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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의 아시안 퍼스펙티브] 가깝도고 먼 ‘동남아시아’를 통해 한국을 바라보고 아시아 시대를 꿈꿉니다.


본문과는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아내 없이 딸아이와 꼬박 1년을 버틴 적이 있다. 아이가 초등 4-5학년 때. 객지에서 공부하며 딸을 키운다는 게, 막상 해보니 상당한 고난이도였다. 돈이 조금만 여유가 있었다면 ‘외국인 가정부’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1달에 약 80만 원이면 모든 게 평온해 질 수 있다는 상상은 얼마나 달콤하던지.

물론 실행은 못했다. 돈이나 기간 문제가 복잡했고, 결정적으로 아내 없이 어른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외간 여자’를 들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도시 국가 싱가포르과 홍콩은 ‘외국인 노동자’로 유명한 사회다. 현지 인구를 보통 500만 이하로 보는데, 여성 노동자만 40만 명이 넘는다. 이러한 외국인 가사 노동자, 포린 도메스틱 워커(Foreign Domestic Worker)를 줄여서 FDW라고 부르는데, 동남아시아와 중동에서 특히 보편화된 일자리다. 시골에서 성장한 가난한 집 여성은 도시로 이주해 ‘가사 노동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싱가포르과 홍콩은 좀 더 큰 도시일 뿐이다.


외국인 가사 노동자(FDW)의 ‘고민’

홍콩과 싱가포르는 ‘국경을 넘는 여성 노동자’ 분야에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경험치를 쌓은 국가다(사우디나 카타르와는 차원이 다르다). 여성 노동자, 라고 딱 잘라 말하니 상당히 의아해할 분도 계실 듯싶다. 노동자를 왜 ‘남/녀’로 분리해 사용하느냐며, 이를 차별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노동’의 세계에서 성별은 극복해야할 과제이지만, ‘글로벌’ 차원에선 남/녀 노동은 극복될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있다. 바로 ‘임신 가능성’ 문제 때문이다.

한국 역시도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로 굴러가는 나라다. 대략 50만에서 150만에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로, 농업과 3D 산업이 굴러간다. 우리 눈에 잘 안보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대개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밤엔 집에서 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중 98%는 남성이다.

선진국 한국이 제3세계 외국인 ‘여성’ 노동자를 수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남성 노동자는 거칠어 보여도 ‘처리’는 간편한 편이다. 국외로 추방하면 끝이다. 뒤끝이 없다. 5년간 충분히 노동력을 활용하고 고국으로 돌려보내면 된다. 하지만 여성은 복잡하다. 당연히 임신 가능성 때문이다. 합법적 여성 노동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오만 가지 민감한 일이 뒤따른다.


단호한 ‘싱가포르’

싱가포르 도심 아파트. Image by xegxef from Pixabay

싱가포르는 40만의 FDW, 즉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데리고 있는 나라다. 노인 봉양, 아이들 관리, 요리 및 청소는 죄다 이들의 몫이다. 보통 3-5년 비자로 들어와 주 1회 휴식, 1년에 1회 고국 휴가가 주어진다. 브로커 비용도 상식적이고, 의료 보험도 되고, 월급도 80만 원은 받으니 당연히 인기도 좋다. 과거엔 필리핀, 최근엔 미얀마와 인도네시아 여성의 지원이 많다.

그런데, 싱가포르가장 단호하게 처리하는 부분은 ‘임신’ 문제다. 일단 FDW가 임신하게 되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고국으로 돌려보낸다. 이렇게 돌아가면 다시는 싱가폴로 오지 못한다. 착한 고용주라면 ‘조용히’ 계약을 해지해주고, 위로금도 주며 고국으로 보낸다(다시 노동자로 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병원에서 알기 때문에 자동으로 쫓겨나는 일이 많다.

여성이 임신하는 경우의 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다. 싱가포르에도 어둠의 “매음굴”이 존재하는 데, 주1회 휴식일에 추가 수입을 위해 몸을 파는 세컨 잡을 뛰기도 한다. 고향에 다녀오며 남편과 만난 탓에 임신할 수도 있고, 싱가포르 고용주와 연애를 할 수도, 강제 추행을 당할 수도 있다. 여하튼, 싱가포르에선 FDW는 임신이 곧 해고와 추방을 뜻한다. 그게 싫으면 스스로 조심하라는 뜻이다.


너그러운 ‘홍콩’

홍콩 도심 아파트. Image by darkness_s from Pixabay

싱가포르의 ‘임신=추방’ 조처는 수십 년째 인권단체와 아세안 각국의 비판을 받는 불평등 조처이긴 하다. 싱가포르 정부 생각을 모르는 건 아니다. 비좁은 싱가포르는 일종의 엘리트 지향적인 국가를 꿈꾸는 데, 기왕이면 엘리트를 초빙하고, 값싼 노동자는 5년만 써먹고 돌려보내겠다는 뜻이다. 무지렁뱅이의 자제들까지 포용할 자리가 없다는 얘기다.

비좁은 홍콩도 과거엔 그랬다는 데, 지금은 상당히 너그러워진 듯싶다. 물론 거주 조건이나 월급은 홍콩이 싱가포르에 비해선 나쁜 게 현실이다. 월급도 80만 원 훨씬 미만이고, 브로커 비용도 크다. 집도 좁은 게 현실이고. 그런데 외국인 여성 노동자가 임신을 했다고 해서, 무작정 돌려보내진 않는단다. 병원에서 잘 돌봐주고, 적당한 시기에, 고국으로 출산 휴가를 보내 준단다. 그리고 다시 홍콩에 일하러 올 수 있게 돕는다.

그래서 최근 싱가포르에서도 홍콩의 임신 이후 제도를 상당히 연구 중이라고 한다. 도입해도 될지 말지 여부를 말이다. 물론 싱가포르는 도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겉은 엇비슷해 보여도 속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홍콩은 중국을 직접 배경으로 하기에 제3국 노동자의 장기생존이 불가능하다. 반면, 싱가포르엔 ‘인도인’, ‘말레이인’, ‘버마인’ 등 여러 민족 커뮤니티가 발달한 아세안 소속이라, 여차하면 눌러 살만하다.


한국의 도전?

싱가포르의 외노자 ‘임신’ 거부 정책은, 그보다는 한족(漢族) 중심주의 혐의도 짙다. 싱가포르는 값싼 여성 노동력은 활용하고 싶고, 임신의 비용은 지기 싫어하기 때문에 ‘얌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연히 보편적 인류애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비즈니즈적인 접근이고 행동인 것이라 살짝 무섭기도 하다.

이제 한국도 정확하게 이 문제와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지배(귀족)계층’의 최대 고민은 노동력 부족이다. 노동력 감소는 체제의 위기를 동반해왔다. 이제까지 한국은 노동자의 임금과 휴식을 늘리는 것은 ‘진보’의 핵심 가치로 삼아 왔다. 그래서 우파는 ‘발전주의자 박정희가 진짜 진보’라고 주장해 왔고, 좌파는 ‘노동자의 인권, 즉 최저임금 인상’을 최우선 가치에 담았다. 그렇게 싸워가며 성장이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인구가 줄고, 노동력이 부족해졌고, 결과적으로 노년 인구를 보살필 여성 노동자의 필요성이 절실해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핀대로,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대량 수입은, 우리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애 아빠는 누군지’, ‘국적을 부여할 것인지’, ‘의료 보육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 ‘추방의 조건은 어디까지 인지’, ‘체류 기간을 어기면서 장기 거주했을 경우는…….’


균열될 진보, 보수

“돌봄 저평가, 공공성 훼손을 야기할 이주가사노동자 확산 정책을 중단하라!” 한국여성노동자회 기자회견 모습. 2023년 7월 31일.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외국인 노동자 문제 앞에서는 사실 진보와 보수가 동시에 말문이 막히게 된다. 국가나 개인 모두 ‘이익’을 목적으로 수입을 하기 때문에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결혼이 아닌 노동 과정에서의 임신은 단순한 접근으로 해결이 쉽지 않다. 어떻게 할건데?

당장 월 100만 원의 비용으로 외국인 여성을 수입해서 좋겠지만, 그 여성은 당장 월 200~300만 원을 준다는 다른 직종을 알아볼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국인 남성과) 임신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만일 국가와 사회가 그 가정에 대해 인권적 접근을 하게 될 경우, 동시에 수십만의 FDW는 ‘한국에서 임신하는 게 좋다’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싱가폴이 그토록 단호하게 대처하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즉, FDW의 수입 문제는 한국 사회에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충격을 안길 것이다. 일국적 진보와 보수의 세계관에도 균열을 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국경을 넘을 때 여러 사건이 벌어지는데, 여성이 국경을 넘을 때는 더 다이내믹해진다.

추신.

  • 한국은 FDW에 관해 조만간 정책을 확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함. 찬성이냐 반대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경험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수밖에 없을 수도.
  • 과거 ‘불법체류자’의 경우엔 문제가 될 리 없음. 추방하면 되니까. 문제는 ‘합법적 노동’인 경우에 발생하는 것. 노동자의 신체에 관련된 대목은 고용주와 국가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
  • FDW, 외국인 여성노동자 문제는, 정말이지, 가장 최강으로 복잡하고 민감하고 정치적인 이슈일 수밖에 없음. 일종의 판도라 상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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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인권이 문제가 되어버리는 전근대적 국가는 세계에서 도태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필자님도 글쓰며 이런 역겨운 현상에 대해 들여다보시며 참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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