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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민, 어쩌면 가장 유능한 낙하산일 수도 있다.

박민 KBS 사장은 정말 억울했나보다. 야당 의원들이 KBS 친일·극우방송 논란을 질타하자 “그걸 틀어서 친일하겠다고 하면 미친놈”이라는 격한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2023년 회계연도 KBS 결산심사를 위해 8월 28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참석했을 때다.

“친일하겠다고 하면 미친놈” 발끈한 박민 사장

KBS는 8월 15일 광복절 자정이 되자마자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나오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방영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박민 사장은 이를 두고 “적어도 친일방송은 아니라고 본다”며 발끈한 것이다. 편성 책임을 묻는 다른 의원의 질의에는 “편성본부장이 한 것”이라며 “저는 편성할 권한이 없다”고도 했다.

광복절 새벽에 KBS에서 울려퍼진 기미가요(일본 국가).

그러나 국민들은 KBS가 기미가요가 나오는 오페라를 절대 틀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이 아니다. 1년 365일에서 이 작품을 절대 방영하면 안되는 날을 꼽는다면 3.1절과 광복절일 것이다. 그런데 KBS는 광복절을 맞는 자정에 ‘나비부인’을 편성했다. 최소한의 상식과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을 편성본부장으로 앉힌 사람은 바로 박민 사장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앞에서 “미친놈” 막말을 쏟아내는 적반하장식 태도는 더욱 공영방송 사장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음을 방증한다.

그런가하면 KBS는 광복절 저녁 ‘독립영화관’ 광복절 특집으로 ‘기적의 시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이승만의 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3·15부정선거는 이승만이 누명을 쓴 것이고, 국민들에게 쫓겨날 위기에 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하야를 위대한 결단이라 칭했다. 대한민국 건국은 이승만 한 분의 지대한 업적이라고 추켜세웠다.

지난해 12월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인정소위원회에서 위원들은 이 영화를 “독립영화뿐 아니라 영화로 볼 수 있을까”, “객관성이 결여된 인물 다큐멘터리로 독립영화 인정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혹평을 내렸다. 결국 ‘기적의 시작’은 독립영화로 인정받지 못했고, 2월 재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다큐를 KBS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시장가의 두 배인 1000만 원에 구입해 방영했다.

뉴라이트로 하나되는 윤석열 정권

이 두 장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바로 뉴라이트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찬양하고 일제 강점기 한국인은 일본 국민이었다고 주장하며 위안부와 강제징용 노동자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과거 역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본과 외교·군사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 일군의 친일보수세력이다.

야당 의원이 ‘기적의 시작’ 내용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건국일이 1948년이라는데 동의하시냐”고 묻자 박 사장은 “답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뉴라이트 논란이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도 국회 청문회에서 “1945년 광복을 인정하냐”고 묻자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수신료 분리징수와 콘텐츠 경쟁력 저하로 수천억의 적자가 예상되는 KBS는 구조조정 전 단계인 명예퇴직을 두 차례 실시하고 있다. KBS 간판 아나운서와 기자들이 줄줄이 퇴사 중이다. 재정위기로 인해 1973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무급휴직을 추진하고 있다. KBS 라디오 청취율과 TV 시청률은 바닥을 기고 있다.

KBS 간판 시사라디오 프로그램인 ‘전격시사’는 2분기 기준 0.8% 청취율을 기록해 동시간대 MBC 경쟁프로그램인 ‘김종배의 시선집중’ 9.3% 청취율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최근 한국기자협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진행한 현직기자 여론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 질문에 3년 연속 3위권에 있던 KBS는 올해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국민들 사이에선 수신료 거부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박민은 역대 KBS 낙하산 사장 가운데 최악의 무능한 사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박민 사장의 대표작, “파우치, 외국회사 조그마한 백” 이소정 앵커의 뒤를 이어 KBS 메인 뉴스 앵커가 된 박장범.

하지만 언론계에선 이런 얘기도 나온다. 윤석열 정권의 목적은 언론장악이 아니라 ‘언론파괴’라고. 불가역적 방식으로 공영방송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정권이 바뀌더라도 제 역할을 못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의 친일기조를 정확히 이해해 프로그램에 반영하고, KBS 자체를 파괴해버리는데 앞장서는 박민 사장은 사실 가장 유능한 낙하산일 수도 있다.

그동안 보수진보 어느 정권이든 최소한의 절제와 염치를 통해 공영방송 체제가 유지되어 왔지만 이제는 금도를 넘었다. 제도적 자제 없이 극한으로 권력을 사용할 때 민주주의는 무너지게 된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공영방송이 유지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민언련 칼럼

시민사회·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글입니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필자는 김준일(시사평론가·전 뉴스톱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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