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라이브] 해리스와 트럼프의 첫 토론, “개 잡아 먹는 이민자들? 이게 트럼프를 뽑으면 안 되는 이유.”
미국 시각으로 9월10일 저녁, 카멀라 해리스(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후보)의 대선 토론이 열렸다.
이게 왜 중요한가.
- 미국 대선을 56일 남겨두고 있다. 오늘 토론이 처음이자 마지막 토론이 될 수도 있다.
- 조 바이든(미국 대통령)의 사퇴 이후 카멀라 해리스의 지지율이 치솟다가 다시 주춤한 상태다. 두 사람이 박빙의 지지율을 보이는 가운데 토론 결과에 따라 판세가 흔들릴 수도 있다.
- 경합 주 가운데서도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은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부가 결정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오늘 토론이 특히 중요했다.
공격과 방어.
- 해리스는 트럼프의 낡은 정치를 공격했다. 준비를 많이 했고 표정에 여유가 넘쳤다. 트럼프의 약점을 효율적으로 공격했고 버튼이 눌린 트럼프는 평정심을 잃었다.
- 해리스는 “미래와 과거”를 핵심 키워드로 강조했다.
- 해리스는 낙태 이슈에서 점수를 얻었다. 민주주의의 기본을 강조하면서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 트럼프는 계속해서 불법 체류자 이슈에 매달렸다. 이민자 범죄가 늘어나고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 트럼프는 해리스를 공격했지만 해리스는 유권자들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해리스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을 뽑으실 건가요.”
- 트럼프는 계속해서 정면을 노려 보고 있는데 해리스는 화면 오른쪽에서 트럼프를 건네다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 고래를 흔들거나 미소를 지으면서 시선을 끌어들였다.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주요 쟁점이었지만 겉돌았다. 해리스는 “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고 트럼프도 새로운 제안이 없었다.
- ABC 앵커들이 팩트체크에 나서면서 균형을 잡았는데 확실히 트럼프에 불리했다.
- 발언 시간은 해리스와 트럼프가 각각 38분과 43분이었는데 공격 시간은 해리스가 17분, 트럼프가 13분으로 해리스가 전체적으로 공격을 주도했다.
트럼프의 치명적인 거짓말.
- “아기가 태어난 뒤에 죽이는 주도 있다”고 말한 건 사실이 아니다. 아기가 태어난 뒤 죽인다면 낙태가 아니라 영아 살해고 어느 주에서든 불법이다.
-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낙태의 93%가 13주 이전에 이뤄진다. 20주 이후 낙태는 1% 미만이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있는 미네소타주는 모든 단계에서 낙태를 허용하지만 30주 이후 낙태는 1건도 없었다.
-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는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고 있다”고 말한 것도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해리스 특유의 웃음과 여유가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 “민주당이 불법 이민자들에게 투표권을 주고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해리스의 프레임 전환.
- “여러분, 거짓말 들으셨죠.” 해리스는 반복해서 트럼프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다.
- “나는 바이든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에 대한 공격이 나올 때마다 선을 그었다. 바이든을 깎아내리는 것도 아니고 옹호하지도 않았다.
- 불법 체류자들 가운데 중범죄자가 많다고 하자 당신이 중범죄자 아니냐고 맞받아쳤고(논점 일탈이지만 효과적이었다.).
- 개와 고양이 잡아먹는 이야기를 꺼내니 이렇게 치고 들어갔다. “왜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나. 이 순간이 유권자들이 나를 지지하는 이유 아닐까.“
- “비난과 모욕을 그만두고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자”는 주장을 반복했다.
- 우크라이나 전쟁도 바이든 정부의 약점이었는데 “트럼프가 대통령이었다면 푸틴은 지금 키예프에 있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트럼프가 “당선이 되면 취임하기 전에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하자 해리스가 “NATO와 동맹국들은 당신이 대통령이 아닌 것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 총기 소유 이슈가 나오자 “나도 총기 소유자고 누구의 총도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빠져나갔다.
- “해리스는 흑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자 “미국을 분열시키려고 인종을 문제 삼는 것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화제를 돌렸다.
버튼 눌린 트럼프.
- 해리스는 집요하게 트럼프의 약점을 공격했다.
- 아버지에게 4억 달러를 받아서 키운 것 아니냐고 트럼프의 자존심을 긁었고,
- 공화당 선거 유세가 재미없더라고 도발했다. 트럼프는 “민주당 유세에는 돈 받고 온 사람들이 넘쳐난다”고 맞받아칠 때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공화당의 딕 체니 등이 나를 지지한다”고 도발한 것도 주효했다. 트럼프는 당황한 듯 “그 사람들이 문제가 있어서 잘랐는데 바이든은 아무도 해고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 “지난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버림받은 것 아니냐”고 공격하자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헝가리 총리)이 나를 지지한다”고 반박한 것도 핀트가 어긋났다.
-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했던 ‘1월6일’도 트럼프의 약점이었다. 해리스는 “트럼프는 퇴출당한 사람”인데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 “해리스는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것도 악의적인 비판이다. 해리스의 아버지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것은 사실이다.
- 한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구호로 외쳤던 트럼프가 오늘 토론에서는 “미국이 웃음거리가 됐다”면서 부정적인 메시지에 주력했다.
결정적인 장면.
- ABC 앵커가 “평화적인 정권 이양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날(1월6일)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후회는 없느냐”며 “예스 또는 노로 답해 달라”고 묻자 트럼프는 “나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행진하라고 했고, 의회 안전과 질서는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의 책임”이라고 말을 돌렸다.
- 프래킹(fracking)도 쟁점이었다. 셰일 가스를 추출하는 수압 파쇄 기법인데 해리스가 환경 오염을 이유로 금지했다가 찬성으로 돌아섰다. 핵심 경합 주인 펜실베이니아에만 10만 명의 일자리가 달린 이슈다. 해리스는 “가치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정책은 바뀌었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는 19명의 선거인단이 걸려 있는데 2016년과 2020년 미국 대선에서 1%포인트 격차로 각각 트럼프와 바이든이 이겼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겨야 이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 트럼프는 오바마 케어를 대체할 계획이 있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계획의 개념(concept of a plan)이 있다”고 말했다.
총평.
- 해리스가 확실히 점수를 얻었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잘 받아쳤다. 불리한 주제를 빠져나가면서 트럼프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 여러 차례 의도적으로 트럼프를 도발했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상식적인 면모를 보였다.
- 트럼프는 현직 부통령인 해리스에게 “지난 4년 동안 왜 안 했느냐”고 공격할 수 있었지만 타격감을 주지 못했다.
- 해리스도 실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미국의 미래를 이야기하자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바이든과 차별화를 하지도 못했다.
- 트럼프도 특별히 구체적인 공약을 내놓은 건 아니다. 해리스는 300만 채의 주택을 짓고 세제 혜택과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등의 계획을 이야기했는데 트럼프는 역시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해서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을 반복했다. 감세와 수입 관세 역시 여전히 논쟁적인 이슈다.
- 해리스의 마지막 말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였고 트럼프의 마지막 말은 “해리스는 최악의 부통령이었다”였다.
- 시작할 때 악수했지만 끝날 때는 악수하지 않았다.
- 토론회 이후 분위기를 보면 성적표가 보인다. 해리스 캠프는 “두 번째 토론도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트위터(X)에 “해리스가 심하게 졌기 때문에 두 번째 토론을 원할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 토론 직후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해리스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인스타그램에 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