸다”며 약속 파기를 대승적 희생으로 포장하는 기만 △‘유체 이탈’ 남 탓 화법으로 책임 회피 △공감 능력이 모자란 자기 합리화 등이다.
  • 홍명보는 2024년 취임 직전 이런 질문을 받았다. “홍명보 감독이 축구협회 이사 시절 만든 감독 선임 시스템을 홍명보 본인이 깨버리는 상황이 됐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홍명보의 대답은 이랬다. “그 시스템이 어떻게 됐는지는 축구협회 몫이지 내가 알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소통은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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