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투자자국가소송(ISDS)에서 패소 판정을 받은 뒤 1년이 지났다. 론스타가 7월21일 취소 소송을 냈고 한국 정부도 9월3일 취소 소송을 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 한국 정부는 론스타에 2억1650만 달러(약 2890억)를 배상해야 한다. 그리고 2011년 12월3일부터 배상금을 다 갚는 날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금리에 따른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지난해 판정 이후 1년 동안 이자만 137억 원 가까이 늘어났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 어차피 론스타가 먼저 취소 소송을 냈기 때문에 끝까지 갈 수밖에 없지만 론스타나 한국 정부나 판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 한국 정부는 이 사건을 두고 한 번도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무효 소송을 주도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을 뿐이다.
핵심 쟁점은.
- 한국 정부는 매각 지연의 책임이 론스타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환은행의 매각 지연이 정부의 행위가 아니라 론스타의 주가 조작 범죄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인과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한국 정부의 변론권과 반대신문권 등이 박탈당했고 판정부가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할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현실적으로 애초에 ISDS가 관할할 사안이 아니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10년 가까이 끌었던 중재 심판에서 변론권이 박탈당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할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했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애초에 중재 무효 사안이 되지 않는다.
- 론스타는 배상 액수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켜 손해를 봤는데 HSBC 매각 지연 부분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론스타의 주장 역시 관할권의 문제라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 깊이 읽기.
- ISDS는 항소 절차가 없다. 한 번의 판정으로 끝나도 취소(무효) 소송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 판정이 취소되려면 다음 다섯 가지 사유 가운데 하나 이상에 해당해야 한다. 첫째, 중재판정부 구성에 흠결이 있었거나, 둘째, 판정부의 권한을 넘어섰거나, 셋째, 중재인의 부패가 발견됐거나, 넷째,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이 드러났거나, 다섯째, 판정의 이유가 제대로 적혀있지 않았을 때 가능하다.
- 만약 한국 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변론권 박탈 등이 인정되더라도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론스타가 다시 소송을 낼 수 있다. 론스타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다시 새로운 중재 심판이 시작되고 배상 금액과 이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 애초에 ISDS에 관할권이 없다는 결론으로 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지난 10년 사이에 했어야 했다.
- 한동훈(법무부 장관)이 “판정문의 소수 의견이 우리 정부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만 봐도 절차 내에서 끝까지 다퉈볼 만하다”고 주장했지만 무효 소송에서는 판정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는지 따질 뿐 판정의 쟁점이나 인과 관계, 판정 결과의 옳고 그름을 검토하지 않는다.
- 송기호(수륜아시아 변호사)는 “무익한 중재 무효 신청보다는 론스타 사건으로 이익을 본 사람들의 불법 행위를 밝혀 책임을 지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모두가 론스타의 사람들.
- 외환은행 매각을 두 달 앞두고 열린 이른바 10인 비밀회의의 참석자들은 다음과 같다.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변양호와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추경호,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 김석동, 은행감독과장 유재훈, 외환은행 행장 이강원과 부행장 이달용, 경영전략부장 전용준, 한국 정부의 매각 자문을 맡았던 모건스탠리 전무 신재하, 청와대 행정관 주형환 등이다.
- 추경호(당시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자격이 갖춰지지 않을 경우 해석 등의 문제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이 부분이 클리어하지 않으면 딜은 조금도 진행될 수 없다”고 말한 기록이 남아있다. 추경호는 나중에 찬성으로 돌아섰고 기획재정부 차관을 거쳐 국회의원이 됐고 윤석열 정부 들어 경제 부총리를 맡고 있다. 론스타 소송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기도 했다.
- 주형환(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기획재정부 차관을 거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단순 동향 모니터링 차원에서 참석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 10인 비밀회의 이후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하겠다는 구두 확약(verbal assurance)을 해줬다는 의혹을 받았던 김진표(당시 재정경제부장관)는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고 국회에 들어와 국회의장까지 올라왔다.
-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탈출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석동(당시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은 재정경제부 차관과 금융위원장을 지내고 법무법인 지평 고문으로 있다. 김석동은 처조카가 론스타 직원이었고 론스타에 투자금을 넣기도 했다.
- 론스타를 산업자본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던 최종구(당시 금융위원회 위원)는 수출입은행장과 금융위원장을 지내고 법무법인 화우 고문으로 있다.
- “론스타의 자격 요건 문제는 외환은행에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서 “론스타에 맡기라”고 지시했던 변양호(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무죄로 풀려났다.
- 한덕수(국무총리)는 외환은행 매각이 진행되던 무렵 김앤장 고문으로 일하고 있었다. 김앤장은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았다. 국무조정실장과 경제부총리를 거쳐 국무총리까지 지낸 뒤 다시 김앤장으로 돌아갔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국무총리로 다시 발탁됐다.
-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했던 금감위 위원들도 다 잘 나갔다. 이동걸(외환은행 인수 당시 금감위 부위원장)은 금융연구원 원장과 KDB산업은행 회장을 지냈다.
- 김주현(금융위원장)은 금융위 사무처장 시절 론스타의 산업자본 심사를 방치한 데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은행법 시행령에는 반기마다 한도 초과보유 요건을 심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금융위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2년 반 동안 심사를 하지 않았다.
- 이창용(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도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사실을 묵인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은행 총재 인사 청문회에서 “론스타가 보내준 자료가 원자료와 다르고 확인 절차가 계속됐고, 확인되더라도 주식매각 명령을 내려야 하는지 논의가 있어 시간이 갔다”고 해명했다.
본질은 이것이다.
- 한동훈이 무효 소송에 목을 매는 건 수사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패소가 확정되면 책임 공방이 시작될 것이고 검찰 수사도 복기와 검증의 대상이 된다. 무효 소송은 결국 한동훈이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 론스타 사건이 손해 배상으로 끝난다는 건 검찰이 론스타라는 외부의 적을 겨냥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놓쳤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거물급 정치인들과 로펌, 검은 머리 외국인들을 둘러싼 온갖 의혹이 제기됐지만 변양호 등 실무자 몇 명을 재판에 세웠을 뿐이고 그나마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 한국 정부가 먹튀 논란을 의식해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미루면서 시간을 끌었고 론스타의 매각 차익이 크게 줄어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재판이 걸려 있긴 했지만 명백히 다른 사건이고 애초에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이제 와서 돌아보면 검찰 수사가 부실했다기 보다는 시스템의 실패를 외면하고 엉뚱한 데서 원인을 찾았던 게 패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 한동훈과 윤석열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불법 매각 논란이 있으니 누구 하나를 잡아 넣어야 한다는 게 사회적 요구였고 떠들썩하게 압수수색하고 포토 라인에 세우면서 사회적 카타르시스를 끌어내는 게 검찰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론스타 사건은 단순히 투기자본의 농간이나 변양호의 배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IMF 외환위기 직후 한국 사회의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무너져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시스템의 실패였다.
- IMF 이후 금융기관 매각 과정에서 금융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절차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비금융 주력자 여부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걸 공무원의 소신이라고 보고 적당히 덮고 넘어갔기 때문에 수천억 원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결론.
- 지금 이 시간에도 론스타에 지급해야 할 이자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 뒤집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효 소송에 목을 매는 건 시간을 벌기 위한 꼼수일 가능성이 크다.
- 론스타 수사 검사 출신인 한동훈 입장에서는 “피 같은 세금이 단 한 푼도 유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쇼잉을 할 수 있지만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소송은 몇 년 더 걸릴 것이고 비난을 미루자는 심산일 수도 있다.
- 송기호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승산이 있다는 한동훈의 발언은 대법원 판결에 소수의견이 있으므로 대법원 판결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주장과 같다”며 “판정무효 절차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중 어느 쪽이 옳은지 다시 재판하는 절차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미 끝난 판정이고 애초에 소수의견의 논리가 무효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 론스타가 산업자본이었고 애초에 외환은행 인수 자격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매각을 승인하고 책임을 묻지 않은 정부 관료들이 여전히 정부 요직에 앉아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 소송은 패소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기회는 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진상 조사와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 그게 이 끝나지 않는 사건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