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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8년 3차 유엔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UPR)에서 대한민국정부에 내려진 권고들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2018년 이후 한국의 인권 상황을 유엔에 보고하기 위해 대한민국 461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작성해 2022년 7월 14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링크)를 각 분야별로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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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법적, 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그 이행을 위한 예산이 보장되지 않는 탓에 장애인은 여전히 실질적 차별과 배제를 겪고 있다.
함께 살고픈 ‘꿈’
지난 2014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탈시설’(장애인이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자립하고 정착하는 것) 계획을 수립하고 지역사회 서비스를 대폭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시설 거주 장애인은 2014년 31,406명에서 2020년 29,086명으로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지역사회 거주에 어려움을 경험하는 이들은 발달장애인으로, 한국 정부는 2021년 ‘발달장애인지원법’을 제정했으나, 서비스의 종류와 양이 너무 적어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전히 많은 가족들이 발달장애인의 시설 입소를 희망하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장애인을 살해하고 자신들도 자살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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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옥이가 영희와 살 수 없는 이유…
“왜 사람들이 영희 같은 애 길거리에서 못 보는지 알아? 나처럼 다른 장애인 가족들도 영희 같은 애들 시설로 보냈으니까. 한때 나도 같이 살고 싶었어. 근데 같이 살집 얻으려고 해도 안 되고, 일도 할 수 없고. 영희 어쩌면 일반 학교에서 계속 공부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었어. 근데 일반 학교에서는 거부하고, 특수학교는 멀고 시내 가까운 데는 특수학교 못 짓게 하고… 어쩌라고!”
–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2022, tvN) 중 발달장애인(다운증후군) 동생(영희)이 있는 영옥(한지민)의 대사 중에서
드라마 속 영옥이가 토해내는 말은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의 고통, 장애인 가족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표현한다. 발달장애인 스스로 지역사회에 자립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장애인이 비장애인 가족과 함께 산다는 것도 비장애인 가족 구성원의 ‘희생’을 십중팔구 강요한다. 영옥이의 ‘항변'(?)처럼 가족이라는 ‘개인의 의무감’에 기대기에는 현실은 너무 비정하고 냉혹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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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역사회 내 자원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드러낸다. 한국 정부는 2021년 8월, 탈시설 계획으로 ‘장애인 자립지원 로드맵’을 마련하였으나, 로드맵은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2023년 탈시설 예산은 21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거주시설 예산은 6,224억 원으로 탈시설 예산의 약 300배에 달한다.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유의미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동이 필수적 요건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27.8%에 그친다. 법률이 개정되었지만,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예산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아 여전히 장애인들은 이동에 있어 비장애인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예산 없이 권리 없다’라는 슬로건으로 지난해(2021) 12월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대중 캠페인을 해왔으나,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이 추경예산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장애인의 요구를 묵살했다.
정부는 장애인의 탈시설, 지역사회 자립생활(활동지원, 가족 보호, 교육, 노동, 문화 및 여가생활 등), 이동권, 긴급 상황에서의 지원 등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법과 제도의 실질적 이행을 위한 예산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장애인 노동
2018년 ‘최저임금법’에 따른 ‘작업능력평가’ 결과, 한국에서 법적으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장애인은 9,413명이었다.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2020년 기준 37만원으로 2020년 최저임금의 20%(179만원), 통계청 발표 전체 국민 평균임금의 11%(32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장애인 노동자 대부분은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분리하고, 의료 및 재활 접근을 강조하는 ‘장애인보호 작업장’에서일하고 있다.
- 장애인보호 작업장: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직업재활시설로 장애인의 직업훈련과 재활이라는 명분으로 비장애인과 분리고용된 일터로 최저임금적용 예외를 신청할 수 있다.
전국 619개 직업재활시설 노동자 중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2,702명에 불과하며, 최저임금 미만인 장애인노동자는 7,371명이나 된다. 이는 한국의 헌법과 최저임금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생활안정’이라는 최저임금의 목적에 어긋난다.
중증장애인의 권리기반 공공일자리 사업
최저임금적용제외 및 보호작업장에 대한 대안적 일자리로 서울시는 2020년 7월부터 ‘중증장애인의 권리기반 공공일자리’ 사업을 실시하여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나온 이후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 장애인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이 노동자들 중 상당수는 가장 심한 장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 임금노동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으나, 이제 이들은 UN CRPD(유엔 장애인권권리위원회)를 대중에게 알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문화 예술 활동, 장애인 권리 교육, 장애 권리 옹호 활동이라는 세 가지 주요 업무를 통해 긍정적인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로써 중증장애인 본인과 장애인 가족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이러한 활동은 혁신적인 시도로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일자리에는 장애인만 채용될 수 있지만, 이들은 통합된 업무 환경에서 근로지원을 제공받고 있으며, 서울시와 협력하여 노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는 전국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근로자는 매년 계약을 체결해야 하며, 지원 인력도 제한된 예산으로 인해 불안정한 근무 조건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정부는 법률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일할 수 있는 의료적 적합성’ 등을 폐지하고, 중증 장애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가 최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보호작업장’을 폐지하고 지방 정부 차원에서‘권리중심 공공일자리’등 권리에 기반한 장애인 일자리를 확보하여 궁극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충분한 예산을 지원, 안정적이고 상시적인 일자리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중증장애인과 지원인력에 대한 평등한 노동기회를 보장할 수 있다. 정부는 자선에 가까운 일자리 또는 프로그램을 넘어 중증 장애인이 노동할 수 있는 다양한 직무를 개발할 책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