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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지금(2015년 1월 11일 오후) 프랑스 전역에서는 거대한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일련의 테러(지난 1월 7일에서 1월 9일까지 사흘 동안 프랑스인 세 명이 프랑스 영토 내에서 17명의 프랑스인을 사살한 사건)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Ben Ledbetter, Architect, "I am Charlie Hebdo", CC BY https://flic.kr/p/qrpbvk
Ben Ledbetter, Architect, “I am Charlie Hebdo”, CC BY (2015년 1월 11일, 파리)

악몽의 3일

1월 7일.

사이드 쿠아치(سعيد كواشي, Said Kouachi, 34)와 셰리프 쿠아치(شريف كواشي, Cherif Kouachi, 32) 형제는 주간지 샤를리 엡도 편집회의 현장에 중무장하고 침입했다.

쿠아치 형제는 자동소총으로 이 주간지에 만평을 게재하던 다섯 명의 만평가(캬뷔, 티뉴스, 오노레, 볼란스키, 샤르브), 기자, 교정기자, 보호 경찰 등 8명을 조준 사격으로 살해했다. 건물 경비원, 출동한 경찰 등 5명도 같은 날 살해되었다.

희생된 샤를리 엡도 만평가들
희생된 샤를리 엡도 만평가들

샤를리 엡도 살해 현장에서 테러범들은 외쳤다.

“알라는 위대하다!”

1월 8일.

아메디 쿨리발리(Amedy Coulibaly)는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채 파리 남쪽 방리유(교외)에서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한 20대 인턴 경찰에게 총격을 가했다. 같은 날 오후 부상당한 이 젊은 여성 경찰은 사망했다.

1월 9일.

쿠아치 형제와 쿨리발리는 각각 파리 근교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테러진압 부대와 대치하다 해산 작전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쿨리발리가 20여 명의 인질을 붙들고 인질극을 벌였던 곳은 유대인들이 종교의식에 따라 준비한 식재료를 파는 코셔 전문 슈퍼였다. 인질극을 시작할 때 살해당한 네 사람이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테러를 함께 모의한 것으로 보이는 쿨리발리의 부인 하야트 부메디엔(Hayat Boumeddiene, 26)는 이미 1월 초에 시리아 IS 진영으로 피신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테러의 공범 중 실행범 셋은 현장에서 사살됐고, 공모범 부멘디엔만 생존해 도주한 상태다.

Michel Craig, CC BY SA https://flic.kr/p/pMY3ph
Michel Craig, CC BY SA

훈련과 지원 통해 계획된 집단 테러 

테러를 실행한 세 청년은 각각 알제리와 말리에서 프랑스로 이민한 이민자 가정 출신이며 이슬람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 국적자였다.

이들은 파리 북부에서 2000년대 초에 지하드 조직을 결성했다. 쿠아치 형제 중 동생 셰리프는 2008년 알 카에다에 지원하는 프랑스인을 도운 혐의로 징역 18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형 사이드는 2011년경 알 카에다의 재정 지원으로 예멘에서 몇 달간 군사훈련을 받고 돌아왔다.

여러 차례 절도와 폭력 등의 범죄혐의로 수감되었던 쿨리발리는 수감 기간에 지하디스트 세력과 접촉하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변모했다. 쿠리발리는 스스로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S) 조직원이라고 밝혔다.

IS 관련 용어들

이들 셋은 ‘마호메트’ 캐리커처 게재 및 풍자 등이 이슬람 종단과 신도들에 의해 신성 모독으로 비난받았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와 경찰, 유대인을 테러 대상으로 삼고 실행하기로 치밀하게 기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 부적응자의 충동적인 범죄와 구별되는 계획적인 테러였다는 점은 프랑스 사회에 더 큰 충격을 줬다. 또한, 이들의 테러는 군사집단이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한 광신적 동기의 폭력이다.

이 점에서 이들은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져 고립되어 살다 테러를 결심했던 노르웨이 극우주의자나 시드니 이슬람주의자와 같은 ‘외로운 늑대’형 범죄자와도 다르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테러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고 테러에 맞서는 프랑스의 용기를 보여주기 위한 이 행진에 프랑스 전역에서 수백만 이상의 인파가 참여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을 제외한 모든 프랑스 정당의 지도자,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정상 대부분, 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이스라엘 수상 등이 거리에서 함께 걷고 있다. 레베라시옹은 한 참여자의 말을 이렇게 전한다.

“나는 한 번도 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어요. 많은 수의 사람이 좀 무서워요. 게다가 테러 위협이 현존하는 이때 저는 이곳에 오는 것이 좀 무서웠어요. 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행진에 참여해야 했어요.”

유례없는 행진대열을 이룬 사람들은 생각의 차이로 살해를 감행한 이들에 대한 분노, 이웃을 잃은 슬픔, 좋아하던 만화가를 잃은 슬픔 등을 토로하지만,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프랑스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테러에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Valentina Calà, Je suis Charlie 19, CC BY SA https://flic.kr/p/qKr8Ka
Valentina Calà, “Je suis Charlie 19”, CC BY SA

66% 프랑스인, “무슬림과 테러리스트 하나로 봐선 안 된다”

극우 진영과 우파 진영은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좌파 정부의 국무총리지만, 치안주의자에 가까운 마뉴엘 발즈는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이어야 하며 종교에 대한 전쟁이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많은 무슬림은 “나와 내 종교의 이름을 빌려 테러를 저지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3일간의 대테러전이 끝난 후 실시된 한 설문 조사에서 66%의 프랑스인은 “무슬림과 테러리스트를 하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과반을 훨씬 웃도는 프랑스인이 무슬림과 극단주의 테러리즘을 구분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신을 중도좌파라 밝힌 한 프랑스 고위 공무원은 이조차 너무 낮은 비율이라고 답했다. 더불어 29%에 달하는 프랑스인이 “이슬람이 프랑스에 위험요소”라고 답한 것에 대해 근심한다. 참고로 행진 다음 날 설문 조사에서 97%가 “프랑스의 단결”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

Thomas Bresson, CC BY (2015년 1월 8일)  https://flic.kr/p/qKsCKB
Thomas Bresson, CC BY (2015년 1월 8일)

리베라시옹에 실린 의견들

다음 주 100만 부의 특별호를 발간할 샤를리 엡도에 편집실을 빌려 준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사태가 종결된 다음날 무슬림 이민자 가정 출신의 경제학자와 (아마도 이민자 출신이 아닐) 프랑스 정치학자 등의 견해를 실었다.

1. 무슬림 경제학자

“내 이름으로 외치지 마라!” 

평화를 존중하는 다수의 무슬림은 알라의 이름으로 인간을 모욕하는 소수 극단주의 종파의 행동에 찬성하지 않으나 이제껏 그저 침묵하는 것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다수의 무슬림이 “알라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야만과 살육을 행하는 소수 극단주의 근본주의자들에게 거부의 뜻을 밝힐 때라고 말했다.

“내가 섬기는 신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인용하지 말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2. 정치학자

“프랑스의 무슬림은 스스로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

“무슬림이 이 사태에 대해 자신이 테러리스트와 무관하다며 정당화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무슬림에게 당신이 믿는 종교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아니라고 밝히라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고 적었다. 이는 다시 무슬림을 종교 공동체 안에 가두는 행위이므로 공화국의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이글은 당일 리베라시옹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글 중 하나였다.

3. 마누엘 발즈 국무총리

“종교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테러리즘에 대한 전쟁” 

사회당 정부의 국무총리 역시 공식적으로 무슬림과 테러리즘을 같은 것으로 보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해야 하며, 이는 테러리즘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언론은 뉴욕타임스를 인용하여 발즈 총리가 “이슬람 극단주의와 전쟁”을 선포했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그밖에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감성적인 일화들도 보도되었다. 사고현장에서 죽은 경찰은 무슬림이었다거나 그의 가족들과 테러범의 가족이 TV에 나와 테러리즘을 비난하고, 우리가 믿는 무슬림은 평화의 종교다, 우리의 종교와 테러리즘은 무관하다고 밝히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400만 행진에서 ‘반이슬람’을 읽지 마라 

그러니 오늘 집회에 운집한 사람들에게서 프랑스에 확장하는 반이슬람주의를 읽어내려는 시도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더불어 프랑스 시민의 용기를 서구의 한가한 부르주아 윤리로 냉소하는 일에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차별과 공포에 맞서는 시민의 참여와 연대, 용기에 관해 우리는 이야기해야 한다.

수백만 인파가 운집하는 집회 현장은 질서정연하거나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평소 적대하는 이들끼리 생각의 차이가 묻어나는 구호를 외치다 주먹질을 주고받을지도 모른다. 화가 나면 분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분별없이 쓰레기통을 걷어찰지도 모른다.

이곳에 살면서 프랑스가 톨레랑스의 나라라거나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라는 말을 실감하며 감격에 겨워하는 일은 그다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는 이들을 쉽게 수상하거나 피곤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사회, 어디에서나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제일 먼저 강조되는 사회에서 자란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프랑스 사람들의 불평불만, 일사불란함이라곤 모르는 프랑스 사람들의 행동에 금방 짜증을 느끼게 된다.

Thomas Bresson, CC BY ( 2015년 1월 11일 파리)  https://flic.kr/p/pQkTYU
Thomas Bresson, CC BY ( 2015년 1월 11일 파리)

“나는 샤를리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프랑스 사람들의 자유분방함은 집회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뜬금없이 이 사태에 대해 이 질문에서 시작해본다. 몇 명이 난동을 부렸다고 해서 어떤 집회현장에서 집회를 여는 이들이 주장하는 바의 가치가 훼손을 받아야 하는가? 시끄럽고 통제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정치적 주장을 할 가치가 없는 이들인가?

이 질문은 사실 민주주의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질문과 일치한다.

시끄럽고 서로 달라 통제하기 힘든 사람들, 곧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지 않는 것, 자유를 훼손하려는 치안주의자에 맞서는 것, 생각이 다른 이를 처단하겠다고 주장하고 실행했던 이들, 또는 이들의 배후가 조장하는 공포에 맞서는 것, 적어도 이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집회에서 방어하려고 하는 가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샤를리다”는 함께 거리에 나서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되어야 한다.

Valentina Calà, CC BY SA https://flic.kr/p/pLMoPJ
Valentina Calà, CC BY SA

이택광의 모호한 칼럼, 이슬람 근본주의 vs. 세속주의? 

혹자는 “나는 샤를리다”라는 표현을 다르게 해석했다. 테러 사건이 종결되기 전에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의 보편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이택광 교수의 칼럼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택광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내가 샤를리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사망한 만화가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연대의 목소리는 테러의 폭력성을 규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용인하지 못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설적으로 “내가 샤를리다”라는 구호는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가 일어난 그 원인을 드러내는 증상에 가깝다. 정작 이 구호에서 빠져 있는 것은 이번 테러를 촉발한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인 “누가 샤를리인가”라는 질문이다. 과연 “내가 샤를리다”라는 구호에 무슬림은 포함될 수 있는가. 무슬림이 “샤를리”이고자 한다면, 그는 세속주의를 용인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내가 샤를리다”라고 주장하는 세속주의자가 무슬림을 “샤를리”로 인정하려면 종교적 신념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이택광, ‘표현의 자유’라는 상식에 대한 도전 중에서

이택광 교수의 글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에 대한 서구의 비판을 먼저 상대화하거나 무력화할 필요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정작 칼럼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세속주의는 매우 모호한 의미를 띠고 있다.

무슬림이 ‘공포에 맞서는 연대에 참여하기’ 위해 세속주의를 용인해야 할 것이라는 이 교수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프랑스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사는 대다수 무슬림 또는 자잘한 비행을 저지르는 무슬림조차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세속 세계에서도 종교의 율법을 우선시하는 이들을 근본주의자로 칭한다. 이슬람법은 종교적 가치에 충실하지 않은 이에게 신체 처벌을 허용하며, 근대 서구가 존중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제한하는 여러 내용을 담고 있다. 종교 생활은 사적인 영역이며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 이외 세속 세계에서는 법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세속주의이다.

이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전면에 내세운” 샤를리 엡도가 성역 없는 풍자를 한 것이 ‘성역’에 대해 세속주의의 관점을 고수하는 입장에 더 가까웠으며 “이 세속주의는 근본주의자에게 커다란 위협이었고, 따라서 주간지는 이슬람 세계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무슬림 무장단체들에 ‘눈엣가시’였다”고 말한다.

도덕주의의 오류: 순결한 희생자만 보호? 

여기서 테러리즘의 희생자 샤를리 엡도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이들의 정치적 올바름을 입증해주는 것은 사실 불필요한 일이다. 마치 순결한 피해자만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듯한 도덕주의의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월호 유족의 싸움에서 한탄했던 바처럼 도덕주의는 언제나 사태의 정치적 의미를 거세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태에 대해 특히 도덕주의를 적용한다. 샤를리 엡도의 도덕성,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질문은 어쩌면 이들의 죽음을 야기한 야만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분노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샤를리 엡도는 도덕주의와 권위를 거부했던 이들이다. 광대가 될 자유를 주장하는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웠으며,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었다. 이는 성역 없는 풍자의 자유였을 뿐 아니라 신념의 자유이기도 했다.

나는 샤를리 엡도의 잠재적인 독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유머는 너무나 프랑스적이기도 했다. 나와 같은 평범한 먹물의 지지를 받는 일에 샤를리 엡도의 만화가들은 조금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불안을 느끼며 자신들의 온건함을 강조하고자 하는 무슬림에게도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피해자의 죄 없음, 피해자의 성실, 착함을 주장하는 일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그럼에도 나는 샤를리 엡도를 알지 못한 채, 제3세계의 야만을 훈계하는 서구 도덕주의자나 도덕적 우월성에 가득찬 인종주의자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해 몇 가지 적는다.

권위와 위선 특히 극우정당 혐오한 샤를리 엡도 

샤를리 엡도는 만평지이다. (전신은 ‘하라키리 엡도’)

한국에 초기 알려진 것과 달리 샤를리 엡도는 이슬람교나 무슬림을 주요한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이들은 모든 권위, 특히 인간을 억압하는 종교적 권위와 정치인의 위선과 반민중성을 조롱했다. 특히 가장 빈번히 반외국인, 반이슬람 정책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극우 정당을 조롱했다.

이 잡지는 정치적 의제를 제안하는 정치 매체가 아니었지만, 함께 일하는 만평가와 기자는 대개 극좌 또는 좌파 성향이다.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권위주의 정책을 천명하는 장마리 르펜이 설립한 극우 정당 ‘국민 전선'(Front national, 약칭 FN)을 가장 혐오했다. 국민 전선은 샤를리 엡도를 15차례 이상 고소했고, 이슬람 종단은 단 한 차례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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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마린 르펜이 극우 정당 이미지를 희석하려고 시도할 때 나왔던 샤를리 엡도의 만평. “마린 르펜이 FN을 탈 악마화한다”(왼쪽 문구) “나는 이렇게 면도를 하지”(그림 속 마린 르펜의 대사)

샤를리 엡도의 전신 하라키리 엡도는 1960년 창간했다. 하지만 1970년 11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자 프랑스 우파 정치의 상징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는 1면 제목 때문에 폐간됐다. 당시 프랑스 내무부는 폐간 사유로 ‘포르노를 실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샤를 드 골 (1890~1970) 사진은 1961년 당시 모습. 출처: 위키백과 공용 http://www.bundesarchiv.de/
샤를 드 골 (1890~1970) 사진은 1961년 당시 모습. 출처: 위키백과 공용

여러 프리랜서 유명 만화가가 샤를리 엡도의 간판스타였다. 이들은 다른 지면에 게재할 수 없는 전복적이거나 불편한 만화를 이 잡지에 서슴없이 게재했다. 샤를리 엡도의 만평가들은 정치적 정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은 불편하게 할 권리를 천명했으며, 권위를 조롱할 권리를 천명했다. 이들에게 독자는 아첨해야 할 소비자도, 조종해야 할 멍청이도 아니었다.

전형적인 68세대, ‘우리와 함께 웃을 독자’ 고집 

광고를 게재하지 않는 샤를리 엡도의 다소 무정부주의적이며 복잡다단한 지향은 더 선정적인 기사를 보도하여 더 많은 광고 및 판매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타블로이드 주간지의 영업원칙과 구별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철저하게 ‘우리와 함께 웃을 독자’, ‘우리의 유머 코드를 이해하는 독자’를 찾는 편집 원칙을 고수했다.

그들이 구사하는 전혀 착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은 유머 코드가 특정 종교의 신도들이나 정치인들에게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샤를리 엡도는 특정한 혐오 이데올로기의 광범위한 전파에 앞장서는 (따라서 위험한) 극우 정당이나 그의 (점점 증가하는) 동조자들과 명확히 구별됐다.

그러나 대중성을 추구하지 않는 이들의 판매 부수는 지속해서 하락세를 그려왔고, 최근에는 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샤를리 엡도는 근육질 남성의 사진을 게재하는 성 소수자 타켓의 잡지, 선정적인 타블로이드 주간지, 정론지, 싸구려 정보지 사이에서 근근하게 명맥을 이어왔다.

인터넷판조차 내지 않고 종이 지면만 고수했으며, 광고를 거부했고, 무신론의 자유, 반 도덕주의의 가치를 추구했던 이들은 전형적인 68 혁명 세대였다. 21세기의 젊은 좌파나 시민들은 점점 더 샤를리 엡도와 멀어졌다.

그러나 샤를리 엡도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들은 도덕적 해방을 주장한 전형적인 과거의 세대였으며, 이들의 쇠락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감수성이 더 커지고, 전복과 스캔들의 문화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세대의 등장과도 맞물려 있다.

샤를리 엡도의 창간 멤버, 프랑수아 카바나(François Cavanna, 1923 –2014)  http://en.wikipedia.org/wiki/Charlie_Hebdo#mediaviewer/File:Fran%C3%A7ois_Cavanna.jpg
샤를리 엡도의 창간 멤버, 프랑수아 카바나(François Cavanna, 1923 –2014)

권위를 조롱할 권리 박탈하는 이들 희화화

샤를리 엡도는 물론 평등하게 모든 종교를 희화화하지 않았다. 이들은 무엇보다 권위를 조롱하였으므로, 권위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권리와 조롱할 권리를 박탈하는 이들을 희화화하였다. 물론 이들을 구독하는 이들은 대개 좌파, 무신론자, 무정부주의자들이다.

샤를리 엡도의 만평과 풍자는 일관된 방식으로 권위를 비웃었다. 새로운 정보나 격조 있는 에세이,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으니, 점잖은 정치학자나 독실한 신자들은 구태여 이틀을 찾아 읽을 까닭이 없었다. 이들은 스스로 광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었으므로, 광대질을 금지하는 집단이 이들과 가장 불화했다.

2011년 샤를리 엡도는 잘못을 한 사람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이슬람 율법을 희화화했다. 마호메트의 형상을 한 인물이 “이번 호를 읽고 죽을 것처럼 웃지 않은 이에게 채찍질 100번”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때문에 이들 사무실이 세 들어 있는 건물에는 폭탄이 날아들었다.

샤를리 엡도
“이번 호를 읽고 죽을 것처럼 웃지 않은 이에게 채찍질 100번” (샤를리 엡도, 2011년 11월 3일 자)

샤를리 엡도의 제한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전복적인 논법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민자 급증 = 프랑스의 이슬람화?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 언론은 ‘프랑스적 가치의 시련’이라는 틀로 많은 보도들을 내 보냈다.

이 테러를 프랑스적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는 편은 극우정당과 그 지지자들, 우파 강경세력이다.

프랑스에 이슬람 이민자가 급증하며, 프랑스는 점점 더 “이슬람화”되어 가고 있다는 (실제 통계와 꼭 맞아 떨어지지 않는) 소문을 지속해서 확장하며, 유권자를 끌어모으는 이들은 극우세력이다.

‘이민자 급증 = 프랑스의 이슬람화’라는 극우파 선동에 대해 올랑드 대통령이 이민의 장점과 이민자의 기여를 언급한 후 프랑스 언론은 “이민 통계에 대한 편견에 찬 열 가지 오해”라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

테러 사건 이후 계속 “우리는 샤를리다”,“나는 샤를리다”,“자유를 위한 투쟁”,“저항하라” 같은 제하로 편집하는 리베라시옹은 테러 사태가 일단락된 다음 날 사설(“민중이여 일어서라”)에서 테러범을 지칭하며 단 한 차례도 “이민자”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단 한 차례도 테러범을 '이민자 출신'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리베라시옹 사설 "민중이여 일어나라" http://www.liberation.fr/societe/2015/01/09/un-peuple-debout_1177353
단 한 차례도 테러범을 ‘이민자 출신’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리베라시옹 “민중이여 일어나라”

“나는 샤를리다” 누가 그 의미를 축소하는가 

범인들은 프랑스인이다. 물론 이들의 출신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출신이 테러 사태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실로 간주해야 하느냐이다.

오히려 우리가 꼼꼼하게 따져 보아야 하는 지점은 평범한 비행청소년이나 별 달리 독실하지 않던 무슬림 청년이 시민법의 규율보다 종교적 규율을 우선하고 이것이 시민의 삶을 모두 관장해야 한다고 믿는 근본주의자, 더 나아가 지하디스트가 되는 구체적인 까닭과 경로이다.

테러범들은 인질극 당시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서구인처럼 아이와 여자, 민간인은 해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게 신성모독을 행한 기자들과 유대인은 보호할 시민이 아니었다. 낭시 광장에 붙은 작은 대자보를 나는 사진기에 담았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샤를리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 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생명을 사랑한다.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
나는 무슬림을 사랑한다.
당신들 그리고 모두를 환영한다.”

Leenara

특정 종교를 배타적으로 사고하는 서구의 시민만이 샤를리가 되고자 한다고 주장하며 “나는 샤를리다”의 의미를 축소했던 이들에게 나는 다시 ‘누가 시민인가’라고 자문한다. 그리고 답한다.

폭력과 모욕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이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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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1월 12일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파리에서 사백만 시민이 행진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맨 앞에는 물론 프랑스 정부에 의해 초대받지 않았으나 제 발로 찾아와 첫 대열에 서려고 애썼던 이스라엘 수상 네탄야후도 있었다. 네탄야후가 오기로 결정한 이후 곤란해진 프랑스 정부는 서둘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사태를 이용하려는 각국 정치인들의 속셈이 분명히 드러났다.

물론 사백만 시민의 열기는 프랑스 내의 모든 갈등이 사라질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단정적’으로 ‘확연하게’ 전달하지 않는다. 이 열기는 다만 공포에 굴복하지 않고, 노력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야 한다.

그런데 공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행진, 거리에서 배우고 연대하는 시민들의 행진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람은 맨 앞자리 정치인들인가? 이 사태를 이용하기 위해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자비를 털어 달려온 아프리카의 독재자(가령 말리 대통령)나 이스라엘 수상 네탄야후를 주목할 필요는 없으리라. 누군가는 기사의 사진을 보며 “반공궐기대회” 같다고 냉소했다.

이날 주인이었던 시민 앞에서 시민을 보지 않고 정치인들만을 바라보며, 이들의 속셈을 비난하는 것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이들에게 시민, 민중, 인민은 무슨 의미인가? 당신들이야말로 인민을 일깨울 수단, 시끄럽게, 분별없이 외치다 잊고 마는 그런 사람들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나는 샤를리다”라는 가장 직접적인 애도 구호 이후, “나는 자유롭다”, “나는 샤를리다, 나는 무슬림이다”, “나는 아메드다” 라는 좀 더 구체적인 구호들이 잇달아 나왔다. “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의 희미함은 시민의 힘이 그 자체로 뚜렷한 방향 없이 희미하다는 것과 같다. 이 희미함은 토론과 성찰 속에서만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포에 굴복하지 않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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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댓글

  1. 안타까운건 이 테러 사건 이후에 15건의 반무슬림 범죄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400만의 시민 행진 이외에 프랑스와 독일에서 네오나치, 극우, PEGIDA 세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테러사건을 근거로 13건의 PEGIDA 시위가 조직 되었으며, 테러 사건 이전, 드레스덴에서 18000명이었던 PEGIDA 시위대가 어제는 25000명으로 늘어났고, 다음 시위에서는 3만명을 돌파할거라는 분석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들 또한 “나도 샤를리다”와 “표현의 자유”를 외치고 있구요.

  2. 폭력 세력이 이틈을 기회로 보고, 반무스림 분위기에 편승해 세력을 확장하는 거로 볼 수 있겠군요. 어디가나 참 나쁜 놈들이 있다지만 정말 너무 하네요.

  3.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PEGIDA의 시위가 계속 힘을 얻고, 더 주기가 짧아지고 있어요. 독일 우파정당(상당히 극우적인) AfD의 대변인은 이 무슬림의 테러가 일어날줄 진작에 알았다며, 무슬림들을 유럽에서 쫒아내야한다고 선동하고 있어요.

  4. 기사 너무잘 읽었습니다. 안그래도 Je suis Charlie 에 대한 것이 궁금해서 좋은 글을 찾느라 가디언, 텔레그람 많이 찾아다녔는데 슬로우에 이렇게 좋은글이 있었군요.

  5. 아 생각보다 심하네요 ㅠ 실제로 이에 편승한, 동양인을 표방한 외국인에 대한 사포타지도 우려되고 있구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샤를리다 시위가 이상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어떤 의미를 표방하는지 이론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유용한 일인지에는 좀 회의가 듭니다. 문제가 일어나고 악순환되는 것은 그러한 당위를 몰라서가 아니지요. 글에서도 언급된 바 나머지 34% 중에서 또라이도 나오고 나치도 나옵니다. 그런 걸 단지 시위 중에 일어나는 약간의 부작용 같은 것으로 비유하는 건 좀 무리다 싶은데요.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프랑스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겠지만. 어쨌든간에 이러한 시위와 정서의 변질가능성과 그 파급력에 대한 우려, 샤를리로 대표되는 극단적 표현의 자유가 갖는 정서적 폭력성에 대한 우려, 실질적으로 무슬림이나 외국인들이 대면하는 사회적 소외감과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와 그 대안에 대한 논의를 아예 꺼내지도 못하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 저는 좀 놀랍습니다. 담론의 진행 방향이 조금 의아해서 여기저기 논의들을 뒤져보고 있네요. 다양한 전제들에 따라 이야기가 무척 달라지는 것 같아요. 하여튼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하며 글 잘 읽었습니다.

  6. 프랑스에서도 2001년 이미 극우 정당이 대선 2차 라운드에 올라간 적이 있을만큼 극우파의 득세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테러의 공포에 일차원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의 동물적인 반응, 문화적 폐쇄성 이데올로기적 경직성, 경제 여러 원인으로 일어나는 일일텐데요. 이 흐름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선 이슬람 전체와 테러리즘을 구분하는 것이 첫 대응이여 하는 것이라고 프랑스의 언론과 지식인들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적 애도 기간이 지난 후 여러 반성과 숙고가 이어질텐데요. 최근 프랑스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는 테러범들이 다녔던 학교 선생님 세 분이 연대 서명하여 쓴 글을 붙여드립니다.

    “샤를리 에브도를 죽인 테러리스트들이 가증스러운가. 문제는, 그들이 그 흔한 방리유의 젊은애들의 억양을 갖고 자유롭게 불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이 두 살인범들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다. 우리는 바로 그들과 똑같은 목소리와 억양과 단어들을 매일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듣는다. 바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이 사건에 책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샤를리 에브도가 우리의 형제였고, 우리는 그들의 죽음 앞에 울고 있다면, 그들을 죽인 자들은 프랑스가 낳은 아이들이다. 고아였고, 시설에 방치되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의 형제들을 죽었다. 비극이다. 이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우리 이제, 수치심과 그리고 분노를 말하자. 고통과 분노보다 훨씬 더 불편한 심리적 상황.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말해야 한다. 대체 이럴 땐 어찌해야 할까? 우리가 살인범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동시에 스스로에 대해 수치를 느낀다면.
    그 어떤 미디어도 이 수치를 말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이 사건에서 우리가 나눠가져야 할 책임을 말하지 않는 듯 하다. 이것은 바로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이다. 어리석은 자들과 광기에 휩싸인 자들을 그저 감옥에 쳐 넣고, 거기서 그들을 사악하게 조종할 구루들을 만나 그들의 장난감이 되도록 방치하는 저 국가. 학교에 들어갈 재정을 삭감하고, 지원을 없애는데 혈안이 된 저 국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체류증도, 선거권도, 이빨도 없는) 을 방리유의 빈민촌에 쳐 박아 놓는 저 국가. 그리고 우리가 부르짖는 사회적 가치는 오직 실천을 통해서만이 정신에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정치인들.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이다.
    이 나라의 지식인들, 사상가들, 교수들, 예술가들, 그리고 언론인들이여.
    우리는 우리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죽은 것을 보았다. 그들을 죽인 사람들은 바로 프랑스의 아이들이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처한 이 상황 앞에 눈을 똑바로 뜨자. 어떻게 우리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보다 더 세속적이고(종교적임의 반대의미로) 더 교양있으며, 더 정의롭고, 더 자유로우며, 더 평등하고, 더 박애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희생자들과의 연대하는 마음으로 를 외치는 것은 우리가 이 테러리스트들에게 지고 있는 집단적인 책임감을 배제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샤를리다. 그리고 우린 또한 세 명의 살인자들의 부모이기도 하다.”

    (번역문출처, 파리 꼬뺑)

  7.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을 잊고 어른들의 언어로만 이야기 할 때, 우린 잠시나마 답을 찾은 것 같아 미소를 지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모든 국가에서 자본의 논리로 내버려둔) 방황하는 아이들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그 모두 우리가 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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