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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경을 생각하는 서울시민이라 ‘재활용 정거장’이 생겼을 때 졸라 귀찮지만, 부지런히 분리해서 버렸었다. 담뱃갑도 종이와 비닐로 부지런히 분리했다. 마포구는 화, 목, 일 정거장이 선다. 그런데 오늘 바로 오늘 그 정거장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저 뒤에 쇠사슬에 묶인 채 나뒹굴고 있었다. 이거 안 하냐 이제? 뭐시기 조끼 입은 재활용 도움 아주머니까지 계실 땐 언제고…

딸기 한 팩을 사면 딸기가 2층으로 있다. 코아마트엔 3,000원짜리와 5,000원짜리가 있는데 3,000원 짜리를 한 번 샀다가 영 짜잘짜잘하고 여기저기 멍이 들어 금방 썩어버리는 통에 승질이 나서 5,000원짜리를 샀다. 알도 굵고 맛있다. 그런데 아래층에 있는 녀석들은 위층에 있는 녀석들보다 알도 작고 조금 더 푸르딩딩하다. 딸기 농가가 지금 내게 딸기로 눈속임하는 것인가. 심지어 투명한 팩으로. 그런 것인가.

“약수동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야혀.”

이제 그제가 되었구나. 중구보건소로 갈 일이 있어 6호선을 타고 간만에 음악을 들으며 모가지와 뒤꿈치를 깔짝거리는 흥겨움을 즐기고 있었는데 웬 할머니가 휠체어를 갖고 낑낑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휠체어가 영 어색한 휠체어 초보자 같아 보여 자세를 잡는 것을 도와드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약수동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야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길 위의 휠체어

아니 내가 어딜 가는 줄 알고 그러시지. 나는 포악하고 흉악하며 사리사욕에 가득 차 있고 차갑고 냉정하며 이익이 되는 일이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에, 때마침 귀에 이어폰도 꽂았겠다 모른척하려 했지만 마침 가는 길도 비슷하고 대가 없는 착한 일을 하면 돌아오는 개인적 만족감을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약수역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휠체어 초보가 분명했다. 휠체어에 탄 채로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실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힘이 세긴 해도 관절 여기저기가 부실한데 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찰나 어느 아주머니께서 저 뒤에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알려주셨다. 날 한심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역시 여자는 현명하고, 사고가 유연하다. 그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난 그 휠체어에 탄 할머니를 통째로 들고 올라갔을 것이다.

그렇게 한 층 올라갔다. 나의 선행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나의 선한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던 찰나 할머니께선 3번 출구로 나가셔야 한다고 외치셨다. 아….

어차피 역 밖으로 나가 걸어갈 참이었으므로 그 여정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선한 마음은 바닥이 났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여정이 실제로 어떠한지 옆에서 느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내 생각만 한다. 아주 이기적이다.

그 느리고 불편한 기계를 써야만 했다

그런데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그 드럽게 느려터진, 난간에 설치되어 계단을 실실실 올라가는 그 기계를 써야 했다. 역무원이 오셨다. 친절하신 그분이 전원을 꼽고, 그 기계를 작동을 시켰다. 2015년에 쓰는 기계치고는 너무 느려터졌다. 끼이이이이~이이이잉~ 하며 안전 바가 천천히 내려오고 다시 끼이이이~이이잉~ 하면서 고정 바가 올라왔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그 느려터진 기계를 타고 올라가시는 할머니께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셨다. 서러운 울음이었다. “내가 멀쩡했었는데 병신이 돼서 이렇게 사람들을 고생시키고…”라고 하시며 울먹이셨다. 그 기계가 요란스러운 데다가 느려터지고 번거롭기까지 해서 저걸 타면 서러움이 증폭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기계 위에서 할머니의 서러움이 터지고 말았다. “아, 힘들면 도우면서 사는 거죠, 원래.”라고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듣지 않으셨다.

지하 1층에서 드디어 3번 출구로 나가기 직전, 할머니께선 갑자기 화장실을 가셔야겠다고 하셨다. ‘내가 머리도 요상하고 승질머리가 드러워 보일 텐데 참 편하게 할 건 다 하시는구나,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다. 장애인 화장실 버튼을 누르려던 초딩에게 “안에 사람이 있으니 누르지 말고 꺼져.”라고 말해주었다. “꺼져” 까지는 내뱉지 않았다.

“아, 힘들면 도우면서 사는 거죠, 원래.”

그렇게 3번 출구로 나왔다. 나는 이제 나의 목적지를 향해, 선행을 하고 뿌듯한 마음을 가슴 한가득 안고, 나아갈 생각이었는데 이 할머니께선 휠체어 초보가 분명하셨다. 손으로 바퀴를 돌릴 줄 모르신다. 조심히 추측해 보건대 휠체어를 보행 보조기구로 이용하시고, 타고 다니시진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지하철 안에도 밀고 들어오셨으니까. 속는 기분이 들어 살짝 짜증이 났지만, 간만에 휠체어를 밀어보는 기분을 느껴보기로 했다. 바퀴가 달린 것은 타든 밀든 재밌는 거니까. 이렇게 나는 내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한 번 울고 난 직후여서일까, 햇살을 받아서일까, 전에 자주 오던 길이라서 그런 걸까, 할머니께선 조금 신이 나셨다. 빵집이었던 자리가 보석 집으로 바뀌었고, 자기가 다니던 교회가 교인이 2,000명이고, 그런데 병신이 돼서 못 다니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셨다. 그런데 나도 알고 있다. 나도 약수역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았으니까. 인연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께선 교회 앞에 있는 옷집에 가셨다. 아마 교회에서 사귄 친구분이신 것 같다. 옷집 아줌마는 할머니에게 돈을 받고 검정 비닐에 싸인 약통을 건네셨다. 그러면서 약값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타박을 하신다. 아… 이거 약장수 스멜이 났다. 이 할머니는 중풍에 걸린 뒤로 몸이 불편해진 지 8개월쯤 되셨다고 했다. 그런데 옷집 할매한테 대체 무슨 약을 구매하시는 것인가… 바깥양반 눈치를 보며 몰래 힘들게 약수까지 오셔서.

할머니는 나를 가리키시며 저 아저씨가 도와줘서 올 수 있었다고 하셨다. 옷집 아줌마는 “아이고, 저 학생이 참 착하네.”라고 해주셨다. 옷집 아줌마 친구도 “아이고, 착한 학생이네.”라고 해주셨다. 난 이기적이고 악랄한 사람이기에 착하다는 표현이 불편했다. 하지만 학생이라고 불리는 것은 기분이 좋았다. 내가 지금 30분째 휠체어를 갖고 씨름을 하고 있는데 나를 아저씨라고 불러서 짜증은 나지만 정확한 눈을 가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를 만난 그날은 바로…

약도 받았겠다, 볼일이 끝난 것 같아 나는 내 발걸음을 신당역 쪽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러던 찰나, 아, 그 찰나, 찰나! 할머니께선 다시 역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말씀하시고야 말았다. 중풍에 걸리신 분 치곤 순발력과 총기가 대단하셨다. 나도 휠체어 바퀴도 밀 줄 모르시는 할머니를 경사진 인도에 두고 돌아서긴 쉽지 않았기에 휠체어를 다시 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휠체어 미는 것이 아직까진 재미가 있었다. 이렇게 나는 자기중심적이다.

아까 그 소란스러운 계단 내려가는 기계 앞으로 모셔다 드렸다. 역무원도 불렀다. 할머니께선 이제 혼자 가시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참 반가웠다. 오류동에 가신다고 했다. 휠체어 타는 것이 익숙해지면 잘 돌아다닐 수 있을 거라는 말씀도 드렸다. 역시나 할머니는 듣지 않으셨다. 뭐 상관없다. 나는 그렇게 선한 행동을 한 뒤에 오는 자기만족을 한가득 품에 안고 이어폰에서 나오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어깨를 들썩이며 나의 목적지인 중구보건소를 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날이 장애인의 날임을 알게 되었다.

[box type=”note” head=”장애인의 날”]국제재활협회에서 1070년을 “재활 10년”으로 정하고 각 나라에 “재활의 날”을 지정하고 기념할 것을 권고했는데, 이에 1972년 4월 11일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는 재활의 의미가 있는 4월 중에 통계적으로 비가 오지 않는 4월 20일을 선택하여 “재활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UN이 “세계 장애인의 해”로 지정한 1981년에 한국 보건사회부는 4월 20일을 “제1회 장애자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 이후 1989년 12월 30일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 의해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였으며, 1994년 3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포함했습니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북돋우며 복지 증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며 날짜는 매년 4월 20일입니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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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할머니는 두고두고 고마운 학생 얘길 하실거고 억지(?) 선행한 필자는 글 소재가 생긴거고, 독자들 마음엔 훈훈한 바람이~ 작더라도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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