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루션 저널리즘] 전면적 작업중지권 도입 이후 휴업재해율 연 15%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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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의 실험은 놀랍다. 삼성물산의 113개 건설 현장에서 3년 동안 작업중지권 행사가 30만1355건을 기록했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1개 현장에 1년 동안 2200건, 날마다 6건 꼴이다. 작업중지권 도입 이후 휴업재해율이 해마다 15%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 작업중지권이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 휴업재해율이란 노동자가 하루 이상 휴업하는 재해의 발생 비율을 말한다.
이게 왜 중요한가.
- 한국의 대기업 가운데 기업 차원에서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한 첫 사례다.
- 중대 재해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수단으로 작업중지권 행사가 일상화됐다는 평가다.
- 실제로 효과도 입증됐다. 삼성물산이 정확한 숫자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해마다 중재 재해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3년 동안 15%면 40%에 육박한다.
- 삼성물산 현장의 한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불이익이나 다른 근로자의 불만 등을 걱정했지만 근로자 한마디에 현장이 실제로 변화하는 것을 몸소 느끼면서 적극 활용하게 됐다.”
더 깊게 읽기.
- 첫 해에는 8224건에 그쳤는데 이듬해 4만4455건으로 늘었고 3년째에는 24만8676건으로 크게 늘었다.
- 충돌과 협착 위험이 31%, 추락 위험이 28%, 장비 전도가 24%였다.
- 삼성물산이 현장 근로자 38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7%가 “위험 상황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 건설 노조는 “원청 시공사가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것은 건설노동자에게 일대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10대 건설사 가운데 사고 사망자가 가장 적다.
작업중지권, 이렇게 발동한다.
- 부산의 토목 공사 현장에서 한 협력업체 근로자가 경사면 끝에 암석이 돌출돼 있어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작업중지를 요청해 작업을 멈추고 암석을 제거했다.
- 서울의 오피스텔 건설 현장에서 화기 작업 구역과 멀지 않은 곳에서 도장 작업이 진행 중인 걸 발견하고 앱으로 신고해 도장 작업을 중지했다.
- 서울의 빌딩 건설 현장에서 설비 점검 업체들이 자재 위로 올라가 작업하고 있는 걸 신고해서 작업 발판을 설치하도록 한 사례도 있었다.
- 방글라데시 공항 건설 현장에서는 용접 장비가 정기 점검을 하지 않은 상태라는 걸 발견하고 작업중지를 요청한 경우도 있었다. 작업을 멈추고 장비를 교체했다.
- 이 밖에도 미세 먼지가 많아 시야 확보가 안 된다며 작업중지를 요청한 경우도 있었고 체감 온도가 떨어져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청도 있었다. 외부 작업이 가능한 온도가 될 때까지 작업을 중단하고 보온 장구를 지급했다.
1:29:300 하인리히 법칙.
- 보험 감독관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보험회사에 접수된 5만 건의 사건·사고 자료를 분석했더니 산업재해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다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가벼운 사고가 반복되면 더 큰 사고가 언젠가 발생한다. 가벼운 사고를 관리하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핵심은 이것이다.
-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 전재희 실장은 “원청 건설사가 나서서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현장 노동자는 작업중지를 요청할 때 공정이 늘어지거나 동료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부담을 가진다. 하지만 작업중지를 머뭇거리다 보면 결과적으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 삼성물산의 경우 아무리 가벼운 위험이라도 적극적으로 작업중지를 요청하도록 독려했다. 안전 발판이 부실하거나 덮개가 제대로 씌워져 있지 않다거나 30분이면 해결할 수 있는 조치가 대부분이었다. 주의가 필요한 구간에 경고 표지판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 전재희 실장은 대단한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작업중지와 문제 해결로 노동자의 목숨을 살리고 회사는 잠재적인 손실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삼성물산을 보고 배워라.”
- 건설노동조합의 이례적인 논평이다. “원청 건설사가 작업중지를 보장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안전 문화를 선도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 실제로 공사 현장에서는 하청 업체들은 원청 눈치를 보고 일용직 노동자들은 자칫 일당을 못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공사 기간을 단축할수록 이윤을 남기는 구조라, 품질과 안전은 도외시되기 일쑤”라는 지적이다.
“떨어지면 죽습니다.”
-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수막이다.
- 삼성물산의 사례는 단순히 노동자들에게 주의를 경고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누구나 실수하고 누구나 주의를 놓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위험을 원천 차단하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 전재희 실장은 “설마 누가 개구부 같은 데서 떨어져 죽겠냐 싶을 수 있는데, 2023년 건설업에서 12명의 노동자가 개구부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작업중지 요청? 태업으로 몰린다.
- 다른 공사 현장은 어떨까.
- 은평구의 한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는 낙하 위험을 신고했더니 신고한 기사들에게 출입 금지 통보를 한 경우도 있었다. 원청이 불편해한다는 이유였다.
-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건설노조의 준법 투쟁을 막겠다며 안전 수칙 등을 이유로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작업을 거부할 경우 부당한 태업으로 간주하고 면허 정지 처분을 할 수 있다며 압박했다.
- 인천의 타워크레인 공사 현장에서는 거푸집이 타워크레인 조종석에 부딪혀 유리창이 깨지는 사고가 있었다. 타워크레인 기사가 강풍이 심하니 일정을 연기하자고 했는데 묵살당했고 결국 유리 파면을 뒤집어쓴 채 작업을 해야 했다.
- 국토교통부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에게 부과한 면허 정지와 경고 처분은 대부분 기각 또는 불처분 결정을 받았다. 23명 가운데 행정 처분은 1명뿐이었다. 전재희 실장은 “건설 현장은 더 이상 위험해도 위험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현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폭염 주의보에도 쉴 곳이 없다는 문제를 제기한 하청 업체 노동자들이 해고된 경우도 있었다. 건설 노조 주최 토론회에서 한 노동자는 “문제를 제기했던 분들은 생계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블랙리스트가 된다”면서 “오히려 나만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침묵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해 건설 노조 설문 조사에서는 “체감 온도가 35도 이상일 경우 옥외 작업을 중단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18%가 “그렇다”고 답변했고 82%는 “중단 지시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작업중지권 요구해 본적 없다”, 72%.
- 건설 노조가 지난 1월 2654명의 건설 노동자들을 설문 조사한 결과 실제로 작업중지권을 보장받았다고 답변한 노동자는 17%에 지나지 않았다. 72%는 작업중지권을 요구해 본 적이 없고 11%는 요구했다가 무시 당했다고 답변했다.
결단과 의지가 중요하다.
- 삼성물산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 삼성물산 관계자는 슬로우뉴스와 통화에서 “아주 작은 것도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무조건 신고하라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날마다 하는 현장 TBM(툴 박스 미팅) 때도 계속해서 작업중지권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마일리지를 적립해서 달마다 상품권을 지급하기도 했다. 앱으로 신고를 할 수 있고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경우는 카카오톡으로 신고를 할 수도 있다. 하청 업체 직원들은 물론이고 일용직 노동자들도 작업중지권 교육을 빠뜨리지 않았다.
- 비용 부담이 크지는 않을까. 삼성물산 관계자는 “작업중지 요청의 80~90%는 단순히 개구부를 덮거나 방해물을 치우거나 안전 장비를 보강하는 등 한두 시간 안에 해결될 문제였고 실제로 작업 손실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작업중지가 길어져 임금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에도 월말에 청구를 하면 전액 보상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 건설노조와 삼성물산은 모두 “중요한 건 경영진의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작은 사고를 줄이는 게 큰 사고를 막는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현장의 문제의식이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 삼성물산은 정확한 작업중지 보상 금액이나 재해 발생률, 휴업재해일 감소 비율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추가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탁종열 센터장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용자 책임을 무겁게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방과 안전 확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근본적으로 재해 발생 가능성을 줄이려는 삼성물산의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