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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VCNC) 창업자 이재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재웅이 이런 말을 했다.

“혁신이 두려운 기득권의 편에 선 정치인들은 법을 바꿔 혁신을 주저앉혔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기업가를 저주하고 기소하고, 법을 바꿔 혁신을 막고 기득권의 이익을 지켜내는 일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게 왜 중요한가.

  •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 4년에 걸친 재판 끝에 무죄가 확정됐지만 타다는 중단한 지 오래고 다시 살릴 수는 없다.

어떻게 된 일일까.

  • 택시 보다 비싸더라도
    • 행선지를 묻지 않고 배차되고,
    • 말 걸지 않는 친절한 기사,
    • 가까운 거리를 가거나 짐을 들고 타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
    • 넓고 쾌적한 차량(스마트폰 충전 케이블도 있고 클래식 음악도 들려준다.)에 대한 시장의 선호를 확인했다. (특히 여성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 그런데 검찰이 이재웅과 박재욱 등을 여객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2019년 10월), 1심에서 무죄(2020년 2월), 2심에서도 무죄가 났다(2022년 9월). 그리고 이번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2023년 6월).
  • 그런데 타다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국회에서 타다 금지법이 논의됐고 2019년 11월 법사위 통과, 2019년 12월 국토교통위 통과, 2020년 3월 국회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찬성이 168표, 반대는 8표 뿐이었다.)
  • 1년6개월의 유예 기간을 뒀지만 타다는 국회 통과 다음날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본질은 이것이다.

  • 개정하기 전(그러니까 타다가 영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객운수사업법에는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의 렌터카는 운전자를 알선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시행령 18조)
  • 타다는 ‘우리는 택시가 아니라 렌터카 회사에요, 렌터카에 운전자까지 함께 빌려드립니다’라고 주장했는데 어쨌거나 국회가 법을 바꾸기 전까지는 합법이었다.
  • 택시 회사들은 타다가 면허도 없이 유사 택시 영업을 한다고 반발했다. 선거를 앞둔 무렵이었고 여야 합의로 타다 금지법이 통과됐다. 택시 기사 25만 명에 가족까지 포함하면 100만 표의 힘을 갖는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 개정안에서는 구체적으로,
    • 관광을 목적으로 승차정원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인 승합자동차를 임차하는 사람,
    • 이 경우 대여시간이 6시간 이상이거나,
    • 대여 또는 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인 경우로 한정한다고 못을 박았다. (34조 2항 1. 바.)
  •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합법이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 범위를 확 줄여버린 셈이다.

붉은 깃발법.

  • 빅토리아 여왕 시절인 1865년 영국은 증기 자동차의 등장으로 마부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거라는 우려 때문에 붉은 깃발법(The Locomotives on Highways Act)이라는 걸 만들었다.
  • 사실상 기술 발전을 거부하는 러다이트법이나 마찬가지였다.
  • 몇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 자동차 1대에,
    • 운전사와 기관원, 기수를 둬야 하고,
    • 최고 속도는 시속 8km로 제한하고, (말보다 빠르면 안 되니까.) (나중에는 시속 3km까지 줄기도 했다.)
    • 기수가 자동차 55m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안내를 해야 한다는 규제를 만들었다.
    • 말이 놀랄 수 있으니까 연기나 증기를 내뿜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까지 추가됐다.
  • 붉은 깃발법은 1896년까지 31년 동안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켜줬지만 영국은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미국과 독일 등에 넘겨주게 됐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 타다가 혁신의 아이콘이었다는 평가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것도 결국 비즈니스다. 사회 공헌이 아니라 수익과 성장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뛰어든 것이다.
  • 그렇다고 당장 이익이 남는 비즈니스도 아니었다. 타다 한 대에 인건비가 하루 10만원, 기름값이 6만~7만 원, 여기에 유지 비용을 감안하면 20만 원 정도라는 추산이 가능하다. 그런데 실제로 운행비 수입은 10만 원 수준일 거라는 관측이 많았다. 1500대면 하루 1억5000만 원씩 적자가 쌓이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 타다도 면허를 사서 영업하면 된다는 반론도 많았다. 만약 택시 면허를 7000만 원으로 잡으면 타다가 면허 구입 비용이 추가로 1000억 원 이상 필요했을 것이다.
  • 사람들이 타다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대부분 택시 산업의 구조적 모순과 그 반작용 때문이었다. 서비스의 효용 대비 이용 요금이 쌌기 때문에 열광했던 것이다.
  • 날마다 사납금을 채워야 하는 택시 기사에게는 가까운 거리의 손님이 마뜩치 않을 수밖에 없다. 친절하지 않은 기사도 많고 승차 거부도 흔하다. 당장 택시 요금이 두 배쯤 오른다면 택시 기사들도 타다 기사들만큼 친절하게 되지 않을까.
  • 적자를 감수하고 택시 시장을 잠식하면 타다의 그 다음 단계 전략은 뭐였을까. 비교적 분명한 전망은 택시 가격도 오르고 타다 요금도 뛰어올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하지만 혁신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시장의 기회를 찾아서 공략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걸 막겠다고 하면 마차의 시대에 계속 살아야 한다.

더 깊게 들어가 볼까.

  • 한국은 택시 요금이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편이다. 프라이스오브트래블 집계 기준으로 3km를 가는데 서울은 2.76~5.35달러가 든다.
  • 일본 도쿄는 9.08~11.80달러,
  •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11~15달러,
  • 영국 런던은 10.39~15.59달러,
  • 스위스 취리히는 18.56~24.74달러다.
  • 저녁 마다 택시 잡기 어렵다는 불만도 많지만 국토교통부는 택시 25만 대 가운데 5만 대가 공급과잉이라고 본다. 요즘 택시회사들마다 절반 정도 택시가 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택시 정책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쉬웠던 대목.

  • 무죄 판결과 타다 금지법은 별개의 사건이다. 불법이라서 금지한 게 아니라 합법이지만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 타다 금지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갈등을 조율하려는 시도도 거의 없었다.
  • 페이스북에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오히려 반감을 부추겼을 뿐이다. 전략의 실패였고 정치의 실패였다. 애초에 국회에서 다수결로 정리할 문제도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 법을 다시 바꾸지 않는 이상 타다는 살아날 수 없다.
  • 윤석열 정부가 지금이라도 갑자기 깨닫고 뭔가를 제안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크지 않다.
  • 플랫폼 택시가 타다의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면허를 구입해야 하고 가격이나 공급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접근이 다르다. 택시 산업의 구조적 부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모델이다.
  • 원희룡(국토교통부 장관)이 밀고 있는 타입 1 플랫폼 모델타다를 허가제로 묶겠다는 발상이다. 파파모빌리티와 레인포컴퍼니, 고요한택시 등이 420대를 허가 받아 운영하고 있다. 타입 1이 플랫폼이 택시를 직접 소유하는 방식이라면, 타입 2플랫폼이 가맹 택시를 모집하는 방식이고 타입 3플랫폼이 중개만 하는 방식이다. 타입 2는 카카오벤티, 타입 3는 아이엠택시가 대표적인데 모두 기존의 택시 시스템에 묶여 있다.
  • 타다가 일부 사업을 남겨두고 있긴 하지만 타입 1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다.

타다의 다음? 몇 가지 대안은 있다.

  • 사회적 대타협을 하려면 먼저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낡은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다음 단계를 논의할 수 있다.
  • 명확한 큰 방향은 이렇다. 택시 요금은 지금보다 더 올라야 하고 단계적으로 감차를 해야 한다. 대부분 나라에서 허용된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한국만 틀어막는 건 명분이 없다.
  • 미국 뉴욕의 경험도 참고할 수 있다. 한때 택시와 우버가 첨예한 경쟁 관계였지만 지금은 우버 앱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다. 우버와 리프트 등 플랫폼 차량에 총량을 두되 플랫폼 기사들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한다.
  • 핵심은 타다 뿐만 아니라 우버와 카풀, 카쉐어링, 자율주행까지 모빌리티 전반에 걸쳐 혁신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논의는 타다 금지법을 만들던 수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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