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제가 실제 수행한 사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구체적 사실관계는 다소 변경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필자)[/box]
다양한 사건을 다루는 법조인들은 본인이 세상살이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건으로 다루는 것과 본인이 직접 그 상황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기자로 있는 선배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기자 역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어디까지나 관찰자 시점이므로 그 내면의 진실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오류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의도에서 그 사람의 배경이나 직업 등을 따져보고 판단의 참고사항으로 삼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이라는 꼬리표(label)는 신뢰감을 주는 역할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신뢰를 악용해서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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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고민하다 만난 친구
강준혁. 수도권 지방법원 10년 차 판사. 부장판사가 되려면 아직도 최소 4~5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준혁 본인도 부장판사까지는 해보고 싶지만 요즘 고민이 많다. 아버님이 병원에 계신지가 벌써 1년째다. 통원치료로 처리하기 힘든 상황이라 여동생이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살펴보지만 계속 간병인을 두어야 했다.
시골에서 혼자 공부하고서도 대학과 사법시험에 무난히 합격한 준혁으로서는 요즘 애들에게 그렇게 많은 사교육을 시켜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들에게 뒤쳐지게 할 수 없다는 아내의 강력한 주장에 본인 연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세 아이의 사교육비를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법과 정의를 구현한다는 신념보다 생활인으로서의 현실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준혁은 사표를 내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볼까’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법률시장도 불황이라는데 단독 개업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판사치고는 사교적 성격이었던 선배 황 판사도 2년 전 호기롭게 변호사 단독 개업을 했다가 처음 몇 달 반짝하고는 그 후로 아주 죽을 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터다. 로펌으로 스카우트되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부장판사 출신도 아니고 달리 특별히 전문화된 커리어도 갖추지 못한 평판사를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할 로펌도 찾기 어려웠다.
준혁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부동산 시행업으로 꽤 큰돈을 벌었다는 친구 박종태를 만났다. 친구들 사이에서 박 사장은 이미 유명했다. 학창 시절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호탕하고 남자다운 성격으로 많은 친구의 인기를 얻었던 종태였는데, 역시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둔 모양이었다. 학창 시절 공부 성적과 인생 성적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났다. 동창회 2차 자리에서 종태는 준혁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강 판사. 넌 우리 동문의 자랑이야. 알지? 얼른 부장 달고, 언젠가는 대법관 자리에 올라야지. 안 그래?”
준혁은 술이 좀 취하기도 해서 편하게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놨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 하는 거지 뭐. 난 솔직히 종태, 네가 부럽다.”
종태는 준혁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천하의 강 판사가 이 무슨 말씀. 나는 상행위를 하는 장사꾼에 불과하지만, 자넨 공적인 일을 하고 있잖아. 사명감도 있을 테고.”
“사명감이라…… 그래, 그래야 하는데…… 현실 문제들이 나를 좀 힘들게 하네.”
종태는 그런 준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따로 시간 내서 한번 보자고 했다.
친구의 파격적인 제안
1주일 뒤 준혁과 종태는 법원 앞 일식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강 판사. 음, 그날 자네 얘길 듣고 내가 좀 생각해봤는데 단도직입으로 얘기해도 될까?”
종태는 준혁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강 판사.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나도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어. 그래도 어려울 때마다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큰 힘이 됐지. 이제 내 회사도 한 단계 도약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야. 동탄 쪽에 1,500억 규모의 부동산 시행 프로젝트가 있는데 말이야.”
종태의 설명은 이어졌다.
“우리 회사는 매출 규모에 비해 제대로 된 인재가 부족해. 그래서 요즘 실력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을 물색하는 중이야. 회사가 커지다 보니 계약 문제도 많아졌어. 필요할 때마다 주위에서 변호사나 법무사를 소개받아 물어보고 진행하는데, 아예 내 사람을 회사 내부에 들여앉히고 싶거든.”
“법무 담당자를 고용하면 되겠는데?”
“물론 법무 담당자도 생각했는데, 단순 실무자가 아니라 사업의 전체 방향까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이 아쉽더라고. 그런데 지난번 동창회 때 보니까 자네가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여 내가 감히 제안 하나 할까 하는데…… 자네, 우리 회사 법무 담당 임원으로 오지 않으려나? 내가 스카우트하고 싶네.”
준혁은 종태의 제안에 적이 놀랐다. 막상 스카우트 제의를 받으니 구체적인 조건이 궁금하긴 했다.
“그때도 말했지만, 자네는 단순히 내 친구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자랑거리잖아. 나도 자네에게 걸맞은 예우를 해주고 싶어.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해줄 수 있거든. 그래서 말인데……”
종태는 사업가답게 미묘할 수도 있는 돈 문제를 딱 부러지게 제시했다.
“일단 이건 내 생각이고 자네와 협의해서 조정할 수는 있어. 연봉은 3억 원 정도 생각했네. 월 판공비는 400만 원, 품위유지를 위해 중형 차량과 기사도 제공할게. 그리고 동탄 사업은 별도의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서 진행할 텐데, 그쪽 시행 수익을 200억 원 정도로 예상해. 그 특수목적법인 지분 10%를 자네에게 배정하겠네.”
준혁은 종태가 말한 조건들을 머릿속에서 계산해보았다. 조건만 따져본다면 파격적이다.
종태의 말은 이어졌다.
“솔직히 강 판사가 나 같은 부동산쟁이랑 같이 일하는 게 격이 안 맞을지도 몰라. 2년 정도만 도와주게. 2년 정도 나랑 일하면 이 바닥에서 일하는 업자들을 많이 알게 될 거야. 그 후에 변호사 단독 개업을 한다면 좋은 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겠지. 물론 2년 후에도 나랑 같이 일할 수 있다면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고. 강 판사의 실력과 신용이라면 나는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지.”
준혁으로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아니 대단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준혁은 가족과 상의해 보고 답을 주겠다고 했다.
준혁의 부인은 딱 한 가지만 물었다.
“그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
준혁은 사업이야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사람 자체는 믿을 만하다고 말했고, 준혁의 부인도 그렇다면 당신 결정에 동의한다고 했다. 준혁은 얼마 뒤 법원에 사표를 내고 종태 회사의 법무 담당 임원이 되었다.
업무에 익숙해질 때쯤…
판사를 하다 개업한 변호사들은 법원을 출입하면서 소송 업무를 해야 하는데 준혁은 그럴 일이 없어 마음이 편했다. 판사로서 법대(法臺)에 앉아서 재판하다가 법대 아래에서 변론하는 자신의 모습이 영 어색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의 업무 내용도 기대 이상이었다. 다양한 계약서를 검토해서 문제점을 체크하며, 종태의 사업 진행 리스크 전반을 점검해 주는 일이었는데, 재판하고 판결문을 쓰는 일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보람도 있었다. 기사 딸린 차를 타고 가족들과 주말에는 여행도 다녔고, 기존 금융권 대출금도 상당 부분 갚아나갈 수 있었다.
종태의 사업 수완은 탁월했다. 특유의 친화력과 치밀함이 단연 돋보여 역시 사업을 하는 사람은 DNA부터 다른가 싶었다. 종태는 사업 파트너들이나 투자자들을 만날 때 꼭 준혁을 데리고 갔다.
“자네도 이제 사회에 나왔으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공을 쌓아야 돼. 어차피 나중에는 변호사 업무로 복귀할 거잖아?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미리 의뢰인을 확보해둔다고 생각해. 내가 좋은 사람들을 소개해줄게.”
준혁은 종태의 이런 배려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종태가 별도로 설립했고 준혁에게 10%의 지분이 배정된 특수목적법인(SPC)의 이름은 (주)트러스트리얼티. 이 회사는 여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토지를 매수하고 건설사를 끌어들여 매수한 토지 지상에 주상복합건물을 짓는다는 마스터플랜을 세워 일을 진행했다. 종태의 노력으로 일곱 명의 투자자로부터 약 300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어느 날 찾아온 날벼락
준혁이 종태의 회사에 합류한 지 6개월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준혁은 여름휴가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7박 8일간의 하와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회사에 출근했는데 사무실에는 투자자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강 변호사! 도대체 박 사장은 어디로 간 거요?”
투자자 중 한 명이 준혁에게 삿대질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어서 준혁은 종태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종태와 항상 같이 움직이던 직원 두 명도 같이 연락 두절이었다. 몇 시간 뒤 회사 예금통장에 잔고가 거의 없음을 발견한 준혁은 뭔가 크게 어긋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며칠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모두 인출된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투자자들은 준혁에게 투자 계약서를 들이밀며 문제가 생길 경우 준혁이 자기네 투자금을 갚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투자금은 말 그대로 투자금일 뿐 이를 회사의 이사에 불과한 준혁 개인이 갚아야 할 이유가 없다. 준혁은 자신이 예전에 검토했던 계약서를 다시 꼼꼼히 살피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제목은 투자계약서라고 되어 있었지만, 투자자들이 원할 경우에는 이를 투자자에게 반환하도록 내용이 바뀌어 있었으며 반환 책임은 대표이사인 박종태와 이사인 강준혁이 연대해서 진다고 되어 있었다. 애초 준혁이 검토해준 계약서 내용에서 많이 변경된 것이다.
하지만 계약서에 날인된 도장은 분명 준혁의 인감도장이었다.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자주 도장 찍을 일이 있다는 종태의 설명을 듣고 준혁은 자신의 인감도장과 신분증을 회사에 맡겨두었던 것이다.
“우리가 왜 이 회사에 투자한지 아시오? 변호사인 당신이 이사 겸 주주로 있고, 이렇게 계약으로 투자금 반환을 약속했기 때문이오. 박 사장도 당신 얘기를 많이 했소. 당신이 변호사로서 재력도 충분하다고 했고. 우리가 만날 때마다 당신도 항상 박 사장과 같이 나왔잖소?”
아뿔싸,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준혁은 계약서에 본인 도장이 찍혀 있긴 하지만 본인이 직접 찍진 않았다고 항변해보았지만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오랜 판사 생활에서 여러 차례 경험한 바다.
투자자들은 격하게 반응했다.
“이것들이 서로 짜고 우리를 속인 거 아냐?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변호사라고 하면 믿고 넘어간단 말이야. 그걸 교묘하게 악용해? 이 나쁜 놈들!”
강 변호사는 투자금 반환 소송을 당했고, 형사적으로는 사기죄로 고소당했다. 결국, 형사 1, 2심을 거쳐 징역 3년의 실형이 확정됐고, 민사소송에서도 패소해서 전 재산은 모두 경매 처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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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친구에게서 전해 들은 대학 후배 강 변호사 사건의 전모다.
“그럼 박 사장은 처음부터 친구인 강 변호사를 이용해먹으려 했다는 건가?”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도 특별히 아는 바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미스터리야. 강 변호사는 아직도 박 사장이 고의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눈치라네. 왜냐하면, 자기에게 정말 잘해줬거든. 박 사장은 아직 도피 중이야. 박 사장이 처음부터 고의로 기망했는지 아니면 일을 진행하다 딴 마음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친구 인생을 망친 것은 사실이지. 하여튼 헛똑똑이 법조인들은 조심해야 해!”
교도소 안에 있는 강 변호사에게 박종태라는 친구는 어떤 모습으로 떠오를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심란한 이야기다.
과연 강 변호사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우선 친구 종태의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심을 가졌어야 했다. 강 변호사가 이 사례를 판사 시절에 자신이 재판을 담당한 사건 기록에서 보았다면 어땠을까. ‘박종태의 이런 솔깃한 제안 이면(裏面)에 어떤 위험요소가 있지 않을까’라고 의심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되었을 때 강 변호사는 객관성을 잃어버렸다. 그 제안을 한 사람이 고등학교 친구였고, 강 변호사 본인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사정이 강 변호사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강 변호사와 같은 상황에서 객관성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일찍이 노자는 ‘복(福)이란 화(禍)가 잠겨 있는 곳이다’라고 했다. 인생의 고수들은 화(禍)와 복(福)이 패키지로 움직인다는 점을 알기에 갑자기 들이닥친 복을 덥석 잡아채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