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이 정도면 ‘국뽕’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한국의 시스템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연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스엔젤레스타임스는 지난 8월, “여러 나라들이 한국 정부에 자문을 요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봉투 이야기다. 영국의 가디언은 “미국은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은 음식물 쓰레기 분리 배출을 가장 잘 하는 나라다.

뉴요커는 서울을 다녀와서 쓴 르포 기사에서 “한국에서는 날마다 1만3000톤의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나 동물 사료, 바이오 연료로 재활용하는데 뉴욕에서는 대부분의 유기성 쓰레기를 땅에 파묻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허핑턴포스트 기사의 한 대목이다.

“서울의 주택가를 걷다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해질녘이면 주민들이 작은 노란색 봉투를 지정된 쓰레기 수거통에 넣어 두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한국에서는 2013년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생분해성 봉투에 담아 버리고 있다. 양에 따라 가격이 책정되는데 4인 가족의 평균 비용은 한 달에 약 6달러 정도다. 이 봉투는 동네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다. 봉투를 구입하는 것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미리 납부하는 방식이다. 쓰레기 봉투 판매 금액으로 쓰레기 수거 및 처리 비용의 60% 정도를 충당한다. 쓰레기를 줄이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얼마나 많은 음식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시각적 효과도 줄 수 있다.” / 허핑턴포스트, “음식물 쓰레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

허핑턴포스트.
뉴요커.
뉴욕타임스.
가디언.

이게 왜 중요한가.

  •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게 있다. 수많은 갈등과 이해 관계 충돌을 뛰어넘는 기획과 중재,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 허핑턴포스트는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도시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했다.
  • 한국처럼 국가적인 규모로 음식물 쓰레기 분리 수거를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한 나라는 많지만 음식물을 따로 분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뉴욕은 올해 10월 퀸즈와 브루클린을 시작으로 음식물 쓰레기 분리 배출을 의무화하고 내년 10월까지 모든 자치구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이 이미 28년 전에 갔던 길이다.
  • 환경부 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음식물 쓰레기의 재활용 비율은 73.9%에 이른다. (표본 가구 조사 방식이라 실제 전체 배출량 통계와 차이가 있다.)

숫자로 입증한 변화.

  •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비율은 1995년 2% 수준에서 2021년 기준으로 97% 가까이 늘어났다. 서울시에서만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이 하루 400톤이 줄어들었다.
  • 음식물 쓰레기 RFID(전자태그) 카드도 다른 나라들이 감탄하는 부분이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보기에도 좋지 않고 관리도 어렵지만 스마트 쓰레기통이 도입되면서 카드를 찍고 무게를 달아 버리면 한 달에 한 번 과금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12만1168대가 보급돼 있다.
  • 세계경제포럼은 “이 제도의 성공에는 기술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스마트 쓰레기통이 도입된 뒤 6년 동안 서울시의 음식물 쓰레기가 4만7000톤 가까이 줄었다는 통계도 있었다.

어떻게 가능했나.

  •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쓰레기는 쓰레기 차가 가져간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뭐든 내놓기만 하면 알아서 실어가니 분리 수거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처리 비용에 대한 문제 의식도 없었다.
  • 종량제 도입 이전에는 쓰레기 처리 비용을 재산세에 연동했다. 넓은 집에 살수록 더 많은 요금이 부과됐고 애초에 배출량과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집앞에 쓰레기를 쌓아뒀다.
  • 서울시의 쓰레기를 모아서 갖다 버리던 난지도 매립장은 1993년에 포화 상태가 돼서 폐쇄됐다. 영국의 가디언이 이런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한때 꽃이 만개하고 양배추와 무, 멜론, 땅콩이 재배되던 아름다운 섬이었던 난지도가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바뀌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34배나 더 컸다.
  • 1988년 기준으로 한국 사람들은 날마다 1.8kg의 쓰레기를 쏟아냈다. 미국은 1.3kg, 일본은 1.0kg, 영국과 독일은 0.9kg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만 놓고 봐도 한국은 0.52kg, 일본은 0.37kg, 독일은 0.27kg, 영국은 0.26kg로 한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식품공업협회 자료.)
  • 1990년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되면서 쓰레기 문제는 더 이상 매립할 장소를 찾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다른 지역으로 보낼 수도 없었고 님비(Not In My Back Yard, 우리 동네만 아니면 돼) 현상도 강화됐다.
  • 봉투 값으로 수거 비용을 대신한다는 아이디어는 심재곤(당시 환경부 정책과장)의 제안이었다. 한국은 골목이 좁아 규격 쓰레기 통을 두기 어려운 곳이 많았기 때문에 좀 더 간단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 principle)’의 한국식 버전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애초에 스스로 ‘오염자’라는 인식이 없었고 지불 의사도 매우 낮았다.

이것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 쓰레기 종량제는 1992년 타당성 조사를 시작해 1993년부터 시범 실시를 했고 1995년 전국으로 확대했다.
  • 카이스트가 2014년에 발간한 “경제발전 경험 모듈화 사업: 한국 쓰레기 종량제 정책의 교재 개발”에 뒷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만약 이 계획이 동화 속 이야기였다면, 당국자들은 뉴딜(New Deal)식으로 입법과 행정 권한을 통해 별다른 견제 없이 모든 정책을 원하는 대로 추진하고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 어렵사리 정부를 설득해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도입하기로 하고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모두 없애버렸는데, 당장 문제는 크게 네 가지였다.
  • 첫째, “쓰레기 버리는 데 돈을 내란 말이냐”는 반발이 거셌다. 언론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비판을 쏟아냈다. 쓰레기 봉투가 역진적이라는 비판은 설득력이 있었다.
  • 둘째, 환경 단체들은 쓰레기 봉투가 비닐이라 분해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 셋째, 지방 정부의 반대도 심했다. 굳이 할 이유가 없는 데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민원도 큰 부담이었다.
  • 넷째, 봉투 값을 아끼려 무단 투기가 늘어날 거라는 비판도 있었다. 야산이나 계곡에 갖다 버리거나 불법 소각이 늘어날 거라는 우려도 있었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면 해법이 보인다.

  • 핵심은 사회적 합의였다.
  • 첫째, 카이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환경부 자문을 맡았던 박준우(상명대 교수)는 “시행 과정에서 다소 형평성이 희생되는 것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진적이더라도 이 정도 부담은 감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심재곤은 폐기물 거래 업체들에게 여러 차례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 둘째, 시민단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환경부 태스크포스팀은 냉소적이었던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찾아가 1년 동안 시민단체들이 직접 시범 사업을 모니터링하고 평가 결과가 부정적일 경우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실제로 시범 사업 두어 달 만에 시민단체들의 태도가 바뀌었고 시민단체들이 앞장서서 여론을 조성했다.
  • 셋째, 지방 정부 공무원들을 제주도에 불러다 놓고 “쓰레기 종량제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종량제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강조했다.
  • 넷째, 엄격한 벌금제를 도입했다. 공무원들을 투입해 불법 투기를 적발했고 심지어 봉투를 찢어 고지서 등을 찾아 주소를 추적하기도 했다. 도입 첫 해인 1995년에는 적발 건수가 110만 건이 넘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지만 아직 권위주의 정부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을 수도 있다.

여론이 움직였다.

  • 시행 초기에는 언론의 냉소와 비판이 큰 걸림돌이었다. 다음은 당시 경향신문 기사 가운데 일부다.

“1995년 1월4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의 ㅇㅇ아파트 3동 뒤편 쓰레기처리장의 경우 일부 시민이 연말을 전후해 몰래 버린 냉장고와 세탁기, 의자 등 대형 쓰레기가 눈에 많이 띄었다. (중략) 사업장에서 값싼 가정용 봉투를 마구 사가는 바람에 가정용 봉투가 일찍 동이 났다.” / 경향신문 1995년 1월4일.

  • 당시 정부 발표를 보면 종량제 시행 전 하루 5만3546톤에서 시행 이후 3만3841톤으로 37% 가까이 쓰레기 배출량이 줄었다. 8년 뒤인 2003년에는 2만7798톤까지 줄었다.
  • 초반에는 준비 부족과 시민들의 혼란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지만 실제로 배출량이 줄어든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언론 보도도 바뀌었다.
  • 1년 뒤 당시 환경부 평가를 보면 쓰레기 배출량이 27% 줄었고 재활용품은 35%가 늘었다. 경제 효과는 연간 3000억 원, 20만평 규모의 매립지를 줄일 수 있었다는 평가다.

더 깊게 읽기.

  • 권민정(서울대 행정대학원)의 2016년 논문에 따르면 쓰레기 종량제 도입 이후 음식물 쓰레기를 8.6%, 가정용만 놓고 보면 13.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 반면 사업장(이를 테면 음식점)에서는 유의미한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집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사람들이 식당에서는 반찬 남기는 걸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밑반찬이 적다고 타박하는 게 오래된 한국 문화다. 권민정은 “사회적 한계비용을(SMC)를 인식하지 못하여 공유재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라고 지적했다.
  • 수수료(봉투 가격)를 올리더라도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어차피 10배 이상 올리지 않을 바에야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 쓰레기 종량제 도입 이후 생활 쓰레기가 31.6% 줄어든 반면 음식물 쓰레기가 8.6% 줄어드는 데 그친 이유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생활 쓰레기를 줄이려면 재활용 분리 배출을 늘리면 되지만 음식물 쓰레기는 덜 먹거나 남기지 않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가능했나.

  • 한국은 원래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나라다. 반찬을 늘어놓고 먹는 문화 때문이다.
  •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하루 평균 930g의 쓰레기를 버리는데 이 가운데 40%가 음식물 쓰레기다. 연간 130kg 분량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는 연간 95~115kg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배출량이 확실히 많다.
  •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느냐’고 자주 묻는다.” 뉴요커가 만난 김미화(자원순환사회연대 대표)의 말이다.
  • “처음 도입할 때만 해도 지하철역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출근길에 음식물 쓰레기를 화장실에 버리는 일이 흔했다.”
  • 종량제 봉투 가격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봉투는 1리터에 100원부터 시작한다. 10리터짜리는 1000원, 20리터짜리는 2000원이다. (생활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20리터에 평균 490원인 것과 비교하면 좀 더 비싸다.)
  •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지만 쓰레기 종량제는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 유인 효과가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수분이 80%를 차지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짜서 버리거나 말려서 버리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봉투도 아낄 수 있고 수거 비용도 줄고 처리 비용도 줄어든다.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충격적인 몇 가지 사실.

  • 세계적으로 음식물의 3분의 1이 버려진다. 1년이면 13억 톤, 30억 명이 먹을 분량이다. 금액으로는 1조 달러에 이른다.
  •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해마다 4.4기가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음식물 쓰레기가 온실 가스 배출량의 8%를 차지한다.
  • 음식물 쓰레기의 25%만 줄여도 8억7000만 명의 식량을 해결할 수 있다.
  • 세계 인구는 2022년 80억 명을 넘어섰고 2050년이면 90억 명을 넘어선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식량 생산량을 현재 수준보다 70% 늘려야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
  • 미국에서 전체 농산물의 절반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진다. 6000만 톤 분량이다.
  • 중국에서는 해마다 3500만 톤 이상의 음식이 버려진다. 중국은 음식을 실제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주문하는 문화가 있다.
  • 리스펙트푸드(Respect Food)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63%의 사람들이 ‘사용 기한’과 ‘유통기한’의 차이를 모른다.
  • 유럽에서는 어획된 생선의 40~60%가 슈퍼마켓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버려진다.

TMI.

  • 2021년 기준으로 일반용 봉투가 73만 장, 6554억 원어치 팔렸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13만 장, 281억 원어치가 팔렸다. 이밖에도 전용 용기나 RFID 방식 수거가 18만 톤, 수거 금액은 237억 원 규모다.
  • 자원순환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생활 쓰레기 가운데 종량제로 배출되는 쓰레기가 47.1%, 음식물 쓰레기가 26.7, 그리고 재활용으로 배출되는 쓰레기가 24.6%를 차지한다.
  • 이 가운데 종량제 쓰레기는 58.8%가 소각되고 29.3%가 매립된다. 음식물 쓰레기는 96.9%가 재활용되고 나머지가 매립 또는 소각된다. 재활용으로 배출되는 쓰레기는 95.0%가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매립 또는 소각된다.

불편한 진실.

결론.

  • 한국의 종량제 시스템은 세계적인 벤치마크 모델이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1인당 배출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28년 전 종량제 봉투를 도입했을 때 기대했던 넛지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 근본적으로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는 새로운 해법과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