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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해외입양, ‘단계적 중단’이 아닌 ‘중단’을 위한 즉각적 전환이 필요하다. (조소연/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 (⏳4분)

최근 해외입양을 둘러싼 논의는 더 이상 하나의 정책 선택에 머물지 않는다. 쟁점은 분명해졌다. 과거 해외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해외입양 과정에서 친부모 동의 없는 입양, 유기아동 허위 등록, 기록 조작, 부실한 입양부모 심사, 시민권 미보장, 이른바 ‘쿼터 맞추기’ 관행 등이 광범위하게 확인되었다. 위원회는 2025년 3월 이를 국가 책임 하에 이루어진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공식 사과와 진상규명, 피해 구제, 재발 방지를 권고했다. 이어 유엔 특별보고관들 역시 신원권·가족결합권·보호받을 권리 침해를 지적하며 진실 공개와 배상, 책임 규명, 제도 개편을 촉구했다.

같은 해 12월 17일, 한국 정부가 제출한 유엔 답변서에는 10월 대통령의 사과 발언이 인용되었다. 정부는 해외입양 과정에서 부당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공적 입양체계 도입과 정보관리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과는 책임의 종결이 아니다. 구체적 실행 계획과 점검 체계는 여전히 부족하고, 진상 규명되지 않은 사건과 해결되지 않은 피해도 남아 있다. 배상과 지원, 기록의 전면 공개, 책임자 규명 역시 충분히 진전되지 못했다. 진정한 출발점은 ‘사과 이후’부터다.

해외입양, 2029년까지 ‘천천히’ 축소하겠다?

정부는 2025년 12월 26일 발표한 ‘제3차 아동정책기본계획’을 통해 해외입양의 ‘단계적 중단’을 공식화했다. 변화의 방향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즉각적인 중단이 아니라, 2029년까지 해외입양을 ‘0명’으로 줄이겠다는 점진적 축소다. 이는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동이라도 행정적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만드는 모순을 낳는다. 정책은 늦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동의 삶은 되돌릴 수 없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제3차 아동정책기본계획’을 발표해 해외입양의 단계적 중단을 공식화했다. ©보건복지부 유튜브 갈무리
범죄에 준하는 인권침해가 확인되었다면, “조금씩 줄이자”가 아니라 “멈춘다”가 상식이다. 과거 정부들 역시 여러 차례 해외입양 중단을 약속했지만 번번이 후퇴했다.

1975년 박정희 정부는 1984년 중단을, 1989년에는 1996년을 중단 시점으로 제시했다. 2005년과 2007년에는 쿼터제를 통해 매년 10%씩 감축하겠다는 방침도 나왔다. 그러나 그 약속들이 반복되는 동안 해외입양은 오히려 1980년대 연간 8~9천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런 전례를 고려하면, 이번에 제시된 ‘2029년 0명’ 역시 과거와 다른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다시 ‘단계적 중단’을 선택한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해외입양을 중단하려면 위탁가정 등 국내 보호 인프라 확충과 법·행정 체계 전반의 정비가 필요하다. 해외입양을 옹호하는 정치·사회적 이해관계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해외입양 규모는 이미 연간 20명대에 불과하다. 더 미룰 사안이라고 보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고, 그 지연의 비용은 고스란히 아동에게 전가된다.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채 물이 넘친 뒤에야 바가지로 퍼내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왜 물이 넘치는지는 묻지 않은 채, 아이를 어디로 보낼지만 계산하고 있다.

해외입양 정당화로 악용될 수 있는 헤이그협약

대한민국이 2013년 서명한 ‘헤이그국제입양협약’은 2025년 10월 1일 공식 발효되었다. 협약은 해외입양을 원가정 보호, 친족 보호, 국내 대리양육, 국내입양이 모두 어려운 경우에만 허용되는 ‘최후의 수단’으로 규정하고, 불법·상업적 입양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의 책임과 절차적 통제를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협약 이행 자체가 아동의 권리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빈곤과 미혼모에 대한 낙인, 장애가정에 대한 지원 부족, 지역사회 돌봄 인프라의 취약성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협약은 오히려 해외입양을 합법화·정당화하는 새로운 언어로 작동할 위험이 있다. 더 정교해진 절차와 서류를 통해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형식적 준수가 아니라, 해외입양을 더는 대안으로 삼지 않겠다는 분명한 중단 원칙이다.

탈시설 로드맵이 필요하다

해외입양의 즉각 중단은 ‘대책 없이 아이를 국내에만 두자’는 뜻이 아니다. 이는 아동 보호의 책임을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 보호체계로 책임 있게 전환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보호의 기본값은 가정 기반 보호로 전환되어야 한다. 대규모 아동양육시설의 유지·확대가 아니라, 단계적 축소와 폐지를 전제로 한 탈시설 로드맵이 필요하다.

가정위탁과 그룹홈 등 소규모 가정형 보호를 중심으로 체계를 재편하고, 예산과 인력 역시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이동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단계적’이란 해외입양을 미루겠다는 뜻이 아니라, 보호체계를 체계적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장애아동 보호를 이유로 해외입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수년 전부터 장애아동의 해외입양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외입양을 중단하면 아동이 시설로 몰린다”는 주장 역시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해외입양과 시설만이 선택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분리 이전에는 예방적 지원이, 분리 이후에는 원가정 회복을 위한 주거·소득·양육 지원과 상담이 기본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복귀가 어렵다면, 그때 비로소 국내입양을 신중히 검토하는 것이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

태어난 자리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특히 중요한 것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줄이는 출발선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보호출산제와 베이비박스처럼 부모 정보를 차단한 채 아동을 익명 상태로 분리하는 방식은 위기가정을 지원하기보다 보호체계로 아동을 유입시키는 통로로 작동한다. 이는 ‘보호아동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고착화한다. 출생과 가족 정보가 봉인되는 구조는 과거 해외입양에서 드러난 인권침해를 반복할 위험도 안고 있다. 같은 예산이라면 익명 분리 관리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소득·돌봄·상담에 투자해야 한다.

해외입양 중단은 하나의 제도를 접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아동을 국가의 편의에 따라 이동시키는 방식에서 벗어나, 태어난 자리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을 다시 배치하겠다는 선언이다. 이제 국가는 아이를 어디로 보낼지를 계산하기보다 가족이 해체되지 않도록 무엇을 먼저 지켜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아동을 보호체계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그것이 해외입양 중단이 요구하는 진정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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