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민주당 의원)이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하위 평가 10% 의원들은 경선 득표의 30%를 감산하기로 했는데 박용진이 포함됐다. 박용진은 대선 경선 때부터 이재명(민주당 대표)와 경쟁했고 이재명 체제 출범 이후에도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다.
이게 왜 중요한가.
- 박용진은 한때 ‘조금박해’로 불렸던 민주당 비주류 가운데 한 명이다. 조응천은 민주당을 탈당해서 개혁신당에 합류했고 금태섭은 21대 총선에서 경선에 탈락해 출마조차 못했다. 금태섭도 류호정과 새로운미래를 준비하다가 개혁신당에 합류했다. 김해영은 21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박용진만 남아있었는데 사실상 당에서 버림받다시피 한 상황이다.
- 이재명 사당화 논란과 함께 비명을 축출하고 친명 낙하산을 꽂는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박용진이 탈락 위기에 놓이면서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 박용진은 다른 의원과 다르다. 민주당에서 가장 강성 진보로 꼽히는 의원이고 의정활동 평가도 좋았다. 한때 당 대표 후보로 나섰고 공개적으로 차기 대권 도전을 시사한 적도 있다.
박용진을 기억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 박용진은 국회에 마지막 남은 ‘재벌 저격수’다. 노회찬(전 정의당 의원)이 죽고 심상정(정의당 의원)의 화력도 예전 같지 않다. 삼성의 목줄을 죈다는 평가를 받았던 보험업법 개정안이 박용진 작품이다.
- 사립 유치원 비리를 바로 잡은 유치원 3법도 박용진 작품이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온갖 협박을 쏟아냈지만 굽히지 않고 강행했다.
유치원 3법과 박용진.
- 2020년 1월 유치원 3법이 통과되던 날 박용진은 “국민들 덕분에 버텼다”며 울먹였다.
- 유치원 3법은 유치원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을 묶어 부른 말이다. 당시 미래통합당의 반발로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민주당 주도로 패스트트랙에 올렸고 330일이 지나 본회의에 상정됐다.
- 애초에 사립 유치원 비리가 공론화된 것도 박용진이 2018년 국정감사에서 사립 유치원 명단을 공개하면서부터다. 박용진을 국감 스타로 만들어준 사건이었다.
- 유치원 원장들이 유치원 3법이 통과되면 폐원하겠다며 압박했지만 굴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보험업법 개정안과 박용진.
- 유치원 3법이 박용진의 가장 큰 성과라면 보험업법 개정안은 미완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박용진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주식 가치 평가 기준을 취득 원가가 아닌 시가로 변경하자는 내용이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상당 부분을 내다 팔아야 한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보험사가 자회사 지분을 3% 이상 보유할 수 없는데 시가로 환산하면 3%를 훌쩍 뛰어넘기 때문이다.
-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각각 삼성전자 지분을 8.5%와 1.5% 보유하고 있다. 2월22일 기준으로 각각 42조 원과 7조원 어치다.
-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1979~1980년 무렵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일 때 주가는 1000원 수준이었다. 대략 5400억 원과 800억 원 정도에 사들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가가 지난 40여 년 동안 80배 가까이 뛴 상황이다.
-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자산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각각 297조 원과 81조 원인데 취득 원가 기준으로 하면 0.2%와 0.1% 밖에 안 되지만 시가 기준으로 평가하면 14.1%와 8.6%로 뛴다. 3% 이상 지분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각각 33조 원과 5조 원어치를 내다 팔아야 한다. (삼성전자 보유 지분이 각각 8.5%와 1.5%에서 1.8%와 0.5%로 줄어든다.)
이재용의 아킬레스 건.
-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다. 만약 보험업법이 통과되면 이재용(삼성전자 회장)은 이재용-삼성생명-삼성전자의 연결고리가 끊기게 된다.
- 이재용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7% 뿐이고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의 지분을 이용해 우회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만약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38조 원의 주식을 내다 팔면 이재용이 삼성전자 지배력은 15.7%에서 8.0%로 줄어든다. 이재용의 지배력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 보험업법 개정안이 삼성해체법이라고 불렸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누가 감히 삼성을 건드릴 수 있을까.
- 보험업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의 반대와 민주당의 무관심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월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 주주 등 이해관계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지분을 매각할 경우) 주가 변동성 발생 및 이에 따른 주식 시장 및 소액 주주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금융위는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 국민의힘은 애초에 당론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고 민주당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가뜩이나 지난해 박용진이 정무위원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로 옮기면서 동력을 잃은 상태다.
- 박용진이 법사위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수상쩍은 논란이 있었다. 박용진은 마지막까지 정무위에 남겠다고 버텼으나 관료들의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내가 정무위에 남지 않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한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금융위 간부가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도 석연치 않았다. “아쉽다. 우리가 작업한 게 절대 아니다.”
- 박용진이 2022년 11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쓴 적 있다.
- “우리나라 보험업법 굉장히 잘 되어 있습니다. 보험사의 투자위험이 보험사, 고객에게 전가되거나 투자대상에 보험사가 종속되는 것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완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 있음에도, 하위 행정규칙인 보험업 감독규정의 ‘취득원가’ 4글자에 의존해 초법적 특혜를 누려왔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삼성생명 대주주 이재용 회장입니다. 삼성생명법은 삼성생명 총자산 3%를 초과하는 삼성전자 주식을 보험업법에 따라 매각해 이재용 한 명이 아니라 삼성생명의 주주와 유배당 계약자 모두의 공정한 혜택을 위한 법입니다. 액면분할 전 250만 원이 넘었던 삼성전자 주식 1주가 이재용 회장 앞에선 평균 취득원가 단돈 1071원이 됩니다. 이 엄청난 불공정에 맞서 제가 초선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6년 반을 금융위와 삼성과 씨름하며 발의한 보험엄법 개정안이 바로 삼성생명법입니다. 차라리 2년 걸린 유치원 3법이 더 쉬웠습니다. 재벌총수 한 사람만을 위한 시장질서를 시장참여자 1300만 명 모두를 배신하지 않는 공정한 자본시장으로 바꾸자는 게 법의 취지입니다. (중략)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불법과 특혜를 바로 잡기 위해서 단 1cm라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 바로 박용진이 가고자 하는 길이고 제가 끈질기게 정무위원회에 있었던 이유입니다. 국민 여러분들이 끝까지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십시오.”
박용진의 좌절.
- 민주당은 22일 박용진이 신청한 재심을 기각했다. 박용진은 재심신청서에서 “의정 활동과 기여 활동, 공약 이행과 지역 활동 어느 항목에서도 평가 대상 168명 중 하위 10%라는 판단에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권태호(한겨레 논설위원)는 “박용진이 하위 10%라니 누가 납득하겠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 박용진의 지역구에는 정봉주(전 의원)가 출마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 박용진은 CBS와 인터뷰에서 “무소속 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 “손발 꽁꽁 묶인 채로 경선을 하라는 데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 국회에는 300명의 의원이 있지만 박용진 같은 의원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 ‘재벌 저격수’ 박용진이 퇴출되고 나면 재벌 개혁 이슈는 한동안 주요 의제로 논의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