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민주주의 위기는 불균형 국가체제 탓 ···균형점 찾기 대안. (지주형 경남대학교 경영학부·사회학과 교수) (⌚6분)
12.3 내란과 대통령 탄핵, 그리고 그 이후의 수습 과정에서 한국 정치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고, 이는 광범위한 정치개혁의 문제를 제기한다.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를 허용한 법과 행정 체계의 문제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 5년제 단임 대통령의 무책임함, 정치 양극화, 팬덤 정치, 극우세력의 확산 등 다양한 문제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2.3 내란이 아니더라도 한국 정치의 수많은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더구나 민주주의는 한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가 생기는 딜레마로 가득하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을 진단하는 것이 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
필자는 12.3 내란을 국가체제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해석한다. 국가체제란 국가의 운영을 규정하는 제도적 틀과 관행, 사회적 기반을 가리킨다. 이는 제도적 측면에서 국가가 사회를 대표하는 방식, 국가가 사회에 개입하는 방식, 국가 내에서 권력이 배분되는 방식을 포함한다. 관행적 측면에서는 국가의 목적과 범위를 규정하는 국가 프로젝트, 그리고 사회적 지지를 동원하는 헤게모니적 비전이 포함된다. 끝으로 사회적 기반은 국가의 운영을 뒷받침하는 안정된 지지층을 말한다.

불균형 국가 체제
현재 한국 국가체제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면 극심한 불균형이다. 국가 내부의 권력 배분의 측면에서 대통령 및 행정부와 의회 사이에 권력 배분은 전자로 기울어져 있다. 행정부 내에서도 경제부처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검찰 권력 또한 강하다. 이런 권력구조는 국가 운영을 대통령 개인의 역량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만들고 의회의 기능을 약화해 정부의 과부하를 만든다. 또한 행정부를 신자유주의적 경제 논리와 권위주의적 사법 논리로 기울게 만든다.
대표 방식에서도 국가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균형 있게 반영하지 않는다. 소선거구제, 낮은 비례대표 비율, 높은 원내교섭단체 요건, 까다로운 정당 설립 요건과 지역 정당 금지 등은 권위주의와 자유주의 보수 양당에 권력을 집중시킨다. 반면 소수 정당은 생존하기가 매우 어렵다. 더구나 의회제도 이외에 다른 대표제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 시도는 계속 파행을 겪어왔다. 현재의 국가는 엘리트, 중산층, 수도권, 남성의 이해관계를 과도하게 대표하며, 노동뿐만 아니라 청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과 같은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한다.

그 결과 국가의 사회적·경제적 개입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은 계속되고 있다. 경제정책은 수출 대기업과 불로소득자의 (부동산, 주식 등) 자산 증식을 최우선시하고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불안정 노동자가 양산되고 계급·세대 간 자산 격차가 심화하며 내수 침체로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가 한계 상황에 몰린다. 하지만 역진적 사회보장 체계는 대기업·정규직 등 핵심 노동자층에 혜택을 집중한다. 노동쟁의는 막대한 손해배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계속 확대되고, 70대 이상이 20대보다 많은 인구 역전까지 벌어졌다.
사회 양극화 초래하는 불균형
그러나 국가의 불균형을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와 상상력은 빈약하다. 이는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기능, 정당과 의회의 수동적 역할, 행정부 내 경제부처의 헤게모니, 국가 안에 대표되는 목소리의 다양성 부족,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지배력에 기인한다. 겉으로 아무리 ‘민생’과 ‘복지’를 강조해도 국가의 제1 목표는 경제성장과 경쟁력 강화이고 이를 위해 불균형은 방치하거나 확대한다.
노동을 배제하고 지역주의, 개발주의 또는 양자의 결합에 기댄 전통적인 지지 동원 방식은 정권을 잡거나 유지하는 데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노인 복지 강화, 청년·여성 및 기타 소수자의 제도 정치권 영입도 새로운 정치적 소외 집단을 대표하거나 포용하지 못한다. 도리어 일부 정치인은 전략적으로 세대·젠더·민족을 이슈로 정치 양극화를 조장한다.

불균형 국가체제는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국가의 사회적 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경제 양극화는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뿐 아니라 중산층의 미래도 불확실하게 만든다. 노인, 청년, 여성 및 기타 소수자들도 정치적 소외 집단을 형성한다. 서민과 괴리된 엘리트들의 도덕적 스캔들은 정치적 소외감을 더욱더 확대한다.
결국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고 물질적·상징적 자원의 배분에서 배제되는 많은 이들이 정치적 무력감·무관심·환멸에 빠지거나, (극단주의를 포함한) 비제도권 정치·사회운동과 인터넷에서 배출구를 찾는다. 또는 정반대로 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웅을 기다리며 정치 팬덤에 빠지기도 한다(대통령제는 이를 부채질한다). 어느 정당이나 세력도 충분히 안정된 사회적 기반 또는 헤게모니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적 갈등은 더욱더 치열해지고 정치 양극화와 권력의 불안정은 심화한다.
12.3 내란과 그 이후의 사태는 이렇게 불안정하고 양극화된 사회적·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물론 윤석열의 빈약한 정치력과 권위주의적인 태도, 극우적인 개신교와 유튜버들의 정치적·경제적 이익 추구가 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위헌적인 ‘비상대권’의 의지와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탄핵 반대나 반체제적 행동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 속에서 강화되고 실행된다.

균형 국가의 조건
물론 탄핵 이후의 정치는 내란 세력의 처벌, 극우 세력의 확산 억제, 새로운 대통령 선출을 통한 민주주의 질서의 복원을 가장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체제의 변화가 필요한 것도 분명하다. 이에 따라 내란 방지의 측면에서 원포인트 개헌이, 권력구조와 관련해 4년 중임 대통령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의원내각제 등이, 대표 방식과 관련해 국민소환제와 사회적 대화 등이, 그리고 국가 개입의 측면에서 사회권 강화와 지방 분권 등도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개혁의 성공은 문제의 핵심을 얼마나 잘 겨냥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안을 동시에 실현할 수도 없고, 실현하더라도 동일한 정도로 실현할 수 없으며, 어떤 방안도 만능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문제의 핵심이 불균형이라면 대안은 ‘균형 국가’여야 한다. ‘균형’이란 대립하는 정치적 입장 사이의 기계적 균형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내부의 비대칭적 권력 배분, 왜곡된 대표, 편향된 개입, 빈곤한 정치적 상상력,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바로 잡는 것을 말한다. 특히 국가 권력이 사회적 동의에 뒷받침될 때 안정화할 수 있다고 할 때, 개혁의 우선순위는 흔하게 제기되는 권력구조 개편보다는 왜곡된 대표제와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바로 잡는 데 있어야 한다.

1. 왜곡된 대표제 개선
먼저 균형 국가를 위한 최우선 개혁 과제로서 왜곡된 대표제를 개선해야 한다.
- 첫째, 국민이 스스로를 대표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법안에 대한 국민 발의, 공직자에 대한 국민소환, 그리고 중요 의사결정에 대한 국민투표를 확대해야 한다.
- 둘째, 수도권, 엘리트, 중산층, 남성 외에도 불안정 노동, 청년, 여성, 소수자, 지역의 소수파 등 소외집단이 국가 내부에 충분히 대표될 수 있도록 지역 정당을 포함한 정당 설립 요건 완화, 국회의원 증원, 비례대표 확대, 원내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
- 셋째, 주요 집단 간의 사회적 대화에도 실질적 의미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노사민정 협의는 노동 통제 수단이 아니라 실질적 대화와 타협의 장이 되어야 한다.
- 넷째, 국가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들 사이에 대화와 타협이 촉진될 수 있도록 다양한 수준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정당 연합을 촉진해야 한다.

2. 사회경제적 불균형 해소
이를 바탕으로 국가는 경제적 가치에 편향된 신자유주의적·성장주의적 개입 방식을 지양하고 사회적·생태적 가치 중심의 통치를 통해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 첫째, 수출 대기업과 금융·부동산 등 불로소득 자산에 치우친 경제정책을 버리고 내수와 실물경제를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 둘째, 특히 대기업·중산층이 더 큰 혜택을 받는 역진적 복지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또한 노동시간, 산업안전 등 근로조건을 더욱더 개선하고 노동시장의 불평등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 셋째, 지방에 파격적인 혜택을 줌으로써 수도권-지방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
- 넷째, 국가 실패와 시장 실패를 줄이기 위해 사회적 행위자들 간의 수평적 네트워크와 연대에 기초한 민주적 거버넌스를 확대해야 한다.

3. 국가 내부 권력 배분 조정
민주적 대표와 개입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 내부의 권력 배분도 변화시켜야 한다.
- 첫째, 대통령제를 유지하더라도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대표하기 힘든 대통령과 행정부의 과도한 권한(인사권, 예산제출권 등)은 시정해야 한다. 대신 사회와 더 가깝게 있는 의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과 정당의 정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 둘째, 행정부 내에 만연한 신자유주의, 국가주의, 엘리트주의 경향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 기능을 분리해 기획재정부의 권력을 제한하고 검찰의 정치적 권력을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 대신 노동, 보건, 복지, 여성, 가족, 환경 관련 부처가 경제 논리에 종속되지 않고 소외집단의 이해관계와 사회 생태적 가치를 반영하도록 그 위상과 기능을 개편해야 한다.
- 지방정부의 권한과 재정도 확대해야 한다. 또한 행정부 공무원의 충원 구조를 더욱더 다원화하고, 고위 공무원 승진 요건에 일정 기간 이상의 지방 근무 경험을 포함해야 하며, 행정부 수장의 일정 기간 지방 체류를 법제화해야 한다.

정치적 상상력, 가능성의 예술을 위하여
끝으로 정치적 상상력의 촉진과 국가 운영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반의 안정화는 개혁의 전제이자 결과이다. 정치적 상상력은 서로 다른 집단들 간에 새로운 타협을 끌어내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정치에 필수적이며, 균형 국가 개혁은 이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새로운 사회적 기반의 안정된 구축은 재벌-관료-보수언론의 기득권 카르텔과 수도권과 중산층 중심의 불균형 정치를 끝내고, 보수 편향적 정치 지형을 자유주의 보수와 사회 민주적 진보의 균형으로 대체해야만 가능하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새로운 민주적 균형 국가의 수립은 이 시대의 과제이며, 이를 위해서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사회적 타협과 변화를 끌어내는 ‘가능성의 예술’로서의 정치가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