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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법 ‘안’에 있는 사람과 법 ‘밖’에 있는 사람도 과연 평등할까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는 법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저지른 헌법 위반 사태였습니다. 하지만 사법농단 법관 14인 중 2022년 3월 현재 유죄로 판결받은 피고인은 두 명에 불과합니다.

그 사법농단 최초의 ‘유죄 판결’에 관한 항소심(2심)이 있었습니다(지난 1월 27일). 그 항소심을 유승익 한동대 연구교수가 비평합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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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사법농단’ 법관 14명 중 유죄가 선고된 최초의 판결에 관한 항소심(2심)이다. 최근 사법농단 행위자들은 7개의 각 재판에서 줄줄이 무죄를 받고 있다. 이 중 두 건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비평 대상은 그나마 유죄가 선고된 사건의 2심이다.

  • 비평 대상 판결: 서울고법 2022. 1. 27. 선고 2021노546 판결

사법농단 14인 중 유이한 유죄 판결, 이민걸과 이규진 

사법농단 14인 중 유이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이민걸과 이규진. 현재(2022년 3월 기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번 항소심에서도 일부 유죄 판단을 받았다. 하지만 형량은 낮아졌다. 이규진 전 위원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이민걸 전 위원에게 징역 10개월에 2년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과 달리 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500만원으로 형이 낮아졌다. 그 외 방창현, 심상철의 무죄는 항소심에서도 유지되었다.

이들의 주요 혐의는 여덟 가지에 이른다.

  1. 법원행정처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판사모임(‘인사모’)을 와해시키려 한 혐의 (이민걸)
  2. 특정 사건의 결론에 대한 재판부의 심증을 파악한 혐의 (이민걸)
  3.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해산된 통진당 지방의회 의원들의 행정소송에 개입한 혐의 (이규진)
  4.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를 수집한 혐의 (이규진)

항소심은 “재판 외적” 영향력 행사 부분에 일부 유죄를 유지했다. 이민걸, 이규진 등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공모해 인사모를 와해시키기 위해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실행한 행위는 “법관들의 학술적 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모 사실도 함께 인정됐다는 점이다. “중복가입 해소 조치의 실질적인 목적은 인사모에 대한 제재였다고 봄이 타당하고, 이러한 목적은 본래 법령에서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그 직권을 부여한 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임종헌 전 차장의 재판에서 주요 변론사항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이규진이 파견 판사를 이용해 헌법재판소 내부정보를 수집한 행위에 관해서도 유죄를 인정했다.

사법농단의 핵심 장본인으로 지목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2022. 3. 현재 1심 진행중),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1심 진행중),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1심 진행중),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왼쪽부터, 2021년 9월 16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 확정, 단 이미 당시엔 구속기간이 384일이었던 상태). 참고로 박병대(전 대법관)는 2022년 2월 4일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출근하고 있다고 한다(법률신문, 박수연 기자, 2022. 2. 10.)

항소심 재판부, 집권남용 혐의를 무죄로 뒤집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공을 들여 무죄로 뒤집은 쟁점은 역시 재판 개입에 대한 직권남용죄 적용 부분이다. 통진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행정소송 재판부에 개입한 혐의나 재판부의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게 한 혐의 등은 인정하지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남용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그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경우 성립한다. 직무상 권한에 해당해야 하고 그 권한이 남용되어야 한다. 문제는 남용될 권한이 없으면 남용도 없다는 형식논리이다.

재판 개입 혐의를 받는 법관들은 역설적이게도 재판 독립의 신성불가침을 주장한다. 헌법과 법령 어디에도 진행 중인 재판에 개입할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에 개입한 위헌적 행위는 있었지만, 그러한 법적·제도적 권한은 없다. 그러므로 남용도 없다. 대상 판결 이외에 다른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서도 이러한 논리는 비슷하게 적용되었다.

재판에 개입한 위헌적 행위는 있었지만, 그런 법적 권한이 없으므로 남용도 없다는 논리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한 연예인의 유명한 기자회견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해당 판결의 1심은 조금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재판의 독립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도 중요하다. 이에 기초할 때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특정 사건 재판사무의 핵심 영역에 대한 지적 사무를 수행할 권한을 갖는다. 직업적으로 단련되지 못한 판사, 나태한 판사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지적’할 권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넘어 결정을 취소하고 다른 결정을 하라고 ‘권고’하는 경우 “직권의 월권적 남용”이 된다. 후자의 경우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이번 항소심은 이를 비판하고 다른 재판부의 형식논리로 돌아갔다. 헌법규정, 법원조직법, 적시처리중요사건예규, 장기미제사건관리예규, 법관인사규칙, 심급제와 같은 제도 등을 고려해 볼 때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지적권한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법관의 재판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한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한 범위 내의 행위로서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위법·부당한 경우 직권의 재량적 남용에만 직권남용이 인정될 수 있다는 형식논리도 반복되었다. 권한 범위 밖의 행위인데 그 내용이 일반적 직무권한과 ‘관련성’을 갖는 “직권의 월권적 남용”은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 포함될 뿐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권 없이 남용 없다”, “권한 없이 침해도 없다”는 논리이다. “법률 없이 범죄없다”는 죄형법정주의를 교묘하게 비트는 이러한 논리 아닌 논리제 식구에게만큼은 법률해석의 기계로 돌변하는 일종의 편향이다. 법률 해석의 보편적 방법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위헌인데 합법이다?’ 판결비평 사법농단 특집 1. 참조)

법원의 ‘제식구 감싸기’를 위한 형식논리의 끝판왕. 위헌적 행위는 있었지만, 권한이 없었으므로 남용은 아니다! 이에 관해선 “사법농단과 직권남용, 다시금 시험대에 오른 법관의 독립성”(2020. 11. 17.)을 참고하기 바란다.

법원행정처, ‘재판 개입’의 컨트롤타워 

항소심의 논리는 대법원장과 이를 보위하는 법원행정처의 무소불위 권력을 강화할 뿐이다. 사법행정권은 재판과 다른 작용이지만 조직적·인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재판하는 판사가 승진코스를 밟아 법원행정처에서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사법행정권을 수행한다. 항소심의 논리를 따르면, 사법행정권자의 재판에서 대한 명시적·묵시적 지시와 명령은 다른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직권남용을 구성하지 않는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사법행정권은 재판이 아닌 행정에 속한다.
  2. 사법행정권자(사법농단행위자)의 재판 개입은 사법행정권을 남용하는 위헌적 행위다.
  3. 그러나 형법상 직권남용은 아니다. 왜냐하면 남용된 사법행정권은 재판권의 남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헌적 행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무죄를 정당화하는 기묘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법원행정처는 사법농단의 장본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법의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한 ‘틀’이 아니라, 별다른 거리낌 없이 재판 개입의 위헌적 신호를 발신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였던 것이다.

‘제식구 감싸기’로 보여지는 기괴한 형식논리를 동원한 항소심 재판부.

이 판결을 읽을 때 시민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형사재판의 한계다. 법률적 판단으로 한정된 형사재판과 헌법적 가치인 법관독립은 날카롭게 구분되어야 한다. 형사재판의 무죄가 법관독립을 입증하지 않는다. 형사재판은 법관독립을 담기에 너무 작은 포켓이다.

이번 판결에서 드러난 것처럼 사법행정권을 장악한 엘리트 법관들은 법원 내부의 비판적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시도를 무력화하고, 진행 중인 재판과 그 절차에 대한 문건을 행정처나 개인의 의견처럼 둔갑시켜 전달하고 이를 재판에 반영하였다. 명백히 위헌적이다.

하지만 법원도 관료조직이므로 재판과 구분되는 행정이 필요하다. 재판의 특성을 알면서도 그와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사법에 특화된 전문행정조직을 시급히 새롭게 꾸려야 한다. 사법농단은 독립성이 요구되는 법관을 법원행정조직의 일원으로 활용하는 구조가 배태한 참사였다. 이에 대한 반성은 사법농단 행위자에 대한 처벌과 더불어, 사법행정조직의 개혁이어야 한다.

사법이란 무엇인가 

이번 판결은 사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판결문 곳곳에 “조직논리”로 움직이는 법관들의 행위가 깨알처럼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적개심에 가까운 경쟁이다.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게 한 경우, 통진당 지방의회 의원 행정소송에 개입한 경우, 파견 법관을 동원해 헌재의 내부 정보를 수집하게 한 경우 등 모두 헌법재판소에 대한 법원조직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백번 양보하여 헌법재판소에 대한 법원의 우위를 지켜고 싶다 하더라도, 사법부의 우위가 파견 법관을 활용한 정보수집, 기관간 권력 암투로 확보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법의 본질은 법리와 논증이다. 사법권력은 선출되지 않는다. 선출되지 않고도 권력을 인정하는 이유는 비선출권력의 ‘논증’이 선출권력의 ‘정치’와 다른 논리를 갖기 때문이다. 집합적 다수가 표출하는 집단적 의사 결정의 오류가능성을 논증을 통해 사후적으로라도 교정하고, 정치 과정에서 무시될 수 있는 소수의 의사도 존중하겠다는 헌정의 오랜 지혜이다. 사법권력의 존재 이유는 ‘논증’이다.

선출되지 않은 사법권력의 존재 이유이자 그 근거는 ‘논증’이다.

사법부 내의 정치가 아예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조직에는 고유한 정치가 작동한다. 그러나 아무런 변환장치 없이 법관이 법외적이고 행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사법적 결정을 흔들고 지시하며 압력을 가하여 법원조직의 위신을 보호하려 했던 행위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사법의 외관을 한 정치’였다. 항소심의 일부 무죄 판결은 이러한 행위에 다시 ‘사법의 외관’을 덧씌운 것에 불과하다.

이번 항소심과 같이 기계적 법률 해석을 반복하는 이유는 법원의 조직논리가 암묵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법원행정처 체제가 지속되는 한, 이러한 판결을 계속 반복될 것이다. 사법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첫 단추는 법원행정처의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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